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5
작금에 이르러 불리는 이름은 포투나 신전.”
허나, 포투나는 이 신전의 이름이 아니다. 신전이 모시는 신의 이름도 아니다. 포투나는, 그저 누군가를 위해 웃어주었던 여인의 별명이요··· 타인을 위해 제 살을 깎아내던 여인의 별명이었을 뿐이다.”
「언젠가 너도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웃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그녀가 아끼던 공간이었을 뿐이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군.’”
왜 자신이 그녀의 웃음을 보고 싶었는가.”
그것은, 그녀가 웃을 때마다 광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지닌 무언가를··· 자신이 가질 수 없던 것을 그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라크 반 그레이스.””
깨달음을 얻은 마수의 왕이 자신(自身)을 내려놓았다.”
그가 손을 뻗어 제 반신을 뜯어냈다. 너덜너덜해진 오른팔을 뜯어내고, 마수로서의 부분을 뜯어내며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바르타다.””
바르타.”
“마수의 왕이 아니다. 검사, 바르타다.””
여인의 이름을 받은 어느 짐승이 검을 들었다.”
“그렇게 불러주면 좋겠군.””
바르타가 검을 고쳐 쥐었다.”
반신이 뜯겨져 나갔으나, 오히려 바르타의 자세는 더욱 안정됐다. 더욱 날카로워졌다. 라크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세워짐을 느꼈다.”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다르다.”
간신히 호각을 이루며 맞부딪쳤던 짐승이, 지금 이 순간은 저 먼 곳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걸음. 부족했던 단 한 걸음을 채워버린 듯, 검을 쥔 바르타의 모습은 초연하기까지 했다.”
바르타가 발을 내디뎠다. 가볍게.”
바르타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 어깨를 늘어트린 채, 왼손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무겁게.”
불균형하기에, 오히려 균형이 잡혔다. 모순됨이 성립된 순간 바르타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았다. 분명 제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짐승이나, 지금 이 순간 라크는 짐승에게서 누군가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보아라.」”
「이것이 검의 극한이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그 긍지 높은 검사의 모습과 눈앞의 짐승의 모습이 겹쳐 보인 순간이다. 라크의 초감각이, 직감이, 본능이 모조리 경종을 울렸다.”
온다.”
죽음이.”
온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검이 울렸다. 검명(劍鳴)이 메아리쳤다.”
검사, 바르타. 그가 움켜쥔 한 자루의 검만을 남긴 모든 게 라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돌조각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음, 마른침을 삼키는 소음,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소음, 온갖 소리가 차례로 사라졌다.”
사라지고 사라진 끝에 남은 것은 검이 울리는 소리뿐이다. 검명만이 라크의 귀에 메아리쳤다.”
울리는 검의 소리가, 검을 쥔 바르타의 웃음이, 눈빛이 라크에게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르타 자신이 가진 전력이라고. 내가 얻어낸 해답이라고.”
“······.””
라크는 말없이 자세를 다 잡았다.”
그는 불현듯이 깨닫고 만다. 조금 전까지 자신과 호각을 이루던 검사는 지금 이 자리에 없노라고. 자신과 검을 나누던 저 짐승은 한순간에 저 멀리까지 나아갔다.”
자신만의 답을 찾고.”
자신만의 검(劍)을 완성시켰다.”
경지에 오른 검사. 자신이 동경하던 영역에 도달하고만 존재. 그 존재가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 검. 죽음을 몰고 올 검을 바라보며 라크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보인다.”
나의 전력을, 나의 전부를, 나의 최선을.”
“내게 증명해 보아라.””
죽음이 침묵하는 곳, 게헤테.”
찢어진 하늘 아래, 베여버린 땅의 위에 바로 선 죽음의 목소리가 황야에 메아리쳤다. 고막을 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뇌리를 뒤흔드는 목소리.”
스릉.”
이어지는 것은 낮게 울리는 검명(劍鳴)이다. ”
죽음의 칼에겐 검집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 검이 서서히 들어 올려질 때 울려 퍼지는 것은 검집을 긁는 듯한 기이한 소음이다. 마치 이 세상이 제 검을 담아두는 검집이 되기라도 하는 양, 가니칼트는 허공을 긁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칼날의 끝이 향하는 곳은 게헤테에 도달한 도전자.”
가니칼트는 처음부터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왼손으로 검을 쥔 순간부터 그는 단순한 재앙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아래, 단 한 번도 제자리를 내어주지 않은··· 검(劍)의 극한에 도달한 존재.”
검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말했다.”
“와라.””
긴 말은 필요 없다.”
오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가겠다는 양, 서서히 검을 늘어트리는 가니칼트를 향해··· 누군가 한 걸음 내디뎠다. 탁, 하고 황야에 가벼운 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것은 칼트다.”
검을 끝까지 뽑아내, 비어버린 칼집을 칼트는 바닥에 가벼이 내던졌다. 퉁, 하고 땅에 부딪혀 튕겨 올랐던 검집이 도로 추락했다. 추락하는 검집의 너머로 칼트는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내디디며 뒤를 돌아봤다.”
짧은 시선 교환.”
라니엘이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직후, 라니엘을 중심으로 마나가 피어올랐다. 최상위 주문조차 즉발로 발현해내는 그녀가 ‘무언가를 준비’ 한다. 그녀를 중심으로 거센 마나가 몰아침과 동시에 바람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트는 다시 한 걸음 내디딘다.”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
걸음을 내디디며 가니칼트를 똑바로 마주했다.”
자신의 이름이 불렸음에 가니칼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가니칼트는 지금 제 앞에 바로 선 인간을 알고 있다. 과거, 자신의 일격에서 살아남았던 인간.”
“초대 검성이자, 갈라트릭 류(流)의 시조를 뵙습니다.””
그 인간이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직위를, 한때 자신이 쌓아올렸던 것을.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가늘어진 시선으로 가니칼트는 보았다. 칼트의 칼끝이 그리는 궤적을. 칼트가 잡는 자세를. ”
투욱.”
유려하게 움직인 검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 내디딘 발걸음과 호흡, 그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완벽한 자세다. 그야말로, 완벽한···.”
“저는, 칼트.””
갈라트릭 류(流)이다.”
“검성(劍聖), 칼트 입니다.””
검성이란 칭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니칼트는 모르지 않는다. 갈라트릭을 계승한 자. 자신이 기어코 멸망시켜버린 갈라트릭의 의지를 잇는 자. 검성이란 칭호는 바로 그런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땅 아래에 파묻어버렸을 텐데.”
···모든 검을 부러트려, 무덤으로 만들었을 텐데.”
자신이 불태우고 부러트려 파묻어버린 거목.”
그러나, 그 거목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워··· 기어코 다시 꽃을 피워냈음을 이야기하는 검사가 눈앞에 있다. 그 모습에 가니칼트는 말 없이 검을 고쳐 쥐었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제 1 식 초견살(初見殺)의 자세.”
그 자세를 알아본 인간 역시 같은 자세를 취한다. 같은 보법. 같은 호흡. 서로 사이에 놓인 공간을 거울삼아 두 명의 검사는 정확하게 같은 자세를 잡았다. 불어오던 바람이 잦아든 순간이다.”
스걱.”
두 명의 검사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 * * ”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쾌속으로 휘둘러진 검과 검이, 공간을 무시한 채 맞부딪친다. 맞부딪치는 순간 당연하게도 꺾이는 것은 칼트의 것이다. 칼트가 그린 검로(劍路)가 뒤틀리고, 휘어져서 가니칼트의 검에 삼켜지고 만다.”
알고 있다, 애당초 기술의 완성도가 다르니.”
밀릴 것을 알고 있기에 칼트는 검을 휘두르며 자세를 낮췄다. 검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칼끝을 낮게 내린 채 땅을 박찼다. 땅을 박차고 질주했다. 구태여 같은 기술로 응수한 것은 시간을 벌기 위함에서였으니.”
서걱.”
머리 바로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검기에 칼트의 등골이 곤두섰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검(劍). 과연, 그야말로 최강의 검사라 불릴만한 존재다. 멀고도 먼 곳에 위치한 존재. 그 존재와 검을 맞대게 된 지금 칼트의 심장은 거세게 뛰었다.”
두렵다, 정말이지.”
겨우 한 합을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검을 쥔 손이 얼얼했다.”
‘괜히 검의 마법사가 아니라, 이거지.’”
허나,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두려움만이 칼트의 심장을 뛰게 만들진 않았다. 그때는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탁, 하고 칼트가 땅을 박찼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진다. 가니칼트가 휘두르는 검을, 거리를 무시한 채 떨어지는 검기를 칼트는 검을 비스듬히 세워 흘려보냈다.”
일격 일격을 흘려보낼 때마다 몸이 비명을 지르고, 칼날이 거칠게 떨리지만··· 그럼에도 칼트는 분명히 가니칼트의 검을 흘려보냈다.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