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0
옛사람들에게 있어 낙뢰는 신성함의 상징이요, 하늘이 자신의 노함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머나먼 시간이 흘러 그런 기록들이 실린 역사서를 읽던 어느 마법사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늘이 내리는 벌,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당연하디 당연한 섭리, 상징적인 의미, 신성함.”
거, 뒤집기에 참으로 좋아 보이는 단어들이라고.”
* * *”
땅에서 하늘을 향해 검붉은 천둥이 치솟았다. 뒤집힌 십자가와도 같은 형상이요, 뒤집힌 나무와도 같은 형상이다. 땅에 가지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뿌리를 뻗은 검붉은 천둥은 그야말로 반역의 상징이다.”
푸르지도, 하얗지도 않다.”
하늘에서 땅을 향해 내려치지도 않는다.”
검고 붉으며, 땅에서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는 번개. 섭리를 비웃듯이 치솟는 이 검붉은 번개에 라니엘이 붙인 이름은 역뢰(逆雷)다. 별과 거래를 통해 빌려 오는 주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라니엘 그녀 자신을 매개로 삼는 주문.”
‘본래대로라면 몸 일부가 날아갔겠지만···.’”
이 공간의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곳은 37채의 마탑으로 만들어낸, 그녀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의 안에서, 늘어선 탑들은 역뢰의 대가를 감당하기 위한 제물이 된다.”
쿠구궁, 소리를 내며 탑들이 차례로 무너진다. 무너지는 탑들과 함께 흙먼지가 솟구치는 가운데, 라니엘은 사슬을 조금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
고막을 찢는 굉음. 섭리가 찢어지는 소음. 천둥의 소리. 검붉은 색으로 요동치는 역뢰(逆雷). 검붉은 번개에 삼켜진 가니칼트의 모습은 이젠 보이지도 않는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음만이 황야에 가득할 뿐.”
···이는 지금 라니엘이 짜낼 수 있는 최선의 일격이다. 역뢰는 주문을 삼키는 그늘이던, 별빛이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물어뜯는다. 존재를 이루는 근간을 좀먹고 비틀어버리는 역천의 주문이다.”
섭리를 거스르기 위한 주문.”
고룡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한 송곳니.”
저 하늘 위의 신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칼날을, 라니엘은 눈앞의 검사를 상대하기 위해 꺼내 들었다. 본래대로라면 그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역뢰의 부하마저 라니엘은 모조리 가니칼트에게 떠넘겼다.”
어디 견딜 수 있으면 견뎌봐라.”
그리 말하듯이,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사슬을 비틀었다. 번개의 출력이 더욱 올라간다. 마탑들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물로 바쳐진 마탑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며 번개는 더욱 거세게 요동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다.”
쿠웅.”
번개에 휘감긴 채 가니칼트가 발을 내디뎠다. 그가 발을 내디딘 순간 땅이 뒤흔들렸다. 라니엘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번개의 내부를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죽음이 있다. 제 몸을 좀먹는 번개에 아랑곳하지 않고, 발을 내딛는 검사가 있다.”
콱.”
그가 제 몸을 휘감은 사슬을 움켜쥔 채, 내디딘 발을 축 삼아 몸을 비틀었다. 사슬을 붙잡고 있던 라니엘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카카카카카캉! 소리를 내며 가니칼트의 몸을 휘감은 사슬들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공중에 뜬 채 라니엘은 제 두 눈을 의심했다.”
역뢰에 휘감긴 채. 막대한 부하가 걸린 채.”
육체가 타들어 감에도, 육체가 비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검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
‘말도 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기에 눈앞의 저 인물이 영웅이라 불렸단 사실을. 가장 두려운 재앙이란 악명을 떨쳤단 사실을.”
“···큭!””
라니엘이 제 손에 휘감았던 사슬을 끊어버리며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판단은 빨랐고, 그 결과 라니엘은 살아남았다.”
서걱.”
고요한 절삭음. 조금 전까지 라니엘이 있던 위치를 스쳐 지나간 검격이 향한 곳은, 역뢰의 대가를 감당하고 있던 마탑이다. 검격이 마탑에 명중한 순간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태풍과도 같은 검격이 마탑을 후려치고, 마탑을 무너트렸다. 마탑이 무너진 순간 검붉은 번개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가니칼트가 아니다. 그가 곧장 검을 휘두르려 하나···.”
검을 휘두르던 가니칼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가니칼트의 검격을 막고자 그를 향해 뛰어들던 칼트와 라니엘 또한 한순간 눈을 부릅떴다.”
가니칼트의 검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칼끝에서 터져 나온 검기는 마탑을 베지 못했다. 마탑이 아닌 땅을 할퀴고 지나간 검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다.”
“······.””
칼트와 라니엘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효과가 있다.”
검붉은 번개가 가니칼트의 몸에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부하가 걸려 그 움직임이 둔해졌다. 자세가 완전하지 않다. 완벽한 존재가 처음으로 제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기회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은 곧장 가니칼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탑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고, 저 마탑들이 모조리 무너지기 전에 끝장을 봐야 했다.”
“······.””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을 바라보며, 가니칼트는 말없이 자신의 칼을 고쳐 쥐었다. 그리곤 길게 숨을 내뱉었다. 투구 사이로 새어나오는 것은 증기. 투구 속에서 가니칼트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고통, 육체의 붕괴, 떨어지는 핏물.”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인가.”
제 몸을 두들기는 번개를 짊어진 채 가니칼트가 발을 내려찍었다. 자세를 잡았다. 부하를 짊어진 채 가니칼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디딘 발. 땅과 수평이 되는 검.”
그가 서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을 본 순간 라니엘과 칼트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둘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멈춘 것만 같은 시간 속에서 가니칼트의 검이 휘둘러졌다.”
검이 그어낸 것은 세상의 축(軸).”
그러나 그 축은 평소처럼 하늘을 비스듬히 가르지 않는다. 흔들리는 검으론 하늘을 가를 수 없기에. 그는 처음부터 하늘이 아닌 땅을 노렸다.”
서걱.”
역천의 축(軸)이 갈라진 지면에 처박혔다. ”
축을 중심으로 공간이 찢어졌다. 비틀렸다. 번개의 부하, 육체의 불균형, 그로 인해 칼끝이 흔들렸기에 그 검격은 고요하지 않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요란한 소음과 함께 지면이 폭발하듯이 치솟았다. 그어진 축을 따라 천지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기울어진 지면을 따라 흙더미가 쏟아졌다. 마탑들이 모조리 무너지며 세상이 뒤집혔다.”
챠르르르륵.”
뒤집힌 세상 속에서 라니엘과 칼트는 이미 사슬을 밟고 질주하고 있다. 사슬을 박차고, 솟구치는 지반을 박차며 그들은 폭풍의 중심으로 향한다. 그곳에 서 있는 가니칼트를 향해.”
비스듬이 기울어진 땅. ”
무너지는 마탑.”
쪼개져 비산하는 마탑의 파편들.”
사방에 흩날리는 파편들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이를 악물었다. 방향감각이 엉망이 됐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이 어딘지 만큼은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그 걸음은 망설임이 없다.”
‘죽음의 칼, 가니칼트.’”
질주하며 라니엘은 폭풍의 중심을 보았다.”
번개에 휘감긴 채, 육체가 타들어 가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존재가 그곳에 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폭풍이 거세졌다. 사슬들이 카카캉,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강하다, 정말이지.”
미치도록 강한 존재다.”
인류가 넘어야 할 마지막 시련이라 불릴만하다. 아무리 많은 초인이 있더라도, 아무리 많은 마법을 준비하더라도 부족하다. 결국에는 이렇게 도박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까지 밀려나고 말 테니까.”
쿠구구구구궁!”
기울어진 지반, 휘몰아치는 검기의 폭풍에 휘말려 마탑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무너지는 마탑과 함께 가니칼트의 몸을 후려치던 검붉은 번개가 점차 사그라 들었다. 그러나, 번개가 남긴 흉터는 지워지지 않는다.”
가니칼트의 육체에선 피가 흐르고 있다.”
검은 구정물이 그 오른팔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더더욱 불완전해진 저 육체가 그 증거이며, 고요한 절삭음이 아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검기가 그 근거이다. 드러난 빈틈을 물어뜯기 위해 라니엘은 질주했다.”
탁, 탁, 탁.”
출렁이는 사슬을 밟고, 솟구치는 지반을 밟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마탑의 파편들을 밟으며 그녀가 뛰어올랐다. 솟구치는 검기들을 몸을 비틀어 피해내며 그녀가 공중에서 짝, 하고 박수를 쳤다.”
번쩍.”
무너진 마탑들의 파편이 일제히 빛났다. 남아있던 모든 주문이 해방되며 황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수많은 최고위 주문들이 가니칼트를 향해 쇄도하나, 그가 휘두르는 검 앞에 맥없이 흩어지고 만다.”
투확.”
흩어지는 주문들을 꿰뚫고 라니엘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손에 흩어진 주문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녀를 향해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휘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은 검기에 라니엘의 살갗이 찢어졌다. 사슬로 쳐내고, 비틀고, 막아낸다 한들 치명상만을 피할 뿐이다. 피 칠갑이 된 채 라니엘이 손가락을 튕겼다.”
챠르르르르륵!”
솟구치는 사슬들이 사방에 비산하던 파편들을, 돌바위들을, 비스듬해진 지면을 모조리 휘감았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고정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지는 것은 길이다. 라니엘이 질주하기 위한 길.”
가속(加速), 그리고 가속(Accel).”
한순간 라니엘의 신형이 사라졌다. 사슬에 묶여 허공에 고정된 발판들에서 콰직, 쿵, 하는 소음들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리곤 촤아아아아악.”
가니칼트의 후방으로 미끄러지듯 착지한 그녀가 늘어트렸던 사슬을 콱, 하고 잡아당겼다. 백금색의 사슬이 새하얗게 점멸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솟구치는 백금색의 별무리.”
그 별무리를 가르며 가니칼트의 검이 라니엘을 향해 떨어진다. 떨어지는 검을 향해 라니엘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내질렀다. 그녀가 손에 움켜쥐었던 주문의 잔재들은 어느새 검붉게 변질해있다.”
역뢰(逆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