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9
“···선배님?””
라니엘이었다.”
땅에 착지한 직후 그녀가 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검붉은 핏덩어리. 라니엘은 제 어깨를 꾸욱 누른 채 거친 숨을 내뱉었다.”
“진짜 씨, 발···.””
라니엘이 숨을 몰아쉬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용사가 된 이후, 품위를 위해 욕을 자제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차마 지금 이 순간마저 욕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가 씹어 뱉듯이 말했다.”
“나도 검을 배우든지 해야지, 씹···.””
라니엘이 꾸욱 눌렀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손과 어깨 사이에 핏물이 길게 늘어졌다. 얼핏 보면 역천의 검을 상쇄해낸 것처럼 보이나, 사방으로 비산한 검기에 할퀸 상처가 라니엘의 몸에는 가득했다.”
“후우···.””
그녀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시선을 길게 늘어트렸다. 37채의 마탑 중 12채가 무너져 있었다.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2채, 역천의 검을 상쇄해 내는 데 10채를 소비했다. 소비했지만···.”
라니엘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돌바위들이 쿵, 쿠웅 소리를 내며 떨어진 곳. 흙먼지가 하늘 높이까지 피어오른 곳. 그곳에서 후웅, 하고 가벼이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직후 하늘까지 치솟았던 흙먼지가 일거에 걷혔다.”
그곳에는 죽음의 칼, 가니칼트가 서 있다.”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아무런 상처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자신은 그곳에 발을 디디고 서 있었다는 것처럼 고고하기까지 하다. 그 모습을 보며 라니엘이 이를 악물었다.”
···도대체가, 검사가 맞기는 한 건가?”
마법보다도 더 마법 같은 검을 휘두르는, 검의 마법사를 바라보며 라니엘이 표정을 구겼다. 표정을 구긴 채 그녀가 쿠웅, 하고 발을 내려찍었다.”
챠르르르르르륵!”
솟구치는 사슬이 다시금 황야에 거미줄을 쳤다.”
사슬과 사슬이 마탑을 잇는 가운데, 가니칼트 역시 지면에 발을 내려찍었다. 갈라지는 땅. 뒤바뀌는 바람의 흐름. 그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라니엘은 솟구치는 사슬에 발을 건 채 뛰어올랐다.”
콱, 하고 칼트의 멱살을 움켜쥔 채.”
사슬에 끌려 공중으로 치솟으며 라니엘이 힘을 주어 칼트를 내던졌다. 이런 취급이 익숙하다는 듯, 칼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공중에서 균형을 잡았다. 마탑과 마탑 사이를 이어놓은 백금색의 사슬 위에 칼트가 가볍게 착지했다.”
카카카카카카카캉!”
착지함과 동시에 칼트와 라니엘은 사슬을 밟고 내달렸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서 있던 위치를 스쳐 지나간 검격이 사슬들을 끊어 놓았다. 사슬 위를 질주하며 칼트는 입을 열었다.”
“계획은 여전히 같습니까?””
“같아.””
질문에 라니엘은 짧게 답했다.”
당초 세웠던 계획은 변함이 없다. 최대의 변수는 가니칼트가 펼치는 역천의 검이었지만··· 그것을 맞아본 직후 라니엘은 속으로 확신했다.”
생각보다, 해볼 만하겠다고.”
‘검의 마법사랑 싸워본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역천의 검, 카일 토벤.”
그 빌어먹을 녀석을 상대하며 검사와의 싸움에는 도가 튼 라니엘이다. 애석하게도 카일때처럼 지반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가니칼트가 펼치는 역천의 검을 흔들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깨달은 건 있었다.”
‘막을 수 없는 일격은 아니다.’”
북부의 탑의 기억에서 보았던 것.”
카르디가 보여주었던 기억들.”
그 기억의 끝자락에서 가니칼트가 펼쳤던 역천의 검은··· 결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왕을 참살했던 그 검격에 비해, 조금 전 가니칼트가 펼친 일격은 불완전했다.”
인간에서 재앙으로 타락했기에.”
신념을 잃었기에.”
몸의 절반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그렇기에, 지금 가니칼트가 펼치는 역천의 검은 반푼이에 불과하다. 반푼이 만으로도 저런 위력이 나오는 게 어이가 없을 지경이지만··· 최소한 ‘막을 수’ 있단 점에서 라니엘은 가능성을 보았다.”
“온다, 기회는.””
라니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죽음의 칼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노려보며 라니엘은 말했다. 칼트, 네 눈에도 보이지 않냐고.”
“···보이긴 합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땅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 찰나의 순간마다 발생하는 비틀림. 육신의 절반이 마수의 것이기에, 팔과 팔의 길이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틀림이 그곳에 존재했다.”
‘기량으로 모든 걸 감추고 있지만···.’”
완벽한 존재일수록, 작은 틈이 더욱 거대하게 보이는 법이다. 역천의 검을 휘두른 직후 조금 더 커진 틈을 바라보며 라니엘이 미소 지었다. 탑의 보조를 받는다면 저 틈을 찌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리 그녀가 생각한 시점이다.”
가니칼트가 왼손으로 쥐었던 검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내던진 검을 붙잡는 것은 왼손이 아닌 오른손이다. 마수의 손으로 가니칼트가 검을 움켜쥐었다.”
* * *”
늘어선 탑. 탑과 탑 사이를 잇는 사슬들.”
탑에서 퍼져나오는 기이한 기운들이 가니칼트의 눈동자에는 보였다. 섭리를 비틀고, 이 공간의 규칙을 다시 쓰는 기이한 기운. 과거 최초의 광인을 상대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가니칼트는 생각했다.”
거슬린다고.”
탑에서 흐르는 기운이 검기를 약화시킨다.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높게 뻗은 탑들이, 탑과 탑 사이에 펼쳐진 사슬들이 제 시야를 가리고 있다.”
거슬리기에.”
가니칼트는 왼손으로 쥐었던 검을 하늘로 내던졌다. 내던진 검이 땅으로 다시 떨어질 무렵, 가니칼트의 자세는 조금 전과 같지 않다. 자신의 절반. 마수의 부분을 축(軸)으로 삼은 가니칼트가 오른손을 뻗었다.”
치워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마수의 손으로 검을 움켜쥔 채, 가니칼트가 제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그리하여 펼치는 검격은 언제나처럼 고요하지 않다. 고고하지도 않다. 인간의 검(劍)이 아닌, 마수의 송곳니와도 같은 검이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가가각!”
거센 폭풍과 함께 휘몰아친 검격이 마탑을 후려쳤다. 마탑의 기둥을 기어코 절단냈다. 한 채의 마탑이 쓰러지며 쿠웅, 하고 지면이 뒤흔들렸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사슬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리고, 가니칼트는.”
일격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양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가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광풍이 몰아쳤다. 몰아친 광풍이 탑을 뒤흔들고, 무너트렸다.”
내려오라고.”
내려오지 않는다면, 모두 무너트리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듯한 가니칼트의 앞에,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뛰어내렸다. 부릅뜬 눈동자. 움켜쥔 손아귀에서 진동하는 것은 막대한 양의 마나. 사슬에 휘감긴 라니엘의 손에서 백금색의 별빛이 범람했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최고위 주문이 남긴 잔해를 라니엘이 모조리 터뜨렸다. 가니칼트가 휘두르는 검을 향해 그녀가 주먹을 내질렀다. 굉음과 함께, 처음으로 가니칼트의 검이 뒤로 밀려났다.”
콱.”
폭발과 함께 뒤로 튕겨져나가는 검을 가니칼트는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곧장 자세를 바꾸며 그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른다. 고요한 검기를 끌며 치솟는 칼날의 앞에서 라니엘 또한 물러서지 않는다.”
챠르르르륵!”
백금색으로 빛나는 사슬을 주먹에 두른 채 라니엘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가니칼트가 왼손으로 휘두르는 검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내질렀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과 주먹이 충돌한 순간, 라니엘이 발을 박아넣은 지면이 쩌억 하고 갈라졌다. 그러나 결코 밀리지는 않는다. 눈에 핏발이 서도록 부릅뜬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검의 무게를 견뎌냈다.”
캉, 카캉, 소리를 내며 사슬이 끊어지나 몇 겹으로 라니엘의 손을 휘감은 사슬은 기어코 가니칼트의 검을 받아냈다. 끊어진 사슬들이 모조리 폭발하며 가니칼트의 검을 뒤로 밀어냈다.”
밀어내며.”
라니엘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발을 내디딘 순간, 그녀의 몸 위로 잿가루가 미친 듯이 피어올랐다. 가속(Accel). 마탑들이 찬란히 빛나며 라니엘의 몸을 한계의 너머까지 가속시켰다.”
한순간이지만, 라니엘이 가니칼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가니칼트가 몸을 뒤로 돌리는 것보다, 라니엘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빠르다. 챠르르륵, 소리를 내며 가니칼트의 시야가 사슬로 가득 찼다.”
과거, 역천의 검을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전술.”
한순간의 가속의 대가로 온몸이 타들어 가며, 라니엘은 제 손에 움켜쥔 사슬에 하나의 주문을 새겼다. 가니칼트를 휘감은 사슬에 새겨진 주문은, 라니엘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문.”
천벌(Judgment).”
하늘에서 땅으로가 아닌, 사슬을 매개 삼아 방대한 양의 전류가 범람한다. 청백색의 번개가 가니칼트의 몸을 후려쳤다. 공명하는 마탑이 천벌의 위력을 증가시키고, 보조한다. 제아무리 가니칼트가 두른 그늘이 주문의 위력을 반감시킨다 한들··· 검을 휘두르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떨쳐낼 수는 없는 법이다.”
쿵.”
그럼에도, 가니칼트는 움직인다.”
푸른 번개에 휘감긴 채 기어코 검을 휘두른다. 한순간의 가속의 대가로 무방비해진 라니엘을 베어내고자, 검을 휘둘렀다. 그 칼날이 라니엘의 몸을 양분하기 직전.”
카가가가가가각!”
둘 사이에 끼어든 칼트가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잠깐의 틈. 푸른 번개를 머금은 사슬을 움켜쥐고 있던 라니엘이 짧게 외쳤다.”
“역뢰(逆雷).””
그리 외치며 그녀가 사슬을 비틀었다.”
그 순간 가니칼트의 몸을 휘감았던 푸른 번개가, 붉은색으로 변질했다. 마나의 흐름이 뒤흔들린다. 남아있던 마탑들이 모조리 점멸했다.”
콰릉.”
하늘에서 땅이 아닌, 땅 아래서 하늘로 치솟는 붉은 번개가 가니칼트의 몸을 후려쳤다.”
내리치는 번개. ”
하늘에서 땅을 향해 떨어지기에, 그것은 낙뢰(落雷)라 불렸다. 구름을 가르고 내리꽂히는 청백색의 빛줄기를 가리켜 옛사람들은 이를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하늘이 내리는 벌, 천벌(天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