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38
땅이 치솟는다. 균형이 무너진다. 발을 디딜 곳이 사라졌다. 움푹 파인 땅에 가니칼트의 몸이 기울어진 순간, 쏟아지는 사슬이 가니칼트를 휘감았다.”
번쩍.”
직후 섬광이 일대를 후려쳤다. 섬광과 함께 밀려드는 것은 막대한 양의 열기. 사슬에 묶인 채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그곳에는 태양이 떠 있다. 탑의 기둥을 상징하듯 떠오른 서른 일곱 개의 태양이 일제히 추락했다.”
추락하는 것은 태양뿐만이 아니다.”
최고위 주문, 플레어(Flare).”
수십, 수백, 수천 다발의 열선이.”
최고위 주문, 이그니스(Ignis).”
늘어선 37개의 푸른 번개의 창이.”
최고위 주문, 티어(Tear).”
휘몰아치는 37갈래의 폭풍이.”
그리하여 도합 세 개의 최고위 주문이 태양과 함께 추락한다. 하나의 마탑을 책임지는 마탑주가 오랜시간 연산을 짜 올리고, 보조를 받아야 완성 시킬 수 있는 최고위 주문이 동시에··· 그리고 중첩된 채 발현된다.”
오직, 단 한 명의 인간의 손에 의해서.”
폭풍이, 번개의 창이, 열선이, 태양이.”
단 하나의 주문만으로도 일대를 초토화할 주문의 격류가 하나의 대상을 노리고 쏘아졌다.”
“······.””
그리고, 가니칼트는.”
자신을 노리고 쏟아지는 주문들의 격류 앞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가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자신을 옭아맨 사슬이 박살났다. 치솟은 지면. 흐트러진 땅. 가니칼트가 칼끝을 낮게 내린 채, 비스듬히 반월을 그리며 하늘 위로 쳐올렸다.”
스걱.”
치솟았던 지면이 모조리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지면이 곧장 변형하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가니칼트가 땅 위에 발을 내디뎠다. 쿠웅, 하고 발을 내려찍었다. 땅이 다시 뒤흔들리지만··· 뒤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가니칼트는 흔들리지 않는다.”
쳐올렸던 검을 다시 아래로.”
아래로 내렸던 검은 지면을 휩쓸며 다시 위로.”
두번의 검격이 찰나를 쪼개며 완성된다. 이 모든 동작이 이루어진 시간은 고작 1초에 불과하다. 직후 서걱, 하는 고요한 절삭음과 함께 카가가가가강! 하고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뒤늦게 울려 퍼졌다.”
투확.”
하늘에서 떨어지던 37개의 태양은 모조리 잘려나갔다. 번개를 한계까지 압축했을 번개의 창은 잔류가 되어 흩어졌다. 닿는 것을 찢어발기는 폭풍은 미풍이 되어 흐트러졌다. 그 근간이 베인 주문은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 채 모조리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라니엘 또한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닿으리라곤 생각도 안 했지.’”
근간이 베여 흩어지던 마나가,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든다. 가니칼트의 검이 지면을 가르며 마나가 모여드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슬을 박차고 달려드는 라니엘이 있다.”
키이이이잉!”
중첩된 최고위 주문이 만들어낸 마나의 잔재. ”
본래는 흩어져야 할 잔재를 모조리 끌어모아 움켜쥔 라니엘의 주먹이 세차게 점멸했다. 가속(Accel), 그리고 가속(加速). 가속을 거듭한 라니엘이 주먹을 움켜쥔 채 가니칼트에게 질주했다.”
챠륵!”
라니엘이 사슬을 거칠게 짓밟았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다. 거미줄을 타고 탑으로 전달된 신호에, 서른일곱 개의 탑 중 두 개의 탑이 한순간 찬란하게 빛났다.”
번쩍.”
섬광과 함께 내장된 모든 주문을 한순간에 토해낸 두 채의 탑이 뚜욱, 하고 빛이 꺼졌다. 마탑에 내장된 주문은 무엇을 위함인가?”
쿠, 구구구구구궁.”
바로 이를 위함이다.”
대격변, 중력장, 재구축. 지반을 뒤흔드는 주문이 누적된 땅에 두 채의 마탑에 내장된 모든 주문을 처박혔다. 중첩되어 처박힌 주문은 두 가지다.”
중력 역전, 그리고 격동.”
두 개의 주문이 박힌 지반은 뒤흔들리다 못해 무너졌다. 여러 갈래로 쪼개진 지면이, 역전된 중력에 끌려 하늘로 치솟았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듯이 일대의 모든 것들이 거꾸로 뒤집혔다.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던 가니칼트 또한 마찬가지다.”
하늘로 내던져진 가니칼트를 향해 라니엘이 사슬을 밟고 질주했다. 처음부터, 땅에 발을 디디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를 위함이다.”
키이이이이잉!”
라니엘이 움켜쥔 주먹이 세차게 점멸했다.”
지금 그녀가 손에 움켜쥔 것은, 그녀 개인이 품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을 까마득히 넘어선 마나의 격류다. 37채의 마탑을 저장고 삼아 라니엘이 오랜 시간 축적해놓은 마나.”
그 마나를 하나의 주문으로 뒤바꾼다.”
전조없이 발현될 이 주문을 지근거리에서 때려 박는다면, 유의미한 타격을 입힐 수 있으리라. 그리 여기며 라니엘이 사슬을 밟고 가니칼트를 향해 도약한 순간이다.”
···분명히 땅을 뒤엎었을 텐데.”
검사의 축이 되는 땅을 무너트리고, 뒤집어 균형을 무너트렸을 텐데. 디디고 설 땅이 없을 텐데. 그러니, 자세가 무너져야 했을 텐데.”
“······!””
공중에 뒤집힌 가니칼트를 본 순간 라니엘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분명히 뒤집혀 있음에도, 그 무엇에도 발을 내딛지 않고 있음에도, 가니칼트의 검은 흔들리는 것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고요하다.”
그가 쥔 한 자루의 검(劍)이 곧 중심이다.”
올곧게 뻗은 한 자루의 검이, 곧 축(軸)이다.”
땅이 뒤집히든, 하늘과 땅이 뒤섞이던, 그가 검을 쥐고 있는 순간··· 세상은 그가 쥔 검을 중심으로 다시 쓰인다. 이곳이 라니엘만을 위한 공간이라 한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갈라트릭 류, 무형식(無形式).”
분명히 바로 선 것은 자신일 텐데, 한순간 라니엘은 자신이 거꾸로 뒤집힌듯한 착각을 느꼈다. 가니칼트의 검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재정렬 됐다.”
역천(逆天).”
뒤집혔던 땅과 하늘이, 다시 한 번 뒤집혔다.”
떠올랐던 땅이, 역전된 중력에 끌려 하늘로 치솟던 바위가, 흙더미가, 그 모든 것이 한순간 제자리에 붙들렸다. 모든 것이 다만 정지된 세상 속에서 오직 죽음의 칼만이 움직였다.”
검이 움직인다. 죽음이 움직인다.”
발을 디딜 곳이 없음에도, 균형이 무너졌음에도, 축으로 삼을 것이 없음에도, 죽음이 휘두르는 검은 언제나처럼 완벽하다. 고요하다. 그렇게 휘둘러진 검이 그리는 것은 완벽한 일선(一線).”
죽음의 칼이 하나의 획(劃)을 그을 무렵, 세상의 모든 것은 그가 쥔 한 자루의 검을 중심으로 다시 쓰인다. 검을 중심 삼아 모든 것이 재정렬된다.”
갈라트릭 류 무형식(無形式).”
역천(逆天).”
검이 휘둘러질 무렵 들려오는 소리는 없다.”
소리가 사라진 세상 속에서 라니엘은 보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뒤집히는 광경을. 허공을 가른 하나의 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반전하는 풍경을.”
서걱.”
절삭음은 뒤늦게 들려왔다.”
고요한 절삭음을 뒤따르는 것은, 섭리가 찢어지며 내지르는 비명이다. 공간이 비틀렸다. 폭풍이 휘몰아쳤다. 하늘로 내던져졌던 돌바위가, 흙더미가, 지면이 모조리 추락했다.”
쿵, 쿠구구궁, 쿠웅!”
추락하는 소리. 박살 나는 소리. 무너지는 소리. 위가, 아래가, 좌, 우, 인지하는 모든 게 뒤집혔다. 마탑에 고정되어있던 사슬마저 끊어지며 요동쳤다. 사슬에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라니엘 또한 마찬가지다.”
상황이 역전됐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제멋대로 뒤섞이는 폭풍에 휩쓸리며, 라니엘은 폭풍의 중심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고고히 검을 쥐고 있는 가니칼트가 있다. 그 검 끝에서 터져 나오는 역천의 검기가 있다.”
‘미치겠네, 진짜.’”
닿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천의 검기.”
밀려드는 죽음을 바라보며 라니엘이 이를 꽉 깨물었다. 이 빌어먹을 검기를 처음 마주하는 게 아니었으므로, 지금 이 순간 라니엘은 곧장 반응할 수 있었다.”
짝.”
라니엘이 제 양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37채의 마탑 중 10채가 한순간 번쩍, 하고 섬광을 내뿜었다. 찰나의 섬광과 함께 마탑 열 채가 동시에 무너졌다. 무너지는 탑의 잔해 사이로 뻗어나오는 것은 탑에 내장되어 있던 주문이다.”
챠르르르르륵!”
하늘을 가득 메울 만큼의 회로가, 마나의 격류가, 별빛을 휘감은 사슬들이 황야를 가득 메웠다. 역천의 검기와, 신위에 닿은 마법사가 쌓아올린 탑(塔)이 충돌했다.”
—————!”
굉음과 함께 황야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허어.””
탑이 늘어선 공간에 진입한 직후, 칼트가 보게 된 것은 하늘이 뒤집히는 광경이었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칼트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두 눈으로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 머나먼 경지가 그곳에 있었다.”
서걱.”
절삭음과 함께 하늘이 비스듬히 잘려나갔다. 하늘을 떠다니던 구름이 베였다. 베이고 베인 것들이 비스듬하게 엇갈린 채 맞물리며··· 모든 것이 비틀렸다. 비틀림을 낳으며 질주하는 거대한 검기를 막아 세우는 것은 다름 아닌 한 명의 인간이다.”
챠르르르르르르르륵!”
비틀린 공간과 공간마다 사슬을 걸어 고정한 채, 그물처럼 펼친 사슬로 질주하는 검기를 붙잡는다. 1초를 잘게 쪼갠 찰나의 순간마다 수십, 수백 가닥의 사슬이 끊어지지만, 사슬은 계속해서 검기를 붙들었다.”
그리하여 벌어낸 1초의 시간.”
끊어진 사슬의 파편들이 새하얗게 점멸하며 별빛이 범람했다. 범람하는 별빛. 별빛에 뒤섞인 셀 수 없이 많은 회로가 검기를 찍어 눌렀다. 검기를 붙잡아 둔 사슬을 휘감았다.”
———————!”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기어코 검기가 박살 났다. 박살 난 검기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비산하는 검기에 닿은 것들이 모조리 갈려나가는 가운데, 촤아아악! 소리를 내며 칼트의 곁에 누군가 미끄러지듯 착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