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1
무너진 탑의 파편들이 모조리 증발했다.”
그걸론 부족했는지, 검붉은 번개는 라니엘의 살갗을 파먹었다. 내지른 팔의 살가죽이 모조리 벗겨졌다. 튀어 오른 번개가 라니엘의 어깻죽지를 파고들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라니엘은 주먹을 밀어 넣는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가니칼트가 휘두른 검과 라니엘의 주먹이 맞닿았다. 검붉은 번개와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고자 요동쳤다. 검과 주먹이 맞부딪친 공간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조금씩 밀리는 것은 라니엘이다.”
우득, 우드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 서서히 라니엘의 몸이 기울어졌다. 뒤로 밀려났다. 마수의 오른팔로 가니칼트가 칼날을 움켜쥐고 찍어누르기 시작하자, 라니엘의 무릎이 굽혀지다 못해 땅에 파묻혔다. 그렇게 완전히 자세가 무너지려는 순간이다.”
투확.”
흙먼지를 꿰뚫고 나타난 칼트가 가니칼트의 어깨에 착지했다. 칼트가 두 눈으로 보고 있던 것은, 육체의 불균형으로 인한 비틀림. 이 완벽한 검사가 드러낸 허점이다.”
‘여기다.’”
칼트가 역수로 쥔 검을 가니칼트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찔러넣었다. 마수와 인간의 육체의 접합부. 그곳에 검이 틀어박힌 순간, 가니칼트의 몸이 짧게 경련했다.”
“돌려 드립니다.””
검을 더 깊게 밀어 넣으며 칼트가 칼자루를 비틀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은 월영. 하지만, 조금 전에 펼쳤던 기술과는 다르다.”
가니칼트가 직접 선보인 제 6식을 떠올리며 칼트는 제 검기를 조금 더 정교하게 깎아냈다. 검에 흘러넘치는 달빛의 검기가 여러 잔상으로 쪼개지더니, 한순간 하나의 상(狀)으로 맺혀졌다.”
그리곤, 투확.”
요동치는 검기가 가니칼트의 어깻죽지를 할퀴었다. 가니칼트의 자세가 한순간 무너지고, 라니엘을 찍어누르던 검의 궤도가 비틀렸다. 비틀린 검격은 라니엘이 아닌 그녀의 옆에 꽂혔다.”
틈이 만들어졌다. 더는 라니엘을 막아서는 것이 없다.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선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뎠다. 내디디며 주먹을 내질렀다.”
재는 재로(Ashes to Ashes).”
재는 일지 않는다.”
수많고 수많은 최고위 주문이 남긴 잔재, 무너지는 마탑들에 남은 마나, 역뢰의 마나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는다.”
콰릉.”
그 모든 것을 삼킨 역천의 번개가 가니칼트의 몸에 처박혔다. 제 몸에 처박힌 역뢰를 향해 가니칼트가 검을 휘둘러 그 절반을 잘라냄과 동시에 섬광이 터져나왔다. 직후 고막을 찢는듯한 굉음과 함께 역뢰(逆雷)가 폭발했다.”
—————-!”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역뢰가 폭발했다. 역뢰가 만들어낸 폭발의 여파에 떠밀려 라니엘도, 칼트도 바닥을 굴렀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른 두 사람은 쿨럭, 하고 피를 게워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검을 놓지 않았던 칼트는, 무심코 제 손에 쥐여진 칼자루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불괴(不壞)라 불리던 칼날이 뚝 하고 끊어져 있는 까닭이었다. 칼이 부러져 뒤로 날아간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박살 나는 건 검이 아니라, 검을 쥔 팔이었을 테니까.”
“크읍, 쿨럭.””
피를 게워내며 칼트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칼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맞은편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는 제 선배를 바라봤다.”
둘 다 만신창이었다.”
검기의 폭풍 속으로 뛰어든 탓에 난도질당한 몸은 피칠갑이 되어있었으며, 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쓰게 웃으며 칼트는 시선을 미끄러트렸다. 자신과 선배의 사이에 놓여있는 거대한 흙먼지.”
폭발이 일으켰던 흙먼지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죽음의 칼, 가니칼트다. 여전히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는 재앙을 바라보며 칼트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는데 피해가 없었단 건가?”
‘···아니, 아니다.’”
칼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가니칼트의 몸에선 후두둑, 하고 검은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수의 오른팔은 보기 흉하게 비틀려 있으며··· 투둑, 하고 지면으로 갈비뼈 몇 대가 추락했다.”
유의미한 피해다.”
죽음이, 피를 흘리고 있다.”
칼트가 부러진 칼을 고쳐 쥐었다. ”
라니엘은 이를 악물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숨을 고르고, 가니칼트를 향해 다시 달려들려는 순간이다. 그 순간 가니칼트가 움직였다.”
후두두둑.”
그가 움직일 때마 검붉은 피가 떨어졌다. 떨어졌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검을 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제 투구를 향해.”
그리곤, 콱.”
가니칼트가 칼자루를 악물었다.”
칼자루를 악문 채, 그가 비어버린 왼손을 서서히 제 오른팔을 향해 움직였다. 비틀려 버린 오른팔.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닌, 제 호적수의 것이었던 육체. 마수의 왕의 팔을, 팔에 얽힌 마수들의 척추뼈를 그가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콰직.”
그리곤.”
드득, 드드드드드드득!”
가니칼트가 제 오른팔을 뜯어냈다.”
마치 비틀린 팔이 방해된다는 듯이. 필요가 없다는 듯이, 제 반신(半身)을 뜯어냈다. 사방으로 검은 구정물이 튀어 올랐다. 검은 핏물이 튄 지면이 검게 얼룩졌다.”
뜯어버린 오른팔을 그가 내던졌다. ”
마치, 검사가 제 검집을 내던지듯이.”
팔과 함께 뜯어져 나온 척추뼈가 늘어진 오른 어깨를 축 늘어트린 그가, 왼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검을 등 뒤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취하는 자세는 직전에도 보였던 역천의 검을 펼치기 위한 자세다.”
그러나, 다르다.”
무언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제 오른팔을 뜯어낸 가니칼트를 정면에서 마주한 순간 라니엘의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검(劍)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자세의 올바름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그런 그녀라 한들 느낄 순 있었다.”
막지 못한다. 설령, 37채의 마탑이 모두 멀쩡하다 한들 지금 펼쳐지는 저 일격을 막지는 못한다. ”
제 오른팔을 뜯어냄으로써 더욱 불안정해져야 할 자세가, 역설적이게도 완전해졌다. 마수의 부분을 뜯어냄으로써 눈앞의 검사는 완전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흠결이, 틈이 이젠 보이지 않았다.”
저 자세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는데.”
저런 완전한 형태의 검을 어디선가···.”
기억을 더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북부의 탑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마왕을 참(斬)하던 용사의 모습이다. ”
서걱.”
그 사실을 라니엘이 깨달은 순간, 고요한 절삭음이 황야에 울려 퍼졌다.”
바르타가 검을 갈무리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만신창이가 된 라크가 서 있었다. 피 칠갑을 한 청년은 제 양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다.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서 있지만, 그저 서 있을 뿐이다.”
“네 패배다.””
바르타가 라크의 손을 가리켰다.”
라크가 손에 쥔 검을 가리켰다.”
“검이란 검사의 긍지.””
라크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최초의 성검.”
“검이 부러진 너의 패배다.””
성검의 칼날은 산산이 조각나 있었다. 부러진 칼을 쥔 라크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시야가 흐릿했다. 정신이 몽롱했다.”
지금 자신이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방향감각이 엉망이 됐다. 몸이 뜨거웠다. 아니, 차가웠다.”
후두둑.”
라크가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봤다.”
흘러내린 핏물이 고여있었다. 피. 누구의 피인가. 내가 흘린 피인가? 어느새? 제 몸을 바라보면 난도질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미친 듯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깜빡.”
한순간 시야가 점멸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바닥에 고인 핏물이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핏물이 가까워진 게 아니었다. 자신이 핏물에 가까워진 것이었다.”
“······.””
기어코 자신이 무릎을 꿇었음을 라크는 깨달았다. 일어서려 해보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호흡, 감각, 제 몸의 어느 것 하나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철퍽.”
피웅덩이에 라크가 고꾸라졌다.”
제 핏물에 얼굴의 절반이 잠긴 채 라크가 시선을 늘어트렸다. 늘어트린 시선은 살가죽이 모조리 벗겨진 제 팔을 향했다. 라크는 흉하게 뒤틀린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그곳에는 한 자루의 칼이 쥐어져 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라크가 놓지 않았던 긍지다.”
선조, 그레이스의 스승. 위대한 검사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의 애검. 최초의 성검이자, 최초의 용사와 함께 난세를 가로지른 성유물. 위대한 검사의 인정을 받아, 라크가 끝내 물려받은 가니칼트의 긍지.”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