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42
라크는 신음했다. 탄식했다.”
라크는 허망한 눈동자로 자신이 쥐고 있는 검을 보았다. 최초의 성검이, 물려받은 긍지가 부러졌다. 산산이 조각난 도신의 파편이 핏물에 잠겨가고 있었다. 라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됐는가.”
바르타가 제 팔을 뜯어내고 펼친 일격. 그 일격을 받아친 순간 성검은 박살 났다. 라크가 그리던 검로(劍路)또한 산산이 조각났다. 그 중간과정은 생략된 채 바르타가 검을 휘둘렀고, 자신이 참패했다는 결과만이 남았다. ”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됐는지 라크는 이해하지 못했다.”
바르타가 휘두른 검(劍)을 라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와 불이해. 원인과 결과. 그 단어들과 단어 사이에 놓인 간극이 곧 라크와 바르타 사이의 거리였다.”
닿지 못한 영역. 닿지 못한 경지.”
자신보다 한 걸음 앞선 곳에 서 있는 바르타의 목소리가 라크의 귀에 메아리쳤다.”
“너의 패배다.””
검이란 곧 검사의 긍지.”
긍지가 부러진 너의 패배다.”
너의 패배다.”
그렇게 선언하는 바르타의 목소리가 라크의 귓가에 몇 겹으로 겹쳐져서 울렸다. 고막을 시끄럽게 울리는 목소리. 그러나 그 소음도 오래가진 않았다.”
흐릿해진다, 모든 것이.”
모든 감각이 흐릿해지다 못해 끊어졌다.”
라크는 제 몸이 하염없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몸 안에 든 것을, 피를 이다지도 많이 쏟아냈거늘 오히려 몸은 더 무거워졌다. 무거워진 몸. 무거워진 의식.”
서서히 두 눈이 감겼다.”
이 눈꺼풀이 감기는 순간,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거란 사실을 라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죽음은 고요했다.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라크의 목덜미를 소리 없이 움켜쥐었다.”
움직여라, 제발.”
다가오는 죽음 앞에 라크는 공포를 느꼈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 전사란 언제나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이니.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맞이하는 죽음은 두려웠다.”
‘아직,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형제들의, 오야칼의 원한을 갚지 못했다.”
마수의 왕, 바르타에게 복수하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증명하지도 못했으며, 저 짐승이 서 있는 위치에 자신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속하지 않았나.”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그녀와 약속했다. 아직 이루어야 할 것이, 지켜야만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라크의 영혼은 그리 비명을 질러대며 다가오는 죽음에 저항하나··· 라크의 육신은 그리하지 못한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육체다.”
영혼의 부르짖음에도 육체는 움직이지 않는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라크의 눈꺼풀이 기어코 감기고 말았다. 흐릿하던 시야가 완전히 닫혔다. 라크의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검게 덧칠된 세상의 아래로, 검은 바다의 밑바닥을 향해 라크의 의식이 침전했다.”
제발, 움직여라, 제발···.”
영혼의 부르짖음 또한 희미해졌다.”
검은 바다는 영혼의 비명마저 집어삼켰다. 그리하여 라크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채 죽음은 라크를 바다의 밑바닥으로 끌고 갔다.”
추락한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추락할수록, 밑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라크는 자신이 쌓아온 탑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이란 결국 궁극적인 삶의 부정이다. 라크가 쌓아온 모든 것이 다만 공허함을 보여주듯, 죽음은 라크의 삶을 낱낱이 해체하고 있었다.”
탑이 무너졌다. 라크의 삶이 바스러졌다.”
해체되고 해체된 탑은 앙상하고 볼품없다. ”
삶의 끝, 혹은 죽음의 초입에서 라크는 앙상해져 버린 자신의 삶을 마주했다. 죽음은 그런 탑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양, 앙상해진 탑을 무너트렸다.”
벽돌들이, 뼈대가, 탑을 이루는 것들이.”
라크가 자신의 삶으로 쌓아올린 것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흩날리는 제 삶의 파편을 라크는 허망이 바라봤다. 끝인가.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인가.”
「죽음 앞에 인간은 무력해. 사실이야. 죽음은 네가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트리겠지.」”
파편화된 삶. 사방으로 흩날리는 삶.”
「그런데 말야.」”
라크의 삶, 라크가 쌓아올린 탑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벽돌. 바스러진 벽돌이 라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라크가 제 삶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수긍할지, 수긍하지 않을지는 네 선택이지.」”
라니엘 반 트리아스가 미소 지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조언해준 스승.”
그분께서 들려주었던 말이 라크의 귓가에 맴돌았다.”
「손을 뻗어.」”
가라앉던 라크가 손을 뻗었다.”
「무너지는 것들을 움켜쥐어.」”
뻗어서, 제 삶의 파편을 움켜쥐었다.”
「다시 쌓아올려. 처음부터.」”
라크가 몸을 비틀었다.”
무너지는 제 삶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너지고 무너진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 빛나고 있었다. 죽음에 삼켜지는 라크의 삶을 마지막까지 지탱하고 있던 것. 라크의 삶의 뼈대가 되어준 것.”
그것은, 성배의 파편이다.”
언젠가 라크에게 심어졌던 성배의 파편.”
개화(開花)하여 라크의 삶에 뿌리내렸던 별빛의 조각. 그 조각에서 뻗어나온 덩쿨이 라크가 쌓아올린 탑이 무너지지 않게끔 붙들고 있었다.”
···그런가.”
라크가 웃음을 흘렸다.”
‘나는, 마지막까지 독립하지 못했던 건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라크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무너지는 자신의 삶을 지탱한 것 또한, 결국에는 누군가 심어준 씨앗이었다. 과거를 살아갔던 영웅들의 삶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신의 삶에는 자신(自信)이 없었단 사실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너트리고 쌓아 올렸다 생각한 탑도, 결국에는 그 근간은 빌려 온 것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빌려 온 기술. 빌려 온 무기. 빌려 온 힘. ”
제 삶을 이루는 그 어느 것하나 라크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저것들이 토대를 이루고 있으니, 결국에 언제까지고 자신은 독립하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리라. 누군가 걸은 길을 그저 하염없이 따라갈 뿐인 꼭두각시에 불과하리라.”
홀로 서지 못한 어린아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나아갔을 뿐인 애송이.”
그 사실을 여기까지 와서 깨닫다니.”
쓰게 웃으며 라크는 무너지는 탑을 지탱하고 있는 성배의 파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의 몸에 심어졌던 별빛을 움켜쥐었다. 그것을, 자신의 탑에서 뜯어냈다.”
이제는 독립해야만 했다.”
자신의 힘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쿠구궁.”
별빛을 뜯어낸 순간 탑이 모조리 무너졌다.”
무너지는 탑에, 라크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탑의 파편을 박아넣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탑에 초석(礎石)을 세웠다. 꽂아넣은 초석 위에 라크는 제 삶의 파편들을 쌓아 올렸다. 보다 단단하게. 보다 정교하게.”
처음부터. ”
처음부터, 다시.”
이제는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자신만의 힘으로.”
피웅덩이에 잠긴 라크가 더는 움직이지 않음을 확인한 바르타가 고개를 돌렸다. 그가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이번 생(生)에, 두 번째 삶에 이뤄야 할 목표는 모두 이루었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어째서 과거, 포투나가··· 바르타란 이름을 가졌던 그 소녀가 마지막에 웃지 못했는지. 그녀가 왜 자신을 원망했는지. 가니칼트 반 갈라트릭이 어째서 그다지도 고고하게 있을 수 있었는지.”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도 빛났는지.”
‘이제야, 이제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낱 바르타가 되어서야 그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수의 왕이 아닌 한낱 인간. 기나긴 삶의 끝에 인간을 이해하게 된 바르타가 웃음을 흘렸다.”
이제는 답을 맞춰볼 수 있었다. 광인이 되살려 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이제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 비틀거리며 바르타가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쿠웅, 하는 소리가 공기를 타고 울렸다. 바르타의 걸음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쿵.”
피웅덩이에 잠겨 죽음을 맞이했을 인간.”
쿵, 쿵, 쿵.”
멈췄을 인간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었다.”
뛰는 것은 심장만이 아니다. 인간의 몸이 천천히 움직였다. 부러진 손가락으로 철퍽, 하고 피 웅덩이를 짚은 채 서서히 제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죽었을 인간이.”
움직이지 못해야 할 인간이 다시 움직인다.”
기이한 풍경이다.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다. 분명 심장이 멈추는 것을 확인했는데? 죽음이 저 인간을 집어 삼켰을 텐데, 어떻게? 그런 바르타의 의문을 비웃듯이 몸을 일으킨 라크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