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74
바스러지고 바스러진 영혼의 파편과 함께 벨노아의 심장이 드러났다. 심장에 박혀있는 별의 조각이 후두둑, 하고 어둠 위로 떨어졌다. 떨어진 것은 별의 조각뿐만이 아니다. 별의 조각에 얽혀있던 뿌리가, 벨노아가 쌓아올린 주술의 계보가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조각이 투욱, 하고 땅에 닿은 순간이다.”
【 】”
벨노아의 귀에 들려오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벨노아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곳. 벨노아가 목소리가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이다.”
“이거야 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 열심히 기록을 남기고, 그리 열심히 조언을 남겼는데 이렇게 무시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탁, 하고 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둠뿐인 공간에서 무언가 콱하고 벨노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거친 손길. 투박한 손이 벨노아의 멱살을 붙잡은 채 그림자 속에서 끌어냈다.”
그림자가 흩어졌다. 시야가 트였다. 귀가 열렸다.”
벨노아가 눈을 깜빡이며 바닥을 보았다.”
별의 조각··· 그러니까 성배의 파편이 꽂혀있던 곳부터 이어진 발자국이 있었다. 이어진 발자국은 자신의 앞에 멈춰 서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벨노아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렇지 않나, 소년?””
그곳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그 얼굴을 벨노아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기억을 길게 더듬을 필요도 없었다. 제 앞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의 우상이었으니까.”
벨리알 반 드라고닉.”
벨노아 이전의 계약자이자, 고대의 영웅.”
“오랜만이다, 벨노아.””
그가 벨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벨노아.””
벨리알 반 드라고닉.”
벨노아 이전의 계약자이자, 최초의 용사 가니칼트와 함께 세상을 가로질렀던 용의 주술사. 그리곤 끝내 짐승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비운의 영웅.”
일찍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을 고대의 영웅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보고도 이해가 가질 않는 풍경에 벨노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시야가 트였고, 귀가 열렸다. 그림자에 물들어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지금은 깔끔했다.”
“···벨리알 님?””
“오, 내 이름은 안 까먹었나 보군. 그리 열심히 남긴 조언을 다 까먹었길래, 난 또 내 후배가 청년 치매라도 걸린 줄 알았지.””
벨리알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나다.””
그가 시선을 늘어트렸다.”
벨노아의 곁에 서 있는 그림자 용의 군주를 벨리알이 바라봤다. 여신 역시, 자신의 옛 계약자를 바라봤다. 여신께서 길게 신음하셨다.”
【네가 어떻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은 누구보다도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벨리알의 영혼은 그림자에 물들었으며, 다시 그늘에 뒤섞여 완전히 혼탁해졌었다. 그 혼탁해진 영혼을 정화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흑룡은 토벌되지 않았던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가장 오래된 신조차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나는 너를 잃어버렸을 터인데, 너를 말리지 못했을 텐데, 어떻게 네가······.】”
여신의 시선이 흔들렸다.”
흔들림 속에 담긴 것은 당황, 후회, 그리고 안타까움이다. 자신의 계약자들을 제 자식처럼 아꼈던 여신이다. 그렇기에 제 앞에 다시 나타난 벨리알의 모습에 여신의 용안(龍眼)은 하염없이 흔들렸다.”
“거 오랜만이요, 여신님.””
그런 여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벨리알은 피식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가 제 머리칼을 긁적이며 길게 숨을 뱉었다.”
“말하자면 길지만··· 나도 꼼수를 부렸거든.””
그가 제 뒤를 가리켰다.”
그곳엔 땅에 박혀있는 성배의 조각이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벨리알의 발걸음은 이어져 있었다.”
“내 영혼의 일부를 그림자 용의 주술에 담았지. 카르디 녀석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야.””
벨리알이 벨노아를 바라봤다.”
“내가 남긴 주술의 계보를 따라온 이가 성배에 닿은 순간··· 내가 남긴 영혼이 성배에 싹트게끔 손을 써뒀고. 자세하게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이런 부분은 대충 넘어가자고.””
성배와 주술의 계보, 그리고 그림자 용의 여신이라는 특수한 존재. 별의 계약. 그 외에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엮여 만들어진 일이었다.”
“중요한 건 내가 이렇게 찾아왔다는 거지.””
그가 호쾌하게 웃으며 벨노아의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어깨가 두들겨질 때마다 벨노아의 시야가 위아래로 출렁였다.”
“원래대로라면 조언을 남기고, 주술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주는 정도로 그치는 역할이었을 테지만···.””
벨리알이 말끝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림자에 뒤덮인 공간. ”
이는 용의 주술의 마지막 단계에 발을 디뎠을 때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요, 주술사가 제 모든 것을 용에게 바쳤음을 의미하는 풍경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내 계보를 이은 녀석이 나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면.””
벨노아의 어깨를 두들기던 손이 멈췄다. 벨리알의 손이 벨노아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붙잡을 수 있게끔 수를 썼지.””
“···하지만.””
“그래, 알고 있다. 너와 같은 것을 보고 있었으니까. 여기까지 왔으면 쓸 수밖에 없었겠지.””
벨리알이 쓰게 웃었다.”
광인 그 녀석은 여전히도 지독하구먼, 하고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목숨보다도 소중한 게 있으니까. 짐승으로 추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만 할 것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네 선택이 틀렸다고 지적할 생각은 없다.””
네게는 너만의 신념이 있었겠지. 그리고, 네 삶이 틀렸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
“하지만.” ”
벨리알이 말했다.”
“선배로서 꾸짖어 줄 수는 있지.””
그가 가만히 벨노아를 내려다봤다.”
“정신 차려라, 벨노아.””
차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벨리알이 말했다.”
“용의 힘에 취하지 마라. 힘에 휘둘리지 마라. 너는, 그리고 나는, 우리는 주술사다. 이깟 그림자들에 휘둘리지 말라는··· 아, 여신님 미안하오. 이깟 그림자라 해서.””
콱, 하고 출렁이는 그림자를 밟다 말고 벨리알이 머쓱한 듯 웃어 보였다. ”
“이거 혹시 신성모독인가?””
벨리알이 자주 내뱉었던 농담이었다.”
다신 듣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농담에 여신께선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웃으며,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이깟 그림자가 맞지.】”
그녀가 착잡한 눈길로 벨리알을 바라봤다.”
【또 네게 도움을 받는구나.】”
“그게 무슨 소리요?””
벨리알이 웃었다.”
“언제나 도움을 받은 건 나였는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신님을 원망할 생각이 전혀 없소. 그건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긍지였으니.””
천년도 더 이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지었던 웃음과 같은 미소였다. 그 웃음 앞에 여신은 쓰게 웃었다.”
【여전하구나, 벨리알.】”
“내 마누라도 한결같은 게 내 매력이라고 하더군.””
그리 농담을 던지며 벨리알이 길게 숨을 뱉었다.”
“자, 벨노아.””
출렁이는 그림자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선 그가, 제 후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방에 가득하던 그림자는 더는 벨노아를 향해 다가오지 못했다.”
“일어서라.””
검은 폭풍, 흑룡(黑龍) 벨리알.”
머나먼 고대의 영웅이 제 뜻을 이은 후배를 일으켜 세웠다. 벨노아를 일으켜 세운 그가 뚝, 뚜둑 소리를 내며 제 몸을 풀었다.”
그리곤, 쿠웅.”
그가 발을 내려찍자 그림자 위로 파문이 일었다. 퍼져 나가는 파문 위에서 벨리알이 자세를 잡았다. 발을 강하게 내딛고 제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잘 보고 따라 해라, 후배.””
벨리알이 호쾌하게 웃었다.”
“하늘의 지배자인 용이 그리 비실비실해서 어디 쓰나. 이래서야 용(龍)의 명성도 땅에 추락하겠군. 그렇지 않소? 여신님.””
【틀린 말은 아니군.】”
“여신님도 그렇다고 하시는군.””
여신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