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497
첫날은 스승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에는 사라와 레미아, 카일과 만나 주점에서 잡담을 나누며 지난 수년간을 이야기했다.”
삼일째에는 벨노아와 클로에를 만나 흑룡, 벨리알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4일째에는 레스티를, 5일 째에는 라크와 나티다를.”
6일 째와 오늘은 신세 진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질문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라니엘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여유롭다면 여유롭고, 바쁘다면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
로브를 눌러쓴 채 라니엘은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축제 준비로 북적였다. 활기가 넘쳤으며 모두가 웃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으며 신문에는 영웅들에 대한 칭송이 가득했다.”
거리에 섞여들어 라니엘은 귀 기울였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음에, 그들의 삶에 귀 기울였다. 그들은 다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곧 벌어질 축제에 대해 떠들었으며 축제에 무엇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어느 청년을 라니엘은 보았다.”
청년의 걸음걸이는 버벅였다. 그는 햇살이 눈 부시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고,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꾸만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다 댔다가, 허공을 움켜쥐곤 머쓱한 듯 숨을 내뱉었다.”
갑옷도, 투구도, 검도 없었지만.”
그 청년이 전장에서 활동한 기사였음을 라니엘은 알 수 있었다. 갑옷을 벗고 있지만 갑옷을 입은 것처럼 움직였고, 검을 차고 있지 않지만 검을 허리춤에 찬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그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어 보였다.”
낯섦 속에서 기사였던 청년은 앞으로 나아갔다.”
자신을 마중 나온 듯한 연인에게 손을 흔들며, 축제에 무엇을 할지 그는 이야기했다. 낯설지만, 익숙하지 않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라니엘은 그런 이들을 보았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낯섦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이를,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를 바라보려는 이들을, 그런 이들의 삶에 라니엘은 귀 기울였다.”
“···아하.””
그리 한참 동안 인파에 섞여 거리를 돌아다닌 라니엘은 저물어가는 노을 아래서 미소 지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인간은 웃고 만다. 라니엘 또한 마찬가지였다.”
웃으며 그녀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혹은, 드디어 결심이 섰다는 듯이.”
그녀가 로브를 깊게 눌러 쓴 채 걸음을 옮겼다.”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저 하늘 위의 별이란 존재에 대해서, 세상을 둘러싼 규율에 대해서, 그 모든 것에 대해서.”
고민해야만 했다.”
내게는 힘이 있었고 자격이 있었으니까.”
나의 두 눈은 하늘에 드리운 그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의 열 손가락은 별자리를 매만져 이 하늘에 드리운 규율을 나의 기호대로 개찬할 수 있었다. 내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탑을 쌓아 하늘에 올라 자격을 얻는다면.”
나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원한다면 신이 될 수 있다. 원한다면, 세상을 내가 바라는 대로 바꿀 수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전능(全能)에 가까운 힘이었다.”
인도자란 그런 것이다.”
인도자의 눈은, 손짓은, 숨결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힘을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전능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제법 거리가 먼 것이었다.”
공포였다.”
나는 공포를 느꼈다.”
내가 엇나갈까 봐. 내가 틀릴까 봐.”
그것이 나는 너무나도 두려웠다. 내가 틀렸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길의 끝에 도달한다면, 나는 하늘에 그릇된 규율을 새기고 말 것이다. 나의 실패는 나 개인의 파멸이 아닌 세상의 파멸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두려웠기에 경계해야만 했다.”
나의 최선이 정말로 최선인지, 나의 신념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나의 선택이 정말로 올곧은지··· 나는 언제나 경계했고, 언제나 고뇌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인도자는 전능(全能)하지만, 전지(全知)하진 않았으니까. 한낱 인간은 모든 걸 알 수 없다. 그러니 알기 위해선 노력해야만 했다.”
나는 고뇌했고, 경계했고,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자리 잡은 하나의 결론을 깎아냈다. 깎아내고, 갈고, 가다듬었으며 광을 냈다. 울퉁불퉁했던 돌은 어느새 예리한 하나의 칼날이 되어 있었다. 그 칼날을 움켜쥔 채 내가 숨을 뱉었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것은 처음의 형태와 멀어졌을지언정, 가다듬어졌을지언정··· 최소한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여전히 같았다. 그렇기에 나의 결론은 어떤 의미로는 변하지 않은 것이리라.”
“이제는.””
내가 눈을 떴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릴 놓아줄 때가 됐잖아요, 글레투스.””
반짝이는 별자리를 향해 내가 손을 뻗었다.”
나를 바라보고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별을 향해 내가 말했다.”
“찾아가겠습니다.””
머지 않은 날에.”
당신에게 인류의 답을 전하기 위해서.”
축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영웅들을 칭송하고 인류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요, 카르테디아가 제국이 됨을 알리는 자리이며, 또한 여제(女帝)의 즉위식이기도 한 축제다.”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열리게 될 축제다.”
거리는 꽃들로 장식됐고 거리마다 노점상들이 줄지어 늘어섰으며, 광장에는 크고 작은 무대들이 마련됐다. 늦은 밤인 지금에야 거리는 조용하지만··· 축제가 시작되는 내일 아침부터는 소란스러워지리라.”
탁.”
해가 저물어 축제를 준비하던 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밤.”
탁.”
정적만이 맴도는 밤거리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걸음 소리는 거리를 가로질러 왕도의 바깥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입구를 지켜야 할 경비병도 오늘만큼은 그 자리에 없었다.”
별자리만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라니엘 반 트리아스는 왕국을 떠났다.”
왕도에서 조금 떨어진 깊은 숲.”
고요한 숲 속에는 작은 오두막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옛 나무꾼들이 썼던 오두막이었고,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아 먼지만이 가득한 오두막이었다.”
타닥, 타다닥···.”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버려진 오두막에선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오두막의 안쪽에선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오두막에 있었다.”
“······.””
오두막의 한편.”
비굴(非屈)의 데스텔은 제 손에 들린 무기를 타들어 가는 모닥불의 불길에 비추어보았다. 본래 형태는 장창이었으나, 끊어져 검의 형태가 된 무기.”
성창(星槍)의 파편.”
갈라할이 남긴 유품이자, 미래의 자신이 마지막까지 다루던 무기였다. 이를 발견한 것은 배교자 토벌전의 직후였다.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으나, 배교자는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던 갈라할의 무기를 보관하고 있었다.”
아무런 가공도 하지 않고.”
재료로 사용하지도 않은 채.”
그저 신전의 깊은 곳에 부러진 성창을 놓아두었던 것이다. 무너진 신전을 탐사하다 그것을 발견한 기사들에 의해, 갈라할의 유품은 데스텔에게 전해졌다.”
‘···이걸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본래 이를 클로에에게 전해주려 했던 데스텔이지만, 클로에는 데스텔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왕국의 박물관에 기증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건 전시관 속이 아닌, 전장에서 빛나야 할 물건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됐다.”
미래에서 온 자신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었고, 이 무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배웠다. 미래의 데스텔은 말했다. 이것이 자신의 주무장이었노라고.”
빙글.”
데스텔은 손에 쥔 부러진 성창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백금색의 별빛을 잃어버린 성창은 스스로 빛나지 않았지만, 타오르는 불길을 비추면 은은히 빛을 냈다.”
“별빛이 사라진 별의 무구라는 거, 제법 묘한 느낌이 들지 않냐?””
데스텔이 그리 중얼거렸다.”
혼잣말은 아니었다. 데스텔이 시선을 옮겨 오두막의 한구석에 앉아있는 청년을 바라봤다.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손에는 기다란 장검이 들려 있었다.”
한때는 성검(星劍)이었으나, 이젠 별빛을 머금지 않게 된 한 자루의 검. ”
검의 도신을 모닥불에 비춰보며 그가 답했다.”
“딱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