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4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모두의 앞에 바로 서야 하며, 언제나 옳아만 하는 존재. 영웅이란 그런 존재여야 합니다.』”
『영웅은 언제나 완벽해야 하지만.』”
『그들 역시 인간입니다. 홀로서 완벽할 수 없는 한낱 인간이지요.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쉬고 싶고, 때로는 망설이는 평범한 인간.』”
황성에서 준비해 준 마차를 타고 우린 축제가 한창인 거리로 향했다. 거리의 한복판에 멈춰선 마차에서 내려, 우린 사람들의 환호성 사이로 행진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진 행진을 멈추고 나는 단상의 위로 올라섰다. 내 뒤를 따라 용사들이 걸음을 옮겼다. 단상 위에는 확성을 위한 마도구가 놓여있진 않았다. 딱히 필요 없었으니까.”
나는 마나로 내 목소리를 감쌌다.”
아아, 하고 내가 입을 열자 소란스러웠던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과,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많은 이들을 마주한 채 나는 미소 지었다.”
“저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 용사입니다.””
『저는 라니아 반 트리아스, 인간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초면이지만, 여러분은 저와 구면이겠군요. 여러 신문 기사들을 통해 보셨을 테니까요. 혹시 제 얼굴 모르시는 분 있으신가요? 없을걸요?””
광장에서 웃음소리가 퍼졌다.”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말을 이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인류의 대표인 용사로서 여러분께 들려 드려야 할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길게 숨을 뱉었다.”
“별께서 사라지셨단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을 거에요. 혼란스러우신 분들도 많겠지요. 여러분이 우려하시는 건,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별은 사라졌다.”
“별께선 마왕이 토벌된 그 순간, 밤하늘의 너머로 사라지셨습니다. 더는 인류에게 자신이 필요 없으리란 말을 남긴 채 긴 여행을 떠나셨지요. 그 흔적을 남겨두시긴 했지만, 그마저도 곧 사라질 겁니다.””
웅성거림이 퍼졌다.”
별이 사라졌단 사실에 숨을 헛삼키는 이들이,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너무나도 많았지만, 나는 말을 계속했다.”
“별께선 끝내 받아들이셨으니까요.””
무엇을?”
“인류의 유년기가 끝이 났단 사실을.””
기나긴 인류의 유년기의 끝을.”
나는 별이 사라진 이유와, 이제부터 바뀔 세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술렁거림은 멈추지 않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람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바뀌지만.”
그렇게 크게 바뀌지도 않을 테니까.”
어제와 같은 삶을 살아도, 바뀐 세상에 맞춰 바뀐 삶을 살아도, 어떤 식으로 삶을 살든 괜찮은 것이다. 정답은 없으니까. 저마다가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살아낸다면 그 모든 것이 정답일 테니까.”
『저는.』”
하지만 여전히 헤매는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깐 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저의 삶에 대해 들려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저는 완벽한 영웅일 거고, 초인일 테고, 철인이겠죠. 그렇게 여기실 겁니다. 그렇게 모두가 제게 의지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왔으니까요.””
『쫓기며 살았습니다.』”
『책무에, 책임에, 상징에, 사명에.』”
『영웅이 어떤 존재여야만 하는지 고찰했고, 나를 위해 피 흘린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깎아냈습니다. 그렇게 살았어요.』”
『언젠간, 제 삶을 한번 돌아보는데 한숨만 나오더군요. 참 독하게도 살았다. 이렇게 사람이 어떻게 사냐.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꼴이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썼지만.””
『아, 나도 결국 사람이구나.』”
『아무리 상징이 되려 해도, 완벽한 존재가 되려 해도, 완벽할 수 없는 한낱 인간이구나.』”
“저 사실 그렇게 완벽한 사람 아니에요.””
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말이에요, 저도 전장 싫어합니다. 피비린내 나고, 비명만 가득하고, 숨 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그런 곳을 어떻게 좋아해요.””
웃으며, 진심을 이야기했다.”
“저도 커피 마시고 디저트 먹는 거 좋아해요. 아플리아 아카데미에있는 ‘알렌의 커피숍’이란 가게 아시나요? 거기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전장에서 부하를 시켜다가 종종 얻어오곤 했는데,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안타깝게도.””
내가 살아온 삶을 털어놓았다.”
“제 활약상이 담긴 신문기사 읽는 것도 좋아해요. 이야, 요즘 기자분들이 글을 참 잘 쓰시더라고요. 신문 모아둔 것도 있어요.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전장에서 챙겨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인정하고 나니 편했습니다.』”
“그런 것들에 의지해서, 저는 살아냈습니다.””
혹은.”
“버텨냈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누가 뭐래도 전장은 힘든 곳이니까요.””
『완벽할 수 없는 걸 알게 되니, 주변을 둘러보게 되더군요. 주변에 손을 뻗게 됐습니다. 홀로서 완벽할 수 없다면 손을 빌려야죠.』”
“그 외에도 전장으로 보내주시는 성원, 수도로 돌아올 때마다 이렇게 환호성 지르시며 저를 반겨주시는 여러분들, 그리고 저와 같은 전장에서 싸워줬던 동료들, 제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을 지켜주셨던 기사분들, 그 수많은 분들 덕분에······.””
『도움을 받고.』”
『손을 빌리고.』”
『수많고 수많은 이들에게 의지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저는 하루를 살아냈습니다.』”
『하루를, 다시 하루를 모아 기어코 이 자리까지 도달했네요. 돌이켜보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겁니다. 그래도, 제게는 무척 길었지만요.』”
“생각보다 별것 없다고요? 사소하다고요? 살아보니까,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더라구요.””
내가 피식 웃었다.”
“별이 사라져도, 세상이 바뀌어도··· 저나 여러분이나 할 일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에요.””
결국에 그런 거다.”
“일이 힘들면 동료와 술 한잔하며 털어내고, 도저히 혼자 못 할 것 같으면 친구를 불러서 함께 해보고, 그마저도 안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해 가면서 살아가겠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란 그런 존재니까요.””
내가 팔을 쫙 펼쳤다.”
“별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힘들 땐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려도 좋아요. 먼 곳에서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내가 내 뒤를, 옆을,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내 삶을 지탱해준 이들이 있었다. 동료, 제자, 스승, 그리고 친구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에 사람이니까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미소 지었다.”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에.””
당신들이 있었기에 나는 여기에 있다.”
“이제 저희는 은퇴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긴 영웅으로서의 삶을 끝낼까 합니다.』”
연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의 옆으로 카일과, 데스텔, 클로에가 바로 섰다.”
“바뀐 세상에는 더는 인류의 대표자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희는 이제 용사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러분들 사이에 섞여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렇게 나는 연설을 끝맺었다.”
환호성 사이로 여제 아일라가 단상 위로 올라섰고, 훈장의 수여식과 그녀의 짧은 연설과 함께 용사의 은퇴식은 막을 내렸다.”
용사로서 마지막 업무를 끝낸 것이다.”
그렇게 단상에서 내려온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주점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잠시 헤어졌다.”
『영웅의 삶을 끝내고, 평범한 인간으로서 살아볼까 합니다. 완벽을 연기할 필요가 없는 인간. 더는 무언가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인간 말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나는 용사의 정복을 벗었다.”
『상징도, 그 무엇도 아닌.』”
묶고 있던 머리칼을 풀고.”
장갑을 벗어 던지고.”
군화를 벗고 걷기 편한 신발을 골라 내놓고.”
『평범한 한 명의 사람.』”
『그냥, 라니아로서 살아가 볼까 합니다. 살 날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요. 정말 많이요.』”
용사로서의 나를 상징하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는 거울의 앞에 서 봤다. 나쁘지 않네. 그렇게 저택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은퇴할 생각입니다.』”
문득 나는 내 방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책을 바라봤다. 은퇴식에 참가하기 바로 전까지 써내려갔던 소설이다. 사실 소설이라기보단 회고록에 가까웠지만, 아무튼간에.”
그래도 마무리는 짓고 가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의자에 앉았다.”
소설은 마지막 문장만을 남겨둔 상태였고, 나는 갈라할이 남긴 미완의 소설에서 미(未)라는 글자를 지우기 위해 책상에 앉아 깃 펜을 들었다.”
『조금 더 가볍게 말하자면.』”
연설하면서 고민해봤는데 역시 마지막 문장은 이것만 한 게 없었다. 나는 깃 펜을 움직여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할 문장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