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5
『용사 파티 때려치웁니다.』”
완(完).”
제국의 수도 외곽에 위치한 주점.”
달밤이 기울기 시작하는 깊은 밤, 바텐더는 술잔을 닦으며 가게 안을 흘겨봤다. 입소문을 타고 그럭저럭 유명해진 자신의 가게다. 본래 이 시간대라면 자리는 만석을 이루고도 남았을 테지만······.”
오늘 가게에는 단 두 명의 손님밖에 없다.”
저 두 손님이 가게를 전세 낸 까닭이었다.”
2년쯤 전부터 한 달에 한번 꼴로 이런 식으로 가게를 대관해 찾아오곤 하던 단골손님. 시간이 흘러 익숙해졌다곤 하나, 저 손님들의 신분을 생각하면 여전히 모골이 송연해지는 바텐더였다.”
그야 자신은 범접할 수도 없는 거물이었으니까.”
날고 긴다는 제국의 권력자들도 이 주점에 들어온 순간, 그리고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저 두 사람을 발견한 순간··· 곧장 고개를 땅에 처박게 되리라. 비유가 아닌 물리적인 의미에서.”
바텐더는 술잔을 기울이는 두 손님을 흘겨보며, 그 두 사람의 이름을 곱씹었다. 저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 근래 개정된 제국의 역사서 첫 장에 저들의 이름이 실린 마당이었으니까.”
제국제일각, 라니아 반 트리아스.”
제국제일검, 카일 토벤.”
일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졌던 대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인류의 영웅. 그만한 거물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썩 적응이 되는 풍경은 아니었다.”
후우···.”
바텐더는 괜스레 호흡을 가다듬으며 광이 나도록 닦은 잔에 술을 따라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탁.”
그가 술잔을 내려놓는 가운데도 두 사람은 이야기를 멈추질 않았는데, 그 덕에 바텐더는 우연찮게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말았다. 그것이 실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텐더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제국을, 더 나아가 인류를 수호한 영웅들은 평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제국의 미래? 인류의 미래?”
아마 범인이라면 상상치도 못할 거대하고 장황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야 제국의 영웅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바텐더가 귀를 기울이고 있을 무렵이다.”
쾅, 하고.”
그 순간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화들짝 놀라 바텐더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눈을 부릅뜬 제국제일각께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치고 있었다. 테이블을 후려친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염병, 또 누가 결혼한다고?””
그리하여 제국제일각, 인류의 영웅께서 내뱉은 첫마디는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바텐더로 하여금 제 앞에 앉아있는 게 제국의 영웅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아니, 씹··· 벌써 몇 번째야? 나 지난 4년간 결혼식만 일곱 번 갔어. 자그마치 일곱! 일곱 번이나 참석했다고!””
바텐더는 순간 눈을 깜빡였다.”
상당히 걸쭉한 입담이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그리고, 바텐더가 그리 착각하지 않게끔 라니아 반 트리아스는 한 번 더 크게 소리쳤다.”
“제발, 제발 결혼식 좀 그만 올리라 해봐···!””
“목소리 낮···.””
“지금 낮추게 생겼어? 시발, 야, 네가 내 심정을 알아? 하기야 유부남인 넌 모르겠지. 결혼식 갈 때마다 사람들 시선이 어떤···.””
음.”
바텐더는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는 소시민이었고, 제국의 영웅께서 자신의 가게에 찾아와 ‘제발결혼좀그만해봐’ 하고 울부짖었다는 소문을 퍼뜨릴 만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텐더는 언제나처럼 오늘 들은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결혼. 그놈의 결혼.””
라니아가 미간을 짚은 채 신음했다.”
한때 마왕의 멱을 따고, 별을 떨어트린 위대한 마법사는 이제 ‘결혼’이란 단어를 듣기만 해도 한숨을 푹푹 내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년간 골병이 날 정도로 시달린 까닭이었다.”
꼴깍, 흐으으으으.”
쓰라린 속에 독한 술을 털어 넣으며 라니아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누군데?””
“청첩장 아직 안 받았나?””
“받긴 했는데 열어보진 않았어. 여는 순간 짜증만 날 것 같아서.””
“그래도 확인은 했어야지.””
카일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벨노아하고 클로에의 결혼식이다.””
“아, 걔네 결혼식이었어?””
그래, 걔네 정도면 뭐···.”
벨노아와 클로에, 식은 언제 올리냐로 몇 년 전부터 이야기가 나오던 두 사람이었다. 마탑주로서의 업무를 핑계로 몇 년째 미루고 미루던 식이 열리는 거니, 그 정도는 아무리 라니아라 한들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해줄 수 있었다.”
아무렴 자신이 아끼는 제자들이기도 하고.”
순수히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축하할만한 일이긴 한데, 뭘까 이 기분은.”
그 아이들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왜인지 모르게 속이 쓰렸다. 라니아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술이 들어가니 속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래, 걔넨··· 걔네는 괜찮지.””
“전혀 괜찮은 표정이 아닌데.””
괜찮다기보단 감내하는 듯한 표정에 가까웠지만, 그거야 뭐. 라니아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기에 카일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안주를 깨작였다.”
“요 근래 결혼식이 많이 열리긴 했지.””
“네가 할 말이냐?””
“그리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군.””
라니아가 눈을 부릅뜨고 카일을 노려봤다.”
지난 4년간 그녀가 참가해야 했던 일곱 번의 결혼식, 그 중 그녀와 가까운 인물의 결혼식은 총 세 번이었는데··· 그중 두 번이 카일의 결혼식이었다.”
카일과 사라의 결혼식.”
라크와 나티다의 결혼식.”
그리고, 다시 카일과 레미아의 결혼식.”
부끄럽다며 결혼식을 미루던 레미아도 신부들의 웨딩드레스 차림과, 그 옆에서 표정을 구기고 있는 라니아를 보고 자극받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을 올렸다. 도대체 무슨 자극을 받았길래?”
「왜 갑자기 결심했냐고?」”
「여기서 더 미루면 쟤처럼 될 것 같았어.」”
나중에 술자리에서 답하길, 여기서 더 미루면 라니아 꼴 날 것 같았다던가. 애석하게도 그 술자리엔 라니아 또한 함께였다. 카일이 식겁하며 둘 사이를 떼 놓는 것보다 라니아의 손이 조금 더 빨랐다.”
「이 미친년이?」”
신을 떨어트린 마법사의 주먹이 신혼여행을 앞둔 엘프 신부의 면상에 꽂히는, 아주 사소한 사고가 벌어지긴 했지만 이젠 다 옛일이었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며 카일은 웃었고 라니아는 표정을 구겼다. ”
“이제 결혼 이야기만 들어도 지긋지긋해. 더 정확하겐 연애 이야기.””
“그러냐.””
“나는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거든? 할 생각도 딱히 없고? 그런데 결혼식에서 날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안쓰러운 시선이 느껴져. 그게 싫은 거야.””
솔직히 좀 억울했다.”
라니아는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난 진짜 괜찮거든? 옆구리가 쑤시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단 말이야? 진짜로 괜찮거든? 근데 주변에선 날 안 괜찮은 사람처럼 봐. 내가 괜찮다는데 대체 왜 그러는데?””
목소리에서 물기가 묻어났다.”
쌓인 게 제법 많은듯한 목소리였다.”
“난 독신이 편해.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대체 내가 뭐가 아쉬워서?””
“울지 말고 말해라.””
“안 울어 씹새야. 하, 인생···.””
안주도 없이 술을 들이키는 라니아를 바라보며 카일은 쓰게 웃었다. 마법사가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곤 하나, 녀석처럼 쉬지도 않고 독한 술을 들이키다 보면 결국 취하기 마련이다.”
딱 한 번, 카일은 라니아가 술에 취해 맛이 간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녀석의 주사를 알게 됐는데··· 저 녀석, 정말 상상도 못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저 녀석, 취하면 펑펑 울면서 술을 마신다.”
막 서럽게 우는 건 아니고 ‘나한테 왜 그러는데’ 하고 투덜거리면서 술을 들이킨다. 카일은 그때를 떠올리며 눈앞의 라니아를 흘겨봤다. 울먹이기 시작하는 게 슬슬 취하기 시작한 듯싶었다.”
‘냅두면 또 사달이 나겠군.’”
녀석이 펑펑 울면서 술을 들이키는 모습이 재밌긴 하지만, 카일은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 이야긴 거기까지 하고.””
카일이 라니아가 쥔 술잔을 뺏었다.”
안주를 라니아 앞으로 밀어두고, 손에 술잔 대신 포크를 쥐여준 다음 카일은 급히 주제를 돌렸다.”
“뭐, 그래서 요즘은 잘 지내냐?””
“그냥저냥 잘 지내고 있지. 아카데미 규모가 좀 커져서 일이 많긴 한데, 조교도 들여서 내가 할건 그렇게 많지가 않아.””
안주로 나온 감자튀김을 오물거리며 라니아가 고개를 기울였다. 카일을 흘겨보며 라니아가 질문했다.”
“그러는 너는? 갈라트릭은 좀 어때?””
“나야 바쁠 건 없지. 바쁜 건 칼트 그 녀석이고.””
카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재건된 검의 협곡, 갈라트릭에 소속된 카일이나 정작 그가 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사실 생도들을 가르치려고 검을 잡아본 적이 있긴 했는데···.”
「카일 선배님.」 ”
「선배님은 그냥 시범만 보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많이는 말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오셔서 검 몇 번 휘두르다 가시지요.」”
「제발 ‘하니까 됐다.’ 같은 말이나,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된다.’ 하는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보통은 안됩니다, 보통은······!」 ”
그 결과가 썩 좋지는 않았다.”
자신의 교습을 받은 생도들의 태반이 검술을 그만둠으로써, 카일은 자신에게 스승의 자질이 없단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해야만 했다.”
“나는 몰랐는데 말이다.””
“어.””
“나도 사실 너하고 비슷한 부류더군.””
“그게 뭔 소리냐?””
카일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하니까 되던데? 그 이상으로 설명이 잘 안 되더라고. 누군갈 가르치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말했지? 쉽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