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526
라니아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그거 감 잡는데 오래 걸렸다. 뭐, 나중에 칼트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보고 배워봐. 보다 보면 감 잡힐 거다.””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그리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두 사람은 마지막이 될 잔을 들어 올렸다. 한적한 주점에서 채엥, 하고 술잔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졌다.”
“내일을 위하여.””
술자리란 술자리마다 데스텔이 외쳐댄 탓에, 이젠 그들 사이에 일종의 불문율이 되어버린 건배사를 올리며 두 사람은 술을 들이켰다. ”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이렇게 종종 술잔을 부딪치곤 했다.”
용사 은퇴식으로부터 4년의 세월이 흘렀다.”
4년의 시간 동안 왕국은 제국이 됐고, 아플리아는 증축과 분교를 거듭해 규모가 더욱 커졌으며, 무너진 검의 협곡은 재건되고 인류의 영토는 확장됐다. 이처럼 세상은 바뀌었지만···.”
라니아 반 트리아스의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암···.””
라니아는 교수실에 들여놓은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길게 하품을 했다. 그녀는 이제 로셀과 같은 교수실이 아닌 단독으로 마련된 교수실을 쓰고 있었다. 아플리아로 복직했을 때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까닭이었다.”
조교수의 지위에서 아플리아를 때려치우고 용사가 됐던 그녀지만, 용사에서 은퇴하고 아플리아로 돌아온 순간 그녀는 정교수가 됐다.”
어디 그뿐일까. 학과장의 자리부터 시작해서 원한다면 더 높은 지위도 가능이야 했다마는, 귀찮다는 이유로 라니아는 모조리 거부했다. 그런 건 제국제일각이라는 직위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제국제일각(帝國第一角).”
제국의 첫 번째 기둥이요, 제국을 상징하는 첫 번째 별이란 뜻을 지닌 직위. 용사의 은퇴식에서 받았던 칭호였다.”
‘이거 덕분에 귀찮은 일을 다 처리하긴 했지.’”
2년쯤 전에 아플리아로 복직하겠단 의사를 밝히자마자, 온갖 곳에서 찾아온 이들을 제국제일각을 상징하는 훈장 하나로 물리칠 수 있었으니까. 이렇듯 라니아에게 있어 직위란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귀찮은 걸 문제 없이 치울 수 있는 수단.”
하지만, 정작 성가신 일 앞에선 제국제일각이란 휘황찬란한 칭호도 별 쓸모가 없었다. 그러니까, 며칠 뒤에 있을 클로에와 벨노아의 결혼식이 그랬다.”
“후우우우우우······.””
라니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푸르른 눈동자가 탁해지는 가운데, 라니아는 결혼식에서 스승님께 듣게 될 이야기를 떠올렸다. 스승님은 연애하고 결혼 좀 하라는 말은 결코 꺼내지 않지만··· 결혼식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실 뿐이었다.”
올해 몇 살이더냐.”
알고 계시면서 그리 물으신다.”
그 물음에 이번만큼은 작년처럼 ‘저 아직 20대에요. 스승님.’ 이라고 답할 수는 없으리라. 마침내 라니아로서의 나이도 서른에 이르고 말았으니.”
서른.”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단어에서 오는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다. 라니아는 제 나이를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더이상 변명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 또한 어느 정도 체념하고 만 것이다.”
“괜찮아.””
라니아가 중얼거렸다.”
“난 아직 젊어.””
자기 최면에 가까운 중얼거림.”
사실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
저 드높은 하늘의 너머를 경험하고 초월의 경지에 발을 디뎠던 라니아다. 스스로 권능을 포기했다곤 하나, 그녀의 육체는 넘쳐나는 마나와 더불어 가히 신체(神體)에 가깝다.”
육체는 언제나 전성기의 20대를 유지하며, 10대라 해도 의심치 않을 외모를 지니고 있다. 피부는 언제나 새하얗고 살결은 곱다. ”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엘프들이 그러하듯, 그녀에게 통상적인 시간의 흐름은 의미가 없단 뜻이다. 엘프들이 자신의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라니아 또한 그리 마음만 먹으면 될 테지만······.”
“난 아직 젊···.””
자신이 인간이라는 인식이 있는 그녀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 중얼거리다 문득 라니아는 가까운 과거를 떠올렸다. 자신이 아직 젊다는 걸 증명할 증거.”
「거기 학생, 대열 안으로 들어가세요.」”
몇달전 체험 학습 당시, 학생들을 인도하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기사가 자신에게 던졌던 말.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찌나 좋았던가? 자신이 여전히 꿇리지 않는다는 명확한 증거가 그곳에 있었다.”
그 일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미소 짓던 라니아는, 그 뒤에 있던 일을 떠올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일이 어찌나 기뻤던지 그 이야기를 스승님의 앞에서 꺼내며, 라니아는 ‘신분세탁 한 번 더 하고 학생으로 아플리아 들어가 볼까요?’ 하고 농담을 던졌었다. 정말로 어디까지나 농담이었다.”
정말 별에 맹세코 농담이었거늘.”
「네 하고 싶은대로 하려무나.」”
「그게 네 기쁨이라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단다.」”
그리 말씀하시는 스승님의 따스한 시선을 받은 순간 라니아는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후우우우우우···.””
그리 과거를 떠올리며 라니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을 무렵이다. 똑똑, 하고 누군가 교수실의 문을 두들겼다. 그 두들김이 제법 다급했다.”
이윽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라니아의 조교였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라니아 교수님!””
그녀가 외쳤다.”
“아플리아 인근에서 고대 리치를 신앙하는 흑마법사들이 학생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라니아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오늘이 만우절인가? 아닐 텐데. 도대체 누가 그리 간덩이가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눈을 깜빡이던 라니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짜야?””
“예, 저 바깥에서···.””
라니아가 창밖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조교가 말한 현장이 보이고 있었다. 현재 기사들이 대응 중이라는 조교의 중얼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라니아가 미소 지었다.”
“트리아나 조교?””
“예, 라니아 교수님···.””
“다음 수업 5분 늦는다고 공지해줘.””
“예? 5분이요?””
그게 무슨, 하고 트리아나 조교가 질문하려는 순간이다. 한줄기의 바람이 불었다. 불어온 바람에 그녀가 눈을 감았다 뜬 순간 라니아는 온데간데없었다.”
휘이잉, 덜컹.”
활짝 열린 창문이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아플리아 아카데미.”
제국 제일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이곳은 수년 전에도 그 규모가 거대했으나, 지금은 그때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아플리아가 배출해낸 숱한 전쟁영웅들이 아플리아의 명성을 한껏 드높인 덕이었다.”
격멸, 라크 반 그레이스.”
잿빛 마녀, 레스티 엘레노아.”
그림자 용의 주술사, 벨노아 반 드라고닉.”
용사, 클로에.”
여제, 아일라 클렌 카르테디아.”
그중 대표격 되는 이름들만 나열해도 다섯이며, 그중 하나는 제국의 주인인 여제이다. 그 외에도 숱한 전쟁 영웅들이 있었으며··· 이는 비단 졸업생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인, 켈르할름 벨 아르티아.”
대현자, 카르디 반 아르미엘.”
제국제일각, 라니아 반 트리아스.”
재앙의 토벌전에서 큰 공을 세운 초인. 고대의 영웅이자 일천 년의 세월 동안 투쟁한 대현자. 그리고 천 년 전쟁을 종식한 인류의 영웅이 아플리아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마당이다.”
규모가 안 커지려야, 안 커질 수가 없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아플리아의 증축은 제국의 수도 확장과 더불어, 가장 우선하여 추진된 국책사업이 됐다. 황실의 보조를 받으며 아플리아는 증축과 분교를 거듭했고··· 그 결과 아플리아 본교(本校)는 어지간한 도시 하나의 규모를 가지게 됐다.”
그리하여 형성된 학원도시의 한복판.”
“당장!””
누군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외치고 있었다.”
“당장 라니아 반 트리아스를 데려와라!””
아플리아의 한복판에서 언성을 드높인단 사실에 한번, 그들이 제국제일각의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른단 사실에 두 번, 마지막으로 그들이 인질을 잡고 있단 사실에 지켜보던 이들은 세 번 놀랐다.”
“우리는 위대하신 그분의 유지를 이은 이들이요, 그분의 뜻을 이어···.””
“위대하신 스케발! 위대하신 선지자의 의지를 받들라! 오오, 마법사의 신이시여!””
그들이 참으로 구시대적인 칙칙한 로브를 입고 있단 사실은 딱히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철 지난 사이비 종교를 아직까지 믿고 있단 사실은 제법 놀라웠지만··· 아무튼 간에.”
“당장 그 빌어먹을 년을 우리의 앞에 무릎 꿇려라. 그 마녀와도 같은 년이 제국의 역사서에 새겨넣은 ‘해골바가지’란 단어의 수정을 요청하는 바이다. 이는 심히 폭력적이며 신성 모독적인···.””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딱히 없었다. ”
기사들은 말없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저들은 아플리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는 일 또한 없을 것이다.”
기사들이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인질을 상처 하나 없이 구출해내기 위함이었다. 인질의 부상을 감안하고 저들을 제압해야 할 만큼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저들이 빈틈을 보이기를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다.”
“당장 그 마녀와 같···.””
가장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던 흑마법사의 말은 끊어졌다. 물리적인 수단에 의해서.”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인질을 붙잡고 있던 흑마법사의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동시에 그가 붙잡고 있던 인질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는데, 사라진 인질의 목소리는 기사들의 곁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