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66
〈 66화 〉 후일담(2)
* * *
마법사란 계산적인 존재여야 한다, 라니엘.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마법사는 마나를 다룬다.
별과 거래를 해야 한다.
그러니, 언제나 생각해야만 하지.
무엇을 얼마만큼 바쳐야 하는가?
이 회로를 작동시키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마나가 소모되는가?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이고 계산식을 짜 올리는 게 바로 마법사란 존속들이다. 계산적이지 못하면, 높은 곳까지 올라가기 힘들단 소리다.
모든 요건을 통제하에 두고.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것.
그것이 좋은 마법사가 가져야 할 자질이다.
요컨대, 감정적이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누가 너를 화나게 하더라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어라.
···그러니까 말이다?
네가 지금 저놈의 머리를 터뜨렸을 때 얻는 손해를 생각하여야지, 머리를 터뜨리면 얼마나 통쾌할까? 하는 생각은 접어두란 소리다.
차분해라.
제발 차분하게, 계산적으로 살려무나.
부탁이다!
“·····.”
제 스승이 남긴 말을 떠올리며, 라니엘은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숨을 고르며 차분히 생각해 본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강타를 꽂음으로써 내가 얻는 이익은?’
무척이나 통쾌함.
백 년 묵은 스트레스가 싹 가실만큼의 통쾌함.
‘그로 인해 얻는 손해는?’
내 정체의 노출 위험.
용사를 건드린 것에 대한, 뒤처리의 귀찮음.
‘···어?’
아무리 봐도 이익이 더 큰 거 같은데?
‘아니, 아니야. 진정하고···.’
라니엘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입을 열었다.
“엿이나 처먹어, 씨발아.”
걸쭉한 욕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다.
주먹을 휘두르진 않았다. 물리적, 마법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욕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곧게 세운 중지를 선보이는 건 덤이다.
중지를 세운 채, 라니엘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본다. 그 이름을 떠올렸다.
‘카일.’
한때는 친구였고, 동료였으나, 지금은 그 둘 다 아니게 된 녀석. 그를 바라보며 라니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개 같은 새끼.’
솔직히 말하자면, 라니엘은 카일과 마주하더라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좆 같긴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다. 어찌 됐든 다시 엮일 일은 없을 테고··· 서로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라고, 라니엘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좆 같네.’
애석하게도, 그것이 얼굴을 마주한 다음 처음 든 생각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한 감정은, 저 뻔뻔한 얼굴을 보는 순간 들끓었다.
잔불에 장작이 던져진다.
사그라든 줄 알았던 불이 다시 한번 타오른다.
타오르는 불길은 짜증이자 분노다.
‘맘 같아선 죽빵부터 갈겨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더 귀찮아진다.
라니엘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저 얼굴을 계속 보고 있자면 무심코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았으니까.
‘···아니, 생각해보니까 이상한데?’
차분히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하다.
라니엘은 문득 든 의문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새끼가, 날 못 알아볼 리가 없을 텐데?’
라니엘이 기억하기로, 카일은 카르디와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영혼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니··· 못 알아볼 이유가 없다.
‘카르디, 그 엘프는 날 알아봤잖아.’
라니엘은 카일을 흘겨본다.
혹시 모른 척 장난이라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사그라든다.
‘적어도, 이딴 걸로 장난치는 놈은 아니야.’
애초에 장난이란 걸 모르는 녀석이다.
라니엘이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자니, 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굉장히 독특한 이름이군.”
“뭐?”
“이름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을 이야기 하는 거다. 썩 어울리는 이름은 아닌 것 같군.”
이 새끼가 돌았나?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그리 중얼거리는 카일의 모습에, 라니엘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를 하지 말자, 그냥.’
못 알아봤다면 더 좋다.
그냥 자리를 뜨면 될 문제이니까.
“그래서, 네 이름은 뭐지?”
“알려주기 싫다니까.”
“그래, 그럼 질문을 바꾸지.”
“누가 대답 해준데?”
라니엘은 카일이 뭐라 하던 무시하고 지나칠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니엘.”
그러나, 이어진 카일의 한마디가 그녀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라니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카일의 눈을 마주 바라본다.
“라니엘과는 무슨 관계지?”
검은 눈동자 위로 백금색 빛이 피어오른다.
그 눈동자는 카르디의 누런 눈동자와 닮아있다. 카일과 함께 다녔던 라니엘은 그 빛무리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영혼을 읽는 눈동자.’
그것을 알아차렸기에, 라니엘은 위화감을 느낀다.
‘···저걸로 보고도, 왜 물어보고 지랄이야?’
눈치를 못 챈 건가?
도대체 왜?
“라니엘과는 다르지만, 너는 그 녀석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 어떤 방식으로든 엮여 있다고 생각한다. 둘이 무슨 관계지?”
이어진 말이 라니엘에게 확신을 준다.
이 녀석은, 정말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혹, 라니엘의 연인인가?”
“미쳤냐?”
“딸··· 일리는 없겠군. 나이상으로도.”
턱을 매만지던 카일이 물었다.
“나는, 지금 네가 굉장히 수상쩍게 여겨진다. 무언가 꺼림찍해. 그 녀석이 나타난 숲에 네가 있어.”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온다.
“어째서, 너는 이곳에 있지? 방금까지만 해도 마기가 흘러넘치던 곳에 왜?”
“···학생을 찾으러 왔을 뿐이야.”
“아플리아의 교수인 모양이군. 이런 마기로 가득한 숲에, 학생을 찾으러? 교육자의 귀감이로군.”
“비꼬냐, 씨발아?”
“감탄하는 거다.”
카일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그는 무표정이 숲의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학생이라면, 오는 길에 확인했다. 저곳에 있더군. 하나를 알려주었으니, 나도 하나 물어도 되겠지?”
“누가 알려달라고 했냐고.”
“잿빛 마법사, 라니엘을 본 적이 있나? 이 숲에서?”
“아니, 못 봤는데.”
“그런가.”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이상 물을 것은 없다는 듯한 눈치였다. 라니엘은 잠시 카일을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카일 또한 등을 돌리곤 발걸음을 옮겼다.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간다.
공터를 기점으로 카일은 숲의 깊은 곳으로, 라니엘은 숲의 외곽으로 향한다.
“흠.”
그렇게 충분히 거리가 멀어졌을 때.
“아쉽군.”
문득, 카일이 중얼거렸다.
꼭,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한 목소리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나.”
라니엘은 그 소리를 무시한 채 걷는다.
“몸도 정상이 아닐 텐데 무리한 게 아닐지 모르겠군. 은퇴한 뒤로도 이런 곳에 나오다니···.”
라니엘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한다.
그러나, 멈추지는 않는다. 그 속도가 느려졌을 지언정 라니엘은 계속해서 걷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툭.
“차라리.”
결굴 라니엘이 멈춰 선다.
“함께 데리고 다니는 편이.”
그녀가 뒤를 돌아본다.
그 시선이 카일을 향한다.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카일 또한 말을 마치며 뒤를 돌아본다.
둘의 시선이 공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저물어가는 태양은 카일의 등 뒤에 떠 있다.
노을 아래, 카일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의 끝이 라니엘의 발치에 닿는다.
“너.”
라니엘이 입을 열었다.
“뭐라 했냐?”
그녀의 물음에 카일은 답한다.
“혼잣말이다. 신경 쓰였나?”
그 목소리는 변함이 없다.
그 눈동자 또한, 변함이 없다.
“하, 하하.”
그 뻔뻔한 얼굴을 바라보다, 라니엘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흘렸다.
“하···.”
그 웃음이 가늘어진다. 다시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때, 웃음기는 온데간데없다.
파직.
그녀의 몸 위로 불똥이 튀었다.
2.
상황이 일단락되고, 아플리아 숲의 외곽.
칼트가 기사들을 물려놓은 장소에서 칼트와 라니엘은 마주했다.
“응?”
걸어오는 라니엘을 바라보며, 칼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하게 지쳐 보이는 탓이었다.
“어? 다치셨습니까?”
“안 다쳤는데?”
“아니 안색이 별로시지 않습니까. 어디 다치신 거 아닙니까? 싸움이 좀 격하셨나 봅니다.”
“아니, 안 다쳤다니까, 씨발아?”
“···왜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너는 씨발, 내가 그 해골바가지 새끼한테 다칠 것 같아? 안 다쳤어. 한 대도 안 맞았어. 한대도 안 맞고, 내가 일방적으로 줘팼다고.”
“아, 알겠습니다···.”
이를 가는 라니엘의 모습에, 칼트는 마른 침을 삼켰다. 침을 삼키며 말끝을 흐렸다.
‘이거 더 말했다간···.’
한 대 쳐 맞는다.
칼트는 직감했다.
지금이 뒤로 빼야 할 타이밍이라고. 여기서 더 물어보면 한대 얻어맞을 게 분명하다고.
그렇긴 하지만.
‘근데 궁금한데.’
궁금증이 조금 더 앞섰다.
칼트는 조심스레 질문을 이었다.
“근데 왜 지쳐 보이십니까.”
“정신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서 그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우득, 우드득.
손가락을 꺾으며 라니엘이 칼트를 바라본다.
“따지고 보면 너 때문이긴 한데.”
“···예?”
“그래도, 뭐···.”
그리 중얼거리며 라니엘이 입가를 틀어 올렸다. 짜증과 웃음이 뒤섞인듯한 미소다.
“좀 속 시원한 것 같긴 해.”
“예?”
“좀 덜 팬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그래도 피 나올 때까진 팼으니까.”
“···스케발 이야기 하는 것 맞습니까?”
“야.”
라니엘이 쿡쿡, 웃음을 흘렸다.
“해골이 피가 나오겠냐?”
칼트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3.
“어, 카일? 여기서 뭐해요?”
“거기 왜 멍하니 서 있어? 사건은 끝났어?”
상황이 일단락 되자, 사라와 레미아는 하르메인 삼림으로 향했다. 카일을 보조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에서 둘의 지원은 쓸모가 없다.
마계에서라면 몰라도, 인계라면.
그것도 왕도의 중심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굳이 사라와 레미아가 보조할 필요가 없다.
카일이 검을 한번 휘두르고.
몇 번 뛰어다니다 보면 사건은 해결되니까.
그러나, 이번 사건은 아니다.
검은 결계와 제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둘도 잘 알고 있다.
잘 들어. 새겨들으라고.
저 결계가 나타났다는 건, 제단이 발동을 앞둔다는 건··· 그 겁쟁이 녀석이 나타났단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파티에 있던 마법사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까닭이다.
고대 리치 스케발.
그 재앙과도 같은 마법사가 왕도의 한복판에 나타났다. 이건 카일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잿빛 마법사가 없는 지금 상황에선 더욱더.
그렇기에 사라와 레미아는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얼마 안 가 카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카일은 노을을 등진 채 서 있었다.
사라와 레미아는 의아해하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부상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옷도 깨끗하다.
‘···싸운 것 같진 않은데요?’
사라는 그렇게 생각한다.
카일은 고대 리치 스케발과는 상성이 안 좋다. 상대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벼운 부상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
의문을 느끼는 건 레미아도 마찬가지다.
‘뭣보다, 이렇게 빨리,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레미아는 숲의 정경을 확인했다.
숲에 떠도는 생기(??)가 흐트러지긴 했지만, 그 규모가 미미하다. 카일과 스케발이 맞부딪쳤다면 상황이 조용히 끝나지는 않았을 텐데.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일을 바라봤다.
“상황은 끝났나요? 스케발, 그 해골은?”
“처리했다.”
“벌써요? 세상에, 카일···.”
카일이 사라의 말을 끊으며 덧붙였다.
“내가 아니라, 녀석이.”
사라와 레미아가 딱딱하게 굳는다.
녀석이 누굴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라니엘.’
얼마 전 파티를 떠났던 마법사.
그 마법사가 숲속에 들어와서, 스케발을 쓰러트리고 갔다고?
“···만났어요?”
“아직 만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이미 숲을 떠난 것 같더군.”
“···뭐, 그럼 된 거 아니야? 오히려 좋네. 힘 안 빼도 되잖아? 나도 달빛 화살 안 써도 돼서 좋고.”
레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색하진 않지만, 활시위를 매만지는 그녀의 손가락에는 안도가 묻어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스케발과의 전투는 그들로서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다. 아니, 스케발과의 전투라면 괜찮다.
그 해골은 그나마 싸울만 하니까.
상대법을 알고 있으니까, 괜찮다.
스케발이 성가신 이유는, 그가 치밀하게 짜올린 계획 탓이다. 계획이 까발려진 상황에서 스케발은 그닥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저, 사라와 레미아는.
재앙이라 불리는 것들과 마주 하고 싶지가 않았다.
배교자, 글레투스.
죽음의 칼, 가니칼트.
그 둘을 마주하며 느꼈던 공포는, 아직도 그들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마왕을 마주하며 자극당한 공포는 그들로 하여금 ‘재앙’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럼 다 처리한 거지? 갈까? 카일?”
“그래요, 돌아가요 카일. 오랜만에 왕도도 왔으니까···.”
사라와 레미아는 숲을 떠나자고 재촉한다.
그 재촉을 흘려들으며, 카일은 멍하니 제 손바닥만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뭐야, 카일 다쳤어요?”
뒤늦게 그것을 확인한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카일이 내려다보고 있는 손바닥, 그 손바닥의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어쩌다가?”
“글쎄···.”
그 물음에, 카일은 문득 웃음을 흘렸다.
“좀, 독특한 마법사를 만나서.”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별것 아니다. 나는 마저 숲을 수색하고 돌아갈 생각이다. 둘은 어쩔 거지?”
사라와 레미아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이 이렇게 말을 돌릴 때는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카일의 눈치를 살피며 레미아가 답했다.
“···뭐 그럼, 난 사라랑 먼저 돌아가 있을게. 학생들 상태도 봐줘야 할 테니까.”
“그래. 금방 돌아가도록 하지.”
레미아와 사라는 자리를 옮긴다.
카일은 한동안 자리에 서 있다가, 숲의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바닥이 욱신거린다.
살갗이 벗겨져 따끔거리는 손바닥으로, 카일은 제 뒤통수를 두어 번 가볍게 툭툭 쳤다.
주륵.
고인 핏물이 코를 통해 흘러나온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카일은 몸에 별빛을 둘렀다. 부상은 순식간에 회복된다.
‘···한대 정도, 맞아줄 생각이긴 했지만.’
손바닥으로 분명 막았을 터다.
그러나, 뒤이은 충격이 손바닥을 넘어 머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육체에 별빛을 두르지 않았다 한들··· 살갗이 벗겨졌다.
소녀의 주먹이 맞닿은 직후 발생한 충격은, 마법적인 무언가였다. 마법에는 무지한 카일이지만 그 주문 만큼은 알아보았다.
지난 5년간 질리도록 봐온 주문이었으니까.
‘강타, 혹은 분쇄.’
그렇게 불리는 타격계 주문이었다.
막은 손바닥을 넘어 두개골을 뒤흔들 정도의 강력한 주문. 그건 녀석이 애용하던 주문이었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그 특징적인 외모도, 말투도, 특유의 날 선 분위기와 주문 체계마저 똑같다.
‘다른 건 성별 뿐이다.’
성별, 그러니까 육체.
생김새만 바뀌었을 뿐, 그것을 제외하곤 녀석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소녀다.
솔직히 말해서 카일은 그 소녀가 라니엘이라 생각했다.
‘육체와 영혼을 위장한 것인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애당초 그 둘을 위장하는 방법이 존재하는 지 부터가 의문이지만··· 만약, 그런 방법을 썼더라도 카일은 알아 볼 자신이 있었다.
‘주문을 쓰는 순간, 형태가 흐트러 질 것이다.’
폴리모프 계열의 주문.
그런 주문을 썼다면, 마나를 사용하는 순간 그 형태가 조금이나마 흔들리기 마련이다. 수많은 마족들을 카일은 그런식으로 찾아냈었다. 그렇기에, 카일은 소녀를 도발했다. 주문을 쓰게 만들었다.
차라리, 함께 데리고 다니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라니엘이라면, 절대로 넘어가지 못할 만한 말을 꺼내면서.
너, 뭐라 했냐?
그리고, 그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소녀는 즉시 자신에게 달려들어 주문을 사용했다.
그 모든 움직임을 카일은 읽었다.
그러나, 형태의 흔들림은 없었다.
즉, 그것은 소녀 자신의 육체다.
위장한 모습이 아닌, 진짜 육체와 영혼.
‘정말로, 녀석이 아니란 말인가.’
그럼 어째서 그 말에 반응한 것이지? 녀석에게 직접 들었나?
카일의 머릿속에는 의문만이 맴돈다.
‘알 수 없다.’
결국에,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의문만이 남을 뿐이다.
별과 연결된 카일인 만큼, 육체가 뒤바뀐 다는 것이, 영혼이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별과의 거래에서 유일한 예외로 두는 것이, 태어나며 받은 육체와 영혼의 변질이다.
별은 단언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그렇다면, 정말 다른 인물인가?’
라니엘과 연관이 있을 뿐인, 다른 인물?
카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조금 전까지 마주하고 있던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잿빛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
표독스레 째려보던 눈동자가 눈 앞에 어른 거린다.
라니엘과 너무나도 닮은 인물.
카일의 직감은 그녀가 라니엘과 동일 인물이라 가리킨다. 그러나, 별은 그녀가 라니엘이 아니라고 말한다.
둘 중 어느 것을 믿어야 하는가.
카일의 직감은 틀리는 일이 있다. 많았다. 그러나, 별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
그러나, 이번만큼은 의구심이 든다.
별이 준 예언부터가 미묘한 까닭이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잿빛과 마주하게 된다.’
숲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예언에서 가리키는 ‘잿빛’이 녀석이 아니었단 뜻이다. 그리고··· 카일이 숲에 들어와서 보았던 잿빛은 그 소녀 뿐이었다.
‘···도대체, 어느 쪽을 믿으란 거지?’
카일은 눈살을 찌푸린 채 성검의 칼자루를 매만졌다. 별빛이 손 위로 피어올랐다. 별과의 연결점이 예전보다 흐릿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때가 오는 건가.”
아니면.
“그저, 착각일 뿐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