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9
〈 9화 〉 새 일자리 구합니다(2)
* * *
로셀 반 트리아스.
잿빛 마탑의 원로(??)이자, 뛰어난 교수인 로셀은 오래전 일을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아니 십오 년도 더 된 일일 것이다.
마왕군이 다시 한번.
끊이지 않는 재앙.
피난민이 루테티아 지방으로 몰려···.
재앙에 의한 피난민들이 넘쳐흐르던 시대. 그 혼란의 시대에 로셀은 한 아이와 마주쳤었다. 이제 막 열 살은 된듯한 어린 소년.
로셀은 한눈에 소년의 자질을 알아보았다.
재능의 총아였다.
마도(??)를 걸으면 역사에 길이 남을 대마법사가 될 것이요, 붓을 들고 학문(?文)의 길을 걸으면 우수한 학자가 되었을, 그런 재능을 타고난 아이.
로셀은 그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지만, 정작 로셀을 놀라게 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고작 열 살의 나이임에도, 갈고 닦여있는 재능.
잘 갈아진 한 자루의 칼과 같은 자질에 로셀은 숨을 헛삼켰었다.
그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개화(?花)되지 않은 꽃망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활짝 피어 누군가 자신을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로셀은 아이에게 물었다.
혹여 스승이 있냐고.
누군가 네게 마법을 가르쳐주었냐고.
가르쳐 주었다면, 그게 누구냐고.
배운 적 없어요.
그 질문에, 소년은 질문으로 답한다.
가르쳐주실래요?
그 당돌함에 웃음을 터뜨리며, 로셀은 그 소년을 제자로 들였다. 그 선택을 로셀은 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뛰어난 아이였고.
또 현명한 아이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로셀의 그 곧은 심지가 살짝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느냐?”
“네···.”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기며, 로셀은 미간을 짚었다. 이게 당최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세상이 난장판이 되었다곤 해도···.’
로셀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은 소녀를 바라봤다.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등허리까지 길게 내려와, 무릎을 꿇은 지금은 바닥에 그 끝이 퍼진 잿빛 머리칼.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굴러가는 푸르스름한 눈동자.
‘잿빛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저 소녀에게서, 자신의 제자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거라곤 그 두 가지 뿐이었다.
“믿을 수가 없구나···.”
“그러게요.”
“넌 다물고 좀 있거라.”
시무룩하여 입을 다무는 소녀를 바라보며 로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확실히, 조금 전 이 소녀가 선보였던 잿빛 마나는 라니엘의 것이었다. 그 아이를 가르치며 십 년이 넘게 봐왔던 마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로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많이 바뀌었구나.’
소녀가 된 외관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마나(Mana).
로셀의 눈동자에 비춘 라니엘의 마나는, 그 색은 같았으나 그것을 운용하는 방식에 천지 차이가 있었다.
그 사실이 기쁘고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바뀌진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
로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중얼거렸다.
“이미 소문으로 듣기는 했다마는··· 낯설구나.”
“네?”
“왕도까지 소문이 자자했단 소리다. 전장에 있는 어느 마법사가, 전투 마법의 근간을 갈아 엎었다고.”
“그래요? 그게 누군데요?”
전장에 있음 한번 즘은 만나봤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녀를 바라보며, 로셀은 쓰게 웃었다.
‘드럽게 눈치 없는 건 여전하구나.’
“아무것도 아니다.”
“예?”
로셀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둘렀다.
따악!
“아악!”
“하여간, 못난 녀석.”
로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라니엘은 모르겠지만, 로셀은 세간에서 자신의 제자가 어떤 식으로 평가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등한시되던 주문의 스톡(Stock)개념의 재정의.
체술과 주문의 스톡을 이용한 타격계 주문 기반의 전투 마법의 체계 정립.
전장에서 효율적인 주문의 활용에 관한 모범적 사례.
자신의 제자에 관한 기사는 전부 챙겨보았으니까.
그 기사들을 떠올리며, 로셀은 쓰게 웃었다.
‘세간에서 네가 무어라 불리는지 알고 있느냐, 라니엘.’
배틀 메이지(BattleMage)의 시초.
마법사들의 등대.
가장 뛰어난 마법사 등등.
그 이명을 입에 담자면 끝이 없었다.
“하여간.”
“악!”
“이놈의 제자는, 정말인지.”
“아악! 스승님, 잠깐만! 아악!”
딱, 따악, 딱.
리듬감 있게 휘두르는 지팡이가 소녀의 머리를 연신 두들긴다.
‘정말인지···.’
로셀은 지난 5년을 떠올린다.
마왕을 죽이겠다고 용사파티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걱정이 앞섰거늘, 홀로 독립하여 업적을 쌓아 올리는 제자를 보고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자랑스러웠다.
사천왕의 목을 벴다고, 그 사악한 흑룡 벨리알의 토벌 소식이 왕도 전역을 강타했을 때는,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 못난 제자는 모를 테지.
마음 한켠으론 언제나 걱정이 앞섰다는 것을.
자신이 그 5년간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였는지를 말이야.
“하여간, 스승 속이나 썩이고 말야.”
투욱.
힘없이 휘둘러진 그 지팡이가, 라니엘의 정수리에 맞닿는다. 라니엘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조금 지친듯한 로셀의 얼굴.
그 얼굴을 바라보며, 라니엘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못난 녀석.”
로셀은 손을 뻗어 라니엘의 머리칼을 헝클어 트렸다.
“일어나라. 시킬 일이 많으니.”
“·····.”
“일단 다 가져다 버린 네 가구부터 좀 사러 가자꾸나. 남김없이 싹 갖다 버렸으니, 처음부터 새로 사야겠구나. 할 일이 많겠어.”
“···네, 스승님.”
라니엘이 떠난 5년간, 단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던 방. 그 방문을 열어젖히며 로셀은 말했다.
“빨리 움직여라, 못난 제자 놈아.”
2.
용사파티의 일원.
잿빛 마법사 라니엘의 은퇴 소식이 왕도 전역을 강타했다. 그가 가진 명성만큼이나, 라니엘의 은퇴 소식이 불러온 여파는 거대했다.
기사단장 하인켈은 라니엘의 은퇴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했으며, 그의 업적에 마땅한 명예와 보상이 따를 것을 청원했다.
국왕은 하인켈의 청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라니엘에게 일찍이 주어졌던, ‘왕가의 마법사’임을 증명하는 휘장 위에 세 개의 별이 장식되었다.
한 개의 별은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기사임을.
두 개의 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마법사임을.
세 개의 별은 나아가, 인류를 위해 헌신한 마법사임을 가리켰다.
라니엘은 최초로 세 개의 별을 가진 마법사로 인정받았다. 당장은 라니엘의 부재로 하여금 휘장은 라니엘의 스승인 로셀에게 전달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파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적색 마탑의 마탑주, 하마눈. 라니엘에게 적색 마탑주 자리의 양도를 표해···.
청색, 녹색, 백색, 흑색 마탑 ‘잿빛 마법사’ 라니엘에게 경의를 표하며, 원로(??)의 자리를 약속.
기사단의 마법사들, 장교로 라니엘을 추천.
그의 은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수많은 곳에서 라니엘을 섭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건 마학(??) 아플리아 아카데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국에서 가장 이름 높은 아카데미.
수많은 어린 마법사들이 꿈꾸는 곳.
설립된 지는 4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기 졸업생들의 활약상 덕에 이름값이 드높아진 아카데미.
“·····.”
그런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학장인 아론은, 짜게 식은 눈길로 자신의 앞에 쌓인 편지지를 바라봤다.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종이의 탑.
저 모두가 학생들과 교수들의 청원서임을 생각하자니, 아론은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낀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님을 아카데미의 교수로.
베틀 메이지 클래스의 교수로 그분만큼 적합한···.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영입해야 할 인재.
그분의 수업을 한 번이라도···.
열정 넘치는 편지다.
심지어 졸업생들에게 마저 편지가 오고 있다.
‘물론, 이해는 한다마는···.’
아론 역시 알고 있다.
잿빛 마법사 라니엘이, 작금의 마법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존재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카데미 내에 그 마법사를 모델로 한 클래스마저 존재하니,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도 섭외야 하고 싶지.’
그만한 인재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은퇴 소식이 밝혀진 지 열흘이 지났건만, 라니엘에 대한 그 어떠한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온갖 마탑들의 구애에도 그 마법사는 묵묵부답이다.
엘프들의 대삼림으로 휴양간 게 아닌가.
아니면, 그 고귀한 고대용의 마법사에게 불려간 게 아닌가.
그런 뜬소문만 돌아다닐 뿐.
제대로 된 소식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마탑주들 조차 라니엘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리 아플리아 아카데미의 이름값이 높다 한들, 결국 아론은 일개 학장에 불과했다.
마탑주들 조차 못 한 일을 자신이 어떻게 하겠는가.
“후우···.”
아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교수를 보충하긴 해야 했다. 올해는 어마어마한 인재들이 입학 의사를 밝혔으니까.
‘그 아이들이 그렇게 잘해줄지는 몰랐지···.’
1기 졸업생을 배출할 때만 해도, 아론은 학생들이 너무 잘난 게 문제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각지에서 벌이는 활약상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그 탓에, 아카데미의 규모에 비해 이름값이 너무 높아지고 만 것이다.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아론은 책상의 가운데에 놓인, 신학기 입학생들의 명단을 훑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북방 대공의 외동아들이자, 타고난 전투 감각을 지닌 배틀 메이지(BattleMage) 라크.
잿빛 마탑의 차기 마탑주이자, 수많은 사역마를 부리는 서머너(Summoner) 레스티.
슬럼가를 주름잡던 ‘어스름’을 단독으로 궤멸시킨 배틀메이지 겸 주술사(Shaman) 벨노아.
그들 모두가 시대를 주름잡을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다. 저들 한명 한명조차, 지금의 교수진으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거늘···.
제 4 왕녀 아일라.
별에게 사랑받는 아이, 스텔라(Stella).
그 마지막에 오른 고귀한 분의 이름에, 아론은 이마를 탁하고 쳤다.
“환장하겠군, 정말.”
지금의 교수진으론 절대로 저들을 감당할 수 없다. 어디서 재능있는 교수가 뚝 하고 떨어지지 않을까.
“후우우···.”
아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3.
“라니엘.”
“네, 스승님.”
“아카데미에 다녀볼 생각 없느냐?”
“제가요? 이 나이 먹고?”
걔네랑 못해도 일곱 여덟은 차이 날 텐데.
“아니, 학생 말고 교수로 말이다.”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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