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t the Hero Party RAW novel - Chapter 8
〈 8화 〉 새 일자리 구합니다(1)
* * *
왕국의 기사단장.
하인켈 반 지크하르트.
최전선에서 쌓아온 업적과, 두터운 인망 덕에 기사들은 물론이고, 기사들을 아니꼽게 여기는 모험가와 용병들에게조차 존경받는 기사.
“후우···.”
그런 하인켈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주름진 미간을 짚었다. 다름 아닌 그의 손에 들린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다.
제 1군단 소속.
잿빛 마법사, 라니엘.
본래대로라면 그 발신인을 보는 순간 하인켈은 미소지었을 것이다. 이 깐깐한 마법사는 편지를 쓰는 법이 얼마 없었지만, 편지를 쓸 때면 언제나 좋은 소식을 가져오곤 했으니까.
“하필이면···.”
그러나, 편지의 내용을 확인해 버린 하인켈은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이에, 나 라니엘은 전장에서 벗어남을 밝힌다.
용사 파티, 그리고 기사단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휘장은 반납하도록 하겠다.
두 줄의 문장.
편지의 마지막 줄에 쓰인, 두 줄의 문장에 시선이 가닿았을 때 하인켈은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라니엘의 은퇴.’
그 문장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하인켈은 신음했다.
라니엘의 은퇴는 그리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다른 용사 파티의 일원이 빠진다고 한다면 하인켈은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니엘이 속한 파티는 특별했고.
그중에서도 라니엘은 더욱더 특별했다.
본래 용사파티는, 기사단의 일부라기보단 일종의 현상금 사냥꾼과 같은 식으로 운용되어 왔다. 전장에 출몰한 거물을 상대하고, 위치가 밝혀진 마왕군의 주요 간부를 토벌한다.
그것이 대부분의 용사파티의 행동 방침이었고.
거기에 속한 이들의 행동 방침이었다.
그러나, 라니엘은 달랐다.
그는 기사단의 일부로서 수많은 전선을 오갔다. 일종의 일인 군단이 되어 전선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곤 했다.
‘그 친구의 도움 덕에 확대된 전선이, 또 버티고 있던 전선이 몇이나 되던가.’
하인켈은 당장 최근까지 라니엘의 지원 덕에 간신히 유지 되던 전열을 헤아려 보았다.
‘동부 제 1전선, 서부 3전선, 마계 인근 협곡···.’
하인켈의 미간에 주름이 더 깊어졌다.
“···한 명에게 의지한 내 탓이로군.”
한 명의 초인에게 의지해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능력에 기대고 말았다. 하인켈은 착잡한 눈길로 편지지를 훑었다.
무려 5년이다.
전선에서의 인력 교체가, 특히나 마법사의 교체가 잦은 편을 생각해보면 라니엘의 은퇴는 이미 예상해 두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하인켈은 아쉬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저 은퇴였더라면, 명예직이라도 주어 장교로 앉혀두는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전장에 나서지 않아도 좋다.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라니엘은 전장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를 보고 기사단에 입단한 마법사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부상으로 인한 사퇴이니… 어쩔 수 없겠군.’
아쉬워하긴커녕 그 저주를 달고도 한참을 더 전선에 남아줬던 것에 감사해야 할 마당이다. 하인켈은 씁쓸함을 감추며 부하를 불렀다.
“하르티아.”
“네, 기사장님.”
“왕도에는 라니엘이 사퇴가 아닌, 명예 전역 정도로 바꿔서 보고하도록 하게. 업적을 한데 정리해서 보내는 것도 잊지 말고.”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본인이 원하고 있으니.”
“···명령하신다면, 그림자 부대를 시켜 그 마법사의 뒤를 밟···.”
“하르티아.”
싸늘한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용사의 일원에겐 존경을 보여라.”
“하지만 그 마법사는···.”
하인켈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내가 자네에게 더 말을 해야 하나?”
하인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부하 기사를 노려보았다.
“그 친구는 충분히 노력했어. 말로 다 못할 정도의 업적을 일구어냈고, 자신에게 기대된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네.”
“·····.”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이에겐, 그에 합당한 명예와 보상이 따라야 해. 그 친구는 그럴 자격이 있어.”
“…죄송합니다.”
“라니엘을 향한 불온한 움직임이 보고되면, 내가 직접 벌할 것이니 그리 알게.”
어지간한 기사들론 손도 대지 못할 테지만, 이런 싹은 미리미리 잘라둬야 했다.
용사 카일을 따르는 기사들이 라니엘을 아니꼽게 본다는 것 즘은 하인켈도 알고 있었다.
‘더 일이 커지기 전에 한 번 자르긴 잘라야겠군.’
할 일이 하나 늘어남에, 하인켈은 인상을 쓰곤 손을 휘저었다.
“나가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홀로 남은 막사.
하인켈은 등불 아래 그림자가 진 편지지를 바라본다. 문득, 편지지의 한 문단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과거, 나는 마왕에게서 도주하기 위해 별과 거래를 했다. 천칭(Balance)을 사용했었다.
물론 거래의 대가가 크진 않았다.
‘천칭(Balance).’
그 단어가 유난히도 눈에 띈다.
“·····.”
하인켈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다.
사실, 어느 정도 짐작하곤 있었다.
마왕에게서, 그 재앙에게서 그 무엇도 잃지 않고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
‘큰 대가를 치르지는 않았다, 라···.’
···아마도 거짓말일 테지.
무엇을 대가로 바쳤는진 몰라도, 하인켈은 그것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추측할 뿐이었다.
“왕녀님께서 슬퍼하시겠어.”
누구보다도 라니엘의 이야기에 열광했던 왕녀.
그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하인켈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수고 많았네, 라니엘.”
2.
기사단장.
하인켈 반 지크하르트.
그간 수고 많았네 라니엘.
왕도에는 사퇴가 아닌 명예로운 전역 정도로 포장해서 전달하도록 하겠네. 자네의 스승께도 내 전달하도록 하지.
자네에게 진 빚은 잊지 않겠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연락하게나.
“하여간.”
사람 좋은 아저씨라니까.
나는 날라온 편지를 읽으며 쓰게 웃었다.
편지지를 확인하는 나는 지금, 왕도 근방의 작은 마을에 와 있었다. 왕도에서 조금 떨어진, 숲과 맞닿은 마을. 바로 내 스승님이 사는 곳이었다.
야트막한 언덕, 살랑이는 밀밭.
살랑이는 따스한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숲과 맞닿은 곳에 있는 저택이 하나 보인다.
‘사실 저택이라기보단 도서관이지만.’
어렸을 적엔 저기서 스승님과 살았는데.
문득 옛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문 앞에 섰다. 5년 전, 이곳을 떠날 때 보았던 그 문과 조금의 차이도 없다.
마왕을 잡으러 간다고.
기어코, 가는구나.
그 문의 앞에 서서.
네 인생을 부정당할 것이다.
네가 배운 마도(??)를 전부 부정당할게야.
그래도, 기어코 가겠느냐?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숭고함에 인생을 바치는 이들은, 대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더구나. 나는 네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가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
이 문의 앞에 서서 나를 말리던 스승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승님의 손길이 내 어깨에 얹혀졌을 때의 무게를 나는 기억한다.
그래, 이 못난 제자야.
굳이 가겠다면, 돌아올 때는 마왕 목을 들고 오도록 하거라. 그 정도면 다시 제자로 들여주도록 하마.
“저도 들고 오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나는 쓰게 웃으며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왕을 잡지도 못했고, 용사 파티에서는 쫓겨났고, 심지어 여자가 돼서 돌아왔는데. 스승님을 볼 낯짝이 있기는 한 걸까.
···진짜 맞아 죽을 거 같은데.
“후우···.”
나는 크게 한번 숨을 내쉬곤, 문고리를 잡고 두어 번 노크했다. 이윽고 문 안쪽에서 덜컹, 거리는 소음과 함께 누군가 문을 열었다.
“…누구인가?”
검은 머리칼 사이로 희끗희끗 보여오는 흰 머리칼.
콧잔등에 걸쳐져 있는 안경.
그리고, 세월에도 깎이지 않은 푸르른 눈동자.
5년 만에 보는 스승님의 얼굴이다.
5년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는 스승님의 모습에, 나는 조금 쓰게 웃었다.
“그으···.”
그리곤 등에 메고 있던 지팡이를 살짝 돌려, 스승님께 보였다.
“돌아왔어요, 스승님.”
스승님께 받았던 지팡이다. 이걸 보이면서 설명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스승님이 입을 여셨다.
“그 지팡이는···.”
“그, 그게···.”
나는 변명을 내뱉으려 했지만, 스승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는 게 먼저였다. 스승님은 비틀거리며 벽을 잡고 간신히 섰다.
“못난 녀석···.”
그리곤 힘없이 말씀하셨다.
그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에 죄책감이 들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숙이고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으게, 여기엔 피치 못할 사정이···.”
“못난 녀석, 못난 녀석···.”
“..그게, 죄송합니다.”
“기어코, 기어코…! 내가 그리 가지 말라고 말렸거늘! 그때 더 강하게 말렸어야 했거늘…!”
“…예?”
아니, 잠깐만.
어째 반응이 좀 이상한데?
“이렇게 죽어 떠나보낼 거였더라면… 차라리, 차라리…!”
예? 죽어요? 누가?
나는 지팡이를 바라보며 오열하는 스승의 모습에 당황했다. 아니 죽긴 누가 죽어요. 스승님. 지금 눈앞에 말짱히 살아 있는데.
“어, 저기요···.”
“자네, 그 녀석이 뭐 더 남긴 말은 없던가? 고작 이런 지팡이 하나만을 남겼을 리가 없어. 뭐, 조금 더···.”
“아니, 스승님.”
“…뭐? 나는 아가씨 같은 제자를 둔 적이 없네만···.”
“제가 라니엘인데요.”
스승님이 눈을 깜빡이신다.
“뭐라고?”
“제가 라니엘…인데요?”
나는 지팡이 끝을 살짝 건드렸다.
이윽고 내 마나가 지팡이를 타고 퍼진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은, 잿빛의 마나.
“·····.”
그걸 본 스승님이 말없이 날 바라본다.
그 눈동자가 지팡이에서 잿빛 마나로, 잿빛 마나에서 다시 내게로 향한다.
“라니엘.”
“네,네에?”
“그래, 라니엘이 맞구나.”
이윽고 스승님이 힘없이 웃으신다.
그 따뜻한 미소에 나 또한 웃음으로 화답하려 했으나.
번갯불(Lightingbolt).
볼 옆을 스쳐지나간 주문이, 그리 냅두지 않았다.
콰릉!
뒤에 있던 나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쿠웅! 하고 무너진다. 나는 삐걱거리는 목을 돌려 스승님을 바라본다.
“들어오거라.”
스승님은 여전히 웃고 계신다.
그저 따스하게, 그리고 인자하게···.
아니, 아니었다.
자세히보니 입가만 웃고 계셨다. 그 눈동자는 차게 굳어 있었다. 가늘게 뜬 스승님의 눈동자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이거, 아무래도 좆된거 같은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