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5)
– 계약서대로 수익금 나누는 것으로 하시지요.
우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안창현 대표가 예상했던 답변이라는 듯 크게 놀라지도 않으며 소파에 등을 기대어 앉으며 맞은편에 앉은 정 실장을 보았다.
정 실장 보고 있나? 간단하게 해결했지 않느냐?
라는 표정으로.
– 그렇게 하시고, 위약금 지불할 테니까 전속 계약 풀어 주십시오.
“예!?”
안 대표가 화들짝 놀라서 소파에서 등을 뗐다.
“강배우강배우! 왜 이러십니까?”
전속계약 당시 ‘나무’가 우혁에게 보낸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었다.
**
제15조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
① 갑 또는 을이 이 계약상의 내용을 위반하는 경우, 그 상대방은 위반자에 대하여 14일 간의 유예기간을 정하여 위반사항을 시정할 것을 먼저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위반사항이 시정되지 아니하는 경우에 상대방은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② 갑이 계약내용에 따른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을이 계약기간 도중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목적으로 계약상의 내용을 위반한 경우에는 을은 제1항의 손해배상과는 별도로 계약해지 당시를 기준으로 직전 2년간의 월평균 매출액에 계약 잔여기간 개월 수를 곱한 금액(을의 연예활동 기간이 2년 미만인 경우에는 실제 매출이 발생한 기간의 월평균 매출액에서 잔여기간 개월 수를 곱한 금액)을 갑에게 지급한다.
**
우혁은 이 항목을 간단하게 수정하자고 요구했고, 회사에서도 받아들였다.
①항은 그대로 두고 ②의 경우 중간 부분 ‘계약해지 당시를 기준으로’부터 끝까지 삭제하고 대신 ‘계약금의 2배수를 갑에게 지급한다.’로 수정했다.
당시 계약금은 3억.
그 계약대로라면 위약금은 6억이다.
하지만 우혁은 6억의 위약금을 물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 연예인들 고생해서 번 돈을 투기로 날리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대표님 개인 돈을 사용하는 거야 상관없지만 회사 공금을 사용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우혁의 대답을 듣고 안 대표는 어쩔 줄 몰라 했다.
– 누구한테 들었냐구요? 인터넷 신문 기자한테 들었습니다. 기사화하겠다는 거 설득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계약하러 온 타란티노 감독과 제작사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게 없을 테니까요. 다행히 계약 잘 끝났습니다.
기사화하면 소속사 연예인들의 항의가 빗발칠 테고, 누군가가 고발이라도 하게 되면 안 대표의 공금 횡령 사실이 만천하게 드러나게 된다.
공금 횡령이 사실이 아니라면 상관없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게 밝혀지면 안 대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법적 책임도 져야 할 테고.
①항은 우혁이 소속사에 행사할 수 있는 조항이다.
공금 횡령을 밝히고 소속 연예인들에게 사과한 뒤 대표직에서 물러날 것.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발과 함께 계약 해지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이 경우 우혁은 위약금을 지불할 이유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손해배상까지 받을 수 있다.
물론 손해배상까지 받아낼 생각은 없지만.
“강 배우! 그 기자 누굽니까? 누군데 사람을 모함하는 건가요?
– 그 기자분도 대표님과 인터뷰하고 싶어 하더라구요. 인터뷰해 보시죠. 대표님께 연락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강 배우! 어제 정 실장이 전달했던 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 그 문제는 부차적입니다. 2주일 안에 공금 횡령 사실 밝히시고 소속사 식구들에게 사과해 주십시오. 공금 횡령하신 사실이 없으시면 그 기자분을 고발하면 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된 뒤에 이번 제 출연료에 대해 논의하시죠.
“강 배우! 다시는 그런 일 없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넘어갑시다.”
– 이 문제 저는 최근 며칠 전에 알았지만 저 말고 다른 소속사 식구들은 저보다 빨리 알고 있었더군요. 정 실장이 중간에서 소속사 식구들을 다독이지 않았으면 벌써 문제가 터졌을 겁니다.
우혁은 이전 두 번의 소속사에서 아픈 기억이 있다.
소속사가 망하면서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출연료를 받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잡혀 있던 출연은 취소되고, 다음 스케줄을 잡을 방법이 없었다.
계약은 묶여 있어서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고.
소속사 대표는 재기할 수 있다며 함께 가자고 1년 넘도록 시간을 끌다가 재기 가능성이 없자 계약을 풀어 주었다.
적어도 그 대표는 공금을 횡령하지는 않았다.
소속사가 위기에 빠지면 소속 연예인들은 침몰하는 배에 묶인 오리 신세가 되고 만다.
선장은 탈출할 구명보트를 확보하고서 달아날 준비를 하지만 묶여 있는 오리는 오도가도 못한다.
양심적인 선장이라면 묶여 있는 오리를 풀어주지만 비양심적인 선장은 오리의 부력에 의지해 침몰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춰 보려고 한다.
똑똑한 오리는 줄을 끊고 탈출한다.
그렇지 못한 오리는 배와 함께 침몰하고 만다.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도 망망대해에서 오리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우혁도 ‘나무’를 만나기 전에 그 오리 신세였다.
침몰하는 배에 묶여 있다가 간신히 물 위로 떠올라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무’라는 배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감사한 일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배에 구멍이 났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선장의 실수로 생긴 구멍.
그 구멍을 발견한 기자가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배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배를 끌고 가던 오리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그 배에 타려던 오리도 주저하게 된다.
배를 살리려면 구멍을 빨리 막고, 무능한 선장을 바꾸어야 한다.
우혁은 지금 안 대표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줄을 끊어달라는 것이고.
안 끊어 주면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는 일.
안 대표는 그제야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심각해졌다.
모든 것은 자신의 과욕으로 발생한 문제라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빨리 구멍을 메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발 늦은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안 대표가 담담한 목소리로 우혁에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정 실장은 침묵을 지킨 채 안 대표를 바라보았다.
안 대표는 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강우혁! 풀어 줘라!”
안 대표가 툭 던졌다.
“예?!”
정 실장이 놀라서 물었다.
“강우혁! 풀어 주라고! 계약 해지해.”
“···.”
“우리가 감당한 수 있는 친구가 아니야. 너무 컸어. 이번 일만 해도 소속사에서 한 게 없잖아. 미국 오가는 항공료 체류비 모두 영화 제작사 필름박스에서 댄 거 아니야. 백 대리가 따라가기는 했지만 백 대리가 그 계약 성사에 도움을 준 것도 없을 테고.”
“그건 사실입니다. 백 대리 얘기로는 계약 성사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구요.”
“너도 그런 말할 자격 없어. 넌 뭘 했어? 계약하는데 조금이라고 도움 준 거 있어?”
“···.”
“너도 강 배우 캐어 못해. 앞으로 할리우드 작품을 계속할 텐데 네가 그 감독들, 제작사들, 방송국 찾아다니면서 할 수 있어?”
“···.”
“강 배우, 그동안 열심히 했어. 위약금이니 뭐니 그런 거 요구할 것도 없고, 조용히 풀어 줘.”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 네가 맡아서 끌어가 봐.”
“무슨 말씀이세요, 외삼촌!?”
“날 잘 봐둬. 과욕은 금물이야. 욕심 부리면 내 꼴 나.”
“갑자기 왜 이러세요? 회사 경영에 손을 떼면 제가 어떻게 감당해요.”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어. 시기가 몇 년 빨라졌을 뿐이야. 난 이제 집사람하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아야겠어. 회사 아직 쓸 만해. 잘 꾸려봐. 넌 잘할 거야. 내가 이 자리를 지키려고 버티다가 이 회사 망하는 거 보기 싫으면 네가 이 자리 맡아. 네 외삼촌 교도소에 가는 꼴 보기 싫으면 내 말대로 해.”
***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 실장이 우혁을 쳐다보았다.
“대표님 말씀대로 하시죠.”
“우혁 씨, 풀어주라는 건 대표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저는 남은 계약 기간 채우겠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대표님 말씀대로 정 실장님이 회사를 이끌어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경영할 자신이 없습니다.”
“실장님은 잘하실 거예요. 다른 직원들이나 소속사 연예인들도 모두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대표님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대표님이 명예롭게 물러나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드려야지요.”
우혁의 조언을 조용히 듣고 있던 정 실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맞는 말씀인 것 같네요. 제가 대표님의 실수를 빨리 수습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우혁 씨 계약 문제도 대표님 말씀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희 회사에서 우혁 씨한테 도와줄 게 없습니다. 역량 부족이에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
“국내 계약 건은 기존대로 하고, 국외 계약 건은 제가 알아서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주시면 저희야 고맙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 실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로가 불만이 없는 합의였다.
우혁으로서도 국내 소속사 없이 움직이는 건 불편했다.
해외 계약의 경우는 당분간 우혁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 실장이 ‘나무’의 새로운 대표가 되었다.
파격적인 인사였으나 직원들 모두 정 실장의 대표 취임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정 실장이 창업자인 안 대표의 생질이기도 하지만 일을 가장 잘하는 간부였기 때문이다.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본부장 역할을 해오면서 서열 2위의 위치에 있었다.
안 대표는 그동안 직원들과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아 거리가 있는 데 반해 정 실장은 직원들과 근거리에서 꾸준히 소통해왔다.
이번 문제만 해도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논의하고 고민했다.
그 결과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정 실장은 대표가 되면서 공석이었던 본부장을 임명하고 기획/제작팀, 신인개발팀, 매니저먼트팀, 마케팅영업팀, 법무팀, 경영지원팀의 부서장인 실장을 부장으로, 6개의 부서 아래 각 팀의 팀장을 과장으로 직함을 바꾸고 과장 아래 대리와 직원을 두어 관리하게 했다.
조직 개편까지 순식간에 해치우면서 정 실장은 ‘나무’의 새 대표로서 자리를 잡았다.
***
우혁은 [마른 풀잎의 노래>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와 홍보로 바빴다.
[마른 풀잎의 노래> 제작자이자 남자 주인공으로서 그 어떤 영화보다 열심히 달렸다.목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
5억의 제작비로 제작을 끝냈다.
문제는 홍보.
순수제작비 3억을 빼고 P&A 비용 2억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2억도 안 되는 홍보비로는 영화 홍보에 한계가 많았다.
영화 홍보비만 10억 이상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초에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막상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할 게 없었다.
오늘은 영화의 배급을 위한 시사회로 극장 관계자, 배급 대행자, 비디오 및 텔레비전 판권 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배급 시사회를 하는 날이다.
배급 시사에서 영화 흥행의 운명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 시사회도 중요하지만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는 배급 시사가 더 중요하다.
스크린 점유율이 흥행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장 확보 없이 흥행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배급 시사는 로비전이다.
돈을 많이 푸는 제작사가 승리한다.
아니면 영화가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거나.
그 마음, 대부분 돈으로 잡힌다.
순수한 마음이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배급 시사를 모두 마치고 신여랑 감독과 우혁은 참석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홍보비 부족으로 참석자들에게 귤과 티백 녹차를 드린 게 다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았던 반응이 나왔다.
[ 소속사와의 합의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