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45)
우혁은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촬영이 끝난 뒤에도 TV 토크쇼에 출연하고,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바쁘다고는 하지만 여유가 있었다. 시간적으로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고.
프로모 영상을 확인한 뒤로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 개봉이 되었을 때, 최소한 욕을 먹지는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과 함께.
완성본은 아니지만 프로모 영상만으로도 타란티노 감독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란티노 감독, 천재인 것 같아!”
프로모 영상을 보고 나서 백곰이 말했다.
“노력하는 천재지.”
우혁의 대답에 백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곰도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우혁의 말에 수긍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다른 영화에서 훔쳐온 장면들이 숨어 있어.”
백곰이 비밀 말이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영화감독은 DJ와 비슷해. DJ들이 여러 곡들을 섞어 자신만의 감성과 리듬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 듯이 영화감독도 그렇게 하거든. 타란티노 감독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을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 버무려 넣어 한 편의 영화를 만들지.”
우혁이 타란티노 감독의 역성을 들었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는 그가 좋아하는 홍콩영화, 미국 B급영화들에서 훔친 것들이 녹아 있다. 훔치긴 했으나 절묘하게 버무렸기 때문에 그 누구도 표절이라고 시비를 걸 수 없었다.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면서?”
“정식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영화를 많이 본 영화광이었지.”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광이었던 흘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중퇴 후 LA 변두리의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영화를 공짜로 섭렵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떠버리 B급영화 마니아였다.
온몸으로 익힌 다양한 영화들, 특히 B급영화들의 관습과 대중문화의 감각을 훗날 자신의 영화에 녹여냈다.
타란티노 감독이 비디오가게에서 일할 당시의 일을 말한 적이 있다.
“비디오가게가 나한테는 대학 캠퍼스였지요. 비록 가난했지만 공짜로 마음껏 볼 수 있는 영화들이 많아서 행복했어요.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을 겁니다. 시간 날 때마다 시나리오를 쓰고, 시나리오를 친구들에게 읽어 주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지요.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절이에요. 하루에 영화를 열 편 이상 볼 때도 많았으니까요.”
그때 쓴 시나리오 한 편을 한 영화사에 5만 달러를 받고 팔게 되었다.
“그 돈으로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를 촬영했어. 단 일주일 만에.”
백곰에게 그 말을 들려주자 백곰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일주일 만에 영화를 촬영했다고?”
믿기지 않지만 타란티노 감독이 그렇게 말했다.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니까요. 하지만 준비 기간을 모두 합친다면 10년이 훨씬 넘을 겁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촬영을 준비했지요.”
[저수지의 개들>은 비선형적인 플롯, 인간 심연의 내부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일상적이고 유머러스한 긴 대화, 과거의 여러 영화들에서 차용한 장치들, 대중문화에 대한 찬미와 폭력의 미학적 표현 등, 이후 타란티노 영화의 전매특허가 되는 특성을 모두 보여 주고 있다.
내용은 흔하디흔한 범죄스릴러였으니 전개 방식은 새로웠다.
타란티노 감독은 시나리오의 3장 구성을 뒤집었다. 지금은 이런 방식이 흔하지만 [저수지의 개들>이 나올 당시에만 해도 미국 영화 역사상 보기 드문 시도였다.
그러한 시도들과 다채로운 장르를 혼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야기 구성 능력에서 특히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타란티노 감독은 1990년대 초반 혜성처럼 영화계에 등장해 현대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저수지의 개들>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았어?”
“출품했지.”
“상은 못 받았지, 아마?”
“상은 못 받았지만 반응은 엄청났지. 영화사 미라맥스에 북미 배급권을 팔았거든. 뿐만 아니라 미라맥스에서 차기작 제작에 8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거야.”
“대박!”
“다음 작품에 비하면 대박이라고 할 것도 없지.”
“그 다음 작품은 뭔데?”
“[펄프 픽션>.”
[펄프 픽션>은 서로 연결되고 얽힌 세 개의 이야기가 순서에 상관없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범죄 이야기로, 잔인한 살상 행위와 유머러스한 설정이 융합되어 있다.싸구려 대중소설의 스크린 버전을 보는 것 같은 이 영화는 전통적인 서사 관습을 일탈한 이야기 구조, 영화광적인 자기 반영성, 무엇보다 과거의 많은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homage)와 혼성모방(pastiche)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1994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았어?”
“그랬지.”
게다가 1억 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작품성과 함께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쾌거를 거두었다.
그 이후로도 타란티노 감독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로 4억 3천만 달러 수익을 올리는 등 흥행 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이어나갔다.
상복도 많아서 1994년에 [펄프 픽션>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1995년에는 [펄프 픽션>으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최우수각본상을 받았다.
2013년에 [장고: 분노의 추적자>으로 흥행 성공을 거두고 다시 한 번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을 받으면서 타란티노 감독의 성공 신화는 계속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은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보편적인 대중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번은 우혁이 타란티노 감독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감독님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재미!”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타란티노 감독이 한 대답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영화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요. 우선은 내가 재미있어야겠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요?”
“내 재미를 포기해야겠지요. 왜냐하면 영화는 나 혼자 보려고 만드는 일기가 아니니까. 다만, 내가 재미없으면 다른 사람도 재미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한테 재미있는지 생각해야겠지요. 물론 내 감성과 취향이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건 아니지만.”
우혁은 타란티노 감독의 균형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보편성을 담보하려는 시도.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대중과 함께하려는 마음.
현실과 이상, 예술과 사업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는 균형 감각.
“예술가들은 만나면 돈 얘기를 하고, 사업가들은 예술을 얘기하더군요.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예술가가 되는 게 내 꿈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를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사실이에요.”
타란티노 감독의 말이었다.
우혁은 타란티노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배우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배우 생활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먹고살기 위해 배우 생활을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먹고사는 일은 숭고하니까.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하는 생활인은 예술가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예술가를 존경한다.
그러나 가난하지 않으면 예술을 할 수 없다거나, 가난하지 않은 예술가를 죄인 취급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생활인보다 예술인이 더 중요한 존재라도 되는 양 떠받드는 것도.
그런 점에서 우혁과 타란티노 감독은 통한다.
영화 촬영 못지않게 홍보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점도 두 사람은 닮았다.
“감독님! 선댄스 영화제에 같이 갈까요?”
“그거 좋지요.”
우혁의 제안에 타란티노 감독이 반색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프로듀서로서 영화 수출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선댄스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지만 마켓을 열어 수출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다.
2천 미터도 넘는 고산지대에 있는, 인구 8천 여 명의 작은 도시 유타주의 파크 시티는 1년에 단 한 번,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바로 선댄스 영화제 때문이다.
선댄스 영화제는 할리우드의 상업주의를 비판하고 독립영화 제작을 촉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자유롭게 사고하며 인디 영화들을 장려 육성한다는 목적을 고수하면서 신중하게 작품들을 선별해내고 있으며, 잘 나가는 상업영화제가 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존의 대형 배급사들은 물론 넷플릭스, 아마존과 같은 할리우드의 새로운 강자들이 돈다발을 싸들고 찾아오는 영화제가 되었다.
타란티노 감독은 선댄스 영화제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계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켜 준 영화제가 아닌가.
선댄스 영화제에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으나 타란티노 감독은 매년 선댄스 영화제에 참석했다.
“정말 선댄스 영화제에 갈 거예요?”
타란티노 감독이 우혁에게 물었다.
“마침 스케줄도 없고 해서요. 젊은 감독들이 만든 영화도 보고 싶고요. 혹시 제가 방해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방해라니요. 대환영입니다. 하하하! 영화사에서도 고마워할 거예요. 영화 출품도 하지 않았는데 차마 가자고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에요. 선댄스 영화제 주최 측에서도 좋아할 겁니다. 주연 배우가 나타나면 영화제 흥행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디즈니-ABC 방송사 로스엔젤리스 지국 KABC에 방송된 신전 특집 방송 ‘메이슨의 작은 기적’에 출연한 뒤로 TV 토크쇼와 각종 매체의 인터뷰가 쇄도했고, 영화 홍보를 겸할 수 있는 기회라 마다하지 않고 그에 응하면서 우혁의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영화사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면서 우혁이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의 쓰리톱 주연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영화계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 중 영화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타란티노 감독과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유타주의 파크 시티에 도착하자 우혁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타란티노 감독의 인지도에 밀릴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옐로우다!”
“어디어디? 정말 옐로우잖아!”
“안녕하세요? 프로모 영상 봤어요. 최고예요.”
사람들이 몰려들어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함께 동행한 백곰과 경호원 로버트 두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혁과 타란티노 감독이 도착한 날은 영화제가 개최된 지 4일이 지났을 때였다.
프로모 영상을 본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프로모 영상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간신히 인파를 뚫고 [쓰레기들: 화이트, 블랙, 옐로우> 마켓에 도착했다.
마켓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영화사 직원들은 상담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영화사 직원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프로모 영상을 본 수입업자들의 반응이 엄청납니다. 오늘만 10개국 25개 회사에서 수입 의사를 밝혀 왔습니다. 일본에서 이렇게 서두르는 건 처음 보내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요. 대박 조짐이 보입니다.”
[ 프로모 영상의 위력 > 끝ⓒ 길밖의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