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8)
────────────────────────────────────
────────────────────────────────────
대본 리딩
[서울 가로등> 1화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었다.대회의실에는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누거나 대본을 읽으며 엄 피디와 유 작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엄 피디와 유 작가, 그리고 우혁이 들어왔다.
“가로등지기 역을 맡은 강우혁 씨입니다.”
엄 피디가 배우들에게 우혁을 소개했다.
짝짝짝!
은비 역을 맡은 올해 여섯 살인 아역배우가 혼자 박수를 쳤다.
“아이구, 우리 은비가 제일루 착하네.”
팔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국민 할머니 권선자 여사가 옆에 앉은 여섯 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권 여사는 [서울 가로등>의 주요 배경이 되는 다세대주택 건물주의 노모, ‘욕쟁이할멈(남원댁)’ 역을 맡았다.
“가로등지기 역을 맡은 강우혁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혁은 자신을 소개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이 선한 것이 영락없는 가로등지길세. 어디 있다 인자 왔어. 목 빠지게 기다렸잖여. 어여 와요.”
권 여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혁은 권 여사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반겨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반겨 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도 있었다.
“자, 이제 [서울 가로등>에 출연하는 식구가 다 모였으니까 간단하게 자기가 맡은 배역과 이름이라도 소개하고 시작하죠.”
엄 피디가 말했다.
“지난번 리딩 모임 때 하지 않았나요?”
남자 주인공 민준 역을 맡은 아이돌 그룹 출신 데이빗 강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토를 달았다.
은지 역을 맡은 소녀를 제외하고 배우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한국 나이로 올해 스물다섯.
엄 피디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춤, 노래, 랩, 연기, 외모 다 되는 친구이지만 성격에 모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굴곡이 많은 삶을 산 친구.
데이빗 소속사 대표의 귀띔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 상황에서 화를 냈을 것이다.
본성이 악하지는 않지만 삶의 굴곡이 심성에 영향을 미쳤는지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반항심도 강하고.
“새로 온 가로등지기는 누가 누군지 모를 거 아녀. 나부터 하께. 나는 뭐시냐 거시기 욕쟁이할멈 역을 맡은 권선자요. 은비야, 네 차례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비 역을 맡은 김지우입니다.”
김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옥자 역을 맡은 오승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승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자기소개를 하고 우혁에게 인사를 했다.
“박예진입니다. 서정 역을 맡았습니다.”
올해 스물여섯인 아역배우 출신 박예진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살짝 떼고서 고개를 숙였다. 남자 주인공 데이빗 강과 아웅다웅하면서 사랑을 키워 나가는 여자 주인공이다.
“민준 역의 데이빗 강임다.”
데이빗은 대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자기소개를 짧게 했다.
“주인공인 민준이 애비이자 못돼먹은 악덕 건물주이지만 일말의 양심은 있는 박달재 역할을 맡은 민달수입니다. 반가워요.”
민달수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성깔 못된 은비 엄마 장미 역을 맡은 정윤정이에요. 실제로는 부드러운 여자랍니당.”
“악덕 건물주 박달재 둘째 마누라라는 건 왜 빼?”
민달수가 정윤정에게 농을 걸었다.
“악덕 건물주 박달재가 제 둘째 남편이랍니당.”
이어서 옥자 엄마 ‘달성댁’ 역을 맡은 송은자, 옥자 아빠 ‘이씨’ 역을 맡은 최봉구 등이 소개를 이어갔다.
모든 배우가 자기소개를 마쳤다.
“다 끝났나요. 그럼 리딩 시작하죠. 지문은 특별히 작가님이 직접 읽어 주시겠답니다.”
“아직 소개 다 안 끝난 것 같은데요.”
엄 피디의 말이 끝나자 유은아 작가가 말했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유 작가를 바라보았다.
“다 한 것 같은데요.”
엄 피디가 배우들을 살폈다.
“재채기가 빠지면 안 되죠. 얼마나 중요한 역할인데요. 재채기야, 어디 있니? 너도 자기소개해야지.”
유 작가가 재채기를 불렀다.
첫 번째 대본에서는 인형의 이름이 없었다.
수정본에는 인형에게 재채기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유 작가가 인형에게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인형이 재채기라고 자기 이름을 말했는데 그걸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죄송한데 조금만 비켜 주실래요.”
엄 피디와 우혁 사이를 비집고 인형 하나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재채기예요. 에취! 기분이 좋으면 저는 재채기가 나요. 에취! 에취!”
“안녕!”
은비 역을 맡은 지우가 재채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은비야, 안녕!”
재채기가 화답했다.
“오메오메 이쁜 거.”
권선자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재채기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오냐오냐!”
배우들이 다들 재채기와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딱 한 사람 데이빗만 빼고.
데이빗은 인형에게 넋이 나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자, 인사 끝났으면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엄 피디가 나섰다.
“작가님께 질문 있습니다.”
데이빗이 손을 들었다.
“뭔데요?”
유 작가가 웃는 표정으로 데이빗을 바라보았다.
“대본이 바뀌었던데요.”
“좀 바뀌었지요?”
“좀이 아니라 많이 바뀌었던데요.”
“그래서요?”
유 작가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되물었다.
“촬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무 많이 바뀐 거 아닌가 싶어서요. 지난번에 대본 리딩을 했는데 또 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권 여사가 끼어들었다.
“아이구, 별 걸가지구 다 트집일세. 대본 바뀌어서 이상해졌으면 모르겠다만 더 좋아졌잖여. 이깟 리딩 한 번 더 하면 어때. 드라마만 잘 나오면 되는 거지. 고친 대본 어떻게들 보셨어?”
권 여사의 질문에 여기저기 답변이 흘러나왔다.
“처음 대본도 좋았지만 고친 게 훨씬 좋던데요.”
“저두요.”
“유 작가님 멋져요.”
답변을 듣고 나서 권 여사가 데이빗에게 한마디했다.
“민준아, 작가님한테 잘못 보이면 중간에 저승으로 보내는 수가 있어. 유학이라도 보내 주면 고맙기라로 하지, 저승으로 보낸다니까.”
권 여사의 농담이었다. 과거의 한 드라마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를 얼토당토 않은 사고로 죽게 하여 배역을 없애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이었다.
권 여사의 농담에 배우들과 유 작가까지 쿡쿡 웃었다.
데이빗은 아이돌 출신이지만 연기를 곧잘 했다.
하지만 안하무인이었다. 자기보다 연배나 경력이 많은 배우뿐만 아니라 작가와 피디조차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했다.
그런 모습이 선배 배우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었다.
지난번 리딩 때부터 데이빗은 그런 모습을 보였고, 배우들은 그때부터 데이빗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종의 왕따.
데이빗이 감히 대들지 못하는 딱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권선자 여사.
지난번에 잘못 대들었다가 욕을 한 바가지나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권 여사에게 꼼짝 못하는 데이빗의 모습을 보고 다들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했다.
“민준아! 좋게좋게, 알었제? 잉?”
권 여사가 데이빗을 살살 달랬다.
“시작할게요.”
유 작가가 시작을 알린 뒤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
대본 리딩이 끝났다.
지난번 리딩 때는 주인공인 데이빗이 가장 돋보였는데 이번에는 3순위로 밀려났다.
1위는 단연 재채기였다.
그리고 2위는 우혁.
결국 1, 2위 모두 우혁인 셈이었다.
리딩이 끝나자마자 데이빗은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모든 배우들이 우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작별 인사를 하거나 번호를 따기 위해서였다.
가로등지기는 대사가 많지 않았으나 처음 대본보다 분량이 늘었고 특히 재채기의 대사는 세 배나 늘어났다.
우혁이 배우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게 된 것은 배역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딩 중간에 유 작가의 부탁으로 동전 마술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지문에 가로등지기가 은비에게 동전 마술을 보여 주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을 실제로 보여 준 것이다.
우혁의 동전 마술에 배우들이 모두 감탄했다.
우혁을 둘러싸고 있던 배우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 유 작가가 우혁에게 물었다.
“우혁 씨 배우들한테 인기 폭발이네요.”
유 작가의 말에 우혁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수정본 어땠어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옆에 서 있던 엄 피디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우혁 씨 오늘 수고 많았어요. 들어가서 쉬어요.”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엄 피디와 유 작가에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갔다.
건물을 나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차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불쑥 길을 가로막았다.
데이빗이었다.
리딩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가장 먼저 나가지 않았던가?
“안녕하세요, 형!”
“?”
“죄송합니다. 허락도 안 받고 형이라고 불러서.”
“괜찮아요.”
“그럼 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편할 대로 해요.”
“말씀 낮추십시오.”
“편해지면 그렇게 할게요.”
“제가 불편하시죠?”
“···.”
“다들 절 불편해하죠. 제가 좀 버르장머리가 없거든요. 형이 저라는 인간을 편하게 여기려면 10년쯤 걸릴걸요.”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요?”
“···재채기랑 인사하고 싶어서요.”
“?”
“아까 저만 인사 못했거든요.”
“···.”
“괜한 짓을 했네요.”
우혁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데이빗이 돌아섰다.
“안녕, 데이빗 형!”
그때 재채기가 우혁의 품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데이빗이 돌아섰다.
재채기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반갑다. 난 데이빗이라고 해.”
데이빗이 아래로 늘어져 있는 재채기의 짧은 팔을 잡고 악수를 했다.
“난 재채기! 에취!”
“미치겠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형도 귀여워.”
“내가? 에이! 말도 안 돼. 옛날에는 귀여웠지.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고집불통에다 버르장머리 없는 이방인일 뿐이야.”
“지금도 귀여워.”
데이빗이 잠시 그대로 서서 재채기를 응시했다.
데이빗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갈게. 안녕!”
데이빗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손을 들어 보이며 작별 인사를 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서너 걸음 걸어다가 돌아서서 우혁에게도 인사했다.
“형! 다음에 봐요.”
“그래!”
데이빗이 돌아서 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서 뒤돌아섰다.
“형, 나한테 말 놓았어요. 내가 편해진 거예요? 아니면 실수?”
“편해졌다.”
우혁의 대답에 데이빗이 활짝 웃는다.
“오 마이···.”
데이빗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만 두고 손을 들어 보인 뒤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 한다.
“귀엽다!”
재채기가 우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