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요리사의 양심
그리스식 샐러드, 호리아티키 살라타.
고대부터 채식 문화가 발달한 그리스에서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수천 년 된 음식 레시피였다.
뭐,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실상은 그냥 그리스식 양배추샐러드지.”
양배추와 채소들을 잘게 썰어 올리브유와 와인 비니거, 그리고 각종 향신료로 맛을 낸 그리스의 전채 요리가 호리아티키 살라타였다.
현대로 오면서 양배추는 안 들어가고 토마토나 피망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번에는 페르세포네가 살던 고대 그리스 시대 기준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첫 번째로 손질할 재료는 역시 이거다.”
나는 채하나가 보내 준 던전 수급초를 조리대 위에 올려놨다.
딱딱해서 무기로 써도 될 것 같은 단단한 목질의 껍데기와 시커멓고 얼룩덜룩한 무늬, 그리고 묘하게 사람의 두개골을 닮은 크기와 형태를 보니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본 사람 머리 미라가 떠올랐다.
“왜 던전 양배추가 아니라 던전 수급초라고 부르는지 알겠네.”
하지만 생긴 게 흉측하다고 요리에 못 쓰는 건 아니다.
예전엔 감자나 토마토도 그 생김새 때문에 기피됐었으니까.
나는 [최초의 검]을 꺼내 단단한 던전 수급초의 겉껍질을 찔렀다.
쩌저적!
마치 수박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던전 수급초가 속살을 드러냈다.
“속은 양배추랑 똑같은데?”
단단한 겉껍데기를 제외하면 안은 얇은 잎이 겹겹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색이 붉은색이라 더 사람의 머리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향은 달콤하게 올라오네.”
양배추처럼 달큰한 향이 올라오는 걸 보니, 은은하게 단맛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내친김에 잎을 조금 뜯어 입에 넣어보았다.
달큰하면서도 약간 씁쓰름한 맛이 나쁘지 않았다.
“얘도 양배추처럼 물에 불리면 아삭아삭해지겠지?”
먹어서 생긴 마력을 [마나 번]으로 태운 뒤, 나는 껍데기를 벗긴 던전 수급초를 마력수에 담가놓았다.
그렇게 던전 수급초 잎이 마력수를 머금는 동안, 다른 재료를 손질했다.
“이건 셀러리, 이건 양상추, 이건 오이······.”
다른 재료들도 던전 수급초와 양배추의 관계처럼 비슷한 맛과 생김새로 대체가 되는 채소들이었다.
잎에 수면 효과가 있는 아피움 셀리논, 속칭 던전 셀러리의 잎을 떼고 줄기만 빼놓고, 반대로 진액이 증혈제로 쓰이는 코스 뿔 상추는 잎만 떼어놓았다.
단호박처럼 생긴 마력수 열매는 그 안에 마력수가 가득 차 있었는데, 잘라보면 맛이나 식감이 오이랑 똑같았다.
셀러리는 그렇다 쳐도 양배추나 양상추, 오이는 다른 요리에도 많이 쓰이는 재료고 맛을 보니 충분히 쓸 수 있겠네.
“샐러드 재료는 이걸로 끝. 다음은 드레싱이네.”
그리스식 샐러드의 핵심은 올리브유와 와인 비니거로 만든 식초.
으깨서 짜기만 하면 식용 기름이 줄줄 나와서 지중해의 축복이라고 불렸던 게 바로 올리브였다.
그런 올리브유가 없는 그리스식 샐러드는 단팥없는 붕어빵이라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대체품을 찾기가 쉬웠다.
“마감람유(魔橄欖油)라.”
대만의 한 던전에서 발견된 올리브와 유사한 마감람 나무의 열매를 짜서 만든 기름이 이미 헌터 마켓에서 팔리고 있었거든.
물론 식용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는 연고로 쓰이고 있었지만.
예전 올리브도 처음에는 그렇게 쓰였다니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겐 훌륭한 식용유죠.”
마감람유의 뚜껑을 열자 향긋한 기름 냄새가 주방을 채웠다.
이 향기 덕분에 대만에선 마감람유로 에센셜 오일로 만들 시도를 했다던데, 향에 마력이 묻어나와서 실패했다고 한다.
그걸 감안해도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향은 절로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이런 향이면 열매도 맛있겠는데?”
올리브 열매를 샐러드에 넣어 먹듯이 마감람 나무의 열매도 구하고 싶었지만, 그건 아쉽게도 불가능했다.
던전에서 나오면 순식간에 산패해서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나?
이런 건 채하나에게 부탁해도 구할 수가 없겠지.
아마 내가 던전에 들어가서 직접 요리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야.
“이제 남은 건 식초인데.”
곡물이나 과일을 술로 발효시키고 그 술을 다시 발효시켜야 얻을 수 있는 식초는 던전산 재료로 대체가 불가능하단 말이지.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는 법.
식초의 신맛을 대신 할 수 있으면 되었다.
“바로 이 던전 귤이지.”
청귤 비슷하게 생긴 이 과일의 과즙은 헌터들의 장비를 부식시킬 정도로 강력한 산성이었다.
던전 슬라임들이 이 과일을 먹고 산성 과즙을 소화액으로 이용한다고 알려진, 무시무시한 과일이지만.
“마력수에 희석하면 딱 좋은 정도로 시큼해지지.”
던전 귤 희석액을 살짝 찍어 혀에 대보았다.
혀가 얼얼하고 눈가가 파르르 떨릴 정도의 시큼함이었지만, 동시에 과일 특유의 상큼함도 물씬 풍겨 나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식초 대용으로 쓸 수 있겠어.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 이제 다 끝난 거냐고 묻습니다.]아니, 성좌들은 다들 왜 이렇게 참을성이 없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식 샐러드인데 치즈가 빠져서 되겠어?
나는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던 음식 용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던전산 암염과 마력수로 만든 소금물에 담긴 하얀 두부 같은 치즈가 들어있었다.
무려 던전에 사는 몬스터 ‘전투 산양’의 젖으로 만든 던전 치즈였다.
“이것도 정말 만드는데 고생했다.”
약초 재료 분석을 하고 폭렬 제육볶음을 팔면서 놀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리스식 샐러드에 치즈가 빠지면 그거야말로 진짜 팥 없는 찐빵이니까.
수소문해서 찾은 [테이머] 클래스를 가진 헌터에게 부탁해 그가 테이밍한 몬스터인 전투 산양의 젖을 얻어올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긴 했지만.
산양유만 구한다고 또 끝이 아니었다.
치즈를 만들 때는 렌넷이라고 불리는 응고 효소가 필수.
이걸 구하려면 소나 양을 잡아 그 위에 있는 렌넷을 채집해야 하는데, 던전산 렌넷을 구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렌넷이 안 들어가는 리코타 치즈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지.”
리코타 치즈는 우유를 끓이면서 소금과 레몬즙 같은 산성액을 추가해주면 몽글몽글 굳는 부드러운 타입의 치즈였다.
아침 일찍 던전산 암염과 던전 귤의 희석액으로 끓인 전투 산양유를 뭉치게 한 다음 걸러 유청을 빼주었다.
이걸 페타 치즈처럼 두부 모양으로 형성해주고 소금물에 담가 굳혀 놓은 게 바로 지금의 던전 치즈.
정확히는 ‘전투 산양유로 만든 리코타 치즈(페타 치즈 버전)’겠지만.
“그럼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네.”
나는 마력수에 불려 한층 더 아삭아삭해진 던전 수급초와 다른 채소들을 보울에 넣은 뒤, 그 위로 치즈를 덩어리로 부수어 넣었다.
마지막으로는 마감람유와 던전 귤 희석액, 그리고 던전산 암염을 넣어 만든 드레싱 뿌려서 완성.
“간단할 줄 알았는데 고기 굽는 것보다 이게 더 어렵네.”
재료 넣고 푹 끓이면 되는 코카트리스 삼계탕이나 가마솥에 넣고 구우면 되는 제림니르-플레스케스텍과 달리 이번엔 손이 가는 게 너무 많았다.
중간에 그냥 포기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아내를 위해서 요리해달라는 남편의 부탁을 외면할 수가 있어야지.
물론 그 남편이 저승의 신 하데스라는 점도 있었지만, 크흠.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님께서 주문하신 그리스식 샐러드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미리 쌓아둔 제단에 그릇에 정갈하게 담은 그리스식 샐러드 호리아티키 살라타를 올리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무지갯빛 불꽃이 피어올라 그릇을 삼켜버렸다.
“와, 무지갯빛 불꽃이면 신화급이잖아······.”
역시 하데스는 하데스라 이건가.
전설급이 황금색이라면 무지갯빛, 즉 칠색(七色)의 불꽃은 신화급 성좌를 나타냈다.
헌터 계에서도 정점에 올라 신화급 성좌와 계약한 이들만 볼 수 있는 이 무지갯빛 불꽃은 헌터라면 누구나 보고 싶어 하는 꿈의 불꽃이었다.
나는 그걸 계약도 하지 않고 요리해서 보게 되네.
“반응이 괜찮으려나.”
나는 불안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른 성좌도 아닌 신화급 성좌가 지금쯤 내 요리를 먹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고 말이야.
그때였다.
갑자기 우르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자, 잠깐, 내 요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진을 일으킨다고?
미리 맛을 봤을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렇게 내가 사색이 된 채로 흔들리는 주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봄을 가져오는 저승의 안주인이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자며 남편을 진정시킵니다.]지진이 멈췄다.
누군가가 하데스의 분노를 진정시킨 모양이었다.
성좌명 ‘봄을 가져오는 저승의 안주인’, 그리고 남편이라는 키워드를 볼 때 내 음식을 먹은 페르세포네가 아닐까?
[봄을 가져오는 저승의 안주인이 당신을 [하데스의 저택]으로 초대합니다.]잠깐, 전에 하데스가 죽은 자만 저승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거 나 죽이는 거 아니지?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피어나는 황금색 불빛이 날 감쌌다.
* * *
황금색 불꽃이 걷히고 눈을 뜬 그곳은 사방이 온통 검은 대리석으로 꾸며진 거대한 신전.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두 사람, 아니 두 성좌가 테이블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은 검은색 기운으로 이루어진 수염과 머리카락을 하고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중년의 남성, 하데스였고,
“건방진 인간 요리사놈. 좋게 보고 요리를 부탁했더니 감히······.”
“여보. 진정해봐요. 사정은 들어봐야죠.”
그를 달래는 건 이런 어두운 곳에서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는 젊은 여성, 페르세포네였다.
저승을 다스리는 연상연하 성좌 커플을 눈앞에서 보니 오금이 저절로 떨려왔다.
빠짝 마르는 입안을 억지로 침을 내어 적신 뒤 두 성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승의 왕과 여왕을 뵙습니다. 요리사 도연성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이미 알겠지만, 나는 저승의 안주인, 페르세포네예요.”
“그런데 여기로 절 데려오신 거면 전 죽은 겁니까?”
내가 하데스를 슬쩍 보며 묻자 페르세포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에요. 이이가 데려오면 그렇겠지만, 지금 당신은 내 초대를 받고 온 거니까요.”
휴, 다행이다.
요리에 실망했다고 날 죽인 줄로만 알았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맛은 어떠셨습니까?”
나는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물었다.
지금은 살아있어도 만약 다른 이유가 아니라 맛이 없어서 하데스가 분노한 거라면, 내 운명은 여기서 끝일 터였다.
용기를 잔뜩 내서 물어본 내 질문에 페르세포네의 표정이 환하게 빛났다.
“너무 맛있었어요. 고향의 맛이 떠올라 너무 즐겁게 먹었지 뭐예요.”
휴, 다행이다. 맛이 없진 않았던 모양이네.
잠깐, 그러면 왜 화를 낸 거지?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데스를 보자, 하데스의 살기 어린 눈빛이 나를 향했다.
“네놈. 왜 내가 따로 요청한 걸 뺀 거지?”
아,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나.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요리사의 양심에 어긋나는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뭐라?”
내 말에 오히려 하데스가 놀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내 소신을 말했다.
“음식에 다른 목적이 있는 재료를 넣을 수 없다는 소리였습니다.”
하데스, 그가 내게 요청한 건 저승의 석류를 요리에 넣어 달라는 것이었다.
······신화 속에서 그가 페르세포네를 저승에 남게 하려고 그랬던 것처럼.
“맛있는 요리는 손님의 웃음으로 완성되니까요. 손님을 웃지 못하게 하는 요리를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당장이라도 내 존재를 소멸시켜버릴 수 있는 위대한 신화급 성좌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하데스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던 페르세포네도 마치 석상이 된 것처럼 무표정이 되며 반응이 없어졌다.
······젠장,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저승 신의 심기를 거슬렀으니 죽어서도 편치는 못하겠네.
하지만 요리에 다른 의도가 들어가 있는 약물을 넣다니,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눈을 질끈 감고 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풉.”
응? 웃음소리?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눈을 떠보니 입을 손으로 가리고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페르세포네와,
“크흠, 큼.”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는 하데스가 보였다.
“들었어요? 이게 다 당신 업보 때문이라구요.”
“크흠, 젊었을 적 혈기 왕성했을 때 일을······.”
······분명 나쁜 의도로 넣어달라는 건 줄 알았는데, 반응은 그게 아니네?
내가 영문을 몰라 벙쪄 있는 사이 페르세포네가 웃으면서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분명 옛날에는 그런 일도 있었죠. 지금은 이이랑 함께 산 지 수천 년이 지났어요. 남편을 원망하진 않아요. 이이도 많이 반성하고 있구요. 미우나 고우나 내 남편이니까.”
“커흠, 큼.”
“이이가 석류를 따로 넣어달라고 주문한 건, 내가 그 석류를 좋아해서예요. 항상 나를 위해 아침마다 저승의 석류를 따다 준답니다.”
“······부끄럽군.”
부끄러운 듯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하데스.
그리고 페르세포네는 그런 하데스를 귀엽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냥 금실 좋은 부부였다.
그러니까 저 꽁냥꽁냥한 부부의 애정 사이에 내가 괜한 오지랖을 부린 거구나?
······내 멋대로 오해해서 요리를 빼먹는 대형 사고 쳤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돌려보내 주시면 당장 석류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그래 줄래요? 이이의 정성이 담긴 석류가 꼭 먹고 싶네요.”
다시 무지갯빛 불꽃이 타올랐고 지구로 돌아온 나는 주방에서 석류를 짜내 달콤한 석류 주스를 만들어왔다.
페르세포네는 만족하며 석류 주스를 음미했고 하데스는 그런 아내를 눈에서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맛있었어요. 샐러드도, 석류 주스도.”
페르세포네가 식사를 마쳤다는 의미로 손수건으로 입을 닦자, 하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며 입을 말했다.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네 요리에 내 아내가 크게 만족했다.”
애처가가 아니라 저승의 신 하데스가 검은 기운을 흩날리며 선언했다.
“인간 요리사여. 그대에게 합당한 보상이 있을 것이다.”
보상의 시간이었다.
출장 요리사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