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37
훌륭한 상대였다. 휘파람이 나올 지경으로 훌륭한 갑주 또한 얻었다. 안탄드로스에서 가까워서 그런가? 이런저런 장식이 들어간 철갑은 흔치 않은 물건인데. 횡재한 기분이다.
어쨌건.
그는 크로미스의 조각난 몸에서 흘러나온 심장을 밟아으깨며 흥분에 찬 얼굴로 주위를 돌아본다.
“···가끔은 이렇게 잔인하게 굴면 어렸을 때의 그 박진감 넘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단 말이지. 요새는 그렇게 뒤도 없이 막 나가지는 않지만 말이오.”
“시신이나 넘겨주시지요.”
“흠, 흥을 깨는군.”
그의 시선 끝에 자리한 메넬라오스는 여전히 뭔가 불편하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이 죽인 장수들의 흉갑을 챙기고 있었다. 가지런히 그들의 시신을 모아 장례까지 치러주려는 듯했다.
“···.”
그 모습을 본 디오메데스가 왠지 머쓱해져 크로미스의 몸 한 짝을 옮겨다 주자, 메넬라오스는 묵묵히 병사들에게 그 시신 또한 장작 위로 나르게 했다.
“바보 같은 짓이오. 그렇다 해서 우리가 저들에게 해적이 아니게 되나.”
“누구든 떠돌지 않고 자신의 집을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죽어서도 말이죠.”
“뭐, 지휘관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디오메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 몸을 돌려 열기에 찬 광경을 바라본다.
“으아아아아!!!!”
“도, 도시가··· 도시가···!”
대중의 흥분된 분위기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화마가 만들어내는 열기로 가득한 어느 폐허를.
자기 손으로 선조들이 쌓은 성벽을 부수며 한탄하던 패배자들이 디오메데스를 보면 두려움에 고개를 숙였다. 승리한 자신의 병사들조차도 피투성이 살인자인 그를 향하여 경외심에 눈을 내리깔았다.
압도적인 폭력을 두른 이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 그리고 그에 따르는 외경심.
가장 원시적인 지배 양식이다. 그리고 효과적이기도 하고.
디오메데스는 피투성이 왕으로서의 권위를 받아들였다.
그는 그 사실에 만족감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며 메넬라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메넬라오스여, 저기 이제 그 괴물 같은 젊은 친구랑 합류해서 페르가몬으로 갈 때가 된 것 같지 않소?”
“물론 그렇습니다. 죽은 이들의 장례만 치러준 뒤 우리는 당장 미시아의 심장부로 향할 것입니다. 무분별한 약탈 때문에 너무도 많은 시간을 지체했으니.”
메넬라오스의 차분하고도 간단한, 그렇기에 분명한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미시아의 심장부로 향한다.
당장.
디오메데스는 허리춤에 달린 신비로운 허리띠, 아마존인들의 보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힘을 느끼며 한 발을 내디뎠다. 말라붙은 핏물이 샌들 바닥에서 쩍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러붙었다.
바로 눈앞에, 머지 않은 곳에 페르가몬이 보인다.
“저기에··· 헤라클레스의 아들이 있다 이거지.”
아이아스는 메넬라오스를 위해서 제 군공을 포기하고 마그네시아인들을 끌어들였다. 그 이외에도 이런저런 양보와 수고를 통해서 메넬라오스의 앞에 설설 기고 있는 참이다.
씁. 기껏 잡은 줄에, 진드기가 달라붙는 꼴이라니.
디오메데스는 메넬라오스를 바라본다. 나약한 듯한 분위기와 다르게 얼음처럼 냉엄하고, 곱상한 외양에 어울리지 않는 무력을 지닌 남자.
그런 남자를 제왕으로 만들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아이아스와 자신, 두 남자.
···어쩌다 보니 충성 경쟁을 시작하게 될 판이다.
“아이아스, 그 애송이에게 군공이 밀리면 안 될 텐데···.”
디오메데스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흘렸고.
메넬라오스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며 미소지었다.
***
페르가몬.
수백 년 뒤에는 아주 번영하는 도시가 되고, 1,000년 뒤에는 그 이름을 딴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가 되기도 한다. 로마에 삼켜진 뒤에도 제국의 동방 속주에서 주요한 도시로 남고 인구 수도 수십만 명에 달하게 된다.
좀 더 유명한 이야기로는, 양피지를 의미하는 영단어 ‘parchment’의 어원이 됐다는 것도 있다.
일단 지금은 미시아의 주요 도시, 왕도(王都)였다. 내가 알기로는 이 시대의 거주지는 확인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고고학적 유물만 발견 안 되었던 모양이다.
그곳에 미시아의 왕 텔레포스가 살고 있는 것을 보면.
“만약 적들이 남쪽에서부터 루위인들의 영역을 불태우며 북상했다면··· 아마 여기쯤에서부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약탈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카이코스 강을 따라 올라갔다면···”
“아직은 도착하지 못 했겠군요.”
“그래.”
아무리 저들이 페르가몬으로 곧장 진격하기를 바란다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약탈물로 유혹해 끌어모은 병사들이 있는데 어쩔 수 있겠나?
당연히 강변을 따라가며 기습과 전투, 점령과 약탈을 반복한다면 진격 속도는 느려진다.
아무리 산악지대 때문에 조금 빙 돌아가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비교적 아카이아인들보다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먼저 닿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저들이 먼저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언덕 몇 개를 넘어갈 때마다 그런 의심을 떨쳐나가기 어려웠다.
잔챙이들뿐이다.
아카이아인들이라 해봤자 이전에 만났던 틀레폴레모스나 니레우스 이상의 강력한 대적을 만나지 못했다. 병사들의 질 역시 그리 높지 않았다.
우리가 쓸데없는 충돌을 피하려 일부러 큰 도시들을 빗겨나가며 움직이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미 저들이 피라미로 주린 배를 살짝 채운 뒤, 이제 큰 먹잇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슬슬 전공을 챙겨야겠다, 이런 생각일 것이다.
불안감이 더해질 때마다 우리의 행군 속도에도 역시 박차가 가해졌다. 철쇄대원이나 불사조 근위대원이 아닌 일반 시민병들은 우리의 속도에 뒤쳐질 때도 있었다.
별 수가 없었다. 결국 따라잡지 못한 이들은 후방 지원이나 우리가 해방한 도시와 마을들을 지키는 역할을 맡기고 나아갈 수밖에.
어느덧 보니 우리 곁에 남은 병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후방에 남기고 간 이들을 제하면 약 500여 명.
더 가볍고, 더 빠르게 나아가는 500명. 이 중 300명 정도가 철쇄대원들이고, 50명 정도가 불사조 근위대원들이니 진군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 숫자로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방어나 지원을 행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갔다.
슬슬 짐작했으니까. 방어나 지원이 필요 없을 상황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도착했다.
“···저기, 가 페르가몬입니다.”
길잡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손끝에는 과연 한 나라와 족속의 중심지라 할 만한 웅대한 도시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한쪽 성문이 뚫려 있다.
아카이아인들이 진입하고 있다.
“우선은 강을 건너야 하는데···.”
페르가몬은 동쪽에는 케티오스 강이, 서쪽에는 셀리노스 강이 흐른다. 우리가 건너야 할 쪽은 바로 셀리노스.
“저쪽에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우선은 저 근방을 건너면···”
“너희들! 너희는 아군인가!!”
···마침 우리가 가리킨 다리 위에서 우리를 발견하고 아카이아군 분견대가 달려온다.
“검은 사자가죽에, 말 위에 탄 기수···!”
“트로이아인이다! 트로이아인이야!”
“겁 먹지 마라!! 겁 먹지 말라 하였다!!!!”
당황하는 병사들을 다독이며 누군가 앞으로 나와 우리의 앞에 선다.
“나는 필라케의 프로테실라오스다. 그대들이 누군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군!”
또 유명인이다.
트로이아 땅을 가장 먼저 밟은 이가 가장 일찍 죽으리라 하였음에도, 거침없이 상륙하여 결국 헥토르에게 목숨을 잃은 영웅.
“듣자 하니, 프로토스 같은 장수에게도 고전했다지? 웃기는 일이군. 이런 이들이 헤라클레스의 유산을 물려받다니.”
“···뭐?”
“나, 헥토르가 보증하건데 프로토스는 충분히 강한 자였다. 그를 모욕하지 마라.”
“무슨 소리, 그와 함께 대련도 몇 번 나누어봤지만 모두 내가 이겼다. 그가 강자라면 그대들이 약자라는 소리로군.”
프로테실라오스는 호기롭게, 그리고 영광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한 눈을 들고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대들 모두를 상대하더라도 내가 이기겠지. 와라. 요행으로 틀레폴레모스 같은 ‘강자’를 쓰러뜨렸다 해서 나를 물리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마라!”
지금 내 눈에, 프로테실라오스는 ‘그놈은 우리 사천왕 중 최약체··· 마족의 수치다.’ 따위를 말하는 고전 JRPG의 악당처럼 보였다.
사실 아카이아에는 어마어마한 강자들뿐인 건가? 저런 어린 놈도 프로토스를 무시할 정도로?
내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역시 틀레폴레모스를 이겼던 게 이상한 거고 아카이아인들의 전력은 예상 이상으로 강력···
-후우우우웅!!!!
-콰직!!!!!!
“끄아아아악!!!! 내, 내, 내 팔이···.”
“파, 파리스 님! 이번에는 제대로 맞췄어요!!”
“···.”
“···.”
···뭐 하는 새끼지?
페르가몬 (2)
하늘에 구름이 적다.
그 위에 조금씩 점점이 떠가는 것들이 있으니, 날개 달린 짐승들이다.
미시아의 예언자 엔노모스는 조용히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그리고 무리지어 떠나는 날짐승을 바라보았다.
그는 새점을 특히나 잘 쳤다. 새의 종류나 날아가는 방향, 무리지은 모습이나, 날개짓하는 방식에서 내일을 읽었다.
왕국의 흥망과 청년들의 사랑, 노인들의 수명이 모두 그 미묘한 깃털 놀림 속에 있었다. 그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저기, 이리저리 타원을 그리며 맴도는 큰까마귀들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미래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저들의 시체를 노리는 까만 눈에는 공허함만이 비칠 뿐이다.
어쩌면 그게 그들의 미래일 수도 있었다.
미래가 없는 것.
아르시노스의 아들 엔노모스, 본래 미시아인들을 이끌고 트로이아를 지키기 위해 참전하여 저 준족(駿足)의 아킬레우스에게 죽어버릴 운명이었다. 죽음의 신께서 친히 내려오시어 그가 검은 날개로 감싸일 날은 본래 다른 날이었다.
그러나 한 소년의 도래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는 옆에 선 아름다운 소년을 바라본다. 왕자 파리스.
저자의 탄생 이후로 모든 운명의 실이 꼬였다.
한낱 필멸자의 눈으로는 그 뒤엉킨 운명의 편린밖에 읽어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는 이제 신탁을 받을 때 외에는 그저 쓸모 없는 이였다.
그 사실에 애수를 느끼다··· 그는 하늘로부터 시선을 떼어내고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그러자 곳곳에서 연기와 금속음이 일어나는 페르가몬이 보였다.
“엔노모스 님, 이제 강을 건넜으니 페르가몬으로 진입할 때입니다.”
“알겠습니다, 헥토르 님.”
그는 칼을 뽑았고, 갑옷의 끈을 조였다.
낯선 언어와 피비린내가 그를 부른다.
전장이었다.
***
“나는 아테네의 토테스다!! 그 유명한 헥토르의 목을 내 손으로 가져가겠다! 프로토스에게 수세에 몰린 놈들 따위! 모두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토테스는 창을 뽑아다 던졌다. 그리고 검은 형체가 그가 던진 창을 튕겨내며 바로 앞까지 도약한다.
‘그것’은 제 몸에 달린 날개처럼 자연스럽게 칼날을 펼쳐 들어올렸다.
-쾅!!!!!!
“나는, 헥토르다.”
순식간에 자신을 토테스라 말한 사내의 반짝이던 청동 흉갑이 발톱으로 할퀸 듯 찢어졌다. 그는 허망한 표정을 지을 새도 없이 죽었기에 더욱 허망했다.
일단 주위에 우호적인지 확인되지 않은 병력이 오자 곧장 달려들어오는 아카이아인들.
‘흑사자 헥토르’라는 별명을 알고서 헥토르의 갑옷을 확인하자마자 달려드는 이들.
그런 이들을 물리치면서 나아가다 보니 벌써 페르가몬의 외곽에 다다랐다.
아카이아군의 수가 많다 한들, 1만의 대군이 이곳에 모두 모인 것도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우리와 충돌한 소수의 분견대를 제하면 다른 이들은 페르가몬의 남쪽 성벽에 모여 있었다.
이미 싸움에 들어가 성벽을 타고 넘거나 성문 안으로 들이쳐간 아카이아군이 대부분이다. 동쪽에서 빠르게 진입해오는 우리 500명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이제 없었다.
“흐, 흑사자? 트로이아군이다! 아군이다!”
“문을 열어! 트로이아의 지원병들이 왔다!!”
성벽 위에서 우리를 본 병사들이 고래고래 외치기 시작한다. 곧장 문이 열리고 우리는 도시 안쪽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은···
“맙소사···.”
이미 전장 한가운데가 된 도시였다.
곳곳에서 불 붙인 홰가 날아다니며 건물과 사람을 태웠고, 곳곳의 좁은에서 갖은 집기들을 모아 길목을 막으니 이곳저곳에서 규모만 작은 공성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우리가 도시 안으로 안전하게 진입하자 곧 화려한 갑옷을 걸친 누군가가 부리나케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별다른 피아식별 절차도 없이 헥토르의 사자 갑옷 하나만 보고 받아들인 것 역시 이들이 얼마나 급한지 알려주는 듯했다.
“호, 혹시··· 헥토르 님과 파리스 님, 아이네이아스 님 맞으십니까?”
“그렇소. 그대는 누구요?”
“소문의 흑사자를 뵙게 되어 영광···”
-콰드득!
“제기랄! 대로가 뚫린다!!”
“당장 막아!!”
“···제대로 된 인사치레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송구합니다.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리필로스입니다.”
미시아의 왕자, 헤라클레스의 손자, 마카온 등의 장수를 죽이고 그 자신 또한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살해당한 이.
그의 얼굴에는 짙은 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드러났고, 그의 몸짓에서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자신이 평생 동안 살아온 도시가 불타고 있으니.
“일단 도시 중앙의 신전을 중심으로 방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적의 수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텔레포스 왕께서는.”
헥토르는 짧게, 그러나 무례하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그러나 에우리필로스의 얼굴은 어쩐지 심각해졌다.
“···일단 적 병력의 수는 4,000명쯤 됩니다.”
“텔레포스 왕께서는 어찌 되셨습니까?”
“···모릅니다. 병력을 이끌고 일선으로 나가신 뒤, 메넬라오스나 다른 군주들과 일전을 벌이는 모습 정도는 보았습니다.”
왕이자 지휘관의 생존 여부를 알 수 없다.
즉, 지금 눈앞에 있는 에우리필로스가 이 자리의 책임자였다. 당장 왕의 생사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 역시 강력한 장수니까.
대신 헥토르는 지금 당면한 문제에 관해 논하기로 했다.
“···일단 적 병사가 4,000명 정도라면 저희 병사들이 큰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 듯하군요. 우리 병사들은 모두 철쇄대원과 불사조 근위대원이니 말입니다.”
“철쇄대라 하셨습니까!”
그의 낯빛이 빠르게 밝아진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군요. 일단 보시다시피 저 대로를 중심으로 주된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그 양옆으로 뻗은 골목을 통해서 침투전이 펼쳐지는 중입니다.”
“골목에서의 전투라면 적은 병력으로 압도적인 힘을 내는 게 중요하겠지요. 우리 병사들을 골목으로 흩어놓을 테니 시민병들을 물리십시오. 그들을 이끌고 함께 대로로 들이칩시다.”
“감사합니다, 신들께서 프리아모스의 아들들을 가호하시길. 말씀해주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파리스?”
“알겠습니다.”
대로는 우리가 들어온 동쪽 문에서 도시 중앙의 광장으로 뻗은 뒤 아카이아인들이 쳐들어온 남쪽 문으로 향했다. 마차 네다섯 대가 평행하게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넓은 도로였다.
그곳으로부터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작은 골목들이 페르가몬의 집과 집들을 이었다. 그 불규칙하고 작은 거미줄들까지가 모두 쇠와 청동이 오가는 전장이었다.
“철쇄대원들, 그대들은 내가 꼽은 10명 정도를 제하고선 네다섯씩 조를 지어 골목으로 흩어진다.”
“알겠습니다!!!!”
“기억하라, 안탄드로스에 영광을.”
“영광을!!!!”
그 몇 문장들만으로 충분했다.
철쇄대원들은 미리 연습했다는 듯 자기들끼리 모여 개미떼처럼 질서정연하게 흩어져갔다.
···저 중 얼마나 살아돌아올지에 대해 나는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어느덧 몇 안 되는 철쇄대원들과 수십 명의 불사조 근위대원들뿐이었다. 곧 에우리필로스가 기백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돌아오니 꽤 큰 무리의 전사들이 모였다.
당연하지만 우리가 선봉이었다.
“파리스, 이제 진입할까?”
헥토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앞장서는 게 맞겠죠.”
그 어떤 영웅도 나보다는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을 테니. 내가 앞장서서 전장을 흔들어놓으며 이 기동력과 충격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헥토르 형님이 왼쪽을 맡고, 아이네이아스가 오른쪽을 맡았으면 좋겠군요. 제가 중심에서 적들의 주의를 흩뜨리며 전진하겠습니다.”
“그래. 꼭 조심하고. 혹시 강력한 장수하고 마주칠 수도 있으니.”
“멀리 떨어지지는 않겠습니다. 에우리필로스 님, 텔레포스 님께서는···”
“이미 전장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다른 장수들도 곳곳에서 전투를 볼이고 있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나는 오랜만에 할버드를 집어들었다. 투구를 단단히 고쳐쓰며 부케팔로스의 허벅지를 뒤꿈치로 툭툭 두드렸다.
부케팔로스의 다리근육에 힘이 축적되기 시작한다.
“···가자.”
그리고.
-후우우우욱!!!!
도약한다.
나의 귓가에 바람 소리가 높게 스친다. 점점이 보이던 광경들이 선처럼 길게 늘어지기 시작하고 소실점 너머의 작은 개미떼들이 점차 창과 투구와 정강이받이를 갖춘 병사들로 화(化)하여 간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아군들은 급히 나를 보고 비켜선다. 말을 타는 영웅은 단 한 사람뿐이니, 그들도 내가 아군임을 알았다.
“프리아모스의 차자께서 오셨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야!!!!”
그들의 외침소리에 길이 점차 좌우로 뚫려간다. 부케팔로스 역시 부담 없이 가속도를 높여가고, 나 역시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몸을 숙인다.
부케팔로스와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속도에서 세상을 본다.
저기, 적군과 아군이 뒤엉켜 있는 곳이 보인다. 버티던 아군들의 벽이 허물어지고, 미시아인들이 아카이아인들에게 사정 없이 도살당하기 시작한다.
해적질을 위해 온 아카이아인들이라 해서 오합지졸만이 있는 게 아니니. 오히려 가장 숙련된 전사들이 앞장서 아군들을 죽인다.
그렇게 아군들이 흩어져간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던 인파의 덩어리가 점차 선명한 표적으로 변해간다.
나는 그들에게, 아니 그들 사이에 남아있을지 모를 아군들에게 외친다.
“비켜라!!!!!!!!!!”
그 순간
수십, 수백 쌍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어, 어어···”
피하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다 외려 주위 사람들과 발이 꼬이고 어깨가 부딪힌 이들.
막상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지 못해 망설이는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