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53
기병대원들은 모두가 철쇄대원이다. 철쇄대원들 중에서도 정예만 골랐고, 이 시대에 중무장병을 태울 정도의 말은 흔치 않다. 그걸 유지하는 데도 엄청난 자원이 들어간다.
한 사람당 전차 수십 대만큼이나 귀한 자원들을 데리고 싸우면서 철갑을 두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기병대원들은 내 명령을 듣고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 사람당 수십 명에게 포위당하는 형세가 되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으아아악!! 타르훈나시여!!!!”
-콰직.
적들은 1,000명 중 가장 단단히 무장한 이들 두서넛이 청동 갑옷을 걸치고 있을 뿐이다.
중세 기사만큼은 아닐지라도 강철로 철두철미하게 몸을 감싼 초인 기병들이 거의 맨몸인 보병들을 쓰러뜨리지 못할 리가 없다.
네샤인 병사들이 휘두르는 청동 칼날은 기병대원들의 칼날과 부딪혀 산산이 깨지고, 그들의 갑옷은 순식간에 양단되어 피로 젖어버린다.
나는 잔챙이들은 기병대원들에게 맡기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들을 향하여 돌진했다. 그래도 어느 도시의 왕 정도는 되는지 제대로 된 갑옷과 무기를 걸친 채였다.
“아, 안탄드로스의 왕을 죽여라! 저자만 죽이면 살 수 있다!!”
그가 호위들에게 외친다.
맞는 말이다. 다른 영웅들은 아킬레우스를 빼면 대부분 몸져 누워있고, 나 정도만 오이노네의 집중 치료를 받아 이렇게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상황이니.
하지만 나를 죽인다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는 활시위를 당겼다. 순식간에 십수 개의 곡선이 그려지면서 그 정예한 호위들의 목과 눈과 심장을 꿰뚫는다.
눈을 감았다 뜨자마자 호위들이 모두 죽어 있으니 경악한 적 지휘관이 칼을 빼든다. 빼들면서, 천천히 기도를 올린다.
“대, 대장장이들의 아버지시여··· 장인들의 수호자시여··· 위대한 하사멜리시여···!”
-화륵.
그리고 불꽃과 함께 허공에서 신형(身形)이 떠오른다. 상처 입고 곳곳에서 영액을 흘리는 절름발이 신이 나타나 내 머리를 잡아채려 한다.
[모든 것이 끝나간다. 어린 대장장이야, 너라도 취하지 않으면···!]-콰자자작.
이 부러지는 소리는, 내 두개골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네샤인들의 대장장이 신, 하사멜리의 손목이 부러진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적 지휘관은 완전히 의지를 잃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나는 서둘러 밧줄로 그를 묶은 다음, 나를 도운 신을 올려다본다.
“히··· 히익! 괴, 괴물! 서방의 괴물!!”
적 지휘관은 내게 묶이면서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럴 만했다.
[말해 보아라. 트로이아의 왕자여.]“···알크메네의 위대한 아드님이시여.”
지금 나를 도우러 온 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헤라클레스였으니까.
그는 하사멜리의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갈아버린다. 하사멜리가 입으로 쏘아내려 하던 불꽃에 근처의 흙이 녹아 엉겨붙어 새로운 돌들을 만들어낸다.
[그대의 스승인 헤파이스토스가 이자의 무릎 꿇은 모습을 보고서 흡족해할 것 같은가?]“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 님께서는 적의 고통을 즐기지는 않으시나···”
[그럼, 데려가겠다.] [너희 비천한 야만의 우상들이 어찌 나를···!]-콰직.
불사신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혼절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목이 기괴하게 꺾인 하사멜리가 바닥에 쓰러지자, 헤라클레스는 그 등에 주저앉아 몸을 쉬게 했다. 나는 기절한 적 지휘관을 부케팔로스의 등에 싣고서 헤라클레스에게 경의를 표한다.
“위대한 분의 도움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조가 큰 죄를 지었음에도 트로이아를 도우시니, 당신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
[나는 지금 트로이아를 도우러 온 것은 아니다.]나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헤라클레스는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근처의 기병대원들과 네샤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일 뿐.
[나는, 너를 만나러 온 것이다.]“···예?”
[안탄드로스의 파리스 알렉산드로스.]그가 나의 이름을 부른다.
가장 위대한 영웅, 결국에는 신이 된 필멸자.
나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강대한 헤라클레스시여, 어찌 저를···”
갑자기 흘러나온 문장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업적이지요.”
[나는 그 위업의 대가로 신이 되었다. 위대한 청춘의 여신 헤베와 결혼하여 자식들을 낳았고, 불사의 영혼을 손에 넣었다.]거기까지 말한 다음, 헤라클레스는 나를 보고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너 역시 올림포스를 지켰다.]“···예?”
[너는 수천의 필멸자들을 무장시키고 거대한 요새를 지어 적들을 죽였다.]그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지난 전장을 본다. 불타는 안탄드로스를.
[하늘이 불살라지고 땅이 갈라지는 전장에서 네가 수만의 적들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다시 대왕과의 결투가 그의 눈동자를 통해 비쳐보였다. 신들의 분노 속에서 우리는 싸웠다.
그리고 대왕을 죽였다.
헤라클레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랬듯이.]“···.”
나는 거기까지 듣고서 입을 다물었다.
설마.
“아닙니다. 혈혈단신으로 기간토마키아를 승리로 이끄신 헤라클레스 님의 행적에 대보자면 하찮은 발자욱에 불과합니다. 저 말고도 수많은 영웅들이 함께하였습니다. 어찌 당신에 비하겠···”
[아버지께서는 그리 생각하신다.나도 그와 같이 생각하니.]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몸을 바들바들 떤다. 어떻게··· 어떻게 답해야···.
그 모습을 본 헤라클레스는 피식 웃었다.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걱정을 버려라. 당장 너를 네 반려에게서 떼어낼 생각 따위 올림포스의 그 누구도 하지 않으니.허나, 언젠가는 네게 마땅한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위대한 분이시여.”
[너는, 언젠가 올림포스에 발을 디디게 될지도 모른다. 저 하늘의 별들 사이를 날아다니게 될지도 모르고. 지금도 수많은 필멸자들을 흠숭하는데, 앞으로 세월이 지나면 어떻겠느냐.]헤라클레스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그러자 나는 저 하늘의 천구(天球)에서 수많은 괴물과 영웅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을 만나보고자 왔다. 전해줄 이야기도 있고 말이다.]“···.”
[언젠가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될 왕자가 어떤 인간인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웅은 얼마나 고결하고 현명한가. 그것을 보러왔는데···]“제가··· 영웅이라니 과찬이십니다.”
내 말에 헤라클레스는 표정을 굳히고 눈을 빛낸다.
[내가 영웅(ἥρως)들의 신이거늘.]영웅 중의 영웅이 나를 부른다. 나는 그 사실에 압도된 채 고개를 숙였다.
“···전할 이야기라 하심은.”
[앞으로 신들은 휴식기에 들어갈 것이다. 모두가 지치고 상처 입었다. 심지어 나조차도.]나는 그 말에 불안을 느꼈다.
설마, 헤시오도스가 말한 바와 같이 되는 건가.
인간들의 악덕에 지친 신들이 인간들을 버리는 것인가.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그 이후로 이어지는 비참한 철의 시대.
내 표정을 본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젓는다.
[또 다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신들은 필멸자들을 버리지 아니한다.잠시, 몇 차례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휴식을 취할 뿐이다. 제물을 바치면 받아들 것이고, 델포이는 여전히 신탁을 내릴 것이며 가끔씩 필멸자들 앞에 모습도 비추겠지.]
나는 그제야 헤라클레스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을 본다.
[다만··· 기적으로써 너희를 돕는 일이 자주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도 잠시뿐이겠지만. 아니, 애당초 근래에 들어 유독 신들의 역사(役事)가 잦았지.]그의 몸이 점차 희미해진다. 나는 그가 이곳을 떠나려 한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다시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다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또 다시 올림포스를 숭배하는 백성들이 위기에 처한다면···]
헤라클레스의 몸 사이사이에서 빛이 일어난다.
별빛이다.
[···아마 네가 그들을 이끄는 목자가 되리니.]다시 눈을 깜빡이니,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헤라클레스 자리.
그는 히드라를 물리치던 그 영광의 순간을 재현하며 지상의 인간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이.
도시의 왕
“안드로마케.”
헥토르는 조용히, 자신의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작은 생명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스가 아이를 만질 때는 꼭 손과 얼굴을 씻으라기에 그리하느라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 말하면서, 헥토르는 미소지었다.
작다. 보드랍다. 그리고 연약하다.
지나가는 바람에도 뼈가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벌레가 물어 얼굴이 퉁퉁 부어버리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아주 작은 생명체, 하지만 아주 뜨겁고 활기차게 꿈틀거리는 아이.
그의 아들이다.
하얗고 진주 같이 빛나는 이마에 헥토르는 자신의 이마를 맞댄다. 환한 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고가 많았습니다, 안드로마케.”
“당신도 수고가 많았어요, 헥토르.”
헥토르가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안드로마케가 보였다. 두 사람은 마주 웃었다.
파리스는 케브렌의 딸 오이노네와 함께 쌍둥이를 가졌다. 코리토스와 멍멍이, 신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는 그 전설적인 이야기는 두 사람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전에 데이포보스와 이피게네이아는 자식을 얻었다. 레오디나스.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더 전에 혼약을 맺은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
누군가는 안드로마케가 불임이 아니냐며 수근거렸고, 누군가는 트로이아 왕가가 헤라 여신의 저주라도 받은 게 아니냐는 소문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양팔에는 지금 아이가 안겨 있다. 아직 이름은 없는, 하지만 건강한 아이가.
헥토르는 안드로마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닥거리며 웃다가, 멀리 앉아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아이를 넘긴다.
프리아모스와 헤카베, 그리고 그들 곁에 앉아 있던 헤시오네 역시 아이의 뺨과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미소짓는다.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다.
아카이아와의, 그리고 하투샤와의 오랜 전쟁이 끝났다. 집을 버리고 떠난 수만의 시민들이 다시 제 보금자리를 되찾았고, 트로이아는 이전보다 훨씬 크고 위대하게 재건되고 있다.
그 순간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이렇게 트로이아의 왕손이 태어났으니.
이 아이는 모두의 축복이다.
전쟁의 끝과 평화의 시작을 상징했고, 오랫동안 후사가 생기지 않아 조금씩 굳어가던 왕실의 불안감을 몰아냈다. 모두가 이 아이가 훗날 트로이아의 위대한 지배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많은 정치적인 기대감에 대해, 프리아모스는 잠시 잊어버렸다.
그리고 이 아이의 탄생으로 얻어질 여러 이득들··· 왕실의 안정, 헥토르의 입지 구축, 트로이아로 다시 쏠릴 시선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헤카베는 모두 신경을 껐다.
두 사람은 주름진 손가락으로 아이의 코와 귀를 쓰다듬었다. 작고 보드랍고 분홍빛으로 빛나는 입술을 만져보았다.
그러다, 아이가 운다.
우렁차게.
“이런, 부모를 보고 싶어하는 모양이구나.”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안드로마케가 힘들어 보이니.”
헥토르는 그리 말하며 아이를 들어올렸다. 헤시오네가 흐뭇한 미소와 기대감 어린 눈빛을 띄우며 입을 연다.
“이름은?”
“곧 정할 생각입니다.”
“왜 미리 정해두지 않느냐? 아이는 건강해 보이는데.”
“제가 지을 생각이 아니라서요, 고모님.”
헥토르가 그렇게 대꾸하는 사이에 다른 손님들도 머잖아 들이닥친다. 트로이아 왕실의 기쁜 소식을 듣고 달려올 이들이 많았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오디세우스, 아직 몸이 성하지 않은지 헛기침을 하는 텔레포스, 임시로 만든 의족 위에서 절뚝이는 헬레노스.
모두들 전쟁의 상흔을 아직 안고 있었지만,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트로이아 전체가 축제 같은 분위기로 들떠 있으니까.
아직까지도 폐허에 가까웠던 트로이아의 분위기가 살아난다. 만나는 시민들마다 ‘새로 나신 왕자님 얘기 들었어요?’라는 말을 인삿말처럼 건네온다.
그들은 각자 작은 활을, 목마를, 이런저런 장난감을 선물처럼 건네온다. 헥토르는 웃으며 그들의 선물을 받아들고는 근처의 작은 함에 집어넣는다.
“오라버니?”
“형님!”
그렇게 기다리자 또 다른 손님들이 온다.
“카산드라! 데이포보스!”
헥토르는 아이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난다. 하지만 아이는 헥토르의 품 안이 편안한지, 아니면 헥토르가 능숙하게 몸을 움직여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는지 가만히 종알거릴 뿐이다.
카산드라와 의수를 단 코로이보스.
한쪽 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데이포보스와 이피게네이아.
나의 형제자매들, 헥토르가 활짝 웃자 그 옆에서 어색하게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가 다가온다.
헥토르는 그들을 살며시 둘러보다가, 아킬레우스와 눈을 마주한다.
그가 만나본 중에서 가장 강대한 전사.
“프티아의 왕자여.”
“···아, 헥토르 님?”
“자네에게 혹시 딸이라도 있는가?”
그 말에 아킬레우스는 괜히 옆을 바라보며 우물쭈물한다. 파트로클로스가 심상찮은 눈초리로 그를 지켜보는 가운데 아킬레우스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없···죠.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헥토르는 웃으며 눈앞의 소년에게 다가간다.
“언젠가 생긴다면 데려오게. 딸이라면 혼약을 맺을 수도 있을 거고, 아들이라면 우리 아이가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을···”
“크흠. 흠.”
“음··· 카산드라?”
“아녜요. 오라버니의 생각이 좋은 것 같아서요.”
카산드라는 어쩐지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반응이 어떻든 헥토르의 말에 프리아모스도, 헤카베도 기뻐한다.
“그래. 프티아의 훌륭한 왕손과 우리 아들이 좋은 벗이 되어준다면야.”
“헥토르, 너와 프티아의 왕자만 한 영웅을 내가 본 적이 없으니. 그 아들들도 그러하겠지.”
모두가 웃으며 떠든다. 오디세우스 역시 자기 아들 텔레마코스와 나머지 두 아이들이 벗으로서 어울릴 수 있을 거라며 끼어드니.
카산드라만이 그들의 대화에서 뭐라 할 수 없이 기묘한 기분을 느끼며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헥토르 형님의 자식과 아킬레우스의 자식이 말이오?”
다행히.
“왜 그러시오, 파리스?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소?”
“···걸리는 것 따위 있을 리가 없지.”
카산드라의 곁으로, 파리스가 다가왔다.
“어, 그냥, 크흠, 코리토스랑 멍멍이도 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쟤네는 쪼끄맣잖아요!”
“곧 코리토스랑 너랑 같이 놀 수 있을 만큼 커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트로이아의 왕손, 안탄드로스의 왕자와 왕녀, 프티아의 후계자, 이타카의 왕자.
···그들을 함께 어울리게 하면서 양육한다?
그 고결한 신분만으로도 모두를 놀라게 할 조합이지만, 카산드라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놀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녀가 파리스와 눈을 마주치자 파리스 역시 겸연쩍은 듯 입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런 파리스를 보며 헥토르가 손짓한다.
“파리스, 잠시 이리 와주겠어?”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파리스가 그쪽으로 걸어가니 헥토르는 웃으며 동생에게 자신의 아이를 넘긴다. 파리스는 놀란 채 두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받아들며 그 눈을 내려다본다.
헥토르를 닮은 깊고 아름다운 눈에, 안드로마케를 닮은 콧대가 우아하게 뻗어 있다.
“···형수님을 더 많이 닮았군요. 하지만 헥토르 님만큼 용맹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덕담은 괜찮다. 다른 걸 부탁하고 싶어서 부른 거니까.”
헥토르는 파리스의 눈을 마주본다.
“이름을 정해줬으면 하는데.”
“···예?”
“네 덕에 태어난 아이니까.”
그 말에 파리스를 비롯한 모두의 말이 멎는다.
헥토르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네 덕에 전쟁을 이겼고··· 그 덕에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거니까. 네게 맡겨도 될까?”
파리스는 그 말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형님을 마주보더니,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은 것 치고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예전부터 생각해온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붙여도 되겠습니까?”
“그 이름이 뭔지 들어보고.”
‘그 이름’.
이 자리에서는 아마 누구도 파리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름에 대해 알지 못할 터였다.
그의 가장 친한 벗이라며 떠들고 다니는 오디세우스는 물론이고, 그의 가장 사랑하는 반려인 오이노네조차도.
그리고 왜 그가 갓 태어난 조카의 이름을 ‘예전부터 생각해’ 왔는지도 아마 알 수 없으리라.
카산드라를 빼고는.
카산드라는 파리스의 입에서 나올 이름이 무엇인지 알았다. 파리스는 아이의 귓볼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며 아이가 웃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뗐다.
“아스티아낙스(Ἀστυάναξ).”
“‘도시의 왕’이라니, 조금 과한데.”
“아니요. 조금도 과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 어렵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