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wordsmanship instructor at the Fantasy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8
아카데미의 검술 강사가 되었다 (248)
인사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교육생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빠르게 교장실로 돌아왔다.
이제 곧 퇴근이라 평소에는 하루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지만 오늘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
즐겁기는커녕 두렵다.
퇴근하고 은서의 집에 가야 하니까.
아침에 거절을 했어야 했나?
하지만 이미 시간 괜찮다고 해 놓고 갑자기 안 된다고 할 순 없었다.
사실 은서의 집에 가는 게 처음은 아니다.
은서가 1학년이었을 때 여름방학이었나?
한창 루머 기사로 연인이라고 몰렸을 때 그 일을 해결하고 초대를 받아서 갔었다.
그때 가족들도 다 뵀었고 특히 어머님은 같이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가는 등 자주 뵀다.
하지만 오늘 방문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지.
그때는 교사로서 방문이었다면 오늘은 은서와 교제하는 입장으로 가는 거니까.
평범하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거였다면 긴장은 했겠지만 이렇게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었을 거다.
은서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가족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벌써부터 경멸의 시선이 눈앞에 아른거려 아찔하다.
그래도 도망치거나 피할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다.
셋 중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전부 가지기로 결정한 내 욕심의 대가니까.
결국 언제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평소라면 서류를 좀 처리했겠지만 오늘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차피 점심때 은서가 도와줘서 당장 급한 것도 없고.
은서에게 연락을 해 보려 했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니나 다를까 은서다.
“오빠, 아직 일 많이 남으셨어요?”
“아니. 안 그래도 막 전화하려던 참이었어.”
“전화요?”
“아버님 어머님 뭐 좋아하셔?”
“어? 딱히 그런 거 준비 안 하셔도 되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인사드리러 가는 자린데 빈손으로 갈 순 없지.”
“으음, 예전에 사 오셨던 케이크 좋았는데.”
“케이크는 은서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야?”
“히히, 들켰당. 전화해서 물어볼까요?”
“부모님이 뭐 좋아하는지도 몰라? 이제 보니 우리 은서 불 속성 효녀였네?”
“불 속성 효녀요? 잠깐, 불효녀? 그렇지 않거든요! 두 분 다 음식도 가리는 거 없고 다 좋아하신단 말이에요.”
“그래도 좋아하시는 건 있을 거 아니야? 자식이 그런 것도 모르면 좀 그렇지.”
“그…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알거든요. 엄마는 아빠를, 아빠는 엄마를 가장 좋아하세요.”
…저번에 방문했을 때 확실히 화목한 가정으로 보였지.
뭐, 당장 은서만 봐도 엄청 사랑받고 자랐단 게 느껴질 정도니까.
“너희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는데 선물로 부모님을 사 갈 순 없잖아. 일단 납치했다가 구해 드리기라도 할까?”
“음… 그냥 정말 가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홍삼은 어때?”
“아빠는 잘 드시니까 괜찮은데 엄마는 홍삼 안 드세요.”
“아… 그럼 일단 백화점 가서 고를까?”
이대로는 결론이 안 날 것 같아 일단 이동하기로 했다.
정 못 고르겠으면 저번에 샀던 케이크라도 다시 사든가 해야겠다.
은서의 손을 잡고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강남의 오피스텔에 주차해 둔 차에 왔다.
“언제 봐도 순간이동은 신기하네요.”
“이번 기수 수료하면 가르쳐줄까? 그 전에 루시엘의 세계에 가서 배워도 되는데.”
“저번에 이야기했던 데 말이죠? 거기도 참 신기했는데 시간이 천천히 가는 공간이라니 꼭 만화에 나오는 곳 같아요. 나무랑 풀들도 엄청 예쁘고.”
나는 자주 가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는데 은서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출발할 테니까 잠시만.”
은서의 벨트를 매 주고 시동을 걸었다.
이제 곧 봄이지만 아직 쌀쌀해서 혹시 방전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시동이 잘 걸렸다.
기름도 충분해서 바로 백화점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주차하고 내리려는데 은서가 내 팔을 잡는다.
“왜?”
“모습 안 바꾸시려고요?”
“굳이? 아! 이대로 나가면 조금 번잡해지려나? 백화점이라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아니, 그냥 저랑 단둘이 다니는 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젠 상관없잖아? 여자친구인데.”
당장 공개할 건 아니지만 어차피 알려질 텐데 굳이 지금부터 죄지은 것처럼 숨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원래 헤이터들은 움츠리고 수그리면 더욱 날뛰는 법이니까.
뻔뻔하고 당당하게 나가야 욕도 덜 먹을 테고.
“진짜 선생… 아니, 오빠는 거침이 없네요.”
이제 보니 은서의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부담스러우면 거기 앞에 마스크랑 모자 있을 건데.”
“아니에요. 저도 그냥 갈래요.”
“그래. 우리 죄지은 거 아니잖아?”
애초에 오늘 인사 가는 건 세진이에게도 루시엘에게도 전부 이야기했다.
세진이는 벌써 이야기하냐며 은서가 대단하다는 반응이었고 루시엘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럼 갈까?”
“네.”
백화점에 들어가 건강 보조 식품 코너로 갔다.
“홍삼도 종류가 많네.”
브랜드도 다양하고 종류도 다양해서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제일 비싼 거로 달라고 하면 되려나?
“여기서 제일 비싼….”
“오빠, 이거 같은데요?”
세진이가 들고 온 홍삼은 짜서 먹는 타입으로 콜라보를 한 제품인지 포장지에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어머, 그거 애들이 잘 먹어서 요즘 한창 잘나가는 제품이에요.”
“그… 그래요? 저희 집에선 아버지가 드시는 건데.”
“아… 아버님들도 많이 드시죠.”
직원도 약간 당황한 것 같은데… 뭐, 기왕 선물하는 건데 평소 드시는 거로 하는 게 좋겠지.
“이거 500포짜리가 제일 큰 사이즈인가요?”
“그렇습니다. 고객님.”
“이거 한 세트 포장해 주세요.”
하나 사고 매장을 나와서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6시 반이다.
약속 시간은 7시, 은서 집이 백화점에서 10분 정도밖에 안 걸리긴 하지만 차가 막힐 시간이니 갈 때는 순간이동 마법으로 가야겠다.
“어머님 건 뭘 사지?”
“저거 어때요? 얼마 전에 잡지에서 봤는데 여기도 있었네요.”
은서가 가리킨 건 디저트 가게다.
“네가 먹고 싶은 거 아니야?”
“제가 엄마 닮았으니까 엄마도 디저트 좋아하실걸요? 애초에 디저트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논리가 조금 이상하지만 시간도 얼마 없고 정 못 고르면 케이크나 사 갈까 생각도 했으니 디저트 가게에 들어갔다.
“뭘 고르지? 우리 엄마 딸기 좋아하는데. 청포도도 맛있어 보이고.”
들어와 보니 규모가 꽤 넓은데 그만큼 제품도 다양하다.
당장 딸기가 들어간 것만 10개는 넘어 보인다.
“선… 오빠는 뭐가 제일 맛있어 보여요?”
“고민할 거 있어? 저기요.”
“네. 혹시 강신혁 헌터님?”
“네. 맞습니다. 주문할게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하나씩 포장해 주시겠어요?”
“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하나씩 다 포장해 주시라고요. 아! 딸기 들어간 건 2개씩 해 주세요.”
어머님이 딸기 좋아하신다고 했으니 많이 사야지.
“오… 선생님? 아니, 그렇게 많이 사시면 다 못 먹을 텐데.”
호칭이 선생님이라고 바뀐 걸 보니 많이 놀란 것 같다.
“부족한 것보단 낫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들고 가려고요?”
“다 방법이 있지.”
사부는 단 건 별로 안 좋아하지만 나는 좋아하니까.
초콜릿이 들어간 건 루시엘도 좋아할 것 같고.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준 덕에 금방 포장된 디저트가 산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헌터님, 손이 부족하시면 저희 직원이 동행해서 차까지 옮겨 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말과 동시에 아공간 마법을 사용해 디저트를 집어넣었다.
직원이며 옆에 지켜보던 사람들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간단한 마법입니다.”
아공간은 없지만 기존에 공간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는 있으니까.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아, 넵. 여기 카드 돌려드리곘습니다.”
“영수증은 그냥 버리셔도 돼요. 그럼 이제 갈까?”
“네? 네.”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은서의 손을 잡고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오빠? 여기는 우리 아파트잖아요.”
“전에 온 적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
웃으며 대답했지만 이제 드디어 대면을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린다.
아까 백화점에서 청심환이라도 하나 사서 먹을 걸 그랬나?
“되게 편리하네요. 저도 빨리 배우고 싶어요.”
“그럼 오늘 저녁부터 알려 줄게.”
그때도 내가 살아 있다면 말이지.
뒷말은 삼키고 은서와 함께 아파트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가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점점 더 울렁거림이 심해진다.
“오빠, 어디 안 좋아요?”
“안 좋긴.”
“아까 점심때 말했더니 엄마가 장 보러 간다고 했거든요. 가면 맛있는 거 많이 해 놨을 거예요.”
하하…. 무슨 맛인지 느끼지도 못할 것 같은데.
“긴장할 거 없어요. 오빠에게 뭐라고 하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니까.”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하는 은서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래. 은서까지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되지.
“난 괜찮아.”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은서가 앞서 내려서 도어락을 누른다.
띠리링―.
“은서 왔니?”
“선생님!”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나온 건 은서의 쌍둥이 동생 은수다.
집에 있는데도 상당히 꾸미고 화장도 풀 세팅인 걸 보니 나 온다고 준비하고 있던 모양이다.
“오랜만이네, 은수. 이거 아버님 드려. 아, 잠깐만.”
아공간 마법으로 아까 넣어 뒀던 디저트를 꺼내는데 다 꺼내기엔 장소가 조금 좁아서 딸기가 들어간 것들 포함해서 절반 정도만 꺼냈다.
마침 아버님과 어머님도 나오셨다.
“어서 오세요, 강 선생님. 어머, 이게 다 뭐예요?”
“빈손으로 오긴 뭐해서 오기 전에 백화점 들렀는데, 좀 많은가요?”
“이런 거 없이 편하게 오셔도 되는데.”
“맞아요. 선생님 그냥 우리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오시면 되는데.”
다행히 첫인상은 좋다.
함께 디저트를 챙겨 안으로 들어왔다.
2년 전에 왔던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따듯하고 밝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맛있는 냄새도 나고.
“얼른 손 씻고 앉으세요. 집사람이 선생님 오신다고 없는 솜씨 있는 솜씨 다 발휘해서 수라상을 차렸으니까.”
“당신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다행히 아직까진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손을 씻고 은서 옆에 앉았다.
“거기 좁을 텐데, 여기 앉으시지….”
“어휴, 아닙니다.”
아버님께서 상석을 양보하시는데 그건 도리가 아니지.
바로 식사가 시작됐다.
어머님은 차린 게 없다고 했지만 거짓말을 안 보태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커다란 식탁이 꽉 채워져 있다.
“차린 게 변변찮아서 조금 더 일찍 말해 주셨으면 더 준비를 했을 건데.”
소갈비찜, 장어구이, 잡채와 각종 전, 나물에 여러 싱싱해 보이는 회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물탕까지.
이게 변변찮은 거면 그동안 내가 먹은 밥은 밥도 아니겠네.
나도 요리를 좀 해서 아는데 이 정도면 점심 때부터 계속 준비하셨을 거다.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닙니다. 다 너무 맛있어 보이네요. 잘 먹겠습니다.”
이따 폭탄 선언을 해야 해서 긴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밥을 두 공기나 비울 정도로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회를 빼곤 전부 직접 했다고 하셔서 그런지 오랜만에 집밥 먹는 느낌이 들고 좋았다.
아버님이 좋은 술이 있다고 하시며 술을 권하셔서 반주도 조금 했다.
취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맨정신보단 나을 테니까.
식사 때는 은수나 은서 이야기 등 평범한 화제만 해서 무리 없이 밥을 먹었다.
“더 드시죠.”
“아니요. 이미 충분히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 엄마 지금 더 드시면 디저트 못 먹잖아.”
은수 녀석, 아까 내가 사 온 디저트 보고 아주 함박웃음을 짓더니 많이 기대하는 모양이다.
“밥 배랑 디저트 배는 따로라며.”
언제 봐도 참 사이가 좋아 보인다.
“정말 괜찮습니다. 더 먹으면 움직이기도 힘들 것 같아요….”
“그래. 괜찮으시다는데 너무 그러지 마.”
어머님과 은수, 은서는 먹은 자리를 치우고 나와 아버님은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은서는 학교에서 어떻습니까? 이제 막 학교 졸업했는데 선생이 돼서 교육생들이 잘 따를지 걱정되는데.”
생각해 보니 아버님 어머님 두 분도 헌터학교 교사를 하셨다고 하셨지.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은서가 나이는 어려도 실력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아,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나이도 한참 어린데.”
“아닙니다. 은서 선생님이신데 제가 어떻게….”
“정말 괜찮으니 편하게 해 주세요. 제가 더 불편해서.”
“어휴, 아닙니다.”
아버님도 너무 좋으신데 그래서 더 두렵다.
지금 이 좋은 분위기는 곧 박살 날 테니까.
하지만 이젠 슬슬 이야기를 해야 한다.
두렵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으니까.
마침 은서와 은수 어머님까지 다들 디저트와 차를 가지고 오셨다.
“준비하면서 조금 맛을 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감사해요. 은서 말로는 엄청 유명한 곳이라던데.”
“응. 잡지에도 나왔어.”
“제가 딸기 좋아한다고 따로 먹으라고 딸기는 2개씩 사셨다고 하셔서 정말 감동했다니까요. 강 선생님 덕분에 제가 호강하네요.”
“하하.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저기… 그보다 오늘 이렇게 찾아뵌 건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드릴 말씀이요?”
“어떤….”
모두의 시선을 느끼며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강 선생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사실 저 은서와 정식으로 교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