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157)
-지금 나한테 뭐, 아이템 맡겨 놨어?
간신히 솜 뭉탱이와의 연락에 성공한 나는.
“나만 좋자고 부탁하는 게 아냐. 너도 내가 신인상 타길 원하는 거 아니었어? 보라가 다치면 다 헛수고라니까.”
류보라를 지킬 수 있는 아이템 문제를 두고 투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솜 뭉탱이에게 포인트가 비싸도 좋으니, 류보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니면 그 범인을 찾을 방법이라도.
그러나 솜 뭉탱이는 단박에 거절해 버렸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일이 아니면 힘들다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아이템을 주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냐.
솜 뭉탱이는 커다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많이 컸군, 백녹하. 나와 거래까지 하려 하고.
“난 원래 이랬어.”
-글쎄. 그건 네 생각이고.
솜 뭉탱이는 내 주변을 한 바퀴 휙 돌았다.
-내가 계약한 사람은 너야. 그 말은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는 뜻이고. 네 멤버들은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데뷔한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 공동체로 엮인 거야. 한배를 탄 사이나 다름없다고.”
-그것도 너의 생각일 뿐이지. 이 세계는 너와 네 친구들을 각각의 영혼으로 보고 있어.
솜 뭉탱이는 천천히 내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당연한 걸 너에게 설명해 주고 앉아 있다니. 넌 내가 얼마나 바쁜 몸인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알고 있어. 나 말고 다흰과도 계약했던데.”
움찔.
처음으로 솜 뭉탱이가 흠칫하는 게 보였다.
-그래. 너 말고도 나는 계약한 인간들이 많다 이거야.
“또 있어?”
-있긴 하지.
“알려 주면 안 돼? 협력하고 싶은데. 서로 사정 아는 사이니까 협력도 쉬울 거 아니야.”
솜 뭉탱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털을 삐죽 세웠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백녹하. 내 계약자들은 조심스럽거든.
“…계약자‘들’? 한 명도 아닌가 보네.”
-난 인기가 많아.
그러니까 잘하라는 듯, 솜 뭉탱이는 배를 쭉 내밀었다.
“뭐, 아무튼. 정말 방법이 없어?”
-내가 물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범위는 너까지야. 미안하지만 네 짝꿍들은 내 알 바 아니라고.
솜 뭉탱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 위에 앉았다.
-내 도움이 정 필요하다면, 그 류보라라는 애에게 계약을 권해 보든가.
“그건 안 돼.”
-왜?
“너 혹시 무슨 영혼 같은 거 달라고 할 거 아니야? 보라한텐 뭘 요구할 건데?”
-….
내 말에 화가 나기라도 한 건지, 솜 뭉탱이는 내 머리를 엄청나게 두들겨 댔다.
그래 봤자 솜이 때리는 느낌이라 딱히 아프진 않았지만.
-내가 무슨 인간들 영혼에 미친놈으로 보이나 본데…. 그건 네 착각이야. 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내가 너한테 영혼 같은 거 요구한 적 있어?!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우뚝.
내 질문에 솜 뭉탱이의 움직임이 멈췄다.
-너는 유도 신문을 너무 잘해, 백녹하.
솜 뭉탱이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며 다시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내가 네게 관대하게 굴어 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
“…뭐. 다흰이한테 하는 거 보니까 그런 것 같긴 하더라. 걔한텐 왜 그렇게 각박하게 굴어?”
-걘 너무 무능력해.
무능력한 게 아니라 걔가 정상이야….
연예계 생활도 얼마 못 해 본 애가 뭘 그렇게 잘할 수 있겠냐.
-난 이제 가 볼 시간이야. 바쁘니까 이런 걸로 나 부르지 마.
솜 뭉탱이는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다시 또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망할 솜 뭉탱이.
곤란하다 싶으면 나 재우더라.
-그리고 백녹하. 너는 너 혼자 일을 다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 하지만, 네 생각보다 네 멤버들은 꽤 강하던데?
우리 멤버들?
당연히 강하지.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가끔은 네 멤버들을 믿고 쉬엄쉬엄 가 봐. 어쩌면 네 멤버들이… 너 대신에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르잖아?
***
오늘은 음악 방송 2주 차의 첫날.
우리는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1위 후보에 올랐지만 누구도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해서. 조심하라는 사장님의 전언이 있었어요.”
내 말에 멤버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사생팬, 뭐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보라 언니한테 미친 범죄자가 붙었다고요?!”
먼저 반응한 건 연주홍이었다.
“아직 범인의 정체는 몰라. 어떤 의도인지 확실한 것도 없고. 범인이 보낸 협박 편지가 있어도, 그걸 완전히 믿기는 어려워.”
“추적을 피하기 위해 위장을 한 걸 수도 있으니까.”
내 설명에, 매니저도 설명을 덧붙였다.
“아무튼 경찰들도, 그리고 회사에서도 범인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러니 다들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당분간은 조심해야 해.”
“절대 혼자 다니지 마세요.”
나는 심호흡을 했다.
“어딜 가든 항상 두세 명씩 붙어 다니고. 경호원분들이랑도 같이 움직여야 해요.”
“근데 앞으로 우리 개인 스케줄 엄청 많지 않아?”
서백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맞아요. 사실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이번 앨범 활동이 모두 끝나고 나면.
다음 앨범까지의 공백기를 채우기 위해 멤버들은 개인 활동을 조금씩 하기로 되어 있었다.
서백영은 아이돌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기로 했고.
김금은 엠텐에서 하는 걸그룹 래퍼 성장 예능을 찍는다.
연주홍은 현재 앰배서더를 맡고 있는 브랜드와 콜라보하는 스케줄이 늘었고.
문제의 류보라는….
“보라는… 정말로 연기 안 해도 되겠어? 만약 이 일이 마음에 걸려서 캐스팅을 거절한 거라면….”
드라마, 영화 섭외가 미친 듯이 쏟아졌지만 전부 거절한 상황이었다.
“아뇨. 전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한 거예요. 그딴 미친놈이 두려워서 거절한 게 아니라.”
류보라는 우리 다섯 중에서 가장 덤덤해 보였다.
협박을 받은 당사자인데 대체 왜 저렇게 침착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 만약 협박을 받은 게 나였다고 하면 류보라도 저렇게까지 침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본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그 사실에 더 화가 나는 거고.
“당분간은 단체 스케줄 외엔 숙소에 처박혀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류보라는 우리가 뭘 걱정하는지 안다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마주치면 머리를 깨 버리…”
“보라야…. 사회면은 안 돼….”
…혹시 그 미소가 그딴 놈 정돈 가소롭다는 미소는 아니지…?
“흐응. 정당방위도요?”
“너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이 또라이야. 제발 그냥 튀라니까.”
김금이 식겁한 얼굴로 류보라를 말렸다.
“너 같으면 그 자식 가만히 놔둘 수 있어? 지가 죄지어서 남 인생 조질 뻔하다가 망한 주제에 어디서 화풀이야.”
“…듣고 보니까 빡치긴 하… 안, 안 돼. 야. 다치는 건 안 된다고!”
류보라는 흥, 하고 코웃음 쳤다.
“다들 걱정 마요. 그 자식 어떤 놈인지 알 것 같으니까.”
“알 것 같다고?”
류보라는 누구보다 냉소적인 얼굴로 말했다.
“저 아역 시절부터 그런 협박 편지 꾸준히 보내던 사람 하나 있어요.”
“…!”
뭐라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병 도졌나 보네. 신경 쓰지 마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김금이 경악하며 류보라를 보았다.
그러나 류보라는 끝까지 덤덤했다.
“말해도,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나라고 아무것도 안 했던 건 아니에요. 경찰에 신고하고 다 해 봤어요. 하지만 실제로 범죄 저지른 게 없어서 처벌 못 한다는데 뭘 어째. 벌금형만 몇 번 때리고 끝났어요.”
그렇게 말하는 류보라의 눈은 정말로.
“처음에나 듣는 척하지. 나중 가니깐 연예인이라서 이런 거 맨날 겪지 않냐고. 예쁘니까 이런 놈들 붙는 거라고. 감수해야 한다고 그러던데.”
너무나도 차갑고 슬퍼 보였다.
“아마 사건 기록 같은 거 조회해 보면 나올 거에요, 그 사람 신상. 이걸로 신고당한 게 한두 번 아니거든요.”
“같은 사람이 아닐지도-”
“검은 편지지에 빨간 글씨, 맞죠? 저 때문에 밥줄 끊겼다 그러고?”
정확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류보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 쳤다.
“누군지 알아요. 그리고. 알아도 할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류보라의 말대로, 우리가 류보라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드블레스 측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이번 일로 원한을 품은 건 아닌 듯해 그쪽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나는 예상보다 더 최악인 상황에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잃었다.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오랜 악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본격적인 협박이, 처음이 아니라 쭉 있어 왔던 일이었다니.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류보라의 얼굴이 오히려 나를 더 참담하게 했다.
그동안 얼마나 시달려 왔을까 싶어서.
“그러니까 이런 일 말고. 우리 무대에나 집중해요. 오늘, 우리 1위 후보잖아요.”
“그래요. 다들 걱정하지 말고. 갑시다.”
나는 당혹스러움과 분노에 차 아무 말도 못 하는 멤버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런 감정에 오래 갇히게 해선 안 된다.
대충 사건의 내막을 알았으니까.
이제 내가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러면 돼.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 되뇌었다.
“다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류보라가 우릴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걱정될 거 알지만, 무대… 같이 잘했으면 좋겠어요. 나 때문에 무대가 우중충해지는 건 싫어요. 우린 프로잖아요.”
“…보라 말이 맞아.”
“언니이….”
“좋아. 까짓거 내가 그 자식 오면 같이 때려 줄게. 그럼 되는 거 아녀?”
“…그래. 그러면 돼. 난 그걸로 족하니까.”
우리는 애써 분위기를 띄우고.
“자, 그러면… 우리 구호 한번 외치자.”
“다들 머리 대요!”
“가자가자가자!”
“스블스블스블!”
우리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구호를 외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분노 속에 갇혀 있을 때가 아냐.
분노는 나중에.
앞선 문제부터 해결하자.
당장 눈앞에 있는 무대부터 잘하자.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을 실망시킬 순 없으니까.
***
“드디어 스블 차례다.”
“하, 우리 애들 벌써 레전드일 것 같아서 기뻐요.”
블덕, 프리즘 홈마는 한강에서 만났던 인연을 이어 함께 공방에 왔다.
그 옆에는 홍 덕후도, 김 대리도, 펖프도 있었다.
SNS에서 만나 친해진 이들은, 사이좋게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모두 스틸블루의 1위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헉…!”
드디에 무대 위로 멤버들이 올라오고.
어둠 속에서 멤버들은 안무 대형을 잡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노래가 시작하기 전, 멤버들은 팬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작게 흔들어 주었다.
“애들 오늘 1위 각이라 기분 좋은가…?”
“사녹 때도 기분 엄청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그것도 그건데… 뭔가 오늘…”
“약간 독기가 있는 느낌인데요?”
오히려 좋아.
덕후들은 안광을 내뿜는 멤버들을 보며 새삼 다시 설렜다.
그 순간.
전주가 시작되고.
네 손끝에 있을 때만
나는 살아 있어
네가 날 오리고 붙여 줄 때만
나는 여기 있어
연주홍의 도입부가 시작되었다.
평소보다도 훨씬 더 힘있는 라이브에, 덕후들은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우리 막내가…!
오늘은 널 위해
어떤 Doll이 될까
내게서 뭘 보고 싶어?
이어서 서백영까지도.
원래도 팬들 사이에서 서백영은 카리스마 있는 맏언니라 좋다는 말이 왕왕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알 수 없는 독기 어린 눈웃음이, 팬들의 심장까지 와닿고 있었다.
‘아니, 우리 애들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
뭔진 모르겠지만 무대 하나는 레전드…!
팬들의 입이 찢어지는 순간.
I can be any I-Dol
Maybe like a Paper Doll
류보라의 파트가 이어졌다.
언제나 그랬듯 빛나는 얼굴에 팬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 순간.
펖프는 혼자 생각했다.
이상하다.
오늘 보라는 그 어느 때보다 활짝 웃어 주고 있는데….
종이 속에 화면 너머에 있어도
너의 꿈을 이뤄 주고 싶어
너의 편이 되어 주고 싶어
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