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Leader of a Girl Group Destined To Fail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너… 지금 그게 같은 연습생에게 할 소리니? 그리고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너는 한낱 연습생이고, 나는 이 회사의 이사야.”
음.
꼰대가 말이 막혔을 때의 전형적인 답변이군.
“저 영상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으시면, 편집하시면 되는 일 아닌가요?”
“그건 안 되지, 윤청 연습생.”
그때, 오 PD가 나섰다.
“나는 아주 공평한 사람이거든.”
“….”
“이주선 연습생이 피해자인 장면도 나왔다면, 팀 A 연습생들이 피해자인 장면도 공평하게 나와야 하지 않겠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예상했던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공평은 개뿔이.
재미있는 소재를 놔주기 싫다는 거겠지.
“그러셨군요.”
애초에 이주선이 피해자라는 말에 동의할 순 없었지만, 나는 억지로 수긍한 척했다.
“그럼 저를 여기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한낱 연습생일 뿐인데요.”
김 이사는 이제 황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마 그렇겠지.
너네가 알던 윤청과, 지금의 윤청은 상당히 다를 테니까.
애초에 연습생들이 이렇게 이사에게 되바라지게 나가기도 쉽지 않고.
“아마 저를 부르신 이유는 그거겠죠.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지만 그것을 아시는지?
중소기업의 소녀 가장을 해 본 사람은, 눈에 뵈는 게 없답니다.
“뭐, 확인도 해 볼 겸 부른 건 맞지.”
오 PD가 슬쩍 운을 뗐다.
확인이라.
뻔하지.
“아, 제가 녹음이라도 했을까 봐요?”
“그거지.”
오 PD는 재밌다는 얼굴이었다.
강 작가는 김 이사와 오 PD 사이에서 조용히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당연히 했죠, 녹음.”
“!”
김 이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리고 녹음에는 주선이가 려유를 무서워하는 것도 다 담겼고요. 이걸 확인해 보고 싶으셨나요?”
“너, 진짜 웃기는 애구나.”
김 이사는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른들한테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 아냐, 너. 아직 데뷔도 못 한 게-”
“데뷔도 못 했으니까 딱히 무서운 게 없는 거죠. 막말로 제가 이 회사 나가서 수능 치고 이제라도 다른 길 걷겠다 하면, 소속사 하나 폭로하는 게 딱히 무서울 건 없으니까.”
윤청의 나이는 20살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길 찾아도 전혀 늦을 게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연예계에서 이것보다 막 나가는 놈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하지만 저도 동의해요.”
“!”
“모두 덮고 넘어가는 것, 매우 동의합니다.”
하지만 나도 굽히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 이상한 솜 뭉탱이와 한 약속이 있으니까.
“그러니, 아예 깔끔하게 덮으면 좋을 것 같긴 해요, 서로.”
***
양쪽 다 유쾌할 게 없는 합의가 끝났다.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선에서 편집이 싹 다 들어가는 것으로.
김 이사는 나를 보며 미친년, 이라고 몇 번 말하긴 했지만.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미친년 하지 뭐….
합의가 마무리되자마자 나는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장 내일부터 다시 연습에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낭비할 힘이 어디 있겠나.
“어이, 윤청 연습생.”
그런데 곱게 나가려는 나를 오 PD가 붙잡았다.
“너 다시 봤다, 엉?”
으.
“요즘 어린 것들 아주 무서워서 살겠어?”
“아, 네.”
잘만 살면서 무슨.
오 PD는 손가락으로 나한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오, 진짜 혐오인데.
“이번에 내가 너, 어? 커버 쳐 준 거 알고 있지?”
“아, 네.”
영혼 없는 대답만 나왔다.
어쨌든 오 PD가 나를 도와준 셈이 된 건 맞으니까.
물론… 자기 이익 때문이긴 했지만.
오 PD는 사사건건 부딪치는 김 이사를 한번 눌러 주고 싶었고, 마침 그 수단이 내가 된 것뿐이다.
“아니, 그 연습실에도 카메라 설치해 달라고 했을 땐 얘가 그냥 방송 욕심이 많나 보다 했는데. 이런 꿍꿍이가 다 있었네?”
“딱히 노리고 한 건 아니었어요.”
“퍽이나.”
진짠데.
나도 걔가 그렇게 술술 말할 줄은 몰랐다고.
“아무튼, 감사합니다.”
“아냐, 아냐. 어? 너 앞으로 내가 잘 볼 거니까. 한번 해 봐봐.”
오 PD는 이미 내가 자기편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전혀 아닌데.
이번에는 필요에 의해서 서로를 이용한 것뿐이지.
나는 한숨을 쉬고, 오 PD에게 인사했다.
“안녕히 가세요, PD님.”
너는 모를 거다.
네가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는 걸.
“어어, 잘 가라잉?”
사실 그냥 네 약점 가지고 협박하려다가 안 한 거니까.
***
“….”
덜덜덜.
다리가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의 다리냐고?
당연히 내 다리는 아니다.
이주선의 다리였다.
“다 봤니?”
“어… 어떻게….”
“오 PD님이 주시더라.”
나는 내가 오 PD에게 부탁했다는 말은 조용히 삼켰다.
이 모든 건 오 PD가 배후가 되어야지, 내가 배후가 되어선 안 된다.
“이거, 방송에 내보낼 거라고 하시던데.”
“설마 그 연습실에 언니가 카메라를 설치…!”
“주선아.”
나는 벌벌 떠는 이주선을 똑바로 응시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
이주선의 눈이 그제야 두려움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슬슬 뭔가 와닿나 보네.
“나, 그냥 방송에 내보내 달라고 할 수도 있었어.”
“….”
“그런데 덮어 달라고 말씀드렸어.”
“!”
이제는 그 눈이 놀라움으로 서서히 가득 찼다.
“왜… 왜요?”
“너도 우리 팀원이니까. 같은 팀원끼리는 허물도 덮어 줘야 하잖아.”
팀원이라는 말에 이주선의 얼굴이 싸하게 굳었다.
그래, 이게 더 소름 끼치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주선아?”
“…네.”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서로 ‘약간의’ 허물 정도는 덮어 줘야지.
‘약간의’ 협조는 덤이고.
“혹시, 아직도 컨셉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다행이다. 안무 짜는 거는 할 수 있겠어? 하루하고도 반나절 날렸는데. 혹시 아직도 좀 벅찬가?”
“할 수… 있어요.”
“우리도 도와줄 거야. 모든 걸 다 같이하자. 우리는 팀원이잖아.”
“네….”
드디어 마음에 드는 반응이 나오네.
“고마워, 주선아. 그럼 난 우리 팀원들 불러올게. 다른 팀들 따라가려면 시간 좀 걸릴 테니까. 얼른 해야지.”
“…네.”
이주선은 홀린 사람처럼 네, 네 하는 대답 외엔 아무것도 말하지 못했다.
“아 참, 려유한테는 네가 잘 말해.”
“제, 제가요?”
오, 여기서 더 굳을 수도 있다니.
어지간히도 김려유가 무섭긴 한가 보다.
“그럼 누가 해, 주선아? 내가 해?”
“아뇨….”
“응. 우리 협조하기로 했잖아. 아까 연습실에서 보니까 너 말 참 잘하던데. 려유한테도 그 말빨 좀 쓰면 다 해결되지 않겠어?”
“….”
음.
이제야 속이 좀 시원하네.
실은 알고 있다.
이미 김려유는 모든 것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 이사로부터.
그 양반 성깔머리 생각해 보면 뻔하지.
하지만 나는 이주선이 본인의 입으로 직접 김려유에게 말하길 원했다.
그래야 본인도 느끼는 게 있을 테니까.
“아 참, 주선아.”
“네?”
“오 PD님이 영상 있는 거 절대 말하지 말래.”
“네…?”
“그니까 영상 있는 건 말하지 말고, 그냥 네가 마음 바뀌었다고만 해.”
“하, 하지만 그러면 려유 언니가 절대 들을 리 없어요.”
“아, 그래? 진짜 힘들겠다.”
나는 최대한 이주선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다.
그렇게 원하는 공감, 이렇게라도 해 줘야지.
“근데 어떻게 해. 오 PD님이 말하지 말라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어.”
“언니…!”
“만약 오 PD님이 네가 영상의 존재를 말하면, 소외감 느끼실 것 같대. 너랑 려유만 친하면 좀 그렇잖아?”
“…!”
“그니까 우리 서로 조심 좀 하자.”
나는 이주선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파이팅 해라.
***
“주선 언니가… 돌아왔다고요?!”
연주홍이 안 그래도 크고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너 왜 눈을 그렇게 동그랗게 떠.
“응.”
“심지어… 여태까지 일을 다 없던 걸로 하겠다고 했고요?!”
“아니. 주선이가 의류 시장에서 주홍이 너한테 심하게 굴었던 건 방송에 나갈 거야.”
덮을 건 덮더라도, 깔 건 까고 가야지.
이주선이 나한테 한 말은 내 재량으로 덮어도 되겠지만, 연주홍한테 한 짓까지 덮을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 행동은 책임질 나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저희한테 사과도 한다고요?!”
“그래. 그것도 방송에 나갈 거야.”
연주홍은 신나서 방방 날뛰었다.
김금은 아직도 얼떨떨한 눈치였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기뻐 보였다.
“아니, 언니. 마술사인지?”
“아니면 혹시 유치원 선생님?”
“…?”
“주선이를 어떻게 교육시키신…! 읍읍…!”
그래. 나도 애 예절 교육시키느라 힘들었다.
“아무튼, 주선이는 한 번도 우리 팀 밖으로 나간 적 없는 거야. 알았지?”
“네!”
“그러니까 우리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합 잘 맞추자.”
“네에!”
짹짹거리는 새들 같군.
어째 아기 새들 키우는 어미 새가 된 기분인데.
“근데… 주선 언니가 잘 협조해 줄까요?”
“아주 잘 협조해 줄 거야. 그건 날 믿어.”
협조 안 하면 아주 그냥 다음 기회는 없다고 말해 줘야지.
“…아니, 진짜로 비결이 뭐예요? 이주선 걔 고집 장난 아닌데 그걸 어떻게 꺾었어요?”
김금은 이제 거의 의심하는 경지까지 다다랐다.
“너무 많은 걸 알면… 신비주의가 깨지니까.”
“아니! 뭐, 벌써 데뷔했어요?”
으응.
한 번 하긴 했지.
아무튼 나는 방법을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뭔가 말하는 순간부터… 얘네가 나를 무서워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한솥밥 먹고 살 수도 있는데, 공포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잖아.
“아무튼, 우리가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날리긴 했잖아. 일단 진도부터 빨리 나가자.”
나는 김금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김금은 노트북을 꺼냈다.
거의 황금알을 낳는 노트북이군.
“금아, 작곡 어디까지 나갔어?”
“거의 다 했어요.”
“진짜?”
그 멘탈 나가는 와중에도 작업은 다 했다니.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한번 들려 드릴게요. 두 분 다 의견 말씀해 주세요.”
“넵.”
“응.”
연주홍과 나는 김금이 들려주는 멜로디에 집중했다.
아직 가사도 완성되지 않아서, 김금이 대충 허밍으로 부른 멜로디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박.”
“…굉장한데?”
노래는 매우 좋았다.
내가 작곡한 그 노래보다 훨씬 더.
“조금 손만 보면 돼요. 그나저나 가사를 이제 슬슬 붙여야 하는데….”
김금은 내 눈치를 보았다.
“언니, 가사는….”
“이미 생각해 둔 거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
김금은 이제 거의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아니,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전생에서 썼던 그 가사를 조금만 손보면 되니까.
작곡하느라 정신없었던 김금의 옆에서 이미 어느 정도 써 두기도 했고.
“언니, 일 해결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가사까지 구상해 두신 거예요? 혹시 무슨 혼자 하루가 48시간이고 그래요?”
연주홍도 혀를 내둘렀다.
음, 그 정도까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응?”
“무조건 같이 데뷔해야겠습니다.”
“아니, 저는요? 김금 씨. 저는요?”
“넌 일단 좀만 더 열심히 해 보든가. 끼워 줄 수도 있지.”
“아니…! 아니…!”
“넌 80점 정도. 발전해라.”
“아니!”
“이 교관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역시 아기 새들 맞는 것 같은데.
나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다 대충 도망쳤다.
가사나 고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