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doctor since age 1 RAW - chapter (106)
106화 제2장 해결사(1)
“소아 흉부외과에서 왔습니다.”
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는 침상으로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초등학교 6학년생 장태풍은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마에 생긴 주름과 좁아진 미간.
굳게 닫힌 입술 등등.
장태풍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징조가 얼굴 곳곳에서 보였다.
엄밀히 분석하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에 80퍼센트는 실제로 응급환자가 아니었다.
몸이 조금이라도 덜 아팠으면 해서.
몸이 아픈 이유를 알고 싶어서.
혹시라도 응급한 상황이 닥칠지도 모르니까 응급실을 찾는다.
그런데 장태풍은 그런 종류의 환자가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증상은 심각해 보이지 않은데 실제 병세는 심각한 부류의 환자 같았다.
의사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부류 말이다.
나는 바짝 긴장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선생님이… 의외로 젊으시네요?”
보호자의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젊으면 경력이 짧다, 경력이 짧으면 실력이 없다는 논리가 말속에 은은하게 묻어나는 듯했다.
환자도 말썽, 보호자도 말썽이라니…….
진찰이 만만치 않을 듯했다.
“아, 네. 태풍아 지금은 어디가 제일 불편하니?”
“여기요, 여기가 찌릿찌릿해요. 달리기를 한 것도 아닌데 계속 숨이 차고요.”
태풍이가 괴로워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장소는 명치 근처였다.
나는 명치 근처에서 발생하는 흉통과 관련된 심장 및 폐 질환들을 머릿속으로 검색해 보았다.
10가지가 단번에 떠올랐으나 8가지가 단번에 삭제되었다.
태풍이가 소아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다.
현재로서 가장 의심되는 것은 기흉 정도일까.
“어머님, 혹시 태풍이가 과거에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이 있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있나요?”
“없어요. 우리 태풍이가 얼마나 건강한데요. 다섯 살 때부터 보약을 지어 먹였다고요.”
보호자가 태풍이의 건강을 과시했다.
그러고 보니 금목걸이에 금팔찌를 차고 화려한 옷을 걸친 보호자는 부유해 보였다.
돈 많고 자식 일에 항상 극성인 타입처럼 보였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
태풍이에게 선천성 질환이나 큰 과거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숙련된 흉부외과인 나조차 진단하기 곤란한, 태풍이가 앓고 있는 질환은 과연 무엇일까.
“태풍아, 혹시 어제나 오늘 중에 놀다가 가슴을 부딪친 적 있니?”
“아니요, 없어요.”
태풍이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후로도 서너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영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단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외상성 기흉마저 배제되어 버리고 말았다.
본인이 가슴 쪽을 다친 적이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첫 진료가 난항에 빠지자 나도 답답해졌다.
내가 나서도 진단명을 확정하지 못할 정도 정도면 누가 와도 진단을 못할 텐데…….
“선생님, 저희 태풍이가 대체 어디가 왜 아픈 거죠? 이쯤 되면 뭐라도 말씀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가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보호자가 한마디 쏘아붙였다.
자식이 아픈 부모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상대해 온 수많은 진상의 폭언과 욕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칭찬이나 다름없었다.
“몇 가지만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태풍아, 잠깐 상의 좀 벗어 볼래?”
나는 상의를 벗은 태풍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대었다. 질병을 특정할 만한 심장음이나 폐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심장음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폐음, 그러니까 호흡음은 어느 정도 감소가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곤란하네.’
진료하는 내내 태풍이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나는 마지막 가설까지 내 손으로 무너트려야 했다.
바로 꾀병이었다.
소아 환자의 경우 드물게 꾀병으로 학원을 빠지거나 부모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태풍이는 꾀병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린아이가 아프지 않은데 아픈 척을 하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거늘…….
열심히 관찰했음에도 나는 태풍이의 빈틈을 찾을 수 없었다.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 환자를 보내면 되는 걸까.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이다.
솔직히 심전도, 흉부 엑스레이, 피 검사, 청진까지 해서 나오는 게 없으면 정상이라도 봐야지.
내 이성은 태풍이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물적인 직감은 그 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태풍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태풍아, 잠깐만 옷 입지 마.”
두 개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나는 태풍이가 옷 입는 것을 잠시 만류시켰다.
“왜요?”
“선생님이 확인해 볼 게 있단다.”
나는 상의를 벗은 태풍이의 가슴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가슴에서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발적 같은 것들을 확인했다.
두드러기, 아토피, 대상포진도 아닌 것 같은데…….
-우리 태풍이가 얼마나 건강한데요. 다섯 살 때부터 보약을 지어 먹였다고요.
순간 아까 보호자가 했던 말이 퍼즐 조각으로 변했다.
그 조각이 내 머릿속 가장 중요한 부위에 맞춰졌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시원스레 제자리를 되찾는 기분이었다.
태풍이를 괴롭히는 흉통과 호흡 곤란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다.
그동안 접하지 못한 케이스라 나조차 잠시 당황했을 뿐.
“보호자분, 하루 이틀 사이로 한의원 가셨죠? 한의원에서 태풍이가 가슴에 침을 맞았죠?”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내 질문에 보호자가 화들짝 놀랐다.
“태풍이 가슴에 난 빨간 자국이 침 자국 같아서 여쭤본 겁니다.”
“한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태풍이가 공부하느라 가슴에 화가 많이 쌓여 있다고. 그걸 침으로 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요.”
보호자의 대답에 나는 혀를 찼다.
바늘로 찔러서 화를 빼낼 수 있다면 나도 내 몸을 수백 번씩 바늘로 찔렀을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 한의사 놈은 나쁜 놈이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보호자는 한심한 사람이랄까.
참고로 나는 한의사 전체를 매도하는 것도 아니고, 한의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양의학을 하든지.
동양의학을 하든지 중요한 건 의술을 펼치는 사람의 인성과 양심이었다.
“근데 그게 태풍이가 아픈 것과 무슨 상관이죠?”
“당연히 상관이 있죠. 가슴에 놓은 침이 폐에 구멍을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태풍이에게 외상성 기흉 진단을 내렸다.
먼 길을 돌아서 결국 제자리로 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외상성의 외상이 설마 한의원의 침일 줄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보통 외상성 기흉의 경우 날카롭거나 둔탁한 물건에 부딪혀 가슴에 멍이 들기 마련인데…….
환자 본인도 가슴을 다친 적이 없다고 말한 판국인데…….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선생님이 얼마나 친절하고 실력 있는 분인데요.”
보호자는 끝까지 문제의 한의사를 두둔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옹호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나는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혹시… 선생님이 잘못 보신 거 아닌가요?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잖아요.”
급기야 나를 깎아내리는 보호자.
상황이 이쯤 되면 나도 참을 수 없었다.
태풍이의 진단명을 찾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 온 내게 어찌 이런 대접을 한단 말인가.
“저기요, 보호자분. 한의사 선생님을 신뢰하는 건 좋은데 선을 넘으시면 안 됩니다.”
“…….”
“제게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보호자 분의 논리대로라면 만에 하나라도 그 한의사분의 잘못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
“왜 그 한의사는 무조건 옳고, 저는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시죠?”
나는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말을, 한 번 여과한 뒤 보호자에게 전달했다.
옆에 태풍이가 있어서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던 것이다.
“일단 CT 검사부터 하겠습니다. 외상성 기흉이 확인되면 흉관 삽관이라는 처치를 받을 거고요. 태풍이도 하루 이틀 정도 입원해야 해요.”
“…네.”
내 으름장이 효과가 있었는지 보호자가 고분고분하게 나왔다.
그렇게 30분이 지난 후 응급 CT 판독 결과가 나왔다.
나는 PACS(영상 전달 시스템)에 떠오른 CT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태풍이는 외상성 기흉이 맞았고
기흉의 원인도 한의사의 침이 맞았다.
폐에 구멍이 난 자리가 가지런하고 일정했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놓칠 수도 있던 태풍이의 진단명을 찾아냈다는 사실에 나는 안심이 되고 뿌듯하기도 했다.
아마 진단을 제대로 못했다면 기흉이 발전하면서 태풍이가 언제 어떻게 쓰러져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몰랐다.
국민학교 시절 김지원의 오빠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불행을 막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호자분, 보이세요? 이 자리들이 전부 한의원의 침술 때문에 구멍 난 자리입니다.”
나는 손끝으로 CT 촬영 사진 몇 군데를 가리켰다.
CT라는 막강한 증거가 나오자 보호자 역시 더 이상 한의사를 옹호하지 못했다.
시무룩한 표정과 목소리로 내게 사과를 전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니는 한의원의 소문이 좋기도 하고, 원장 선생님이 워낙 아이한테도 잘해 주기도 해서.”
‘필요 이상의 친절에는 숨은 꿍꿍이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나는 간신히 참았다.
어쨌거나 이 정도 선에서 보호자가 정신을 차린 것만 해도 어떻게 보면 대견한 일이었다.
대체 의학이나 사이비 종교와 엮인 보호자와 비교하면 이 보호자는 양반, 아니 천사쯤 될 것이다.
“일단 응급실에서 치료 잘 받으세요. 치료가 끝나는 대로 그쪽 한의원 선생님과 잘 이야기해 보시고요.”
“네.”
“선생님, 흉관 삽관 세트 준비 다 됐습니다.”
“갈게요.”
삽관을 도와줄 간호사의 말에 나는 보호자와 함께 침상으로 이동했다.
“선생님, 무서워요.”
태풍이가 잔뜩 긴장하고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
드레싱 카트에 놓인 물건들이 하나같이 살벌하다는 걸 확인한 모양이었다.
뾰족한 주사기며 시뻘건 소독액이며 등등.
“선생님도 태풍이 입장이면 무서울 거야. 근데 태풍아.”
“…네.”
“마음속으로 딱 숫자를 300초까지만 세고 있어 볼래?”
“왜요?”
“선생님이 300초 만에 끝내 줄게. 그 정도면 참을 수 있지?”
“그 정도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300초라는 정확한 숫자가 나오자 태풍이도 자신감을 보였다.
이 상황에 자신감이 없는 건 오로지 나를 도와줄 간호사뿐이었다.
“선생님, 그렇게 공수표를 날리셔도 괜찮겠어요? 흉관 삽관이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을 텐데요.”
“…….”
“약속 시간을 어겼다가 아이가 울면 더 난리나지 않을까요?”
“일단 지켜보세요. 난리가 나는지 웃음소리가 나는지.”
나는 오히려 간호사를 안심시키며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김지원의 오빠에게 볼펜으로 흉강 천자를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인턴이 되어 병원에서 어엿한 흉관 삽관을 하게 되다니…….
다가올 것은 느리게 느껴지고, 지나간 것은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 인생인 듯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스으으윽.
베타딘 용액이 묻은 솜으로 태풍이의 오른쪽 가슴을 소독했다.
“살짝 따끔해.”
국소마취제를 늑간에 주입한 후 2, 3분이 흘렀다.
마취한 부분을 포셉으로 가볍게 누르며 감각을 물어보자 태풍이가 별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마취가 끝났으면 흉관 삽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10번 블레이드로 늑간에 절개창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