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doctor since age 1 RAW - chapter (163)
163화 제3장 응급 아닌 응급(3)
‘와! 이게 사람이야, 재봉틀이야?’
남하늘은 이믿음을 지켜보며 혀를 차기 바빴다.
이믿음이 양손을 능숙하게 잘 쓴다는 사실은 익히 알았다.
하지만 그 수준이 이 정도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첫 혈관을 바늘로 운침하는 일.
그 바늘을 정확히 반대편 장소에 운침하는 일.
적당한 힘을 주어 봉합사가 팽팽해지도록 장력을 주는 일 등등.
부분 동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절차들이 이믿음의 손에서 연속 동작으로 이루어졌다.
휘리리릭.
봉합의 꽃은 매듭이었다.
이믿음이 양 손목을 몇 번 휘저으면 단단한 매듭이 생겨났다.
거기에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으니…….
이믿음이 봉합 중인 부위가 머리카락 두 개를 붙여 놓은 크기의 혈관이라는 점이었다.
혈관 봉합의 난이도는 피부 봉합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혈관 봉합 시 손을 정교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면 혈관이 찢어지거나 파열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믿음은 혈관 봉합을 피부 봉합처럼 해내고 있었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속도와 정확도를 자랑하면서.
‘다들 넋이 나갔네.’
남하늘은 슬쩍 동료 스태프의 표정을 훑었다.
마스크를 써서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다들 경악한 분위기였다.
혈관 봉합이 시작된 이후 입도 뻥끗 못했으니까.
이쯤 되면 다들 말은 안 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믿음이 심지어 교수들보다 손이 빠르고 정교하다는 사실을.
남하늘은 레지던트 3년 차 근무를 서는 지금까지 모든 교수의 어시스트를 해 봤다.
과장, 부교수, 조교수. 펠로우 등등.
놀랍게도 그중에서 이믿음만큼 손을 잘 쓰는 사람은 없었다.
‘미쳤다, 미쳤어.’
레지던트 4년 차임에도 교수를 훌쩍 뛰어넘은 이믿음에게 남하늘은 감탄을 넘어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믿음의 솜씨를 닮고 싶다는 꿈도 품었다.
“남하늘,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 아까부터 손이 조금씩 흔들린다?”
“아… 죄송해요, 선배.”
남하늘은 멋쩍게 웃으며 홀더로 인조 혈관과 기존 혈관의 이음새를 단단히 붙잡았다.
“내 손에 니들홀더랑 봉합사가 들려 있지만 봉합은 같이하는 거야. 네가 수술 부위를 제대로 고정 못하면 내가 아무리 잘나도 봉합을 제대로 못해.”
“…….”
“쉽게 말해서 너도 나만큼 중요한 역할이라고. 알았어?”
“…….”
이어지는 이믿음의 조언에 남하늘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믿음의 말처럼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봉합은 집도의가 하는 것이다.
제1 보조는 수술 부위를 적당히 고정만 하면 된다고, 그는 줄곧 생각해 왔다.
그런데 웬걸?
수술 부위 고정은 단순한 허드렛일이 아니었다.
봉합을 완성하는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수술방에서의 역할은 귀하고 천한 것의 나눔이 없다는데…….
남하늘은 속으로 귀하고 천한 것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기막히네, 진짜. 환자 말고 내 속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니.’
이믿음에게 감탄하는 한편 정신이 확 깬 남하늘은 수술 부위를 고정하는 데만 혼신을 다했다.
더 이상 이믿음의 휘황찬란한 봉합술에 현혹되지 않았다.
남하늘은 오로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보았다.
수술 부위를 고정하고 있는 자신의 손의 떨림.
인조 혈관과 기존 혈관의 접합 부위 아귀 등등.
집중력을 백 퍼센트 발휘한다는 게 이런 걸까.
남하늘은 처음으로 무아지경이라는 단어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뭐랄까.
수술실에, 아니 이 지구에, 아니 이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느낌.
나 혼자서 우주를 꽉 채우는 느낌.
그 황홀감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하늘아, 정신 차려라.”
“네, 네?”
이믿음의 말에 남하늘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얼뜨기처럼 어수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봉합 끝났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너무 집중하다 보니…….”
“너도 이쪽으로 재능이 있구나. 그 경지에 도달한 걸 보니.”
“그 경지요?”
“지금은 알 필요 없어. 나중에 설명해 줄 테니까.”
이믿음 피식 웃으며 수술 도구를 손에서 놓았다. 벽에 걸린 수술 시계를 확인했다.
현재 시간: 오전 12시 40분.
수술 시간: 1시간 40분.
마취 시간: 1시간 40분.
대동맥 박리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처치가 2시간 안쪽으로 종료되었다.
초저체온 완전 순환 정지법이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60분의 데드라인 또한 지켜 냈다.
보조들이 레지던트였다는 걸 감안하면 기적 같은 결과였다.
환자를 살리고자 했던 이믿음의 절실함이 하늘에 닿았던 것이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찢어진 대동맥 궁 대신 반듯하게 꿰매진 인조 혈관이 놓여 있었다.
‘안 돼, 아직 방심하기는 이르지.’
이믿음은 느슨해지는 마음을 팽팽하게 조였다.
배성훈에게 환류 테스트를 지시했다.
치이이익.
주사기에서 뿜어지는 식염수가 대동맥 궁을 통과했다. 모두의 시선이 대동맥 궁에 쏠렸다.
“치프, 누수 없습니다.”
“보조가 누구였는데 누수가 있으면 안 되지.”
남하늘과 배성훈이 화색을 띤 채 한마디 씩 했다.
“한 번만 더 쏴 봐. 이번엔 압력을 높여서.”
“네, 치프.”
배성훈이 강도 높은 환류 테스트를 다시 진행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인조 혈관과 기존 혈관이 봉합한 자리에서 식염수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봐도.
본 곳을 또 봐도 누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봉합이 완벽하게 잘된 것이다.
이믿음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모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지 않았다.
환자는 무사했고 이믿음은 보호자 앞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전생의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르는 한 영혼을 구해 냈다.
이믿음은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행복한 결말을 음미했다.
고된 흉부외과 일을 버티게 해 주는 건 바로 이런 충만한 감정들이었다.
“수술 부위 닫으면서 마무리 합시다. 너무 긴장 풀지는 말고.”
“네, 치프.”
인조 혈관 치환술을 마친 후 30분 만에 수술은 완전히 종료되었다.
환자는 무사히 중환자실로 이동되었다.
소식을 들은 보호자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이믿음도 보호자를 따라 그만 울고 말았다.
* * *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 새벽, 본관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시간이 워낙 늦었던지라 담배를 피우는 스태프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뒤늦게 도착한 서 교수와 옥상을 찾았다.
옥상에 올라오는 동안 그동안 벌어졌던 일을 요약해서 서 교수에게 들려주었다.
설명하는 내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고 건조했다.
다급하고 긴장하고 초조하고 걱정하고 절실하고 뿌듯하고 등등.
수많은 종류의 감정을 이미 수술 전후와 수술 중에 다 쏟아 냈으니까.
“새파란 후배들을 데리고 대동맥 박리 수술을 했다니… 그것도 2시간 30분 만에 끝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서 교수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열심히 한 데다가 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네 말에 한 가지 사실은 맞고 한 가지 사실은 틀렸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열심히 한 건 맞지만 결코 운은 아니었어. 운으로는 인조 혈관 치환술을 집도할 수 없으니까. 그것도 고작 2시간 반 만에.”
“…….”
“이번에야말로 진짜 실력을 드러낸 거구나. 맞지?”
“…네.”
서 교수의 추궁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쯤 되면 내 실력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수술은 대외적으로 내가 집도한 걸로 처리하는 게 좋겠다. 애들 입단속 잘 시키고.”
“…….”
“내일 컨퍼런스 때도 내가 수술을 집도했다고 발표해.”
서 교수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엄숙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이 서 교수를 엄숙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교수님, 혹시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는 호기심에 직접 물었다.
“혹시 제가 교수님을 기다리지 않고 집도한 사실이 거슬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는 상황이 워낙 급해서.”
“사과는 무슨… 나야 오히려 내게 감사할 판이지. 믿음이, 네가 내 몫까지 책임지고 수술을 해 줬는데. 하지만.”
서 교수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 튀는 건 좋지 않단다. 그래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까지 있는 거지.”
서 교수는 내가 너무 돋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걱정을 표했다.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사람들의 기대치는 올라가고, 질 나쁜 시샘이 뒤따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서 교수는 자신의 동기 중 촉망받던 친구를 한 예로 들었다.
그 동기는 나처럼 의대에 다닐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단다.
하지만 신경과 레지던트가 되면서 그 동기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수들이 너도나도 논문 정리와 편집, 편찬을 맡겼다는 것이다.
“건우는 교수들이 시킨 논문 폭탄을 껴안은 채로 레지던트 업무까지 맡아야 했단다.”
“…….”
“아무리 천재라도 몸이 두 개는 아니니까 종종 실수가 나왔겠지? 그러면 또 지옥이 시작되는 거야.”
“…….”
“교수들한테 예쁨을 받는다고 선배 알기를 개똥으로 아냐고 위에서 기합을 주는 거지.”
“그분은 일을 그만두셨겠네요.”
“그래, 의사의 이응 자도 싫다고 하고 떠났지. 지금은 강남에 잘나가는 변호사로 살고 있다.”
“제가 그 동기분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는 거죠?”
나는 요점을 콕 찍었고 서 교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걱정해 주는 서 교수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는 서 교수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오늘의 기점으로 나는 적극적으로 내 실력을 내보일 작정이었다.
이제 의국장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았으며.
지난 3년간 내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교수들에게 적극 어필해 왔다.
이 정도 믿음을 줬다면 더 이상 답답하게 실력을 숨길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휴우, 내 말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내 포부를 듣고 서 교수는 실망했다는 듯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 모습에 내 마음도 무거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의견을 백 퍼센트 수용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저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저를 내보일 생각입니다. 그러면 교수님 말씀대로 주변에서 저를 끌어내리려고 수작을 부리겠죠.”
“그래, 내가 걱정하는 게 그거란다.”
“하지만 저는 그런 간계를 부리는 사람을 오히려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진심이니?”
“네.”
내 목적은 이랬다.
실력을 내보이면서 활약한다.
동시에 나를 나락으로 빠트리려는 자들을 솎아 내서 역공을 펼친다.
실제로 이 계획은 의대에 다닐 때부터 유효하게 작동해 왔다.
이민호 패거리 중 한 명인 손태호는 내게 음모를 꾸미다가 이민호에게 버림을 받았다.
순환기 내과의 김슬기, 김쓰레기 라고 불렸던 레지던트 1년 차도 비슷한 운명이었다.
그는 나를 몸종처럼 부려 먹으려다가 오히려 가운을 벗고 병원을 떠나 버렸다.
이 두 사람이 혼쭐나면서 의국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앞으로는 나는 더 많은 활약을 할 것이고 더 많은 악당을 처단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흉부외과를 부흥하는 유일한 길일 테니까.
괴롭고 외로운 길이 되겠지만 목표를 이뤄 낼 자신감은 충만했다.
다른 사람은 한 번만 사는 인생을 나는 두 번째 살고 있으니까.
앞으로 벌어질 굵직굵직한 일들을 손금 보듯이 알고 있었으며 전생의 내 결점들은 모조리 보완하고 있으니까.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동맥 박리 수술까지 집도한 마당에 내가 무슨 조언을 더 하겠니.”
“교수님, 죄송합니다. 기껏 저를 생각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쨌든 내가 너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 두거라.”
서 교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굳이 이 시점에서 네게 경고를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란다.”
“이유라면…….”
“양 과장님이 은퇴하신 후에 부임할 과장 말이다. 그 과장이 악질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단다.”
서 교수가 전한 뜻밖의 정보에 나는 살짝 긴장했다.
설마 전생과 달리 강태섭이 벌써 부임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