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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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진후, 발을 옮기다.
저벅, 저벅, 저벅.
지프센의 수도, 지드 성의 밤거리, 바스크와 리디, 여울이 나란히 걷고 있다.
바스크의 친위대는 회의가 있는 이 주 동안 휴가를 주었다.
“유후, 오랜만이네.”
리디는 신이 났는지 휘파람을 불며 걸음을 옮겼다. 다리를 제대로 치료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꽤 빠른 걸음이다.
여울은 자신에게 어깨동무한 리디를 보며 물었다.
“어디 가는 겁니까?”
리디는 큰길가에서 갑자기 골목 쪽으로 꺾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골목 안쪽에는 속이 훤히 비치는 하얀 천으로 된 원피스나 짧은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랜턴 옆에 앉아 매혹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수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 있지, 아주 명품이거든.”
여울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때 안 그럴 것 같았던 바스크도 앞으로 한 걸음 옮기며 거들었다.
“그럼, 지드 여인들은 속살이 착 감기지.”
전쟁의 시대에 생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때에는 사내들이 여인을 많이 밝힌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여울은 그 분위기에 살짝 흔들렸다. 그도 성욕을 지니고 있는 남자였다.
그때, 눈을 마주치자 손짓을 하는 여인을 살펴보니 고작 은서의 나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였다.
여울은 발걸음을 멈춰 섰다.
“사냥할 만한 곳은 없습니까?”
“명색이 수도인데 이 근처 몬스터들을 놔뒀겠냐? 안전을 위해 토벌한 지가 백만 년이다.”
리디의 농담 같은 말을 바스크가 이었다.
“사냥할 만한 곳을 가려면 이틀은 뛰어야 할 거다. 같이 안 갈 거면 중앙 광장에 가서 대련이나 구경해.”
여울은 그의 말에 뒤를 돌아 중앙 광장을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리디를 보며 물었다.
“그때 말한 정보 길드가 이곳에도 있습니까?”
“아? 지금 가는 데가 거기랑 이어져 있을걸?”
“그렇…… 군요.”
그의 말에 여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기껏 해 봐야 18세쯤으로 보이는 소녀의 손에 이끌려 한 건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은 거실이 나왔다.
그곳에는 이곳저곳에 긴 소파가 마련되어 있었고, 몇몇 사내들은 이미 여인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리디가 거실을 한번 쓱 둘러보고는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랐다.
그러자 안내하던 여인의 입가가 환해지며 그 뒤를 따랐다.
2층에는 레드 카펫의 긴 복도가 나 있고, 오른쪽은 창문, 왼쪽은 방문이 열 개 정도 보였다. 방문은 닫혀 있는 곳도 있고, 열려 있는 곳도 있었다. 리디는 열린 방 앞에 멈춰 서서 뒤돌아서며 말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작별 인사하자고, 이따가 봅세.”
“그러지. 자네는 저기 들어가면 되겠군.”
바스크는 여울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 손으로 가장 끝쪽에 열린 방을 가리켰다. 닫힌 방은 이미 사람이 있는 곳인 듯했다.
“예.”
“시원하게 즐기고 오게나, 계산은 내가 해 놓을 테니.”
여울은 대답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일반적인 방처럼 침실과 화장대, 책장과 식탁이 놓여 있고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똑똑.
그렇게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 긴 금발에 살짝 곱슬이 진 머리, 170은 될 법한 큰 키가 두드러진 외모였다.
얼굴은 마치 TV에서 나오는 아이돌이나 여배우처럼 이목구비가 짙고 또렷했다.
그녀는 늘씬하게 잘빠진 다리를 내보이며 관능적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여울의 손끝을 살며시 잡으며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
“정보를 사러 왔다.”
야릇하게 스쳐 가던 그녀의 손길이 우뚝 멈춰 섰다.
“정보요? 정보를 사려면 정보 길드에 가야지 사창가는 왜 왔어요?”
여울은 아무 말 없이 품에서 20실버를 꺼내 그녀의 가녀린 손에 쥐여 주었다.
1실버는 대충 따져 보면 원화로 1만 원의 가치를 지녔으니, 그녀가 지금 몸을 파는 가격의 두 배쯤 되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손에 쥐어진 돈과 여울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속옷 안쪽에 그것을 감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실장님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그러지.”
여인이 방을 나간 지 약 5분 후, 다시 돌아온 그녀는 한 손에 실크로 된 붉은 천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엄지와 중지로 그 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눈 좀 감아 주시겠어요?”
이곳에서 바로 이 여인에게 의뢰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여울은 그녀의 이끌림에 따라 붉은 천으로 겹겹이 눈을 가렸다. 익숙한 손놀림에 그는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다.
귓가로 더운 숨결과 함께 그녀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내 손 잡고 잘 따라와요.”
그 말과 동시에 매우 부드러운 손이 여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그녀는 문밖이 아닌 방 안에 있던 책장을 움직여 비밀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여울은 눈을 감고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걸으면서 깨달았다.
이제 눈을 감아도 기감이 모든 지형지물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즉, 눈을 감고 있어도 색깔만 구별하지 못할 뿐 모든 형태는 알 수 있었다.
약 10분 정도 후에 둘은 멈춰 섰다.
그곳은 건물과 이어져 있는 지하의 동굴로 축축하고 기온이 낮은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여인이 부드러운 손길로 붉은 천을 풀어 주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기감으로 이미 파악하고 있던 동굴과 단단해 보이는 철창.
그 앞에는 의자가 하나 있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려서 속눈썹이 긴 눈만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옆이 탁 트여 있는 긴 치마는 탐스러운 허벅지를 보였고, 위에는 오프 숄더 검은 셔츠로 가녀린 어깨선과 빗물이 고일 것 같은 쇄골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검지로 자신의 무릎부터 허벅지 끝부분까지 천천히 끌어올리다가 다리를 반대편으로 꼬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울의 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시선을 따라가고 있는 그를 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가세브에서 왔다.”
묘령의 여인은 검지를 들어 여울의 얼굴을 가리키고는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낯설어, 낯설어……. 그래서 어떤 정보를 원하죠?”
마치 가세브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이름은 비아느, 열다섯 정도 외형에 마른 체형의 소녀를 찾고 있다.”
“지금 있는 정보를 사러 온 게 아니라 탐색을 원하는 거군요?”
여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이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다. 어느 왕국 출신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전혀 모른다.”
여인은 습관적으로 아슬아슬한 어깨선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망이 펄럭이며 그녀의 피처럼 붉은 입술이 살짝 비춰졌다.
“후우…… 정말 어려운 의뢰군요.”
“안 받는 건가?”
“그럴 리가요. 선수금은 1골드, 진행 상황을 보며 매달 300실버, 찾으면 완수금 2골드. 난이도가 높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겠네요. 못 내시면 어쩔 수 없고.”
“바로 시작하지, 선수금은…….”
여울은 시원하게 대답하고는 주머니를 뒤지다가 멈칫했다.
이곳은 원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세계.
계약금과 월급 한 달 치받은 것이 전부인 그는 천천히 손을 빼며 말을 이었다.
“선수금은 위에서 이 아이를 통해 보내지.”
여울은 같이 온 여인을 가리켰다. 여인은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세요. 예상보다 더 큰돈이었나 보네.”
비웃음이 조금 담긴 어투였다.
여울은 다시 하얀 원피스의 여인에게 눈이 가려진 채 그곳을 벗어났다.
* * *
방으로 돌아온 여울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여인에게 물었다.
“나와 같이 온 사내들은?”
“잠시, 알아볼게요.”
방을 나섰던 그녀는 금세 다시 돌아왔다.
“아직…… 추가 금액을 미리 내신 것 보니까 오래 걸리실 것 같은데요.”
여인은 여울 옆에 바짝 앉아 한쪽 다리를 여울의 다리 위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심심치 않게 해 드릴게요.”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한 손이 여울의 옷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그는 무심하게 셔츠를 들어 올려 가녀린 손목을 잡아 빼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됐다.”
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칫.”
그녀는 돈까지 지불하고 자신을 거부하는 남자는 처음이었기에 금이 간 자존심을 콧방귀로 표현했다.
약 한 시간 후, 복도에서 기다리던 여울은 허리춤을 매만지며 나온 리디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돈 좀 주십시오.”
“이야 그렇게 빼더니 너 재미 제대로 봤구나? 또 하고 싶어서 그래?”
“1골드만 꿔 주십시오.”
“응? 뭔 짓을 하는데 1골드가…… 아, 여기 시드 만났어?”
“시드?”
“의뢰인과 접촉하는 자, 워낙 미친놈들도 많아서 꽤 실력 있는 사람들만 두거든, 여기 시드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그의 말에 여울은 묘령의 여인, 이곳의 시드를 떠올렸다가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 알았어. 자.”
여울은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바로 하얀 원피스의 여인에게 1골드를 건넸다.
“바로 진행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리디는 밖으로 나서며 여울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너 돈이 없구나? 선수금이 1골드짜리면 유지비도 꽤 될 텐데 어떻게 버티려고? 차라리 실력도 괜찮으니까 이참에 대련 한번 해 보는 게 어때?”
바스크도 대련에 관해 언급했었다. 규칙을 정해 두고 싸우는 것이 여울이 아는 일반적인 대련이었다.
그런데 돈이 관련된 것으로 보이니, 이곳에서의 뜻은 조금 다른 듯했다.
“대련이 뭡니까?”
“이렇게 큰 도시마다 있는 놀이라고 보면 돼.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두 사람이 날이 없는 무기를 가지고 대결을 펼치는 거지, 한 판에 한 번씩 그 주변 사람들이 돈을 거는데 이긴 쪽이 판돈의 10프로를 먹고, 나머지는 승자한테 건 사람들한테 돌아가, 이게 10프로라고 해도 어마어마하다. 네 월급쯤은 순식간에 벌걸?”
한마디로 내기 격투다.
어차피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도서관 외에는 갈 곳이 없었으므로 그것을 통해 자금을 미리 마련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중앙 광장이 어딥니까?”
“아까 올 때 분수대가 있던 곳이 중앙 광장이야, 해가 저물면 대련도 끝나니까 빨리 가야 할걸? 나는 영주를 챙겨야 하니까 너 혼자 놀아.”
“알겠습니다.”
여울은 분수대를 봤던 곳으로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리디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말을 이었다.
“적당히 약한 척해야 오래 논다. 사람들이 네 상대한테 돈을 안 걸기 시작하면 그 판 떠야 하니까.”
여울은 멈춰 서서 당연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알려 준 리디를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후우우웅!
검은 장막을 씌워 놓은 듯이 깜깜한 밤, 시리도록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벅. 저벅.
무겁고 진중한 걸음 뒤에 새하얀 서리가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다.
바닥에는 눈 한 점도 내려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무척 신묘한 일이었다.
쿠우웅!
육중한 방패를 바닥에 세우자 땅거죽이 움푹 파였다.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상상이 되는 장면이었다.
“여울…….”
검은 코트를 입은 근육질의 사내, 김진후는 눈앞의 검은 게이트를 바라보며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3차 재앙으로 인해 다른 나라들이 입은 어마어마한 피해에 비하면 비교적 잘 막았다고 평가되는 한국은 이미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영토 곳곳으로 숨어 들어간 몬스터들이 불시에 기습을 가하거나 몸집을 불려 대규모로 다시 쳐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중국의 남서쪽, 영토의 4분에 1에 해당하는 면적의 땅은 거의 몬스터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완전히 빼앗겼다고 한다.
사람들은 매일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보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전 세계가 몬스터들에게 무너지면 한국이라고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나, 자신은 ‘그’처럼 세계를 책임질 만한 힘이 없다. 그러므로 검은 게이트 너머의 세계로 향한 그를 데리고 와야 한다.
지이이잉.
진후는 한 손을 그곳에 내밀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
그는 이를 악물고 그 안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