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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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레인, 슈레인
저벅, 저벅.
여울은 리디와 헤어지고 골목길을 거닐었다.
하늘거리는 아리따운 여인들이 온갖 교태를 부리며 그에게 손짓했다.
그는 그들을 무시하며 좁은 길을 벗어나 큰길로 나갔다.
아니, 나가려는 순간, 큰길에서 누더기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사람이 다가오며 그의 몸에 밀착했다.
이상함을 느낀 여울은 그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낚아채 뒤로 꺾어 버렸고, 다른 손으론 뒷덜미를 잡아 아래로 굽혔다.
“아악.”
가느다란 손목과 들려오는 목소리가 상대가 여인임을 알려 줬다. 그는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냐.”
“이, 일단 방향 좀 돌려줘요. 이 자세도 괜찮으니까 골목 안쪽으로…… 제발.”
여울은 그녀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가운데에 목적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사내들이 눈에 띄었다.
남색 바탕에 흰색의 조끼를 걸친 것이 어딘가의 제복인 듯했다. 한데, 그들은 누군가를 찾는 움직임이었다.
휙!
여울은 그녀의 몸을 골목 안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범죄자인가?”
“아, 아니에요. 이, 이것 좀……. 아우, 아파!”
여인은 잡힌 손목이 아픈지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쪽에서 웃음을 파는 여인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아름다움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가만히 있어도 기품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 낯선 기운에 옷을 살펴보니 누더기 안쪽에는 대충 봐도 고급스런 소재의 붉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범죄자도 아닌 것 같고, 품 안에 작은 단검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근력으로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여울은 그녀의 손목을 놓으며 한 손을 휘적거렸다.
“가라.”
여울이 신경을 끄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가 다시 품 안으로 달려들며 두 팔을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는 꼭 껴안았다.
코끝으로 청량한 나무의 향이 스쳤다. 그녀는 귓가에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쉿, 잠깐만 이대로 있어 봐요.”
처적, 척.
그때 바로 골목으로 두 명의 사내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까 보았던 제복의 사내들이다.
그들은 여울과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여기도 없다.”
“젠장, 대체 어딜 간 거야.”
여인은 그들이 멀리 떨어져서야 허리를 두르고 있던 팔을 풀고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연분홍색의 입술을 열었다.
“아저씨, 왜 아까처럼 이렇게 막 안 꺾었어요?”
그녀의 올라간 입꼬리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주변까지 환해지는 느낌이다.
여울은 그녀의 미간을 검지로 정확히 가리키며 대답했다.
“넌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여울의 손가락을 잡아가며 매력적으로 웃음 지었다.
“에이, 거짓말. 내가 예뻐서 그렇죠? 다 알아, 언제 이렇게 예쁜 사람을 마음껏 안아 보겠어.”
사창가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쳤는데 제압까지 당했다.
그런데 저런 웃음과 반응이라니, 이 세계에 얼마 있지 않은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옷이나 태를 보면 부잣집 귀족의 영애인 듯한데, 그래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다. 여울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뒤돌아섰다.
그때, 그녀가 다시금 그의 손목을 확 잡아 왔다. 여울은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역으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뒤돌아서며 반쯤 꺾어 올렸다.
“아악…….”
상황이 소리를 크게 내지르면 안 되기에 간신히 소리를 낮추고 있지만, 그 고통의 정도는 확연히 느껴졌다. 그녀는 꺾인 손으로 몸을 움직이며 다급히 말을 이었다.
“놔, 놔, 놔줘요. 부탁할게 있어서 그랬어요. 돈도 줄게요, 돈! 나 돈 많아요.”
그녀의 말에 여울은 손목을 다시 풀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돈을 벌기 위해 대련하는 광장으로 가려던 길이었다.
어쩌면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목돈을 챙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손목을 털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싸움 잘하죠? 나 이래 봬도 6레벨인데 무슨 어린아이 다루듯이 순식간에 제압하는 거 보면…….”
그녀는 그렇게 묻고는 여울의 눈치를 봤다.
“계속해라.”
“오늘 하루 동안만 나랑 같이 다녀주면 500실버 줄게요!”
그녀는 두 손을 쫙 펼치며 밝게 말했다. 순진함이 극을 달리는 것이, 있는 돈 싹 다 뺏기고 나쁜 일을 당하기 딱 좋은 여인, 아니 소녀다.
하지만, 상대를 잘 만났다.
여울은 검지를 하나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1골드.”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며 팔짱을 끼고 있다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에잇, 비싸네, 비싸. 아무튼 알았어요. 1골드로 해요.”
“선수금 300실버.”
“아, 선수금…… 생긴 거는 해탈한 것처럼 보이는데, 돈 밝히는 아저씨네요?”
그녀는 100실버짜리 동전 세 개를 건네며 말했다. 가지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고르지도 않고 꺼내는 것을 보면 100실버짜리만 들어 있는 듯하다. 정말로 돈이 많은 것 같다.
“자, 그럼 가 볼까요?!”
그녀는 갑자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여울의 팔짱을 끼고 골목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울은 그녀를 따라가지 않고 말했다.
“이쪽으로?”
“네. 큰길은 아무 때나 볼 수 있잖아요. 이런 데 와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힘껏 여울의 팔을 잡아끌며 사창가를 지나쳤다. 거리의 여인들은 여울 혼자서 지나갈 때와는 사뭇 다르게 팔짱을 끼고는 아무런 호객 행위도 하지 않았다.
사창가를 벗어나 음식점과 도박장이 있는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그녀가 여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는 레인이에요, 레인.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레인, 이쪽 세계에서 가장 흔한 여인의 이름이다. 가명임이 분명하지만, 여울은 따지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여울.”
“여우르? 여우르? 이름도 생긴 것만큼이나 특이하네요.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에…….”
그녀는 한국식 발음이 잘되지 않아 걸어가면서 계속해서 이름을 되새겼다.
“우르 아저씨, 하는 일은 뭐예요? 몬스터 사냥꾼이겠죠?”
“군인이다.”
“헛, 군인?”
군인이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가 풀어진다.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뭐, 상관없겠지…….”
레인은 그 이후로도 골목길만 찾아다니며 신나게 구경을 했다.
이번에는 갓 잡아 온 몬스터의 가죽을 벗겨 내는 가죽 상점 앞에서 멈춰 섰다.
여울도 처음 보는 것들이기에 같이 신기해 하며 눈을 빛냈다.
“와, 이런 건 처음 봐요!”
레인의 눈빛, 행동, 추임새에 가식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충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데 어찌 이렇게 유리구슬처럼 투명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여울도 오늘 처음 만난 그녀가 급속도로 편하게 느껴졌다.
콕콕, 콕콕!
그녀는 검지로 에메랄드빛의 트롤 눈알을 찔러 대며 말했다.
“우와…… 이렇게 눈알만 따로 빠져 있으니까 진짜 새롭네.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정육점 주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는 레인의 얼굴을 보았다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거 네임드 눈알이라 비싸, 한 알에 20실버, 두 개 35실버.”
트롤은 네임드급의 사체도 100실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 값을 차지하는 대부분이 회복 효과가 좋은 피 값이다. 잘은 모르지만 눈알은 장식용으로도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 리 없는 이 철부지 아가씨는 눈을 반짝이며 100실버 동전을 선뜻 내놓고 있었다.
주인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크, 크흠! 이거 잔돈이 없는데 어떡하지…… 요.”
“됐어요. 그럼, 이거 바로 가져가도 되죠?”
“아이쿠! 예,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아가씨!”
레인은 신이 나서 두 개의 트롤 눈알을 냉큼 집어 들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것에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 알을 여울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선물.”
“나?”
“네, 우리 우정의 증표.”
“우정이라니…….”
절친한 사이도 웬만하면 쓰지 않는 우정의 증표라는 말을 들으니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무래도 레인은 이런 것을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듯했다. 여울은 그것을 받아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해가 질 때쯤, 레인은 드디어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가로 나왔다.
“괜찮겠나?”
“네, 이제 잡혀도 별 상관없어요.”
원하는 건 모두 이루었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녀의 마지막 목적지는 중앙 광장의 대련장이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둥그렇게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날이 뭉툭한 각종 무기가 널브러져 있었으며, 중앙에는 두 명의 사내가 검과 창을 들고 마주 보고 있었다.
챙! 채쟁!
그들은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는 싸움으로 관중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움직임을 보니 모든 사람들이 레벨이 있는 세계이니만큼 길거리 싸움을 하는 자들도 적어도 6~7레벨은 되는 실력자들로 보였다.
채쟁, 챙!
창을 든 사내가 단검만큼이나 빠른 찌르기로 현란하게 상대를 교란시키더니 결국 목 앞에 창끝을 들이대며 대련이 멈췄다.
그러자 관중들 안에서 가죽으로 된 가방을 앞쪽으로 멘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우와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혜성처럼 나타난 미드예르의 신창 칼라스! 3연승을 거듭하던 빌레드를 꺾었습니다! 엄청난 역배당이 터졌습니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
“오예!
사회자로 보이는 그의 외침에 소수의 사람들이 구리 반지가 달려 있는 흰색 끈을 추켜올리며 뛸 듯이 기뻐했다.
“이런 젠장!”
“빌어먹을 빌레드!”
“이건 사기야, 사기! 이 새끼들, 다 짜고 치는 대련이지?!”
그에 반해 다수의 사람들은 구리 반지가 달려 있는 검은색 끈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절망했다. 누가 봐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레인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들도 신기한지 눈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다.
“와아…… 저거 보이죠, 저 흰 끈 갖다 주니까 10실버씩 주네? 저게 판돈 대신인가 봐요. 어머, 저 사람들은 막 울어요……. 아, 불쌍해. 내가 좀 도와줘야 하나…….”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한 사내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여울은 그녀의 팔뚝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만있어라. 도박으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여기서 누가 도와주면 더 못 끊고 언젠가는 제 가족까지 갖다 팔겠지.”
“가, 가족까지요? 헐, 도와주지 말아야지.”
그녀는 뒷걸음질 치며 도로 돈을 집어넣었다.
어떤 귀족의 딸인지 정말 너무 온실 속의 화초로 키운 듯했다.
그 온실이 부서지는 날은 생각도 하지 않는 것처럼…….
대련은 해가 기울며 끝을 맺었다.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레인은 분수대에 앉아서 가만히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우르 아저씨, 고마웠어요. 덕분에 오늘 새로운 것들을 정말 많이 봤네요. 아저씨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선뜻 해 줘서 감사해요. 여기 보수.”
그녀는 가느다란 한 손을 쭈욱 내밀었다. 그 손에는 금빛의 동전이 놓여 있었다.
1,000실버의 가치를 하는 1골드다.
대련으로도 쉽게 얻을 수 없었을 돈이었다. 이 여자를 막 만났을 때의 느낌처럼 운이 좋았다. 여울은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저는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네요. 아저씨, 안녕!”
레인은 조그마한 손을 마구 흔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여울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한 손을 앞뒤로 휘적거렸다.
“그래, 가라.”
그녀는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해서 뒷걸음질을 치며 여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여울은 먼저 뒤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그녀도 뒤돌아서 걸음을 떼었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귓가로 두 사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레인 맞지?”
“응, 가자.”
레인이라는 이름에 ‘슈’라는 글자만 붙은 이름.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나운 인상의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정확한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실력도 알고 있다는 뜻.
‘돈도 받았으니 이제는 상관없지.’
여울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려다가 다시 멈춰 섰다. 주머니 안에서 달랑거리는 에메랄드빛 트롤 눈알을 꺼내어 바라보던 그가 손을 꽉 쥐고는 발끝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