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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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모략
끼이이익!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회의실, 바스크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진녹색의 로브를 입은 금발의 여인이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세이에라 영주 바스크 자작님.”
“예.”
바스크는 여인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리디는 그 뒤에 두 걸음 물러서서 서는 것을 보니, 의자는 귀족들을 위해서 마련되어 있는 듯했다. 여울은 리디를 따라서 그 뒤에 서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인지 먼저 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명 한 명씩 귀족들이 호위기사를 이끌고 회의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로브의 여인은 귀족들이 들어설 때마다 회의실 안쪽을 바라보며 그들을 소개했다.
“기드라 영주 제라틀 백작님 오셨습니다.”
“데프닐 영주 샤르메 후작님 오셨습니다.”
귀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작위에 맞춰 들어섰다. 그리고 거의 모든 자리가 채워질 때쯤, 탱탱한 피부에 상반되게 하얀 머리를 지닌 사내가 들어섰다. 그가 입구에서부터 모습을 보이자 귀족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드리베아 공작령의 영주 뮤탈 공작님 오셨습니다.”
“공작님 오셨습니까?”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몇몇 귀족들은 자리에서 벗어나 그에게 가까이 가서 알랑방귀를 뀌었다.
여울은 그 공작의 뒤를 따르는 자의 머리통이 왠지 낯익었다. 귀족들 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자가 있을 리가 없다.
의문이 든 여울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공작 뒤에 숨은 자를 쳐다봤다. 그때, 그, 아니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슈레인.’
‘아저씨……?’
귀족가의 영애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공작가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그때 보았던 제복을 입은 자들은 뮤탈가의 영지군들일 것이다. 아는 척해 봐야 좋을 게 없다.
여울은 바로 눈길을 거두고는 앞만 바라보았다.
뮤탈 공작 바로 옆자리에 당연하다는 듯이 앉는 것을 보면 그의 딸이 분명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모든 귀족들이 도착했고, 10여 분이 흐른 후에 금빛의 전신 갑주를 입은 두 명의 기사들이 회의실로 들어와 말했다.
“국왕 전하 오십니다.”
드륵, 드르르르륵.
친위대 기사의 말에 공작부터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왕을 맞이했다.
저벅저벅.
국왕은 네 명의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바스크와 만났을 때 장난기 가득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한 나라의 우두머리다운 위엄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손등이 위로 가게 두 손을 들었다가 아래로 내려 모두 자리에 앉히고는 자신도 상석에 앉았다.
“다들 여기 오기 전에 들었겠지만, 바쁘신 경들을 이리한 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는 나라의 중대사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오.”
국왕의 말대로, 말을 꺼내자마자 남몰래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이번 사항에 관하여 많이들 알고 있는 눈치다. 국왕은 그들의 얼굴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인간들이오. 지금 당장의 배고픔만 해결하는 몬스터가 아닌 인간. 우리는 미래를 봐야 하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저 넘을 수 없는 레시아 왕국을 넘어야만 하오.”
“레시아를…….”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
“두 왕국은…….”
국왕의 말에 여기저기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돌연 바스크를 불러 세웠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방의 라칸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자랑거리, 우직한 전사 바스크 자작이 훌륭한 친구를 데리고 왔소. 여울 경.”
“예.”
국왕의 부름에 여울도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귀족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수십 명의 따가운 시선이 꽂혔지만 고개 한 번 까딱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 냈다.
“여울 경이 나, 레기 드 지프센을 대신하여 두 왕국을 찾아가 레시아 왕국을 한날한시에 협공하기로 약속을 받아 올 것이오.”
“무, 무슨 그런 일이…….”
“혀, 협공이라니…….”
그때 어떤 사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들어올 때 제라틀 백작이라고 했던 자였다.
“전하, 나라의 중대사이니만큼 제가 저자를 조사해 봤으나 수상쩍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의 본적지는 저희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저 먼 반도이고, 그가 우리 지프센 왕국에 온 지는 두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데다가 그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세브가 습격을 받아 초토화되었고, 그는 살아남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가 목숨을 걸고 이런 임무를 자원한다고 하니 그 충성심은 어디서 나왔으며, 그런 실력은 될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외람되오나 저는 그가 마인이 아닐까 의심이 되옵니다.”
“마, 마인!”
“듣고 보니 그런데…….”
“저런 자에게 나라의 군사를 맡길 순 없지, 암.”
뮤탈 공작도 제라틀 백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바로 옆에 앉아서 슈레인보다 더 자주 속닥이는 것을 보니 꽤 친한 듯했다.
“저 역시 제라틀 백작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전하.”
왕 다음으로 힘을 보이는 공작 역시 그의 손을 들자 분위기가 급격히 그쪽으로 쏠렸다. 당장이라도 여울을 잡아먹을 듯한 기운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그때, 국왕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귀족들을 진정시켰다.
그때, 바스크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바스크가의 이름을 걸고 보장하겠습니다. 모두 이자를 믿어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여울의 목덜미를 잡고는 같이 바닥에 꿇어앉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자작?!”
“이런, 이런.”
“그렇다고 해도 수만 명을 사지로 보내는 일인데…….”
바스크의 우직하고 곧은 방법으로도 귀족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 모습에 국왕은 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일어나시오. 사내가 어디 아무 때나 그렇게 무릎을 쓰고 그러나?”
국왕은 다시 귀족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회의는 이틀 후에 다시 진행하겠소. 다들 우리 지프센의 미래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오시오. 그럼.”
국왕이 자리를 뜨고, 귀족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뮤탈 공작은 다른 귀족들이 몰려들어 그들과 안부를 묻느라고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슈레인이 금발의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그녀의 눈부신 미모에 귀족들은 물론, 호위기사들도 힐끔힐끔 돌아보기에 바빴다.
툭.
그녀는 이제 막 일어서는 여울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굳이 반대로 돌아와 어깨를 치는 것을 보면 이렇게라도 아는 체를 하고 싶었나 보다. 어깨 부딪침이라…… 참 그녀다운 발상이다.
* * *
그날 밤, 야심한 시각에 세 명의 중년인이 랜턴 하나를 의지한 채 모여 앉아 있다. 그들은 회의에 참석했던 제라틀 백작, 샤르메 후작, 그리고 뮤탈 공작이었다.
뮤탈이 제라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만약 이번 일이 성사된다면 국가의 존폐는 물론이고 수많은 병사들이 피로 물들 것이오. 바스크 자작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테고…….”
그의 말을 샤르메 후작이 거들었다.
“바스크 그놈의 콧대가 더 높아지는 것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지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제라틀은 공작과 후작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위하는 척은……. 바스크 그 라칸 같은 놈이 두려운 거겠지.’
제라틀은 속마음과는 달리 그들에게 친절한 어조로 말했다.
“가만둬서는 안 되지요.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샤르메 후작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이오?”
“바스크 자작은 건드릴 수 없겠지요. 대신, 그 일을 하기로 한 여울을 없애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를 의심할 텐데?”
“그가 마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바스크 자작까지 저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이번 일은 없었던 일이 되겠지요. 그리고 공작님과 후작님은 오히려 국왕의 신임을 더 받을 것입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뮤탈 공작이 물었다.
“하지만 그가 진짜 마인인지는 모르지 않는가?”
“진짜로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두 분은 지켜만 봐 주시고, 적절한 때에 제게 힘만 실어 주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뮤탈 공작과 샤르메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허허, 내가 이래서 제라틀 백작을 좋아한다니까.”
“역시 믿음직해요, 우리 백작.”
모략이 오가는 밀실에는 웃음소리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여울은 방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몸 안을 살피고 있었다. 마나를 다룬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마나를 보는 수만 가지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움직이는 마나를 느끼는 것이다.
여울은 많은 감각들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단련이 되어 있었다. 또한 케라브의 기억으로 마법의 운용을 보았으니, 비록 마나의 정순한 기운을 모르더라도 마나를 느끼는 것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여울은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며 마나의 흐름을 느껴 보려고 집중했다.
‘이것은 베헤모스의 기운, 이것은 시이와 연결된 의식…….’
그때, 갑자기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
팡! 팡! 파앙!
밖의 길거리를 비추는 랜턴들이 미지의 힘에 의해 터져 나갔다. 밖은 금세 완전히 깜깜해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여울의 방 안에 있던 랜턴마저도 터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바람에 의하여 강하게 열렸다.
콰앙!
문이 열리면서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존재는 창백한 피부에 칠흑 같은 단발, 그리고 이글거리는 푸른 눈을 가진 자였다. 그의 암흑 같은 입이 천천히 열렸다.
“왜 이 세계에 오셨습니까?”
‘카르.’
눈앞에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자는 바로 밤을 주관하는 용의 로드, 카르였다. 그의 본체가 있는 곳은 바로 이곳 로디스, 그래서 환상에서나 마주할 수 있던 카르의 본모습으로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다.
그는 전에 없던, 으르렁거리는 어투로 여울에게 물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카르, 게이트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지? 네가 지금 가진 힘으로 도와줄 수는 없나?”
카르는 여울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길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돕지 못합니다. 전에 말한 것처럼 용들은 이 세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습니다. 관여한다면 아무리 로드라고 해도 다른 용들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쪽 세계였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울은 그의 두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그러면 누구의 소행인지,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는 건지 방법이라도 알려 줄 수 없겠는가?”
“불가능합니다. 그 일에 용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것보다 여울 님에게 도플갱어가 붙은 것은 알고 있습니까?”
도플갱어, 처음으로 이곳의 존재에게 직접 확인을 받았다. 그것이 도플갱어가 맞았던 것이다.
“여기에 막 넘어왔을 때 한 번 본 적은 있다.”
“그 위험성을 전혀 모르는 얼굴이군요. 사람들이 도플갱어를 잘 모르고, 그 위험성이 퍼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들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도플갱어는 태어난 후 처음 만난 대상에게 자신만 알 수 있는 표식을 남겨 놓고 그 대상을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따라 합니다. 말투, 신체 능력, 특성까지도……. 유일하게 따라 하지 못하는 것은 마나를 다루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위험하지?”
“결국 나중에는 자신이 도플갱어인지 그 대상인지 자신도 헷갈려 하며 정신적인 압박을 받게 되죠. 그리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상을 지워 버리면서 완벽하게 그 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자가 도플갱어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원래의 그는 도플갱어에게 깨끗이 먹혔을 테니까요.”
“기분 나쁜 놈이로군…….”
“그를 보거든 가능할 때 무조건 제거하십시오. 그 외에도 이곳은 그곳보다 위험이 훨씬 큽니다. 부디, 죽지 마십시오.”
카르는 그 말을 끝으로 마치 연기처럼 퍽 하고 사라졌다.
그 존재감이나 기운을 추측해 보면 이 세계에서도 감히 당해 낼 자가 없어 보이는데 안타깝다.
그가 왜 화가 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저번의 빙의처럼 도와줄 방법도 없는데, 죽어 버리면 카르 자신의 존재도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로디스에 넘어오면서부터 기운을 느꼈을 텐데 지금 찾아온 것을 보면 그도 본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닌 듯하다.
‘도플갱어…….’
그의 말대로라면 매우 위험한 놈이다. 지금까지 감각에 걸린 적도 없는데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 모두 보고 배운다면 검기를 썼다는 것도 딱 한 번 썼을 때 봤다는 것이다.
여울은 내일 도서관에 가서 몬스터 백과에서 도플갱어에 관해 찾아봐야겠다 다짐했다.
드득.
천장이 아주 미세하게 밟히는 소리, 고양이나 다른 날짐승이 밟는 정도의 강도, 그러나 그 조심성이 다르다. 마치 사냥을 하기 전 은밀한 움직임 같다. 고양이가 지붕에서 새를 사냥하려는 경우도 있겠지만…….
‘열 마리가 동시에 오지는 않지.’
천장을 바라보는 여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