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1
181
후우우웅.
헌터사령관 크레크는 양손에 성인 몸통만 한 도끼를 들고, 벽 앞에 가만히 서서 한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벽 위에서는 뛰어내린 그를 걱정하는 자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며 덮쳐 오고 있다.
그러나 크레크의 눈에는 초대형 베헤모스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그녀의 찰랑거리는 머리칼만이 보일 뿐이었다. 서른다섯 평생 여자라고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크레크. 케라브에 납치당하기 전에 무도인으로 살아갈 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고 따르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눈앞에 보이는 여인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크레크가 여인에게 한눈에 반한 그때에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덮쳐 왔다. 그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두 개의 도끼를 양쪽으로 펼치고 소용돌이처럼 휘돌렸다.
콰직! 콰지지직!
몬스터들은 그의 도끼에 맞아 머리통이 깨지거나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갔다. 한차례 주변을 정리하고 난 후에 다시 그곳을 봤을 때, 여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 안 돼!”
크레크는 다급히 베헤모스의 몸통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나비처럼 날듯이 몬스터들의 머리를 밟으며 뛰어가 다른 베헤모스에게 일본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와 같은 복장의 사내가 둘 더 보였다. 그들도 몬스터들 위로 날아다니며 베헤모스를 공격하고 있다. 분명 알고 있는 헌터들은 아니다. 저 정도의 실력자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크레크는 저 멀리에 혼자서 후방을 진녹색의 피바다로 만들고 있는 여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자네의 친구들이군…….”
남의 나라를 위하여 밖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고 있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크레크는 도끼를 굳게 다잡으며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악! 촤악!
10미터 길이로 늘어뜨린 디카르를 시원하게 휘두르던 여울은 뒤쪽을 힐끗 보았다가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크사카와 스올에게 대부분 소멸되어 스무 명도 채 남지 않았다. 호첸마저 잃었지만 사와코와 리치언, 왕치학이 죽지 않은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마치 제집처럼 전장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울이 있는 곳은 벽에서부터 약 2킬로미터가 떨어진 곳, 전장의 상황을 살피며 마음껏 기술을 사용하기에는 이렇게 놈들 한 가운데가 효율이 좋다.
“더 이동해야겠군.”
여울은 주변에 산처럼 쌓인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며 다른 곳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촤좌좌좌좍!
그는 두 검을 양쪽에 펼치고 마치 독수리가 활강하듯이 빠르게 달려갔다. 그가 지나친 몬스터들은 허리와 머리가 우수수 잘려 나갔다.
몬스터 수가 거의 무한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으니 검기와 베아의 기운도 금세 차오른다. 거의 30분에 한 번씩 차오르는 것 같다.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가득한 케라브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때와 두 배밖에 차이 나지 않는 속도다.
해가 완전히 지고, 달이 떠올랐다가 다시 파란 새벽이 오고, 해가 뜨기를 반복하는 동안 몬스터 군단의 행렬은 끝이 나지 않았다. 여울은 무의식적으로 검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음?”
이어진 의식 중 하나가 끊기는 느낌이 여울의 무아지경을 깨웠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워싱턴 지구의 벽을 바라보았다.
사와코가 보이지 않는다. 리치언과 왕치학은 역소환된 지 이미 하루가 지났다. 마지막까지 있었던 사와코마저도 역소환된 것이다. 호첸이 있었다면 하루는 더 버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검은 기사들이 역소환되고 반나절이 다 지나기 전, 그 길고 길었던 몬스터 군단 행렬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울은 더욱 힘내어 충격파와 검기를 뿌리며 놈들을 처리했다.
푸욱!
쿠훼에엑.
시체의 산을 넘어 도망치는 오크의 심장이 검은 검에 꿰였다. 마지막 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워싱턴 지구 남서쪽 벽을 기점으로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는 땅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시체로 인해 전보다 지대가 3미터는 더 높아진 듯했다.
벽 앞은 더 가관이었다. 시체가 산처럼 쌓여 60미터 벽 앞에 거의 평탄한 길이 만들어져 있다.
“하아…….”
“끄, 끝인가…….”
벽 위에서 열심히 몬스터들을 처리하던 헌터와 군인들이 한숨을 내쉬며 지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찾아 봐도 살아 있는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자 마력기관총 조종수가 망원경에서 눈을 떼며 소리쳤다.
“와, 와! 와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 이겼다아!”
“이겼다아아아!”
“아자아아!”
“다 덤벼!!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야!!”
“크하하하하하!”
그의 외침을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이 하늘이 떠나가라 환호를 질렀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지금까지 버틴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우리’를 향한 환호였다.
첫 방어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몬스터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미국의 사상자는 5백 명 내외였다. 그중에서도 대부분이 중경상에 속했다. 생존율 95퍼센트가 넘는 대성공 방어전이었던 것이다.
진녹색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벽 위로 올라오는 한 사내가 있다. 그가 올라서자 다른 헌터들이 화들짝 놀라며 검을 들이댔다.
“하악!”
“깜짝이야!”
“헙!”
그는 도끼로 검 끝을 거칠게 쳐 내며 말했다.
“치워, 이 자식아. 너네 사령관도 못 알아보냐?”
“죄, 죄송합니다!”
“못 알아볼 만하네요.”
“오크인 줄 알았습니다!”
“크크크.”
헌터사령관, 크레크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승리의 주역들을 둘러보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지금이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군인! 헌터! 할 것 없이 모두 뒤로 빠져 휴식을 취한다! 알았나?!”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의 외침에 헌터는 물론이고 군인들도 크게 대답하고는 벽 아래로 내려갔다. 마력화기보다 인원수가 많아 교대로 싸우던 군인들은 다시금 경계에 들어갔고. 아래에서는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과 일반인 봉사 지원자들이 천막을 쳐 놓고 헌터와 군인들이 바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주변에는 열량을 보충할 음식들과 각종 영양 주사, 링거들이 있었다. 언제 다시 몬스터들이 몰려올지 모르니 우선순위로 몸 상태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크레크는 준비된 간이침대에 누웠다가 간호사가 링거를 가지고 다가오자 한 손을 들며 말했다.
“아, 나는 됐소.”
그는 거부 의사를 밝히고는 가죽 주머니를 꺼내어 보랏빛을 내는 작은 열매를 꺼내었다. 케라브에서나 구할 수 있었던 라브다. 얼마나 챙겨 뒀는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아그작.
그는 한 개를 씹어 먹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아끼는 거라 열 개만 푼다. 먹을 놈 있나?”
“저요!”
“저도 주십시오!”
“옙, 사령관님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의 말에 라브를 아는 헌터들 몇 명이 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크레크는 상체를 일으킨 채 손을 든 자들에게 대충 던져 줬다. 라브는 링거나 영양 주사보다도 훨씬 효과가 좋은 완벽한 음식이다.
그때였다.
“어엇, R랭크 헌터님이다!”
“R랭크다!”
“오오.”
저 멀리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R랭크라는 말에 크레크도 고개를 홱 돌려 그곳을 보았다. 사람들 사이로 검은 옷의 여울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가까이 있던 헌터에게 나머지 라브를 우르르 건네주고는 여울에게 달려갔다.
“친구! 친구!”
크레크는 여울의 뒤를 쫓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울은 자신을 부르는 줄 모르고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크레크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울은 그의 손이 닿기 전에 뒤돌아서 낚아채어 꺾었다.
“아악, 나, 날세! 나야.”
여울은 크레크의 손을 풀고는 그를 기억해 냈다. 며칠 전에 UST 소장이었던 데이빗을 만났었기에 더 빨리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UST 연구소 앞마당에서 함께 대련했던 SS랭크 헌터 크레크였다.
“오랜만이군.”
“그, 그래 격하게 반겨 줘서 고맙군.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그는 화통한 그답지 않게 주변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인가?”
“그…… 벽 밖에서 싸우는 자들 말일세. 자네 동료인가?”
여울이 알기로 벽 밖에서 싸운 자들은 검은 기사들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력자들을 이곳에서 사는 크레크가 모를 리 없다. 여울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여울의 대답에 크레크는 주먹을 쥐고 추켜올리며 좋아했다.
“오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렇게 아름…… 멋진 자들은 자네의 동료일 줄 알았어!”
그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자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쉬고 있는가? 좋은 휴식처를 마련해 줘야 할 텐데 말이야.”
“알아서 쉬고 있다. 그들에게 가장 편한 곳에서.”
여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밤의 세계보다 더 편하고 좋은 곳이 없으니, 이 세상에 소환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부담이다.
“아…….”
“쉬어라.”
여울은 멍청하게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그를 버리고 뒤돌아섰다. 그때 그가 다급히 다가와 다시 붙잡았다.
“치, 친구! 그게 말이야. 그…… 그중에 긴 머리 여인을 만날 수 있을까?”
여울은 그제야 눈치챘다. 크레크가 사와코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고민이 든다.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다.
전에 보았던 그는 여자 하나로 인해 이렇게 자존심을 굽히며 쩔쩔매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말인즉슨 아주 제대로 반한 것이다. 사와코 특유의 퇴폐미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생기를 잃었어도 막을 수 없는 듯하다.
“지금은 볼 수 없다.”
크레크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왜, 왜?! 어디 다치기라도 했나?!”
“아니, 그녀는 체력 회복이 느리다. 며칠 후에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다, 다행이군……. 하, 며칠 후라니…….”
그는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라를 지켜 낸 지 얼마나 됐다고 나라 잃은 표정을 하고 있다. 여울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다가 말고 걸음을 옮겼다.
크레크가 물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밝히지 않았다. 그가 만약 사와코가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됐다.’
여울은 머리를 털고 발을 떼었다. 크레크를 위해 복잡하게 고민하고 싶지 않다. 여울은 머리를 비우고 한국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벙커로 향했다.
벙커 안, 강철로 된 복도를 거니는 중에 전 소장 데이빗을 발견했다. 그는 술 취한 사람처럼 후줄근한 옷을 입고 비틀비틀 돌아다니고 있었다.
데이빗은 누군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야, 너 내가 누군 줄…… 응?!”
그는 뒤늦게 여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싹 펴며 반가워했다.
“오오! 왔는가?”
“여기서 뭐 합니까?”
그는 여울이 뭐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크흐흐, 나야 뭐, 옛 추억을 되살리며 여기저기 돌아보고 있지.”
“사람들이 제지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엄~ 내가 누군데? 지금은 이래 봬도 전 세계에서 이거인 연구자였잖아?”
“다행이군요.”
그는 여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히히, 아, 얘기 들었네. 이번 몬스터 군단을 아주 성공적으로 잘 막아 냈다고? 이거 피곤한 사람 붙잡고 잡설이 너무 많았군그래. 얼른 가서 쉬라고.”
“예, 그럼.”
여울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데이빗을 지나쳐 갔다. 그는 살짝 뒤돌아서 여울의 뒷모습을 보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네가…… 네가 다 망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