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Hunter Killer RAW novel - Chapter 185
185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 퍼진다. 도도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앞에는 피범벅이 된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여인, 레이는 여울의 앞을 가로막으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쉬셔야죠.”
여울은 초점 없는 눈으로 걸어가다가 그녀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고생? 쉬어?”
이번 전투의 끝은 고생이라는 말로 치부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수많은 망자를 보면 쉬어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는다. 살아 있는 것이 맞는 건지, 죽고 나서가 더 편한 건지 헷갈리는 상태다.
레이는 여울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에 조금 당황했다. 그는 언제나 생각했던 반응이 나오지는 않는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여울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재빨리 그의 뒤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방금 전에 알아봤는데 한국은 아무 일 없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별장으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그러고 싶은데.”
여울은 한국이라는 말에 멈칫하고는 매혹적인 미소를 짓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에 미소가 나오는 것도 웃기지만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노력하는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여울은 앞으로 턱짓을 한 번 하며 말했다.
“그렇군, 알았다.”
레이는 처음으로 받은 허락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대통령 집무실 앞, 데이빗은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다급히 들어가는 한 대원을 보고는 발끝을 문에 걸치고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각하, 한국의 북쪽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몬스터 군단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시다시피 지원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어떻게…….”
“이런 젠장…… 지금 그가 없다면 이제 우리는 끝이나 다름없는데…….”
크레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 대원을 보며 말했다.
“약속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곳에는 그의 가족들이 있을 테니. 바로 알리고 가장 빠른 비행기로 출발 준비를 해 둬라. 우리에게도 다시 금방 올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귀를 쫑긋하고는 엿듣던 데이빗은 대원의 마지막 대답에 바로 발을 떼고는 그곳에서 떨어졌다.
‘호오…… 그래? 그럼 곧 한국으로 떠나겠군.’
그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여울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궁리를 했다.
* * *
끼이익.
레이는 자연스럽게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 여울은 침실과 욕실이 있는 2층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할 일 다 했으면 가라.”
그녀는 뒤따라 계단을 오르며 대답했다.
“그 옷, 빨아야 하잖아요? 저한테 맡기세요.”
여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되었으니 가지. 계속 방해할 건가?”
그녀는 철벽같이 자신을 밀어내는 여울을 보며 생각했다. 한국으로 떠난다면 다시는 시간이 없다. 그 전에 그의 마음을 얻어 내야 한다. 자신에게는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열에 아홉은 눈길을 떼지 못하는 아름다운 외모가 있다.
그녀는 여울에게 재빨리 다가가 뒤에서 꼭 껴안았다. 피딱지가 늘러 붙은 등에 그녀의 가슴이 강하게 짓눌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취가 코끝을 찔러 마비될 것 같았지만 이 남자만 얻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정말 내가 그렇게 싫나요? 잠깐이라도 내게 마음을 줄 순 없나요? 오늘 밤만이라도…….”
그녀는 단 하루만을 언급하며 여울의 욕구를 자극했다. 그녀와 같은 외모에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녀의 달콤한 속삭임은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보라의 얼굴이 머리 위로 겹쳐 보였다.
만약 보라가 남자를 만난다면, 그녀가 잠자리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기만 해도 살인을 저지를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여울은 그녀의 손가락을 잡아 풀어내며 말했다.
“이제 내 앞에서…….”
끼이익.
그때였다. 별장 문이 열리며 한 중년인이 들어왔다. 그는 전 UST 소장 데이빗이었다.
“여기 있나? 얘기 듣고 왔…….”
그는 고개를 들어 여울과 레이를 보고는 말하던 입을 멈추었다. 전후 사정이 어떻든 간에 여울은 레이의 한 손을 붙잡고 있었고, 그녀는 가슴을 그의 등에 과도하게 밀착시키고 있는 상태다.
데이빗은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커, 커흠, 전쟁과 여자는 이어지거늘 내가 그 기본적인 걸 잊었군. 마저 하던 일 하시게.”
여울은 레이의 손을 풀어내고는 그를 보며 말했다.
“오십시오. 소장님, 무슨 일입니까?”
여울의 물음에 데이빗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
데이빗이 이곳까지 오는 데는 대략 10분, 이미 연락이 닿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이미 떠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딸 얘기할 때는 여울이 인간처럼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그가 한국 사정을 듣고도 저렇게 태연한 표정을 짓지는 못할 터였다.
데이빗은 이렇게 먼저 정보 전달을 함으로써 그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에 흡족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직 못 들었나보군. 지금 한국에 비상이 걸렸다고 하네. 크레인 대통령도 자네가 갈 비행기를 준비해 놓는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의 말에 여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여울은 뒤돌아서 레이를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레이는 여울과 데이빗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마저 음욕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지만 여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이번 대답만 듣고 바로 알려 주…… 컥!”
여울은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쥐어 잡았다.
으드드드.
목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쥐어 그녀는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뒤집어 까지고 입에서는 거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여울은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와 귓가에 대고 말했다.
“너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방금 수천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그 죗값은 다시 와서 천천히 물어 주지. 그때까지 살아 있어라.”
턱.
여울은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내팽개쳤다.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끄으으으, 커헉! 컥, 커흐윽…… 흐윽.”
여울은 바로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며 데이빗에게 말했다.
“비행장으로 가면 됩니까?”
“그, 그렇겠지? 그런데 내가 부탁이 있네!”
여울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살짝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뭡니까.”
데이빗은 빠르게 그의 옆으로 붙으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 날 데려가 주게. 나의 능력으로 자네의 나라에 도움이 되고 싶네.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여울은 멈칫하더니 그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으며 대답했다.
“그러시죠!”
파앙!
여울은 별장을 나서자마자 바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의 신형은 비행장 쪽으로 금세 날아갔다.
레이는 목을 쓰다듬으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 저 늙은이가 같이 간다고?’
* * *
쿠아아아!!
“으아악!”
집채만 한 오우거가 나무 한그루를 들어 눈앞에 사내에게 내리찍고 있다. 사내는 피하지도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콰직!
강하게 내리쳐지는 나무의 중간 부분이 박살이 나며 날아갔다. 그곳에는 도끼 두 개를 들고 있는 덩치 큰 사내, 담덕이 서 있었다. 그는 머리를 감싸고 눈을 감고 있는 사내를 힐끔 보고는 오우거를 향해 달려갔다.
콰앙! 콰앙! 쿵!
다른 한쪽에서는 대검이 무섭게 휘둘러지고 있다. 날렵해 보이는 사내, 이건수는 디베오크의 대검을 피해 가며 매의 눈으로 빈틈을 포착해 검을 뻗었다.
푸슉!
놈의 겨드랑이에 그의 검이 깊게 박혔다. 놈이 고통스러워하며 대검을 다시 휘두르려고 할 때, 놈의 등에 창이 꽂히며 심장을 뚫고 앞가슴으로 튀어나왔다. 이건수는 살짝 몸을 기울여 놈의 뒤에서 창을 뽑아내고 있는 문솔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나이…… 뒤!!”
촤좌좍!
문솔은 그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옆으로 몸을 굴렸다. 찍어 내리든 휘두르든 둘 다 피하기 위함이다. 그와 동시에 대검이 심장 뚫린 디베오크의 상체를 거칠게 베고 지나갔다.
이건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는 또 다른 디베오크를 향해 달려가며 말했다.
“이놈들 진짜 빡세네.”
문솔은 이를 악물며 그의 뒤를 따랐다. 둘의 합격술이 아니면 쉽게 상대할 수 없는 놈들이기 때문이다.
쿠웅!
건수와 문솔 뒤로 민머리 디베오크 한 마리가 내려섰다. 그들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놈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려는데 시야가 점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놈의 뒤에는 서한이 검을 들고 있었다.
서한 역시 무영과 한 팀이 되어 디베오크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놈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몬스터들보다도 까다로웠다.
비슷한 레벨의 이그리트는 몸집이 커서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느려 9레벨이 된 이후부터는 상대하기가 쉬웠는데, 디베오크들은 숫자도 훨씬 더 많고 속도도 빠르며 사람과 전투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한쪽에는 다수의 헌터가 베헤모스를 상대하고 있다. 그 뒤를 노리고 한 디베오크가 대검을 추켜들며 달려가고 있다.
채쟁! 푸슉!
놈은 갑자기 대검을 내려 검면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그와 동시에 두 개의 검이 검면에 부딪쳐 튕겨 나갔지만 놈의 뒤통수와 정수리를 찔러 오는 검까지는 막지 못했다.
철퍽.
놈은 그 상태로 바로 쓰러졌다. 그 위에는 수언이 둥둥 떠 있었다. 그는 거의 유일하게 디베오크를 혼자서 여러 마리 상대하는 헌터였다.
아니, 또 한 명이 더 있었다.
크락, 디베!!
다른 놈들보다 몸집이 조금 더 큰 디베오크가 위협적으로 포효하며 눈앞에 여인을 향해 대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놈은 대검을 끝까지 휘두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내 놈의 어깨에서부터 가슴을 지나 옆구리까지 진녹색의 혈선이 생겨났다. 그러고는 놈의 몸 반쪽이 아래로 스르르 내려갔다.
놈의 눈앞에서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일본도를 털고 있는 그녀, 사와코는 바로 다음 디베오크를 찾아 날아갔다. 그녀는 마치 일반적인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대부분 일검에 놈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딱, 그 정도였다. 간신히 눈에 띄는 강한 디베오크를 견제하고 있지만 해일처럼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지 못하고 있다.
놈들은 첫 번째 북문을 지나 두 번째 북문을 넘어오려 하고 있다.
이미 첫 번째 북문과 그 구역 안에는 시체로 산을 쌓고, 피로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범벅이 된 은서는 벽 위에서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길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래는 몬스터들로 꽉 차 있고, 저 함락된 북문으로도 끝없이 넘어오고 있다. 시야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자신처럼 절망이 들어차 있다.
‘아빠, 언제 와…….’
그녀가 아빠를 찾는 사이에도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넘어오고 있다. 그때, 뒤쪽에서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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