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012)
1012화 땔감의 이름은 군비경쟁 (5)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의 단맛’에 중독된 것이지.”
자조(自嘲) 가득한 향의 자평이었지만, 유럽 열강들에 비하자면 가장 ‘세련’되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는 시대가 가져다준 행운이었다.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적어도 한반도는 삼한시대의 국가들부터 외부와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비록 망국 직전에는 왜구와 홍건적의 외침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고려 역시 대외 교역이 활발한 국가였다. 때문에, 조선 초기의 백성들은 외부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대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외세에 의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던 조선 후기에는 극도로 방어적인 시화기 만들어졌다.
나라 전체는 물론이고 작은 동리 하나하나가 모두 똘똘 뭉쳐 외부 존재의 접근을 차단한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막아버린 상황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에 만족하면서 생활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단단하게 굳다 못해 동맥경화에 빠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사회와 제도를 혁파하고 밖으로 나서자고 했던 이들은 불순물로 취급되어 묻혀버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조선 초기였기에 여진족을 시작으로 외부의 사람들과 문물이 들어오는 것, 함께 살아가는 것이 수월했던 것이었다. 또 다른 행운은 낙후된 기술이었다. 제국주의의 최고 정점이라 할 수 있었던 19세기, 유럽 열강들이 방대한 식민지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식민지에 비해 우월한 기술, 특히, 통신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신을 비롯한 통신 기술의 우위를 살려 열강들은 식민지 원주민들의 반동적인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국조차도 19세기 주순의 통신 기술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확보한 영역, 특히, 신지에서 무력에 의한 지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적은 인구와 아직 성장 중인 자본으로 상징되는 당시 제국의 체력으로는 무력지배라는 선택지는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위와 같은 시대적 배경에 향의 MSG가 더해지면서 ‘세련되고 공정한 제국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 * *
배경이야 어찌 됐든, 유럽 열강들에게 철갑선은 ‘독이든 성배’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 능력으로는 너무 무리인 것 같은데…..”
“하지만, 다른 놈들이 만들고 있다잖아? 어쩔 수 없어.”
‘나 빼고 모두 다 적’인 성황에서 무리라고 철갑선 건조를 포기한다면 자신만 뒤처지기 때문이었다. 아니, 뒤처지는 것만으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영토를 시작으로 많은 것을 잃고 비참한 신세로 떨어질 것은 명약관화였다.
“이것은 과도한 비약이다! 우리는 우리를 영토와 백성들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군사력이 있다! 낭비다!”
나라를 막론하고 이런 반론이 수시로 튀어나왔지만, 정권을 잡은 자들의 대답 역시 나라를 막론하고 똑같았다.
“식민시를 생각하라! 우리의 조국이 강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식민시를 지키고 타국의 식민시를 빼앗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갑함은 반드시 필요하다!”
향이 뿌린 고축가루와 알박기 덕분에 유럽 열강들의 침략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남은 파이 자체가 작아진 덕분이었다. 덕분에 유럽 열강들은 ‘신민지(植民地)’가 아니라 ‘식민시(植民市)’의 형태로 진출하게 되었다.
식민시의 형태를 취하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험악해졌다. 식민시가 자리를 잡는 곳은 안전하게 배를 정박할 수 있고, 인근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만(灣) 지역이었다. 거기에, 자국에서 개발한 광산과 가까운 곳이면 더욱 좋았다.
문제는 이런 좋은 조건을 가진 곳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당히 덩치가 큰 만의 경우에는 여러 나라가 영역을 쪼개어 식민시를 건설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분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지리 정보를 확보한 아프리카는 그 정도가 덜 했다. 이미 다른 나라가 차지한 곳 외에도 적당한 곳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리 정보가 부족한 테라 – 오스트레일리아 – 에서는 상황이 심각했다. 지금 공유하는, 물론, 속으로는 공유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을 벗어나 더 좋은 만을 찾을 가능성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식민시의 지도자들과 시민들은 근처에 자리한 타국의 식민시들을 노려보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놈들을 쫓아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은 ‘내륙으로의 진출’이었다.
소나 양을 키우기 좋은 곳, 농사를 짓기 좋은 곳 아니면 금광이나 은광을 찾아낸다면 고국에서 더욱 많은 이들이 몰려올 것이고, 이는 병력이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나 저들이나 일이 터진 다음에 소식을 들은 본국에서 지원이 오려면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똑같았다. 그렇다면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해 일을 벌인다면 적들의 지원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본국의 함대가 적국의 함대를 제압한다면 최상의 상황이지.”
“암, 아무래도 본국에 편지를 해야겠어.”
테라에서 보내지는 각종 요청들은 본국의 권력자들의 뜻과도 같은 것이었다. 덕분에 유럽 열강들은 자국 백성들을 더욱 열심히 테라의 식민시로 보냈다.
그리고 테라의 상황은 점점 임계점을 향해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임계점을 향해 가는 것은 테라만이 아니었다. 유럽 본토의 상황도 서서히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제국이 포르투갈과 이탈리아에 넘겨 버린 글로리아-남아메리카-때문이었다.
* * *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주안 2세의 명령에 따라 ‘영광의 대지(terra da gloria)’, 일병 ‘글로리아’에 첫 식민시인 ‘기회의 문(porta de oportunidade)’을 건설하면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경쟁적으로 글로리아 공략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포르투갈이 매우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양항해와 식민시 건설 경험이 많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자본력이 있었다. 이 자본력을 이용해 엔히크 왕자 항구에 있는 제국 조선소에서 원양항해에 어울릴 선박을 주문하고 노련한 선장과 선원들을 구했다.
돈으로 시간과 경험을 산 이탈리아는 빠르게 포르투갈을 추격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두 나라의 사이는 원만했다. 제국과 제국이 건네준 지도라는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미완성의 지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덕분에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불필요한 충돌을 피해가며 글로리아를 차근차근 공략해 나갔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열강들이 끼어들면서 글로리아의 상황도 복잡해진 것이었다.
* * *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제외한 열강들이 글로리아에 입성한 방법은 두 가지, ‘미행’과 ‘강탈’이었다. 첫 번째 방법인 미행을 통해 유럽 열강은 ‘기회의 문’까지 가는 항로를 알게 되었다.
항로 정보를 확보한 유럽 열강들은 교두보 건설을 시도했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테라보다 더욱 험난한 곳이었다. 밀림 때문이었다. 녹음이 우거진 밀림만 보고 교두보를 만들었다가 식수원을 찾지 못해 실패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열강들은 두 번째 방법 ‘강탈’을 선택하게 되었다.
글로리아에서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배들의 항로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글로리아 동부> 남신지 제도 증류소> 아조레스 제도> 포르투갈 또는 이탈리아 본국.
글로리아 서부> 테라> 수에즈.
글로리아 서부> 테라> 아프리카> 포르투갈 또는 이탈리아 본국.
여기서 유럽 열강들이 주로 매복한 장소는 글로리아 동부에서 증류소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열강들도 제국 해군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임무를 맡은 열강의 배들은 증류소를 오가는 상선으로 위장하고 때를 기다렸다.
만약,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배들을 상대로 해전을 벌이다가 제국 해군에게 걸리면 그대로 격침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도박 같은 임무였다. 하지만, 성공만 하면 평생 놀고먹고도 남을 막대한 상금이 걸린 일이었다.
“딱 한 장의 지도일지라도 ‘완전한 지도’가 손에 들어온다면 충분히 남는 도박이다!”
덕분에 남신지 제도와 글로리아 북동부 사이의 바다는 일확천금을 꿈꾸던 이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어떤 이들은 다른 방향으로 ‘강탈’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고용된 선장이나 선원들에게 접근해 상당한 금액을 제시하며 회유한 것이었다.
“지도만 가지고 와도 좋지만, 배까지 가지고 오면 더욱 좋소. 아! 화물까지 실려 있으면 매우 좋고!”
어떻게 보더라도 정당하지 못한 방법이었지만, 그런 도전 끝에 열강들은 글로리아의 해도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철갑선의 필요성과 제국의 존재감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남신지 제도를 순찰하는 제국 해군 전함의 상당수가 철갑함으로 보이는 증기선들로 대체된 덕분이었다. 막강한 화력과 방어력, 기동력을 가진 제국 해군 함선들을 바라보며 열강의 선원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모두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도 저런 배가 있었다면…..”
* * *
이렇게 내부와 외부의 상황이 서로 물고 물리는 최악의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철갑선을 만들려면 대량의 강철이 필요하다.
-대량의 강철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대형 제철소가 필요하다.
-대형 제cjf소를 만들려면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자본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제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지금은 빠르게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
-빠르게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식민시가 필요하다.
-더욱 많은 식민시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해군력이 필요하다.
-더욱 강한 해군력을 위해서는 철갑선이…..
(이하생략, 무한반복)
“난감하군…..”
“옛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가 된 느낌이야.”
서로 상대의 꼬리를 물기 위해 맴을 도는 개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 열강의 관리들은 묘책을 찾기 위해 골치를 썩였다.
“우선 상황을 정리해보자고, 철갑선은 포기할 수 없다. 이것은 확실한 거겠지?”
“포기하자고 그러면 그 다음 날로 내 모가지가 몸에서 떨어져 나갈걸?”
“그럼 철갑선은 그대로 가고, 이를 위한 재원(財源) 마련이 문제로군.”
“그렇지…..”
해법을 찾기 위해 열강의 관리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의 관리들이 답을 찾았다. 우습게도 제국의 상인이 올린 상소 때문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맺은 조약에 의하면 이탈리아 내부에서는 추가로 관세나 통행세를 받지 않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아직도 시행되지를 않고 있어 제국의 상인들이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이는 황제 폐하와 제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상소를 확인한 대사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를 항의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관리들은 해답을 찾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