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64)
짱그라
헬로밤
64화 변수들 (3)
조문단이 북경으로 출발하고 난 다음, 성균관으로 세종의 어명이 전달되었다.
“…해서, 성균관에서 수학(修學)하는 생원들은 과인의 명을 따라 줄 것을 권하노라.“
어명을 대독한 지사(知事)는 유생들을 바라봤다.
“자네들이 이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출사하여 이 조선을 발흥시키는 것 아닌가? 좋은 기회가 왔으니 출사를 미루지 말도록.”
할 말을 끝낸 지사는 명륜당을 나갔다.
지사가 나가자, 자리에 남은 생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형, 어찌할 생각이오?”
“김형, 자네는?”
“나는 출사할 생각이오. 성균관에 머문 지 벌써 5년째고, 내년에 있을 과거도 자신이 없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나 역시 마찬가지요. 부모님 고생하시는 것도 걸리고, 이것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소이다.”
성균관에 머무르는 생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출사를 결심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 출사를 해봤자, 종9품의 미관말직일 터인데, 뭐하러 출사를 하나? 바보짓이지.”
“자네 말이 맞네. 남아로 태어나 출사를 꿈꿨으면 하다못해 종6품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당시 조선의 제도를 보면 대과를 통해 뽑는 이들의 정원은 33명이었다. 그 가운데 수석인 장원급제자는 종6품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성적에 따라 갑을병으로 나눠 품계를 정했다. 그 구분에 따라 가장 낮은 병과 급제자 23명은 정9품으로 시작했다. 가장 낮은 종9품은 잡과나 취재를 통해 들어선 이들이었다.
즉, 지금 저렇게 떠드는 이들은 장원급제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들어 대는 이들 가운데 실제로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균관 유생이라는 간판이었다. 그것만 가지고 있어도 적어도 3대는 양반의 직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면세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관직에 출사하기를 자원한 성균관 생원들의 목록을 정리한 호조판서는 바로 정승들에게 목록을 건넸다.
“모두 몇 명이오?”
“143명이오.”
“흐음….”
호조판서의 대답에 정승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나름 선방한 것 같은데….”“그런데 왜 이리 찜찜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소.”
“동감이오.”
성균관에서 재학하는 생원들의 수는 200명. 그 가운데 143명이 지원한 것을 꽤나 많은 수였다. 하지만, 목록을 작성한 호조판서나 목록을 확인한 정승들이나 모두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결국, 영의정 이직이 목록을 챙겨 들었다.
“어쨋거나, 정해진 기일 안에 나선 이들은 이게 다이니 주상께 보고를 합시다.”
“그래야겠지요.“
* * *
“쯧!”
정승들이 제출한 목록을 확인한 세종의 첫 반응은 혀를 차는 것이었다.
“143명? 성균관의 정원이 200명으로 아는데 나머지는 지원을 안 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왜?”
세종의 물음에 호조판서가 대답했다.
“성균관에 머무르는 이유가 대과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라며….“
호조판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종이 혀를 찼다. 그러자마자 호조판서는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황공하옵니다!”
“경이 황공할 일이 무에 있겠소? 단지, 앞으로 조정을 책임져야 할 인재들이라 할 성균관의 생원들이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오. 이리도 시야가 좁아서야. 쯧!”
세종이 혀를 차자, 황희가 끼어들었다. 일이야 어했든 세종의 말대로 성균관 생원들은 조정의 미래였다.
“아직 경험이 일천하여….”
“그 무슨 헛소리인가! 시야의 넓고 좁음은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자질의 문제요! 경은 조정을 그런 이들로 채울 생각인가!”
세종의 질타에 황희는 납작 엎드려야 했다.
“황공하옵니다! 신의 실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바마마는 어째서 저런? 쯧!”
“황공하옵니다!”
세종의 말에 황희는 머리를 더욱 조아려야만 했다.
그런 황희를 노려보던 세종은 호조판서에게 질문을 던졌다.
“성균관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성균관 생원들은 산학(算學)과 상학(商學)을 배울 것입니다. 기간은 약 석 달로 잡고 있습니다.”
“석 달이라… 지금이 9월이니, 내년부터 전매사업을 시작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그동안 사탕의 재고를 확보하고, 전매소가 자리할 건물도 지을 것입니다.”
호조판서의 대답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하군. 그럼 인원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8도에는 집의(종3품)를 배치할 것이고, 부와 대도호부, 목에는 사인과 장령(정4품)들을 배치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도호부와 군에는 좌랑을 배치할 것입니다.”
“흐음….”
호조판서의 설명에 세종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늠을 해봤다.
“관찰사를 비롯한 지방수령보다는 품계가 낮군.”
“지방수령들의 사기 문제를 참작했사옵니다.”
“그렇군….”
호조판서의 대답에 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사를 시작으로 지방수령들보다 품계가 낮은 이들로 배치하면서 지방수령들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을 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방수령들이 얕잡아볼 정도로 낮은 품계도 아니었다. 그리고 조정과 바로 연결된 기관이니 지방수령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한성의 조정에서 지방관들을 감찰할 수 있는 또다른 수단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지방관들이 편히 자기는 힘들어지겠군.’
하지만, 세종은 계속해서 호조판서를 상대로 질문 공세를 이어갔다.
“괜찮은 방법이기는 한데, 그렇게 보내기에는 해당 품계의 인원이 부족하지 않겠는가?”
“그렇사옵니다. 해서, 근무평가가 좋은 관리들을 골라 우선 가품계(假品階)를 제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품계는 1년 동안의 근무 결과를 보고 진품계로 바꾸거나, 승급 또는 좌천을 결정할 것이옵니다.”
“전매소에 배치되면 최소 1년 근무였던가?”
“그러하옵니다. 아무리 오래 근무해도 한곳에 2년 이상을 배치하지 않을 계획이옵니다.”
전매소에서 전매하는 것은 소금과 사탕이었다. 백성들의 식생활에 거의 필수로 들어갈 것들인 만큼 엄청난 재물이 오갈 것이 확실했고, 앞으로 추가될 일들을 생각하면 관리들을 계속해서 순환시켜 부정을 막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면 그렇게 관리들이 나간 빈자리를 성균관의 생원들이 메우는 것인가?”
“우선적으로 기존의 관리들을 승급시켜 메울 것이옵니다. 방법은 외방(外方)의 전매소로 나가는 관리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균관의 생원들은 교육기간 동안의 성적을 기반으로 가품계를 줘서 업무를 배당할 것이옵니다.”
“성균관 생원들에게 몇 풍까지 줄 생각인가?”
“정9품에서 시작해 정6품까지이옵니다.”
“정6품이라….”
세종은 다시 한번 가늠을 해보았다.
기존 대과 장원급제자가 관직을 시작하는 지점이 종6품이었다. 하지만, 비록 가품계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한 등급이 높은 정6품이었다. 앞으로 관리들을 점점 늘릴 예정이었지만, 그렇게 늘어나도 승급과정의 기준 역시 점점 까다로워질 예정이었다.
호조에서 내놓은 인사방안과 앞으로의 계획을 기반으로 가능성을 점쳐보던 세종이 호조판서를 바라봤다.
“모두가 필사적으로 일하겠군.”
“그것이 목적이옵니다.”
호조판서의 대답을 들은 세종은 결론을 내렸다.
“좋소! 호조판서의 계책대로 행하시오!”
“명을 받듭니다!”
“단! 비록 가품계기는 하나 녹봉을 품계에 맞춰 지급하시오! 일이 힘들면 녹봉이라도 잘 줘야지.”
“각골명심하겠나이다!”
나중에, 이 계획을 들은 향은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21세기나 조선이나 인턴은 필사적이겠구나.”
그리고, 성균관에 남기로 결정했던 이들은 땅을 치고 후회를 해야만 했다.
“정 6품이라니!“
* * *
한편, 호조에 대규모로 신입이 들어오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난리가 난 이유는 ‘면신례(免新禮)’였다.
성균관에서 대규모로 신입이 들어오고, 기존에 있던 관리들도 승급을 하면서 상급자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은 것이었다.
거창하게 술상을 차려 대접하는 것은 기본에 온갖 해괴한 일들이 벌어지자, 사헌부에서 이를 가지고 상소를 올렸다.
“이런 발칙한!”
상소를 접한 세종은 분노를 터뜨렸다.
면신례의 참상은 예로부터 유명했고, 조선의 왕들은 대대로 이 악습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세종 자신도 바로 전년인 계묘년(1423년)에 면신례를 행한 관리들을 처벌한 적이 있었다.
“과인이 면신례를 금하는 명령을 내린 것이 바로 작년이거늘! 이런 발칙한 작자들을 봤나! 호판! 경은 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세종의 호통에 호조판서는 아예 땅바닥에 달라불었다.
“죽여 주시옵소서!”
“정승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세종의 질타에 정승들도 땅바닥에 달라붙어야 했다.
“죽여 주시옵소서!”
“면신례를 행한 그 발칙한 작자들은 어떻게 했나!”
“우선, 가택에서 근신을….”
“상선! 당장 의금부 진무를 불러오라!”
“예, 전하!”
분노한 세종에 의해 면신례를 행했던 관리들은 모조리 의금부 감옥에 갇혔다.
보고를 받은 세종은 이를 박박 갈며 대신들을 노려봤다.
”임금이 내린 명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 법도이거늘… 경들은 과인이 우습게 보이오?”
“죽여 주시옵소서!”
“경들이 과인을 우습게 본 것이 아니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죽여 주시옵소서!”
대신들은 정승들과 호조판서의 뒤를 따라 땅바닥에 달라불어야 했다. 그런 대신들의 머리 위로 세종의 노성이 흘렀다.
“경들은 할 줄 아는 말이 죽여 달라는 것밖에 없는가? 정녕 그리해 줄까!”
“황공하옵니다!”
잠시 후, 호출을 받은 의금부 진무가 편전에 들어섰다. 세종은 즉시 의금부 진무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가택에 근신 중인 호조의 관리들을 추포해 하옥하라!”
“명을 받듭니다!”
분노한 세종의 명에 따라 23명의 관리들이 의금부 옥에 갇혔다. 보고를 받은 세종이 이를 박박 갈며 중얼거렸다.
“이 빌어먹을 종자들을 어떻게 조져야….”
소문을 듣고 편전에 달려온 향은 세종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21세기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1세기에서 대학에 입학한 다음 벌어진 신입생 환영회는 향으로서는 무조건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선배라는 이름의 악당들은 온갖 해괴한 오물들이 뒤섞인 ‘사발주’를 먹이거나 거의 죽겠다 싶을 때까지 술을 먹여댔었다.
‘이 빌어먹을 악습은….’
21세기의 악몽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던 향이 세종에게 말을 걸었다.
“아바마마. 호조의 관리들은 면신례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나 봅니다.”
향의 말에 세종의 표정이 사악하게 변했다.
“그렇구나. 그런데도 인원이 모자라다고 인원을 늘려달라고 한 것인가?”
세종의 말에 호조판서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절대 아니옵니다! 진실로 인원이 부족하옵니다!”
“면신례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데?”
“그것은 소수의 관리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벌인 일이옵니다!”
호조판서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그런 호조판서를 보며 향이 세종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호판 대감의 말을 들으니, 이번에 아바마마의 명을 어긴 불경한 자들은 상당히 능력이 좋은가 봅니다.”
“응? 어째서?”
“판서 대감은 물론이고 다른 관원들 모두 일이 많아 사람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옵니다. 그런 상황에서 면신례를 행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일을 다 처리하고도 시간이 남았다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보면 그들이 상당히 유능한 인재들이었구나!”
“그렇지요.”
향과 세종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대신들은 점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대신들이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을 때, 향은 그들을 이용할 방법을 내놓았다.
“지난 우두 접종을 하면서 조사한 호적자료와 토지 대장 초본의 정리가 아직 끝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옥한 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끝내고 시간이 남아 면선례를 벌일 정도로 유능한 이들이니 그들에게 이 일을 맡김이 어떠하신지요?”
“옳거니!”
향의 말에 세종이 무릎을 쳤다.
“참으로 명안이로다! 호판! 호적자료와 토지 대장 초본의 정리까지 얼마나 걸 린다고 했소?”
“앞으로 5년은 더 있어야….”
“이번 일에 가담한 자들을 즉시 정리작업에 투입하시오! 기간은 1년! 그 안에 끝내지 못하면 바로 유배형에 처할 것이오! 유배 기간은 그들이 끝내지 못한 분량에 비례할 것이오! 1할이 남았으면 1년을, 5할이 남았으면 5년을 유배시킬 것이오! 무슨 소리인지 알겠소?”
“예, 예!”
세종의 말에 호조판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런 호조판서를 보면서 세종이 말을 이었다.
“정리작업을 하는 동안 그들의 녹봉은 8할을 제하고 지급하시오. 가솔들까지 고생을 할 필요는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 잘 알겠소?”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럼 당장 실행하시오!”
“옙! 명을 받듭니다!”
이렇게 해서 조선시대 관리들 사이에서 ‘처형, 유배보다 무서운 것이 문서정리형’이라는 말이 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