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85)
짱그라
헬로밤
85화 여진 (2)
전투가 끝난 다음, 임경석과 그의 부하들은 마을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들과 가축들, 여진족의 시체와 전리품들을 수레에 실어 후방으로 이동할 준비를 진행했다. 수레에 타는 생존자들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한 부하 하나가 임경석에게 말을 걸었다.
“죄다 어린애들뿐입니다.”
“돈이 되는 것이 애들뿐이니까.”
대화를 나누는 임경석과 기병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여진족의 약탈은 기본적으로 치고 빠지기였다.
국경 인근의 개척촌이나 소규모 마을을 타격해 노략질하고 재빨리 도망치기 위해서는 성인들은 거치적거렸다.
또한, 그렇게 끌고 간 조선인들을 사가는 명국 상인들도 어린애들을 선호했다.
어린애들은 쉽게 반항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루기도 쉽고, 성인 여성보다 어린 여자애나 남자애를 더 선호하는 명국인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매장작업 다 끝났습니다.”
“그런가?”
임경석은 불타서 재만 남은 집들 사이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두 개의 봉분을 바라봤다. 여진족들에게 살해당한 조선인들을 남녀로 구분하여 매장한 봉분이었다.
봉분을 향해 고개를 숙여 짧게 묵념을 한 임경석은 말에 올랐다.
“귀환한다!”
“귀환한다!”
여진족들이 타고 온 말들을 포함해 규모가 커진 임경석의 부대는 주둔지를 향해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 * *
“전하,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이옵니다.”
“장계?”
“여진족의 약탈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도승지의 간략한 보고에 세종은 급히 손을 내밀어 장계를 들고는 매듭을 풀었다.
“허어~. 이런.”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장계의 내용을 읽은 세종은 영의정에게 장계를 내밀었다.
“읽어보시게.”
“예, 전하.”
영의정에 이어 다른 대신들도 모두 돌아가면서 장계를 읽었다.
모든 대신들이 장계를 읽은 것을 확인한 세종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참변을 입은 자들이 무단으로 화전을 개척한 유민이라 하나 우리 조선의 백성임은 확실하오. 해당 지역에 파견되었던 파총은 이에 대한 징벌적 토벌을 요청했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도 이를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소,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세종의 물음에 황희가 병조판서 김여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변을 당한 촌락을 덮친 여진 놈들이 어느 부족이오?”
“죽은 놈들의 마구에 달린 장식들과 머리를 묶은 장식들을 보건데, 동과 부족의 방계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동과 부족이면 꽤 큰 부족 아니오? 지금 배치된 병력만으로 가능하겠소?”
황희의 물음에 김여지가 짧게 대답했다.
“동과부 전체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 전투에서 보인 전력 차이를 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흐음….”
“여기서 더 지체한다면 우기가 시작되어 토벌이 힘들어지옵니다.”
병조판서는 즉각적인 토벌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세종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좋은 칼을 얻으면 휘두르고 싶어진다고 했소. 섣불리 움직여서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닌가?”
세종의 지적에 김여지는 바로 대답했다.
“여진족들이란 늙은 여우와 같아,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안 하면 우습게 보고 계속 덤비고, 강하게 나가면 고개를 숙이고 교역을 요청하는 족속들입니다. 제대로 본때를 보이는 것이 훗날을 위해서라도 좋은 방책이옵니다.”
병조판서의 대답에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세종이 결심을 했다.
“좋소. 평안도 병마절도사에게 허가한다고 전하시오. 단, 지금의 병력으로는 약한 감이 있으니 총참모본부에 명하여 훈련원과 평안도의 각 영(營)에서 새로운 총통과 화포를 배치받은 부대를 적절히 선발해 합류시키라 하시오. 그리고 압록강을 넘은 시점에서 한 달 이상을 머무르는 것은 불허한다고 전하고.”
세종의 명령에 병조판서는 깊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병조에 명령을 내린 세종은 정승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승들은 들으시오.”
“세이경청하겠사옵니다!”
“여진족에게 죄를 묻는 것이기는 하나 월경(越境, 국경을 넘음)하는 것은 사실이오. 명에서 이를 가지고 뭐라 할 수 있으니 적당한 답을 준비해 명국에 사신을 보내시오.”
“명을 받듭니다!”
이렇게 해서, 작전명 ‘보수(報讎, 앙갚음)’가 발동되었다.
여진을 정벌할 병력을 구성한다는 말에 훈련원에 있던 많은 군관들이 앞다퉈 자원하고 나섰다.
“소관을 보내주십시오!”
“아니, 소관을 보내주십시오! 목숨을 걸고 작전을 성공시키겠습니다!”
배속을 요청하는 군관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군관들이 자신만만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익숙하게 다루는 신무기들의 성능을 믿어서였다.
그리고 압록강에서 온 보고서가 그들의 자신감을 더욱 고양시켰다.
불과 1개 대(隊)가 포병의 지원도 없이 장총통도 사용하지 않고 2배의 여진족을 아무 피해 없이 전멸시켰다.
그 전공에 따라 대를 지휘했던 초관 임경석은 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도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훈련원의 군관들은 앞다퉈 자신을 보내달라고 외쳐댔다.
* * *
“버이러. 또 당했습니다.”
“어딘가?”
“아구다입니다.”
“이런, 젠장! 벌써 몇이나 당한 것인가!”
“12개 보오이곤입니다.”
“빌어먹을!”
와장창!
부하의 보고에 사루타 부족의 버이러는 앞에 있던 상을 뒤집어엎었다.
동과부 소속의 대소 부족들에게 있어서 이번 조선의 정벌은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1개 집단 당 400여 명의 기병과 100여 명의 화포병으로 구성된 6개의 조선군 집단이 동과 부족과 인근 부족의 거주 지역에 피칠갑을 했다.
난데없는 조선군의 공격에 동과 부족의 부족장들은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어찌된 연유인지 알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이유는 참으로 간단했다.
“방계 보오이곤, 아니 보오이곤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놈들이 조선의 민가 10여 채를 노략질했고, 그에 대한 보복이라고?”
“… 그렇습니다.”
사루타 부족의 버이러는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조선의 정벌이 시작되고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멸족된 보오이곤만 12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사단을 일으킨 보오이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의 보오이곤들 12개였다.
거의 이틀에 한 개씩 보오이곤들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급해진 것은 공격을 받은 동과부였다.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던 그들에게 지금은 농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시기였다. 만약 지금 이때를 놓치면 다가올 겨울에는 끔찍한 상황을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사루타 부족의 버이러를 비롯한 동과부의 버이러들은 명에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명에서 보내온 답신은 ‘불가’였다.
-조선에서 이미 국서를 보냈다. 이는 조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
명의 답신을 받은 동과부의 버이러들은 이를 바득 갈아야했다.
“지금이라도 니루를 구성하는 것이 어떻소?”
“남자들이 다 빠져나가면 농사는 끝장이오.”
“일부씩만 뽑으면….”
“조선군의 전력을 보지 않았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필패요!”
대책을 찾기 위해 모인 버이러들은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놓았지만, 좋은 의견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들이 고심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이미 말한 것처럼 농번기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여성들과 노예들을 동원한다 해도 남성들이 빠지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망해버린 보오이곤들을 위해 전사들을 뺄 수는 없었다.
둘째는 조선군의 전력이었다. 조선군은 여진족을 최대한 죽이는 방향으로 작전을 진행했다. 그 결과, 조선군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생존자들이 거의 없었다. 가까스로 찾아낸 생존자들 대부분은 극심한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중상을 입어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가까스로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보자면, 조선군들은 화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기존에 비해 월등하게 강해진 조선군을 상대한답시고 금쪽같은 전사들을 내놓을 버이러들은 거의 없었다.
마지막 이유는 두 번째와도 연관이 깊었다. 근처에서 대치중인 올랑합 때문이었다. 동과부와 올랑합은 꾸준히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군을 상대한답시고 전력을 상실한다면 이를 그냥 넘길 올랑합이 아니었다.
* * *
“버이러, 퉁그러의 한이 의식을 찾았습니다.”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던 사루타의 버이러는 급히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루타의 버이러가 향한 곳은 마을에 자리한 명국 의원의 집이었다.
반강제로 납치에 가깝게 끌고 온 의원이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왕 선생’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는 이였다.
“왕 선생 어떻소?”
버이러의 물음에 면포로 피 묻은 손을 닦던 왕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힘드오. 아편으로 통증은 잡았으나 오래 가기는 힘드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왕 선생의 말에 버이러는 급히 침상으로 걸어갔다. 가쁘게 숨을 내쉬는 퉁그러 한의 손을 잡은 버이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형제여, 정신이 드나?”
“오, 형제여… 죽기 전에 보게 되어서 다행이오.”
“내 꼭 복수를 해주겠네.”
버이러의 말에 퉁그러의 한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 마시오. 조, 조선 놈들은….”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퉁그러의 한은 채 말을 잊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
붙잡고 있던 퉁그러 한의 손을 내려놓은 버이러는 왕선생을 돌아봤다.
“도대체….”
“듣기로, 조선군이 화포를 사용했다고 하더군.”
“그렇소.”
“단순히 화포가 아니라 총통까지 쓴 모양일세.”
왕 선생의 말에 버이러는 퉁그러 한의 피투성이 몸을 살폈다. 구멍투성이인 몸을 본 버이러가 고개를 흔들었다.
“총통? 구경은 해봤소.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는 물건이던데… 운이 나빴군.”
“총통이란 것이 흔한 물건은 아니니까, 생각지도 못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하아~.”
왕 선생의 대답에 버이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버이러.”
등을 돌려 나가려는 버이러를 멈춰 세운 왕 선생은 조용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듣자 하니 조선군이 돌아가고 있다고 하오. 절대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이 나이에 다른 부족의 노예로 생활하기는 싫으니까.”
“…알겠소이다.”
왕 선생의 집을 나온 버이러는 땅위에 놓인 돌멩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빌어먹을!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한편, 버이러를 내보낸 왕 선생은 한쪽에 놔둔 그릇을 들어 내용물을 살폈다.
그릇 안에는 피로 물든 쇠구슬들과 무쇠 파편들이 잔뜩 있었다.
“총통에 사용하는 탄 치고는 너무 작은데… 게다가 이 철편들은 도대체….”
왕 선생이 고민하게 만든 것은 비격진천뢰의 파편들이었다.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를 맞이한 왕 선생은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착란상태였던 퉁그러의 한이 반복해서 외치던 말이 남아 있었다.
“조선이 용의 힘을 얻었다는 건 또 무슨 말인지…….”
* * *
작전을 끝내고 압록강을 건너 돌아온 조선군은 바로 장계를 작성해 한성으로 보냈다.
장계를 받아 내용을 읽은 세종은 파안대소를 했다.
“하하하! 우리 조선의 병사들이 대승을 했소이다! 대승을! 이런 경사가 있나!”
세종이 기뻐하자 대신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감축드리옵니다!”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가볍게 손을 들어 답례한 세종은 상황을 정리했다.
“이번 정벌로 지난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한 발칙한 놈들을 포함해 대소 12개 부족을 토벌했소. 이 정도면 한동안은 압록강 주변이 조용하겠지?”
세종의 물음에 병조판서가 읍을 하며 대답했다.
“한동안은 압록강을 건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방심하면 언제든지 화를 입을 수 있으니 국경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라 전하시오.”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서 공을 세운 이들과 죽거나 다친 이들에 대한 보상은 준비했소?”
“예, 전하. 공을 세운 자들은 세운 공을 감안하여 품계를 올릴 것이며, 죽거나 다친 자들은 새롭게 정한 법에 따라 매월 곡식과 재물을 지급할 것입니다. 또한 유가족들 가운데 문과나 무과를 응시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지원이 있을 예정입니다.”
병조판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세종은 말을 덧붙였다.
“사상자들에 대한 예우는 물론이고 생활에 대한 처우에 신경을 쓰시오. 이 조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그리되었으니 충분히 대우를 해줘야지. 그래야 다른 이들도 목숨을 걸지 않겠소?”
“각골명심하겠나이다.”
끝까지 당부를 잊지 않은 세종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압록강 주변의 여진족들이 당분간 잠잠하겠지만, 해서나 야인의 여진들도 그럴까?”
세종의 물음에 황희가 나섰다.
“시간이 지나면 그쪽에도 소문이 퍼질 것이니, 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왕이면 겁까지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가을에 불렀을 때, 말을 잘 들을 것 아니겠소?”
“그렇사옵니다.”
세종은 대신들에게 단단히 당부했다.
“여진족과의 일은 이제 시작이오. 차근차근 확실하게 진행해서 우리 조선의 ‘동진(東進)’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야 함을 잊지 마시오. 이는 우리 조선이 반드시 이뤄야 할 대계요.”
“각골명심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