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91
191 어둠과 광명(2)
운현궁에 와있는 이들은 각국에 대사로 보낼 이들이었다.
“그나마 청나라는 환재와 원거가 가봤어도 멀리 영길리국, 불란서국과 미국은 이 나라에서 자네가 유일하게 가봤을 테지. 자네가 이들에게 조언해줄 말을 해주면 하는데······. 그보다 먼저 우담 자네에게 이들을 소개하는 것이 도리겠지.”
흥선대원군은 차례로 그들을 소개해주었다.
“먼저 내 바로 앞에 있는 이 자는······.”
먼저 개화에 찬성하는 쪽은 아니었는지 다소 뚱한 표정을 띠고 있는 중년 남자.
그는 정3품 우승지 관직을 지내고 있는 홍순목이라는 자로 태선도 들어본 이름이었다.
‘어, 이 사람 그거 아니야?’
갑신정변을 주도한 홍영식의 아버지 아닌가.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알고 있었는데 과연 여기서 나온다. 전생의 역사에서는 쇄국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데 영국 대사로 나가게 되다니.
‘이거 참 아이러니 하네.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영길리국, 즉 영국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는 건 흥선대원군도 알게 됐다.
아울러 태선은 처음에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 조선도 부국강병이 가능함을 강조하려고 영국의 국토 크기가 조선과 비슷하다며 강조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영국에 관심 많을 수밖에 없을 테고 자기 측근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겠지.
“흠, 내가 일일이 소개하자니 입이 아프군. 혜인 자네부터는 직접 하게나.”
“알겠사옵니다, 대원위 대감. 나는 조영하일세. 혜인이라고 호를 쓰니 그리 불러주면 된다네.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있는데 이번에 불란서국의 대사로 갈 예정이지.”
그 다음에는 조영하라는 자인데 솔직히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성균관 대사성이라는 자리가 가볍지 않다는 건 안다.
정3품의 관직인데 보아하니 나이가 젊다.
그만큼 능력이 있거나 혹은 배경이 대단하다는 뜻.
‘하지만 능력으로 저 나이에 저만한 관직에 오른 케이스가 흔치는 않으니······. 하물며 능력이 있어도 배경이 없으면 고속 승진은 어려우니 백이 엄청 쩐다고 봐야겠구먼.’
사실 그런 자가 대사로 나가주면 좋기야 하다.
해외에 나가서 선진 문물의 맛을 보고 들어와서 뭔가 해보려고 할 때를 감안한다면?
배경 없이 능력만 출중한 자보다는 어쩌면 능력은 보통만 하더라도 가문이 빵빵한 쪽이 유리하니까.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죽천 박정양입니다. 여기 복경 어른과 함께 미국으로 가기로 되었습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자가 소개하길 자기가 박정양이란다. 정확히 업적이 뭐라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이름은 들어봤다.
갑오개혁 이후 김홍집 내각에서 여러 벼슬을 하고 더구나 조선에서 미국에 전권대사로 활동하기도 하는 인물.
‘그렇지만 방금 말하는 걸 보면 박정양이 메인은 아니고 미국에 대사로 가는 인물은 옆에 복경이라는 자인 듯싶은데.’
미국은 자신의 본거지인 곳이라서 그런지 거기 대사로 가게 될 자가 누군지 더 궁금했다.
“이조참의를 지내고 있는 민승호일세. 내 미국 대사로 부임하게 됐는데 자네가 마침 미국에서 살았다지? 도움이 될 경험을 많이 말해주게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의 이름은 민승호였다.
민씨라는 시점에서 느낌 딱 오지 않는가.
사실 민씨가 진짜로 판을 치는 것은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명성황후가 감놔라 대추놔라 할 때부터지만 그 이전 흥선대원군 때도 민씨 일가는 나름 가문 구성원들이 여러 벼슬을 지니는 명문가였다.
하긴 그러니 민지록의 딸 민자영이 중전으로 간택됐겠지만.
“중전마마 양오라버니 되는 분일세.”
슬그머니 바로 옆에 있는 오경석이 귀띔을 해줬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민씨 일파였다. 미국 건너가기 전에도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PD를 했는데 역사도 꽤 많이 다뤄봤다.
그 기억을 살살 더듬어보니 기억이 조금씩 날 듯 말 듯······. 하다가 안 나는 걸 보면 민겸호라거나 민영익처럼 메이저는 아니었던 듯싶은데.
‘어, 잠깐만. 민겸호랑 한 글자만 다르잖아. 항렬도 같고 형제이려나.’
어쨌거나 민씨 일파라면 정치적인 영향력을 놓고 보자면 라인업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인품은 아직 어떤 인간인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따로 만나면서 떠봐야 할 터였다.
마침 미국이라는 교점이 있으니 명분도 딱 좋다.
‘만약 사람이 괜찮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지. 배경도 괜찮으니 서구 문물을 들여오는데 정치적 백업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겠고.’
“하오면 몇 가지만 말씀을 드리자면······.”
속으로 그런 머리를 굴리며 태선은 대사로 나갈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이들의 성품이 어찌 됐건 나가면 조선 망신을 안 시키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일러주는 편이 맞으니까.
다만 그걸 아는 것만으로 이들로서 뭘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전에도 말씀을 드렸었지만 미국, 영길리국, 불란서국에는 제 친구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가시면 영어를 배운 자를 통역으로 대동하더라도 많이 힘드실 텐데 도움받을 수 있도록 편지를 써드리지요.”
“오, 그래 주겠는가? 사실 그렇잖아도 망망대해에 떨어진 듯 불안했는데 그러면 조금이나마 안심되는군.”
미국은 자신의 본진이니 뭐 말할 것도 없고 영국은 폰손비 경이나 SGE 영국 법인의 존 브라더튼 등에게.
프랑스가 애매하긴 한데 라이온스 경이 그나마 주프랑스영국대사로 있고 SGE 파리 법인이라거나 협업하는 슈나이더 형제를 통할 수밖에.
다만 처음이 어렵지, 조금만 지내게 되면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될 거다.
‘그런 말도 있잖아.’
-나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가 광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나는 내가 갈 길을 분명하게 내다볼 수가 없으나, 머지않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1884년 보빙사로 미국에 간 민영익이 조선으로 돌아가면서 남겼다는 유명한 말.
민승호, 박정양, 홍순목, 조영하 등도 그런 생각을 필시 갖게 될 터였다.
하지만 기왕 할 거라면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가 몇 사람만이어서는 곤란하다.
기왕 알을 깰 거라면 단번에 물량을 쏟아부어서 하는 편이 나으리라.
‘뭣보다 저들이 돌아와서 입헌군주제니 투표이니 의회니 의원이니 하는 말을 하는 걸 흥선대원군이 들으면······.’
경계할 수도 있다. 태도가 돌변할 수도 있으니 시작부터 화력을 쏟아붓는 편이 확실히 낫다.
“아울러 사람은 모이면 더 힘이 되지 않는지요. 대사님들만 보내는 것보다 유학생이나 사절단을 명분으로 사람을 더 보내면 어떠신지요?”
태선은 슬그머니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보면서 떠봤다.
“우담의 말이 참으로 일리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몇 사람만 가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가면 그들도 더 우대해줄 것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으니 기회를 잘 이용하시지요.”
다행히 박규수나 오경석은 기회를 만났다는 듯 바로 지원 사격을 날렸고, 대사로 나가는 이들도 자기들만 가는 것이 못내 불안했던지 사람을 더 붙인다는 말에 반색하며 나섰다.
“맞는 말이기야 한데······. 그 나라들이 허락해 주겠는가?”
역시 국제 관례에 대해서는 영 꽝이구먼.
다른 나라들은 이 나라처럼 유학생으로 가는데 막고 그런 것이 없어요.
거기다 전쟁 중인 국가도 아니고 이제 막 수교를 맺어 잘 지내보자고 하는데 사절단 보내겠다는 걸 안 받겠다는 상식 밖 행동을 할 리도 없고.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대사들을 만나서 설득하여 성사시키겠습니다.”
“호오, 그래준다면야. 그럼 조정에서 그 일의 처리는 자네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예, 물론이옵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대충 대화가 일단락되고 흥선대원군이 자리를 파하려 할 때 으레 나오는 방향을 고쳐 앉는 행동이 나왔다.
“그럼 저희들은 맡기신 일을 위해 이만 물러가도록······.”
심복 아니랄까봐 영국 대사로 갈 예정인 홍순목이 가장 먼저 그 심리를 읽고 일어서려는데.
“아, 참! 불란서국에서는 선교사들도 데리고 왔다지?”
뒤늦게 생각이 났다는 듯 이하응이 말을 던졌다.
“한 번 내 집에도 데리고 오도록 하게. 일단 조약으로 그 나라 종교의 포교를 제한적으로 허락하기는 했네만 직접 한 번 만나봐야겠어.”
시선은 태선을 향했다. 사실 이런 일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를 부르는 일이니 조정에서 외교를 담당하는 예부의 일이었다.
‘다만 따지고 보면 이하응도 공식적인 직함이 없고 따로 선교사들을 부르는 것이니 비공식 채널을 이용함이 맞은 것이려나.’
어쨌든 흥선대원군이 자신을 의지하면 할수록 좋다.
“알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운현궁에 오기 전에 이 나라의 예절이나 상황을 몰라서 자칫 대원위 대감에게 실수를 할 수 있으니 그 전에 제가 한성 여러 곳을 보여주면서 교육을 시켜주려 하옵니다만 괜찮겠는지요?”
“그래, 그러도록 하세나.”
흥선대원군이 흔쾌히 고개 끄덕이며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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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환재 나리.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운현궁 사랑채에서 나오며 태선은 박규수를 불렀다.
“허허, 뭐든 말해보게나. 자네가 조선을 위해 그렇게나 힘써주는데 내 뭘 못할꼬.”
“사람을 좀 구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사람을? 아, 하긴 자네도 태평관에서 나와서 집을 구하고 싶기도 하겠군. 내 미리 헤아리지 못해서 미안하네. 내 쓸만한 녀석으로 골라서 하인을······.”
하인이라니 아무래도 부탁을 오해한 것 같기에 태선은 말을 덧붙였다.
“조선에서 제대로 된 상단을 꾸리려고 합니다.”
“흠, 상단을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자네 미국에서 상인으로 성공했다고 했지.”
“예, 조선에서 제가 생산한 물자를 이용해서 더 제대로 일을 진행하려면 상단을 꾸려야 합니다만 아무래도 쓸만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 말이지요.”
“흠, 무슨 말인지 이해했네. 적극적으로 알아보겠네. 나뿐만 아니라 원거 자네도 당연히 도와야겠지?”
“이를 말이겠습니까, 하하.”
태선이 조선에 와서 평소 친분이 깊은 박규수뿐 아니라 오경석도 흔쾌히 응했다.
“요컨대 상행을 하면서 믿고 맡길만한 사람, 동시에 수완이 좋은 이를 말하는 것이겠지. 내 한번 알아보도록 함세.”
***
태선이 흥선대원군을 만난 날로부터 며칠 뒤.
“와, 웨스 형 조선말 진짜 못 하네요. 내가 웨스 형보다 더 잘하는 게 있네, 하하!”
“이 짜식이, 못 본 새 컸다. 먼저 공부했으면서 으스대기는.”
태선이 중인이나 천민 중에 손재주 있거나 영민한 자들을 모아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
커다란 집을 구매해서 아카데미처럼 갖춘 곳에서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어김없이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그래서야 어디 기술자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조선 사람들이 웨스 형이 하는 말도 못 알아들을 텐데요.”
“이제 나 조선에 온 지 며칠밖에 안 됐다. 거기에 너는 배 타고 오면서도 공부했다며.”
에디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것도 다 운이죠, 뭐. 미국에서는 저보다 웨스 형이 먼저 태선 사장님을 만나서 기술도 배우고 했잖아요.”
“윽, 그건 맞다만······. 쳇, 너 옷은 그게 또 뭐냐.”
“조선 전통 옷이잖아요. 한복이라 하던데 조선 사람들을 잘 가르치려면 복색도 맞춰서 익숙함을 줘야죠.”
“어, 일리가 있는데. 나도 어디서 그 옷 구할 수 없냐?”
웨스팅하우스가 물음에 큰 인심이라도 쓰듯 에디슨이 입을 열려는 그때.
“조선에서 궁궐이나 아니면 우리가 따로 전기 기술자로 쓸 수 있도록 사람들 가르치랬더니 역시 둘이서 만나니까 잡담이나 하고 있었구나.”
창호지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핀잔을 주는 이는 태선이었다.
“아, 사장님 오셨어요!”
“오셨슴까!”
둘은 바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었다.
“안 그래도 사장님이 모은 사람들 가르칠 준비는 다 한 참이었고요, 지금은 웨스 형이 한복 입고 싶대서 제가 아는 데 소개해주려고요.”
“그랬냐. 것도 좋지만 내가 시켰던 일도 잘하고 있지. 전기 기술 가르치는 거 말고 자동차 있잖아.”
“아! 그 대원위 대감한테 선물로 준다고 했던 그거요?”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차를 혼자만 소유하면 누구도 부정 못할 특권이다.
이건 미국에서도 처음 자동차가 나왔을 때 그랬고 영국에서도 그랬었다.
하물며 마차 대신 가마가 다니는 조선은 더욱 그러하리라.
‘문제는 부품으로 나눠서 가져와서 조립도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도로도 없던데 자동차부터 만들어도 돼요?”
“하하, 에디슨 네가 아직도 자동차에 대해 뭘 모르는구나. 애초에 모델T는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단다. 미국이라도 포장 도로만 있는 거 아니잖냐. 미국도 비포장길이 꽤 많다는 말이지.”
조선에 온 이후 에디슨에게 역으로 당하기만 한 마당에 잘 아는 부분이 나오자마자 웨스팅하우스가 바로 역습했다.
“그래, 웨스의 말이 맞기도 하고 또 선물이란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특히 우리 과학이자 문물의 정수인 전기와 전구나 화장실은 이미 선물했으니 다음은 자동차 아니겠느냐.”
“확실히 듣고 보니 그렇네요. 역시 사장님!”
“거기에 너희에게 미리 언질 주려 했지만 이참에 말해주마. 슬슬 아스팔트 도로 공사도 시작해야지.”
“오, 도로 공사까지!”
에디슨의 추임새에 이어.
“들은 바로는 조선은 아직 교통이 많이 낙후되었던데 그럼 자동차도 좋지만 큰 스케일로 철도부터 설치해서 운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역시 미국부터 우등생 웨스팅하우스답게 통찰력이 대단했다.
“그래, 웨스 말도 맞지. 철도 공사도 계획에 있단다.”
“혹시 그에 대해 우리와 의논하시려고······.”
“아니, 사실 오늘 찾아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여기를 보여줄 사람들이 있어서.”
태선이 따라 나오라는 듯 눈짓하자 곧 웨스팅하우스와 에디슨이 뜰로 나섰다.
아무도 없고 어쩐 일인지 대문만 열려있다 싶은데 때마침 수선스럽더니 한 무리 사람들이 들어섰다.
다만 늘 보아오던 조선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 저분들은?”
“사제님들이시네요.”
“프랑스에서 라부르스트 대사님과 같이 온 선교사님들이다.”
지금 뜰로 들어서는 이들은 선교사였다.
“선교사님들이 조선에 대해 아실 수 있도록 여기저기를 보여드리고 있는데 여기서 너희에게 기술을 배우는 이들도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와 자주 접했으니 외국인에 대한 낯가림도 덜할 거고.”
“아, 그렇군요! 즉 수업 참관 같은 걸 하면 되나요?”
뭐 비슷한 느낌이기는 했다.
“요컨대 조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런 걸 대충 보시면 된다.”
“넵, 알겠습니다.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이후 태선이 뭐라고 하자 프랑스어와 영어가 되는 대사관 직원이 통역했다.
그리고 전기 기술을 전수해주는 에디슨의 수업이 내당에서 이어졌다.
뒤에 늘어서 지켜보는 태선, 웨스팅하우스, 선교사들.
‘당장은 문물을 전파하는 것만으로도 반향을 일으키지만 장기적으로,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대중의 인식이 바뀌고 의식이 깨어야만 해.’
즉 임금의 백성이 아니라 국민이 되어야 했다.
그걸 위해 가장 좋은 건 서당이니 서원이니 하는 조선 교육 제도를 철폐하고 의무 교육으로 초중고 시스템을 정착하는 것이겠지만 무리가 있을 터였다.
‘교육이 자칫하면 체제를 흔들 수도 있다는 건 흥선대원군도 모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우회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그 답이 바로······.’
선교사들이었다.
‘전생의 역사에서도 그랬지. 선교사들은 지방 곳곳에 직접 내려가서 종교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사실 태선은 종교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종교 그리고 그것을 전파하려 몸을 던지는 선교사들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도 봐라. 보통의 서구인이라면 꼬질꼬질하면서 때로 멍청한 표정 짓고, 뒤에 있는 선교사들을 기웃거리기도 하는 저 사람들에 가까이 다가가기는커녕 기피할 것이다.
“오,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보이네요.”
“확실히 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저들도 응당 주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그렇지만 적어도 프랑스어 통역해주는 말을 들어보면 선교사들은 사람으로 보면서 뭔가 해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태선은 말을 붙였다.
“저들은 그나마 수도 한성에 살지만 지방에는 처지가 나쁜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가요. 주님이 우리를 이끄신 이유가 있었군요.”
“직접 가서 보시면 알겠지만 위생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처지가 어려우니 선교사 여러분이 도와주십쇼.”
“물론입니다! 그걸 위해 왔으니까요.”
“저도 저만의 방식으로 지역 관리나 유지와 접선하여 선교사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그 조지란 것은 웬만해서는 뇌물을 먹이는 것이 되겠지만 효과는 확실할 터였다.
반대로 청렴결백한 원님이 다스리는 곳일수록 유교 질서를 흩트린다고 선교 행위를 억제하게 된다면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게 시작이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보다 선진적인 세계로 조선을 끌어올리기 위한 밑바닥 작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