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61
061 역습(1)
팔락───!
태선은 책상 한편에 놓인 서류를 펼쳤다.
알렉스와 에드워드가 추가 담보로 내건 유전과 석유회사를 정리한 파일이었다.
“이만큼 많이 남았는데 전부 털어야지.”
몇 번이나 고쳤는지 처음에 비해 유전과 석유회사 목록에 동그라미 표시가 늘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표시가 없는 목록도 적지 않았다.
“태선, 웰트 존 씨 오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들여보내세요.”
그때 샬롯이 기별을 넣었고 이내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남자가 들어왔다.
어색한 인사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손님용 소파에 앉는 것이 익숙한 기색의 그였다.
‘드디어 오셨네. 앤더슨과 에드워드의 남은 돈도 다 털어먹을 수 있도록 도울 구원 투수가 말이야.’
“방금 누가 우선주 아니라고 궁시랑대면서 나가던데 태선이 고생이군요.”
“에이, 그 정도야 별것 아닙니다. 웰트 씨가 하시는 일에 비하면요.”
웰트 존은 전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세상에 빛을 퍼트리는 일 아닙니까. 제가 영광이죠.”
“혹시 체이스 장관님, 장인어른이 도우라 하셔서 그러는 거 아니십니까.”
“아닙니다, 하하하!”
그는 SGE 상장을 처음부터 도와준 뉴욕증권소 특별회원, 동시에 체이스 재무장관의 사위이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 미팅은 전에 말씀하신 그 건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겠지요?”
“예, 2차 주식 발행에 대해 의논드리고 싶어서요.”
“괜찮은 타이밍인 듯합니다. 우선주라도 시장에서는 SGE의 주식을 구하지 못하서 모두 야단입니다.”
웰트가 서류를 꺼내서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SGE 경영상 내부의 정확한 사정이야 모르지만 장인어른이 하는 말씀을 들으니 발전소의 설치나 전신을 잇는 데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시더군요.”
“체이스 장관님이 정확히 말씀하셨네요. 예, 투자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당연히 좋죠.”
말하며 태선은 웰트가 늘어놓은 서류 중 하나를 들춰내 가장 앞에 놓았다.
“그러니 차질 없이 그걸 진행해주셨으면 합시다.”
앞으로 날짜와 그에 따른 일정이 적혀있었다.
“2차, 3차 증자 말이죠.”
조금 달리 말하면 2차, 3차 낚시를.
물론 한 번 속았는데 앤더슨이나 에드워드가 또 속아서 투자하겠나 싶기도 하겠지만.
‘3연벙이란 말도 있잖아. 이번에도 혹시···하다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거든.’
안 속아 넘어갈 수도 있지만 태선으로서는 사실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전구회사의 투자금 늘수록 그만큼 석유회사는 침체하고.
‘그에 따라 유전과 석유회사 매입가는 왕창 폭락할 테니까.’
***
오하이오주 콜럼비아시 한 은행에서 그레이엄 지점장은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서류만 봐서는 아무 문제도 없군요······.”
부하들이 한 번 검토했고 자신이 다시 살핀 서류 너머로, 그레이엄 지점장은 맞은편에 앉은 손님을 슬며시 쳐다봤다.
‘다니엘 앤더슨···이 사람 뉴욕에서 나름 행세하는 사업가라는 것은 잘 알지만 요새 여기저기 대출을 많이 받았다지.’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다니엘 앤더슨은 너스레를 떨면서 말하지만.
그레이엄 지점장 입장에서는 돈을 날려서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지 염려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듣기로만 십여 군데 넘는 은행에서 대출받았으니 아무래도 다 찾아보면 족히 수십 군데는 될 수도 있었다.
‘하물며 뉴욕에 사는 작자가 오하이오주까지 와서 대출받는 것도 이상해.’
하지만 대출을 거절하기에 다니엘 앤더슨은 서류를 완벽하게 꾸려왔다.
하기야 그렇겠지. 뉴욕 거물들은 물론 그 연줄로 이곳 콜롬비아의 재계 인사들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사업가이니 서류 준비쯤이야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 터.
“혹시 제가 여러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 때문에 염려돼서 그러십니까?”
“···큼, 뭐 그런 건 아닌데.”
정곡을 찔리자 그레이엄 지점장은 괜히 헛기침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쪽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자 뜻을 내비쳤다.
“이 돈을 대출받아서 어디 쓰시려는 겁니까?”
“서류에도 적어놨든 주식 투자입니다. 원래 이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말 안 하지만 뉴욕 쪽에는 지금 전구회사가 엄청 이슈입니다.”
“저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스완 제너럴 일렉트릭···이었던가요?”
“예, 얼마 전 상장했습니다. 증자하면서 일시적으로 주가가 떨어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없어서 못 사는 형편이죠.”
‘이제는 한물간 금광이나 유전이나 영 엉뚱한 데 쓰려는 건 아닌 듯한데.’
구체적인 주식 종목까지 언급하니 그레이엄 지점장은 약간 마음을 놓으며 물었다.
“못 사는 형편이라면 지금 대출한들······.”
“아, 그건 걱정마십쇼. 이거 고급 정보인데···그레이엄 지점장님에게만 특별히 알려드리죠. 조만간 3차 증자가 있을 거라는 정보가 있어서요.”
“즉 그 전구회사가 다시 증자하면 그때 대출 받은 돈으로 최대한 매입하겠다는 겁니까?”
앤더슨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니 좀 도와주시죠. 제가 어디 도망칠 사람도 아니잖습니까.”
“뭐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생각해보니 그 전구 회사가 게티즈버그에서도 활약한 거기인 거 같은데 투자처도 딱히 의심스럽지 않고···흐음.”
“뭣보다 이렇게 담보까지 맡기지 않았는지요.”
앤더슨은 늘어놓은 서류 사이에서 토지 문서를 흔들어 보이며 짐짓 말을 이었다.
“이 땅으로 철로가 곧 깔릴 겁니다.”
“···철로가요? 그렇다면 땅의 가치가 달라지기야 하지만 믿을만한 정보 맞습니까?”
“제가 밴더빌트 씨에게 직접 들은 겁니다. 뭐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겠지만 몇 년 내로 무조건 됩니다.”
그레이엄 지점장이 여전히 고민하는 기미를 보이자 앤더슨의 표정이 굳었다.
“정 망설여진다면 다른 곳에 가보죠.”
그러더니 이내 늘어놓은 서류들을 챙기며 그레이엄 지점장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더 급한 투자처가 나오지만 않았어도 저도 이 땅을 담보로 내놓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쯧, 이자만 제법 받을 수 있을 것을 기회가 와도 못 챙기다니.”
이제 서류를 다 챙겼고 앤더슨은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나갈 모양새였다.
하지만 사실 앤더슨은 정말 초조했다.
철로 설치 예정이라고? 밴더빌트에게 직접 들어?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단 대출금을 받아내기만 하면 오케이다.
‘SGE는 무조건 오른다. 조금 기다렸다가 주가 오르면 팔고 차익으로 대출금을 갚고 유전도 되찾으면 된다고.’
그야말로 깔끔한 계획이다. 더구나 태선 킴이란 녀석은 꿈에서나 알려나.
거의 놈의 수중에 들어갔던 것을 빼앗은 유전과 석유회사.
그걸로 담보를 내서 놈이 상장시킨 전구회사의 과즙을 쏙 빨아먹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맛있는 것만 빼먹고 담보로 맡긴 유전과 석유회사를 되찾아 다시 놈을 압박한다는 것을.
‘이거 놈이 휘두르는 무기로 오히려 놈의 목을 조르는 것과 마찬가지잖아.’
전에 타이터스빌에서 부하들 앞에서 자신에게 수모를 준 그 녀석을 엿 먹일 기회다.
더구나 대출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놈의 걸 빼앗아 이쪽 배를 불릴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무조건 해야 된다고.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 것 같은데···제발 넘어와라.’
“······기다려주시죠.”
앤더슨이 돌아서 걸음을 막 떼려는 찰나.
“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그가 바라는 답이 그레이엄 지점장 입에서 나왔다.
‘크큭, 됐구나!’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욱여넣으며 앤더슨은 돌아섰다.
“잘 생각하신 겁니다. 제가 대출을 많이 받았다는 소문을 들으셨다고 했지요?”
어느새 그는 서류를 다시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기세 탔다 싶었는지 다른 은행에서 써먹은 멘트를 어김없이 여기서도 꺼냈다.
“다른 은행들에서는 괜히 대출해줬겠습니까. 대출해준 은행만 스물다섯 곳입니다.”
그리고 다음 은행에서는 스물여섯 군데서 대출해줬다는 걸 근거로 대겠지만.
“서로 이득이니 해줬죠. 자, 어서 그레이엄 지점장님도 대출 서류를 꺼내시죠.”
어쨌든 처음에는 영세하고 허술한 은행에서 대출받고 그걸 굴려 수십 군데로 불리니 그 숫자가 이렇게나 힘이 된다.
사사사삭──!
결국 잠시 후 그레이엄 지점장과 앤더슨은 대출 서류들에 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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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다니엘 앤더슨에게 대출을 내주고 몇 주쯤 지나 그레이엄 지점장은 검은머리 외모의 손님을 맞게 되었다.
갑작스런 만남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지점장님. 그리고 이쪽이 저번에 왔을 때 말씀드린 태선 킴 사장님이세요.”
방금 말한 녹색 눈동자에 금발의 아가씨가 얼마 전에 약속 잡으러 왔었기에.
그녀는 샬롯이었고 태선이 그녀에게 추가로 맡긴 일.
그것은 때가 되면 앤더슨과 에드워드가 대출을 신청한 은행 지점장들과 미팅을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태선 킴입니다. 여러 사업을 하고 있지만 석유업과 더불어 최근에는 전구회사를 상장해서 힘 쏟고 있지요.”
“그레이엄 톰입니다.”
악수하고 소파에 앉으며 그레이엄 지점장은 대화를 이었다.
“이거 정말로 반갑군요. 킴 사장님의 소문은 여기 콜롬비아에서도 들어봤지요.”
“어떤 소문을 들으셨을지 걱정스럽네요. 요새 하도 이상한 소문도 많아서.”
“성공할수록 유언비어야 따라다니기 마련이죠. 그래도 제가 들은 건 좋은 소문입니다. 제 고객님 중에도 태선의 전구회사에 투자한 분이 있거든요.”
그 말을 하는 순간 태선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대출을 받아서 갔죠. 액수도 컸는데 저희 은행 자금이 킴 사장님 회사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
반면 그레이엄 지점장은 공통점을 찾았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뒤늦게 태선의 눈치가 자못 심각해진 걸 보자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실은 제가 찾아온 것도 그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문제···문제라고요? 뭔가 잘못된 일이라도?”
태선은 한층 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회사 입장에서야 어차피 돈만 들어오면 끝이다···라고 넘겨버리면 그만이지만 주식의 소유권을 두고 나중에 압류하니 뭐니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길 바라서요.”
“압류라고요? 대출금을 못 갚아서 압류한 건이야 지금도 수두룩하게 많지만 전구회사에 대해 말씀하는 거면 제가 알기로 한 사람뿐인데.”
“다니엘 앤더슨 맞습니까?”
그레이엄 지점장은 설마 했었거늘, 순간 머리가 어질해지는 현기증을 느꼈으나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답했다.
“그분이 혹시 대출받은 자금으로 뭔가 부정이라도 저지른 겁니까? 하지만 우리는 대출을 해줬을 뿐 이후는······.”
“대출받은 이후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태선이 슬쩍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자 샬롯이 잘 간추린 서류를 그레이엄 지점장의 앞에 내밀었다.
자신과 샬롯을 번갈아 보는 그레이엄에게 서류를 보라고 턱짓하며 태선은 말을 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회사는 그냥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만 이제 막 상장했는데 배당금을 이쪽으로 주냐 저쪽으로 주냐, 왜 저쪽에 주느냐···.
그런 구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요.”
“즉 대출받은 시점에 이미 문제가 있었다···그리고 이건 앤더슨 씨가 담보로 건 땅에 관한 문서로군요.”
“아는지 모르겠지만 거기가 원래는 유전입니다.”
그레이엄 지점장이 놀라며 쳐다보자 태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가봤습니다만 시찰 올 때를 대비해서인지 시추기를 없애고 창고 세우고 유전이 아닌 듯 보이도록 해놨더군요.”
“그런···허! 앤더슨 씨가 그런 말은 전혀 하지 않았었는데.”
자신은 그의 이름값을 믿고 대출해줬거늘 그런 정보를 숨겼었다니.
“다시 사람 보내서 정확히 살펴보십시오. 어쩌면 조사원도 현지에서 매수됐을 수 있으니 더 신경 써서요.”
하물며 지금 태선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허투루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 그래도 유전인 거 빼고 땅으로만 보더라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레이엄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앤더슨···아니, 그에게 대출을 내준 그 당시 자신을 변호했다.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죠. 다만 그걸 감안해도 앤더슨 씨가 우리 회사의 주식을 꽤나 많이 사들였는데 출처가 좀 미심쩍어서 조사하는 와중에 다른 은행에 들러서도 물어봤는데 말이죠.”
아니, 작정하고 담보 물건을 속인 것도 머리가 찌근거리는데 여기서 뭐가 또 있다고?
“혹시 앤더슨 씨가 담보에 대해서 은밀한 정보라며 무슨 말 하지 않았습니까?
···그, 무슨 말을 하긴 했다. 다만 자신에게만 알려주는 거라며 비밀로 하랬는데.
“이 길로 철로가 놓인다거나 그런 말 말입니다. 밴더빌트 씨에게 자기가 직접 들었다거나 하면서요.”
“···커헙!”
헌데 그 말이 태선의 입에서 나오자 순간 그레이엄의 헛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하아, 역시 그랬군요.”
이미 몇 번이나 같은 반응을 봤는지 태선의 표정이나 말투는 오히려 무덤덤했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보다 더 가슴을 헤집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그 정보는 사실무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