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74
074 빅토리아 시대(2)
정식 명칭으로는 ‘시빌워’라고 불렸다.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의 적이 미국이었던 전쟁이 끝나고 신대륙의 나라는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다.
‘그게 바로 도금시대였지.’
다만 정작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그보다 더 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21세기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앞서 국민들로부터 명망 얻은 이미지의 원조는 바로 알렉산더 빅토리아 여왕.
이 빅토리아 여왕의 무려 60년이 넘는 치하 아래 영국은 그야말로 끝판왕이 된다.
“오, 이 신문 좀 보게. 내가 오면서 말했지. 지하로 다니는 기차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올해···아니, 이제 작년이겠군. 아무튼 개통했구먼.”
“앨버트 공이 돌아가신 이후 여왕님께서 몇 년 동안이나 은둔하고 계시다는데 걱정이네요.”
호텔에 체크인 하고 점심 먹으러 나왔는데 그사이 신문을 사와서는 영국 근황을 풀어놓는 새뮤얼 앤드루스와 조셉 스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라에 대한 마음이 아주 한가득이네. 애국심···하고는 또 다르고 애정이라 해야 하려나.’
하기야 자기네 나라가 전세계에서 1등 먹고 있고 여왕까지 즉위하고 있으면 자부심이 넘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수행원 존 브라운이라는 자가 여왕님을 잘 모시고 있다지 않나.”
“그러니 다행이기는 한데···런던에 계신 앨버트 왕세자님의 소식은···여전하시군요.”
“음, 결혼도 하셨는데 이제는 그만 조심하시면 좋을 터인데.”
그리고 태선으로서도 일단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영국 정세를 살필 수 있으니 귀 기울여 들었다.
“원래는 그 전구와 발전기를 여왕님께 헌상할 계획이었는데 어쩔 텐가?”
그때 조셉 스완이 조심스레 태선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여왕님께서 스코틀랜드의 발모럴 성···? 거기 칩거한다고 그러셨던가요?”
“그렇다네. 앨버트 공이 돌아가시면서 상심······. 아니, 스코틀랜드 밸모럴에서 나와서 버크셔 윈저성으로 가셨었나? 나도 좀 아리송하네.”
“음, 아무튼 런던에는 안 계시는 모양이네요.”
“맞아. 그래서 지금 총리도 중요한 일 있으면 여왕님을 뵈러 가야 한다더라고.”
말을 하면서 조셉 스완은 스스로도 여왕님을 뵙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런 그에게 여왕님을 뵈러 밸모럴성이든 윈저성이든 일단 가보자! ···라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미국을 오래 비워둘 수는 없으니 영국에도 오래 머무는 건 곤란해. 더구나 여기 있는 동안 만나볼 사람들도 있고.’
다행인 건 조셉 스완이나 새뮤얼 앤드루스나 실망하면서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그럼 런던 왕실 서열 1위는 왕세자님이시겠군요.”
“엄밀히 말해 버킹엄궁은 비어있지만 명목적으로는 그렇지. 아무튼 그러면 가져온 전구와 발전기는 앨버트 왕세자님에게 헌상할 건가?”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래야 겠지요. 하지만 연줄이 닿는다면 빅토리아 여왕님께도 뭔가 선물을 헌상해드리죠.”
“선물이라. 전구 말고 우리가 가져온 것이라곤 보일러의 실험 모델뿐이거늘.”
“뭘 보낼지는 천천히 생각해보지요. 지금 상심이 큰 상태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미력하나마 여왕님께 용기를 북돋워드릴 수 있도록 말이죠.”
그거 좋다는 듯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가 호응했다.
“훌륭한 생각이구먼! 태선 자네는 역시 대단해.”
“어차피 다음에 영국으로 또 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부디 힘을 얻으셔서 다음 방문에는 여왕님을 뵐 수 있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다만 한 가지 문제는 새뮤얼 앤드루스는 여왕만 관련되면 이따금씩 지나칠 정도로 환상에 빠지고는 했다.
하기야 본래 역사에서도 빅토리아 여왕이 방문할 날이 올지 모른다면서 대저택을 지었으니···물론 그런 일은 없었지만.
‘샘, 그렇지만 회사를 위해 고생을 많이 하고 있으니 당장은 아니라도 이번 역사에서 꼭 여왕님을 만나게 해드리죠.’
마음 속으로 새뮤얼 앤드루스에게 그런 약속을 하며 태선은 슬슬 식사를 마쳤다.
“자, 그럼 아직 하루가 반나절이나 남았네만 오늘은 뭘 하고 보낼 건가?”
“아까 런던의 정세를 알아보자고 말했었지?”
태선은 둘에게 그 일은 맡기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화이트하우스 씨에게 답장 오면 바빠질 텐데 모처럼 영국에 왔으니 고향에서 시간도 조금 보내시고 겸사겸사 샬롯도 런던은 처음 와봤다는데 구경도 시켜주시고요.”
“음, 잠깐만요. 그 이야기는 태선은 같이 안 간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샬롯이 바로 물었고.
“그러면 우리도 좋네만 태선 자네는 어쩌고?”
“맞아요, 태선도 런던은 처음이잖아요. 혼자 다니기에 길이 복잡할 텐데.”
이내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도 우려를 표했다.
“나오면서 보니 호텔 로비 응접실(The Drawing Room)이 괜찮더군요. 다과도 내주고 하니 거기 있으려고요.”
“빨리 답장이 올지도 모르니 화이트하우스 씨 답신을 기다리려는 겐가.”
“것도 그렇고 이래저래 계획 정비할 것도 있던 차에 마침 자리가 마음에 들어서요.”
말은 얼렁뚱땅 했지만 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 시기 영국 인사들 중에 제한된 시간 동안 누구를 만날지.
어떤 우선순위로 교분을 맺어야 향후 사업을 유리하게 작용할지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찰스 배비지는 꼭 만나보고 싶어.’
1791년 태어난 그는 본래 역사의 흐름에서는 7년 뒤인 1871년에 생을 다한다.
그리고 본래 수학자인 그는 지금쯤 왕립협회로부터 연구의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터였다.
‘바로 컴퓨터의 원조···기계식 컴퓨터의 연구를 위해 말이지.’
물론 최초의 컴퓨터는 21세기처럼 모니터가 있고 그래픽이 화려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계산기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배비지는 해석기관과 차분기관으로 기능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처리를 위해서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15톤짜리 차분기관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그건 나도 영국 과학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어. 스팀펑크 느낌도 나고 꽤나 멋있었지.’
다만 태선이 21세기에서 본 차분기관은 정작 이 시대에는 완성되지 못했다.
자금만 있으면 완성할 수 있도록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지만···그렇다, 돈이 없어서!
‘협회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지. 뭐 당장 보기에는 무지하게 돈만 먹고 이렇다 할 게 없어 보이니.’
그렇지만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 발전의 먼 테크트리까지 시야에 담고 있는 태선이었다.
그걸 위해 컴퓨터는 무조건 필수였다.
자신이 살아생전에 반도체···까지는 무리일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될 수 있는 한 컴퓨터의 테크트리도 올려두고 싶었다.
‘그게 자동차나 선박 기술이라거나 다른 분야에도 접목되면 진짜 환상적이겠지.’
뭣보다 배비지는 나이가 많은지라 어쩌면 몇 년 내로 다시 영국에 올 일이 없으면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영국은 아니지만 스웨덴에는 다이너마이트의 개발자인 알프레드 노벨도 있고.
맥심 기관총을 발명한 맥심 역시······.
‘···아니지, 맥심은 1880년 이후에 영국에 왔나? 미국에 있을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그 외에도 동유럽 어딘가 김나지움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영입 1티어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도 있고.
‘아, 그러고 보니 모건도 있었구나. 미국에 있는 건 아들 모건이지만, 사실 영국에 있는 아빠 모건의 지시대로 따르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들이 존 피어폰트 모건, 약칭으로 JP 모건이고 아버지가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
그렇다고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을 만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의 배후에 있는 한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을 키워낸 이 시대 또 한 명의 거물···조지 피보디.’
모건 부자와 다르게 조지 피보디는 그리 욕심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 앞에서 영국 여왕에게 건배 제안을 할 정도로 약간 여왕 빠돌이 기질이 있긴 하지만.
‘모건과 계약 기간이 끝나자 자신의 투자금을 빼고 은퇴를 선언하지. 거기다 아예 회사에서 자기 이름을 빼라고 하고.’
당시 정확한 이유는 자신이 모르지만 아마도 모건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업적인 술수에 염증을 느껴서 그랬던 게 아니려나 싶다.
만약 그게 맞다면 자신이 피보디를 만나서 영국에서 사업에 힘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마침 1864년···올해가 조지 피보디가 모건과 손절하고 은퇴······.’
“태선이 안 가면 저도 그냥 같이 호텔에 있을게요.”
태선이 한창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상념에서 벗어난 건 샬롯의 목소리를 듣고서였다.
“안 그래도 괜찮아요. 샬롯도 런던이 처음인데 구경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가더라도 태선과 같이 가고 싶어요. 게다가 그런 정리를 하는데 제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전 비서실장이니까요.”
샬롯이 짐짓 양 허리춤에 주먹을 얹고는 안 그렇냐는 듯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샬롯 양이 저러는데 우리도 놀고 있을 수는 없지.”
“우리도 런던에서 인맥을 이용해서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알아 올게요. 혹시 특별히 원하는 정보라도 있어요?”
샬롯의 그런 발언에 뭔가 느꼈는지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도 말했다.
“샬롯, 펜과 메모지 좀 잠시 줘볼래요?”
“네? 네, 여기요.”
스스스스슥────!
주저 없이 메모지에 몇 개의 이름을 적은 태선은 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 혹시 알 수 있으면 명단에 있는 사람들 어디서 뭘 하는지 알아봐주세요.”
***
브라운스 호텔에 돌아와서 태선은 응접실에서 곧바로 생각을 정리하려 했다.
다만 뜻밖의 일이 생겨서 그 계획은 어긋나게 되었다.
“아, 오셨군요.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 편지를 전했는데 바로 답장을 주더라지 않습니까.”
점심 먹고 돌아왔더니 화이트하우스에게 편지를 전해달라 부탁했던 호텔 직원이 답장이라며 건네주었다.
‘이렇게 빨리?’
일단 이 호텔에 머무르며 직원에게 또 시킬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팁을 주었다.
“오, 감사합니다! 뭐든 시킬 일이 있으시면 불편해하지 말고 맡겨주십시오.”
호텔 직원을 보내고 태선은 바로 편지를 뜯어봤다.
〈 킴 사장님께서 런던에 오셨다니 반가운 소식이군요. 몇 번의 편지를 통해 킴 사장님과 나눈 대화는 제게 정말로 좋은 경험이자···
···당장 킴 사장님을 뵙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유감입니다.
일전의 편지에도 말씀드렸듯 왕실과 계약이 있어서 지금 웬즈베리의 회사가 아니라 앨버트 왕세자님이 마련해준 런던 첼시 사무실에 있습니다. 킴 사장님이 방문하신다면 언제라도 기쁘게 맞이하여 홍차 한 잔이라도 내드리겠습니다.
-조지 화이트하우스 〉
“뭐래요?”
태선은 직접 볼 수 있도록 편지를 건네주면서 덧붙였다.
“저번에 의논한 대로 왕실과 맺은 계약이 뭔가 계속 발을 붙잡고 있는 모양이에요. 다만 우리가 방문하는 건 허락했군요.”
응접실에 앉을 자리를 물색하려던 태선은 호텔에 방금 들어왔거늘 곧바로 다시 나갈 듯 몸을 돌렸다.
“가시려고요? 계획을 정리할 것이 있으시다더니?”
“계획이야 밤에 호텔에 돌아와서 해도 되니까요. 그리고 화이트하우스 씨를 직접 만나서 문제가 뭔지 알면 앞으로 계획을 보다 정교하게 세울 수 있으니 가봐야죠.”
“그럼 당연히 저도 같이 가봐야겠네요. 마차 잡을까요?”
이제는 아예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듯 당연히 따라나서는 샬롯이었다.
물론 태선은 그런 그녀의 태도가 싫지 않았다.
아니, 싫기는커녕 굉장히 의지가 되고 정들 정도였다.
‘하긴 저번에 에드워드였나. 그 자식이 마차로 돌진해서 샬롯이 입원했을 때 소중함을 정말로 절실하게 느꼈지.’
그러니 험한 일은 웬만하면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차는 제가 잡을 테니 늘 그렇듯 샬롯은 곁에서 잘 보좌해주세요.”
“후후, 태선에게 보호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네요.”
살폿 웃는 샬롯에게 옅은 미소를 보여준 뒤.
태선은 조셉 스완과 새뮤얼 앤드루스가 일찍 돌아올 때를 대비하여 호텥 직원에게 간단한 전언을 남긴 뒤 호텔을 나와서 마차를 잡았다.
“킴 사장님이셨죠? 편지 보내셨던 곳에 가시는 거면 제가 마차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아니, 직접 나설 것도 없이 직원이 잡아주었다.
“베일, 여기 킴 사장님 좀 태워주게나. 베일 저 친구가 런던 길도 잘 알고 말 모는 실력도 최고거든요.”
“하하, 윈스턴 씨 부탁인데 최고로 모셔야죠. 그럼 지금 바로 마차를 가져오겠습니다요.”
‘역시 팁 주는 만큼 서비스 하나는 확실하네.’
돈이 없으면 모르겠지만 태선에게는 몇 푼 팁 주는 것이야 아까울 것도 없으니 차라리 더 서비스 받는 것이 나았다.
“자, 어디로 모실까요? 런던 어디든 모르는 길은 없거든요. 말만 하십쇼!”
베일이랬던가, 호텔 직원 윈스턴이 추천한 남자가 곧 호텔 앞에 마차를 가져오자 태선은 그에게 편지의 주소를 보여줬다.
“첼시 샤이엔워크 96번가, 이 주소로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