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344)
344_연합국의 검 (3)
“독일군이 아라스로 오고 있습니다.”
“규모 미상의 독일군 병력이 발랑시엔(Valenciennes)을 거쳐 캉브레 북동쪽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다 아는 지명들이구만.
돌고 돌아 다시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
지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군이 프랑스를 무너뜨리기 위해 준비했던 .
1절, 2절을 넘어 뇌절의 경지에 접어들고 있지만, 지리적 조건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이 뇌절은 전술적으로 합리적 선택이었다.
문제는 내 손패가 딱히 재미없단 점인데.
독일군에 맞설 준비.
이 거대한 한판을 따내려면, 나는 우선 프랑스 땅을 밟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온갖 적폐와 부패가 판을 치는 이 개노답 연합군을 수술대에 올려야 했다.
나는 정말 물 대신 커피를 들이켰고, 내가 그렇게 카페인을 물먹는 하마처럼 빨아대자 밑의 사람들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카페인을 빨아댔다.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고 거기에 또 찬물을 부어 멍 때리며 빨대를 쭈압쭈압거리기 완벽한 김치맨의 상징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처음 주문했을 때, 총사령부가 자리 잡은 트리아농 팰리스(Trianon Palace) 호텔 직원들은 반쯤 미친놈 보듯 날 바라봤다.
‘이건 커피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래요? 그럼 커피가 아니라 카페인 보충제라고 합시다.’
대머리 아저씨가 덜덜 떨면서, 울먹거림을 애써 억누른 채 내게 통사정을 하더라. 누가 보면 내가 독일군인 줄 알겠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미국인 참모들은 죄다 나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은 듯 이 아아의 참맛을 깨달았고, 이제 직원들은 커피의 미학 따위 내다 버린 채 내 입맛에 완벽히 세팅된 아아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커피 하나 내 입맛대로 먹는 것도 이 지경인데, 다른 일들은 어떻겠나?
그 첫 삽을 뜨기 위해, 나는 한밤중에 파리로 불시에 들이닥쳤다.
“병참 사령관은 어디에 있나?”
“지금 숙소에 쉬고 있습니다.”
“숙소가 어디지?”
“조지 5세 호텔입니다.”
“몇 호실?”
다 알고 왔는데 왜 이리 대답이 느려. 하늘 같은 5성 장군 앞에서 이리 로딩에 시간이 걸리다니. 그 마빡의 하드디스크를 뽑고 SSD를 달아줘야 하나?
“몇 호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지금 장난하나?”
“그, 호텔 전체를 사령관이 쓰고 있기 때문에―”
“불러. 당장. 잠옷 차림이든 뭐든 상관 안 하니 당장 튀어나오라고 해.”
병참 사령관 존 리(John Clifford Hodges Lee) 장군은 보급 임무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얼마나 스페셜리스트냐면… 마른걸레도 물티슈로 만들 수 있는 노예주 마셜이 인정한 특급 스페셜리스트지.
마셜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나는 오늘 그를 탈탈 털어버릴 작정으로 나왔다.
“총사령관님, 이 늦은 밤에 어인 일로―”
“벨트부터 똑바로 차시지요.”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옷을 정리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머니 안에 있던 럭키 스트라이크 담뱃갑을 꺼냈다.
피우면 피울수록 어째 정이 들긴커녕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게 그 에스컬레이트되는 분노인가 뭔가인가.
“예. 말씀하시지요.”
“내가 틀림없이 수송 역량이 부족하니 병참 사령부는 추후에 옮기자고 말했었는데, 왜 그 잠깐 사이에 사령부가 파리에 새 둥지를 튼 겁니까?”
“알렉산더 총사령관 대리가 허가했습니다. 보급 역량 극대화를 위해, 약간의 딜레이를 감수하고―”
“지금 일선 야전 부대는 보급품을 수령하지 못해 난리인데 그게 그만한 가치가 있소? 뭐, 있을 테니 알렉산더가 허가했겠지. 그럼 이 호텔을 통째로 혼자만을 위해 전세 낸 것도 그가 허락한 일입니까?”
그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런 사소한 일로 트집 잡으니까 어처구니없어?
“제가 이 호텔을 쓰고 있는 건 맞습니다만, 각종 회의나 문서 작업을 위해 쓰고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효율상의 문제로―”
“그렇구만. 그 말대로라면 사람들이 꽤 많이 들락거릴 텐데, 주차장은 또 통제하셨다면서요? 아무튼 다 필요해서 한 거라고 치겠습니다.”
나는 부하들보고 잠시 나가 있으라고 손짓한 뒤,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천천히 주물러 주었다. 왜 이렇게 경기를 일으키셔. 고생 많다고 이 총사령관이 몸소 친절을 베풀어주고 있는데.
“리 장군.”
“예.”
“잘 아시겠지만, 영국군은 마켓 가든의 대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몽고메리를 제물로 바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국제―외교라는 것이 참 묘해서, 연합군이 잘 굴러가려면 너무 상대방의 체면을 상하게 하는 것도 좀 곤란해요. 그렇다고 몬티의 대가리를 안 자를 수도 없으니, 보통 이럴 때는 ‘아, 우리도 약간 잘못이 있군요.’ 하면서 좀 급수 되는 사람의 목을 같이 자르는 게 가장 베스트랍니다.”
“저는 맡은 임무를 충실히 했습니다!”
그가 반쯤 비명처럼 항변했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요즘 영국에 오래 있어서 그런가, 미국식 영어가 귀에 잘 박히질 않네.
“어쨌거나 보급에 문제가 발생한 건 사실 아닙니까. 충실히 하셨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건 억울합니다.”
“며칠 전에 내가 직접 파리의 암시장을 좀 둘러봤습니다. US ARMY 마크가 선명한 말통이 온 사방에 굴러다니고, 시장통에 오고가는 상품들이 하나같이 우리 육군 군납품이던데.”
“병사 개개인이 안 쓰는 물건을 내놓거나 일부 잡놈들이 횡령하는 것까지 제가 어찌할 순 없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아. 그야 잘 알지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장군을 찾아와서, 음… ‘양해’를 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인 유감은 없어요.”
어깨를 주무르는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내가 응? 이 마성의 지압 능력으로 아저씨들 어깨도 풀어주고, 우리 도로시 여사님도 풀어주고. 어어. 자꾸 왜 어깨에 힘이 들어가. 풀어, 풀라고.
“이 산제물이라는 게 말입니다. 원래 아랫사람들의 원망과 미움을 많이 받은 사람의 대가리를 잘라서 제단에 바쳐야 그 효과가 탁월해요. 기강도 잡고, 울분도 풀어주고, 사기도 끌어올리고. 이게 그 동양의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스킬인데―”
“이럴 수는 없습니다! 대체 왜 이러시는지 차라리 이유라도 알려주십쇼! 그런 영문도 모를 소리 말고 제대로 된 이유!”
“에이. 왜 이러십니까. 부상병들 가득한 야전병원 시찰 나가셔서 팔다리 날아간 우리 애들까지 사열시켰다면서요? 도대체 얼마나 업보를 가득 채우셨으면 나한테 투서가 다 날아옵니까.”
실은 투서 따위는 없었다.
대신 프랑스가 좀 많이 꼴받았지. 미군 행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내가 오자마자 툴툴대는 소리부터 들었다.
“본국으로 돌려보내 드릴까요?”
“…앞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더욱 신중을 기하겠습니다.”
“신중을 기하면 어떡합니까. 잘하셔야지요. 잘.”
“옙.”
“귀관의 인성에 관해선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패튼도 써먹는 새끼니까. 대신, 그건 인성을 메꿀 능력이 있을 경우에만 한합니다. 헤드라인을 블링블링하게 장식할 제물로 쓰는 게 귀관을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겠단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별로 재미없겠죠?”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현지 민심을 수습하고 전방으로의 보급이 원활하도록 모든 프로세스를 개선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총사령관님의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습니다.”
“입에 묻은 립스틱 자국 지우시고. 밤에 너무 힘쓰면 뼈 삭습니다.”
나는 재떨이에 꽁초를 대강 비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름을 가득 쳤으니, 이젠 일이 매끄럽게 돌아가는지 지켜볼 시간이다.
* * *
프랑스에 발을 디딘 미군 2백만 중 실종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12군단의 참극은 제외하고, 전선에서 교전 중 실종된 이들도 제외하고… 후방에서 뿅 하고 사라진 놈들이 다 어디로 갔겠나. 탈영이다.
당연히 탈영한 새끼들이 어디 건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리는 없으니, 어디 촌동네에서 춘식이가 되어 농장일 하고 있으면 또 모를까 상당수는 범죄자로 새 삶을 시작한 것으로 추산.
노르망디의 항구에 하역되어 일선으로 향하던 군용 담배 중 450만 보루가 ‘증발’했다. 중간중간에 누군가가 다 짬짜미 꺼억한 것이다.
가볍고, 필수품에 가까우며, 경제가 무너진 세계 어느 곳이든 사실상 기축통화로 통하는 담배야 뭐 그렇다 치자.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진짜 죽는 것도 아니니.
기름.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기름에도 손을 대고 있다. 잡히면 진짜 히틀러식 수제 비누로 만들어버릴라.
프랑스 현지의 민심도 수습하고 범죄조직도 소탕할 겸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진행되었고, 아예 군인 범죄만을 취급하는 별도 조직을 신설해 내 바로 아래에 두었다. 진짜 못 해먹겠네 시벌.
“몸은 좀 괜찮으시오?”
“염려해주신 덕택에 많이 나아졌습니다.”
국무부 직원들을 닦달하고 D.C.에 마음의 편지를 신나게 쏴댄 끝에, 프랑스 경찰과 군이 미국인 범죄자를 ‘일시적’으로 억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할 수 있었다. 머리털 다 뽑히겠네.
이만큼 프랑스에 듬뿍 선물을 안겨줬으니, 이제 오가는 정을 좀 실현할 시간이었다.
“독일군이 다시 한번 마른강의 기적을 맛보고 싶어서 달려오고 있지만, 너무 걱정하진 마시지요. 저놈들을 금방 따끈따끈한 프랑스 포로수용소로 신속 배달하겠습니다.”
“킴 장군을 믿고 있으니 걱정하지는 않고 있소.”
“하하. 제가 얼마나 프랑스를 사랑하는지 잘 아시잖습니까. 안 그래도 꿈에 놀렛 장군께서 나와 ‘유진아… 나다. 유진아, 일어서라. 상대는 나치스야. 이 샤를 놀렛을 죽인 나치스야! 어서 일어서!’ 하면서 막 채근을 하시던데―”
“적을 아미앵까지 끌어들인다 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아미앵의 영웅이 되겠군요.”
내가 암만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 해도, 또 국토가 짓밟히게 생긴 드골의 얼굴이 펴질 리는 없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제 프랑스군도 침략자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셨습니까?”
“물론이오. 프랑스 제1군이 완편되는 즉시 적들을 격퇴하기 위해 움직일 게요. 우리 군을 선봉에 세워준다면 참으로 고맙겠소만.”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상의드릴 점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리저리 빙글빙글 말을 돌리고 또 돌린 끝에 내가 용건을 꺼내자, 찌푸려진 드골의 얼굴은 이제 엉망진창으로 구긴 휴지마냥 참으로 그로테스크해졌다.
“보급품을 내놓으라고? 줬다 뺏겠단 게요?”
“실은… 요청하신 것보다 물자가 더 오지 않았습니까?”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입니다. 크헤헤. 어차피 미군에 줘봐야 못된 몬티가 다 훔쳐 갈 게 뻔한데, 굳이 거기에 미군 꺼라고 마킹해 놓을 필요 있겠습니까?”
“이, 이, 이!! 처음부터 말을 해줬으면!!”
“그럼 영국인들 귀에도 들어갔겠지요. 보급만 재개되면 다시 빵빵하게 채워드리겠습니다. 뭐, 무기나 식량이 급한 게 아닙니다. 탄약 일부랑 기름만 좀 밀어주시지요.”
그 많던 물자가 다 어디 갔을까?
물론 몽고메리가 한 큰술 떠가고, 이런저런 범죄자 잡놈 새끼들이 작은 스푼으로 열심히 떠가긴 했지만….
털릴 걸 뻔히 알면서도 곧이곧대로 보급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거든.
“이럴 수는 없소! 우리가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자 아니오!”
“그, 서류상으로 무상 증여했다고 표기된 품목도 제법 있을 겁니다. 거, 다 아시면서….”
“그럼 우리는? 우리는 기름 대신 올리브 오일이라도 넣으란 말이오?”
“어차피 지금 상당수는 신편 중이잖습니까. 남는 야포 상당수를 프랑스군 쪽으로 밀어드릴 테니, 차라리 1~2개 군단을 정예로 확실하게 편성하시죠. 마르세유에 새 물자 들어오는 대로 다 채워드립니다. 진짜로. 하나님 걸고.”
노발대발한 드골을 어르고 달래길 몇 시간.
나는 이번에 확실하게 프랑스군을 챙겨준다는 약속을 한 후에 기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음, 역시 사람은 기름이 있고 봐야 해. 괜히 천조국이 기름 나오는 땅을 찾아 민주주의를 배달한 게 아니라고.
총사령부로 복귀하기가 무섭게 오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배달되었고, 나는 원두의 맛을 음미하며 오늘의 신문을 집어 들었다.
[몽고메리의 어두운 민낯!]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총사령관.” 희대의 폭언!] [그에게 인간미란 없는가? “눈물겨운 부성애.” 상관에 대한 거침없는 조롱… 의 충격적 망언!]아.
역시 엘 꼴라시코야.
보는 맛이 탁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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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트리아농 팰리스 호텔은 1차대전 당시 연합군 총사령부로 쓰였으며, 이 호텔의 대연회장에서 베르사유 조약의 조건들이 논의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주 클레망소의 이름을 따 지금도 이 호텔의 연회장 이름은 ‘클레망소 볼룸’입니다.
2차대전에서 이 호텔은 영국 공군 사령부였다가, 프랑스 점령 후 괴링이 탐내 루프트바페 본부로 쓰다가, 연합군이 상륙한 후 연합군 총사령부가 되었습니다.
파리의 조지 5세 호텔 또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