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521)
521_경애하는 서기장 동지 (1)
1949년.
한-일 연합 군사 훈련이라는 희한한 짓거리로 그 첫발을 내디뎌서일까.
이승만 행정부 제2기는 날이면 날마다 버라이어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시 공무원이란 놈들이 뇌물을 처먹이지 않으면 그 묵직한 궁뎅이를 의자에서 떼지 않는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서울시 시장 해먹고 있는 장택상(張澤相)이가 그 뇌물을 상납받고 그 새끼들 뒷배를 봐주고 있답니다! 대통령은 당장 나와 이 의혹에 해명하십시오!”
“그게 사실이라면 즉각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나서-”
“대관절 건국한 지 10년도 안 된 나라에서 조선시대 말기에나 벌어지던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조만간 매관매직도 하고 황구첨정도 하겠습니다그려?!”
근대 국가는 하루아침에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국민적인 문맹 퇴치 운동,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의 대대적 지원, 일자무식을 수치로 여기고 배운 사람을 존경하는 유교 문화, 한반도인 DNA에 단단히 박혀 있는 ‘배우고 익혀서 과거 급제하면 팔자 한방에 대역전’ 메타 등등.
조선인, 그리고 황국신민이었던 이들이 한국인으로 바뀌기에 5년이면 충분했다.
저 수면 아래에서는 신분 상승, 그리고 잘살아 보겠다는 욕망이 마치 화산처럼 폭발하고 민주 국가의 주인의식이 자리를 잡아나갔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먼저 뒷주머니에 관심 갖는 것 또한 실로 당연한 인간세상의 법칙.
권력 만지는 관료, 신흥 자본가, 국회의원 등이 짬짜미 붙어먹고 나랏돈 후루루 짭짭 해먹는 일이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졌고, 시민들 또한 옛날처럼 그 꼴을 두 눈 뜨고 지켜만 보는 대신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날이면 날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진짜 핵폭탄은 다른 곳에서부터 터졌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농민 민심 외면하지 마라!”
“정부와 국회는 즉시 추곡수매법을 통과시켜라!!!”
여전히 한국의 으뜸가는 산업은 농업, 그중에서도 쌀농사.
미국과 중화민국이라는 초거대 국가에서 쏟아지는 저렴한 농산물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자, 마침내 농민들의 원성이 폭발 임계점에 다다랐다.
“이러다 우리 농민들 전부 다 죽게 생겼습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습니다. 지금 정부에선 농민들 전부 죽으라고 재촉하는 겁니까?”
“농민들 표심을 따라야 하는 의원님들의 입장은 저도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현 경제 정책을 고수해야만 합니다.”
“뭐요? 당신만 애국자고 우리는 당리당략에 미친 모리배야?!”
“이 나라에 두 번째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있을 것 같냐고!”
국회의원들이 입에서 불을 뿜든 말든, 김도연(金度演) 재무부 장관은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일본이 경제를 재건하고 있어요! 대관절 이 나라가 일본보다 잘난 게 뭐가 있습니까? 인구가 더 많습니까, 자원이 더 많습니까? 가진 거라곤 맨주먹밖에 없는 나라가 잘 먹고 잘살려면 산업화, 근대화라도 빨리 해야지요!”
“세계 각국의 부흥은 상공업의 부흥에 달려 있고,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의 환경상 농업의 비중은 축소되어야만 합니다. 빠른 산업화를 위해서는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로 올라와야만 합니다.”
“상공부 장관! 지금 농촌을 죽이겠단 말로 들립니다만?”
“영국이나 일본의 사례만 보셔도 알 수 있습니다. 저곡가 정책 없이는 절대 산업화를 달성할 수 없는-”
“계집이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어디서 설쳐대고 있어! 니가 죽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대단한 희생하는 것처럼 나불대냐!”
재무 장관의 말에 부연하고 있던 임영신(任永信) 상공부 장관이 난데없는 이 원색적인 폭언에 무어라 반응하려던 찰나.
“흠흠. 다들 진정하시지요.”
문교부 장관 가라사대 다들 진정하라 하니 머리끝까지 차오른 노기가 쭉 내려가고 순식간에 국회가 평온을 되찾을지어다.
외국인이 봤다면 혹시 문교부 장관이란 직책이 교황 비슷한 자리인가 착각할 만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때를 놓치지 않고 재무 장관이 연이어 발언했다.
“지금 우리 대한이 일본에 앞서는 건 오직 하나뿐입니다. 바로 김 장군님이 계신다는 것 말입니다.”
“그, 재무 장관님. 그 말씀은 조금-”
“죄송합니다만 문교부 장관님, 저는 진심입니다. 지금 일본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미국과의 파이프라인이 탄탄하고 혈맹의식, 동지의식이 있다는 점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이 이점은 점차 사그라들겠지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지금이 조국을 근대화시킬 유일한 기회입니다.”
현 대한민국 관료 계층의 성골은 누가 뭐라 해도 독립운동한 사람들이었고, 그다음 진골은 동양교육발전기금 출신으로 미국 먹물 먹고 귀국한 인텔리들.
김도연과 임영신 모두 일본 유학, 미국 유학과 동발 장학금, 독립운동이라는 테크트리를 모두 탄 성골 중의 성골이었고, 이들의 의견은 단순한 개인의 신념이 아닌 대한민국 인텔리 계층의 공통된 뜻이기도 했다.
– 20년 내에 일본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산업화를 달성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게 뻔하다.
– 어떠한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근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청사진이 있었다.
허허벌판에서 근대화를 이룩한 모범 케이스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한반도의 이웃 국가 아니었던가?
낙후된 나라 러시아를 양대 패권국가로 격상시켰던 스탈린의 5개년 계획.
그리고 이에 영감을 받아 시행되었던 만주국의 경제 개발 계획.
누구보다 미국물을 잔뜩 마시고 온 이들이 주목하는 정책이 빨갱이 본진의 청사진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얄궂은 역설이었지만, 대공황 때 스테이크를 먹을 수 없어서 미트로프를 만들어 먹던 나라와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되는 조선이 같은 처지일 리가 없잖은가.
한편, 이승만은 이와 별개로 야당 인사들과 접견을 갖고 있었다.
“이것 참. 귀한 분들 얼굴을 뵙게 되니 참 반갑습니다.”
“별로 안 반가울 거 다 아니 그런 말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원내 제2당으로 도약한 사민당.
그 당수인 여운형과 당 중진인 김도연(金度演)이야 당연히 올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사민당만큼은 관리를 해줘야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했으니.
하지만 박용만은 왜? 농촌 운동에 전념할 뿐 정치엔 일절 얼씬도 하지 않던 그가 왜 갑자기 동행했단 말인가.
혹시 김유진의 메신저로 온 게 아닌가 속으로 짐작만 할 무렵, 여운형이 입을 열었다.
“농촌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는 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또 그 이야깁니까? 그거라면 나보단 경제에 훨씬 더 박식한 장관이나 다른 관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이촌향도를 유도하고 저곡가 정책을 취해 옛 일제가 그러했듯 산업화를 이룩하자. 가슴 아프긴 하지만 우리 사민당이 해당 정책이 품은 대의 자체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러면 굳이 회동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소만.”
“불만과 분노로 고조되어 가는 농촌 민심에 최근 이질적인 무언가가 끼어들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막말로 농촌 표심 잡겠다고 설치는 게 누군가. 사민당 아닌가. 무지렁이 촌놈들 가슴에 헛바람 주입해선 정부 시책에 반발하게 만드는 망종들 같으니. 시뻘겋지만 않다뿐이지 다홍색도 결국 빨갱이 아종이 틀림없었다.
이승만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겠다는 듯, 박용만이 짐짓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잠시 당쟁은 접어 둡시다. 내가 올라온 것도 그 때문이니.”
“…변죽은 그쯤하고 본론부터 꺼내보시오.”
“농촌에 야학하는 청년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공부하는 책 중에 이런 게 있었소.”
박용만은 책 한 권을 꺼내 이승만에게 내밀었다.
“?”
그는 저질 갱지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이 책을 대강대강 넘겨 보았다.
“자세히 읽어보면 기절하실 텐데.”
“내 공사가 참으로 다망해서 말이오. 이 책 내용이 뭐요?”
그런데 말은 안 하고 모두가 입을 다물고 머뭇거리는 게 아닌가.
문득 짜증이 치민 이승만이 무어라 하기 직전, 김도연이 눈을 질끈 감고 사탄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중공, 그러니까 모택동 사상(마오이즘)이오.”
승만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콱 깨물었다.
***
1949년 12월.
전 세계의 이목은 모스크바로 쏠리고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인민들은 스탈린 동지의 70번째 생일을 성대하게 맞이하기 위해 열과 성을 바쳐 스스로 잔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12월 21일은 실로 위대한 날이 될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는 만장일치로 20% 생산성 향상을 결의하고 완제품 승용차를 예상치보다 50대 더 생산하기로 하였습니다. 툴라의 석탄 광산은 조국의 번영을 위해 연초 계획에서 추가로 70만 톤의 석탄을 더 채굴하기로 선언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 동지에 대한 경의와 충성을 표하는 거국적인 서명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어제부로 서명에 참여한 인원수가 천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각지에서는 스탈린 동지의 동상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폴란드에서는 스탈린 동지의 전기를 사고자 하는 인민들의 행렬로 연일 서점이 미어터지고 있습니다. 폴란드인들은 그들을 구원해주고 올바른 길로 이끈 스탈린 동지를 진심으로 흠모하고 있으며, 어떻게 하면 스탈린 동지의 교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클럽과 서클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새로이 창설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장폴 사르트르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이 공산주의의 지도자 스탈린 동지를 위한 축전을 보내 왔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 또한 파쇼 도당들을 격퇴하고 인민들을 해방시킨 스탈린 동지에 대한 충성 맹세를-] [위대한 스탈린의 영도가 우리 소비에트 연방 인민들을 공산주의의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했습니다. 위대한 스탈린 동지의 70번째 생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그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은, 오직 우리의 친구이자 어버이이자 스승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경애에서 우러나온 헌신입니다!]웃음벨 그 자체.
체코 인구가 1,200만쯤 할 텐데 천만 명을 돌파해? 폴란드가 스탈린을 배우고 싶어? 한국인이 히로히토의 안녕을 위해 신사참배하러 가는 소릴 해대고 있네. 아무래도 미쳤나 봐요.
스탈린은 본인이 소원하던 대로 신의 반열에 올랐다.
과거 러시아인들은 독실한 정교회 신도로서 그리스도를 섬겼지만, 이제 차르의 노예 대신 소비에트 연방의 인민으로 거듭난 그들은 참으로 신실하게 어버이 스탈린 동지를 섬기는구나.
저 꼬라지를 보니 스탈린을 위한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레닌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서기장님 쓰신다’ 한 곡조 뽑아주면 그 강철의 콧수염이 얼마나 좋아할꼬.
전 세계 공산권 이곳저곳에서는 스탈린 동상을 세운다, 도시나 산 이름을 스탈린으로 바꾼다 야단법석을 떨어댔고 모스크바를 향해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대표단 중에서는 개인 자격의 유진 킴도 끼어 있었다.
미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호랑이 아가리로 기어들어 간 뒤 코에 후추를 팡팡 세게 뿌리고 이빨을 실로폰처럼 딩가딩가 두들기는 꼴 아닌가.
“반갑습니다, 킴 동지. 드디어 모스크바에 오셨군요.”
“하하하. 초대를 받았는데 오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요. 그동안 별일 없으셨습니까?”
내 여상한 인사말에 몰로토프는 일부러인지 떨떠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저야 늘 잘 지내고 있지요. 우선 먼 길 오시느라 여독이 쌓이셨을 테니 미국 대사관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중충한 겨울의 모스크바는 희미한 눈발을 흩날리며 자본주의 반동분자를 반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