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0
청풍표국 최강식객 010화
10화. 한 줄기 흑풍에 혈루가 내리다(2)
불길한 미소와 함께 누리끼리한 눈을 번들거리는 것이 흡사 독사의 그것 같았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꽁지머리 사내의 눈빛에 홍 표두의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글쎄요. 저희는 별 관심이 없는 내용이라서요. 뭣들 하느냐.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표두의 말에 다들 엉덩이를 떼려는데….
“크윽!”
“끄어억!”
갑자기 짓눌러오는 압력에 표사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지를 못하고 몸만 부들거렸다.
두혜련도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걸 옆에 있던 계두천이 손을 휘저어 그녀를 옭아매던 기도를 상쇄시켰다.
그 모습을 보며 꽁지머리의 사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아, 거 참 성미도 급하시군. 내가 알기론 그대들이 뭔가 좀 알 것 같기도 한데?”
음흉한 웃음을 짓는 두꺼비상 사내의 말에 홍국헌은 그제야 이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일부러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당 내부는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때 그 고요함을 깨며 두혜련이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두혜련이 당차게 물었다.
“뭘 원하시죠? 이것들은 소주에 있는 기루에 납품할 것들이라 내어드릴 수가 없습니다. 저희를 믿고 맡겨주신 이들과의 신뢰와 관련된 것이라서요. 어차피 돈을 원하시는 거라면 제가 충분히 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만.”
두혜련은 이미 이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걸 눈치챘고, 홍 표두의 행동에서 이들의 무위가 자신들보다 높다는 걸 유추해냈다.
그리고 옆에 앉은 계두천이 느낌이 좋지 않은 자들이라며, 웬만하면 충돌을 피하는 게 좋겠다고 전음을 날렸기에 오히려 깨끗하게 인정하고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려는 것이었다.
‘후우. 다행이군.’
보통 첫 표행에서 괜한 자존심을 세우다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지금 두혜련의 행동은 꽤 괜찮은 대응이었다.
등 뒤로 이런 상황을 듣고 있던 임요성조차 그녀의 행동에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낼 정도였다.
돈을 원하는 이에게는 돈을 주고, 신뢰는 잃지 않는.
돈은 좀 잃긴 하겠지만 표국에 있어 돈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모두가 지키기는 힘든 내용이었다.
그리고 표두인 자신이 나선 것보다는 두혜련이 나선 것이 차후에도 보기가 좋았다.
홍국헌이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계두천도 자신의 말을 어린 여인이 알아듣자 내심 미소를 지을 때, 꽁지머리의 사내 역시 감탄하듯 내뱉었다.
“호오. 어린 처자가 제법 머릴 굴릴 줄 아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정중히 신분을 밝혀야겠지? 우린 이곳 하북성 일대에서 활동하는 혈루쌍괴라고 한단다.”
“혀, 혈루쌍괴!”
표사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고, 계두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혈루쌍괴(血淚雙怪).
그들 둘을 보면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뜻으로 지어진 별호로, 그들의 무위는 절정에 근접한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둘의 합격술이 절묘하여 어지간한 절정고수 정도는 둘이서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정도였다.
일류부터 고수로 쳐주고, 절정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정점에 이른 무인이라는 뜻으로, 절정에만 이르러도 어디에 가더라도 대우받고 살 수 있었다.
시종일관 대화를 주도하는 꽁지머리의 사내는 혈괴라 불렸고, 맞은편에서 조소를 짓고 있는 두꺼비 얼굴의 사내는 누괴라 불리었다.
흑도의 악인들로 그들의 악행에 무림맹에서도 따로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혈루쌍괴의 악명은 높았다.
그리고 이들의 잔머리가 돋보이는 부분이 무림인들만 골라서 패악을 부리는 통에, 관무불가침으로 무림인들의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 관에서는 이들에 대해 애써 모른 척하는 분위기였다.
무림맹에서 따로 현상금을 걸긴 했지만, 분장과 역용을 통해 워낙 도망치는 솜씨가 신출귀몰해서 그들을 잡으려는 이들을 교묘히 피해 다녔다.
지금도 미리 앉아서 객잔 안에 있는 자들의 면면을 확인한 다음에야 자신들을 밝히는 치밀함을 발휘했다.
그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좌중의 모두가 크든 작든 기함을 토해냈다.
자신들을 알아보며 놀라는 모습을 은근히 즐기며 혈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쩝. 평소라면 처자의 임기응변이 빛을 발했겠지만, 이거 어쩌나 우린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 보석들 중에 포함된 어떤 것이 필요해서인데.”
그의 말에 두혜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건 누군가가 그 패물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었고, 이들 역시 의도적으로 자신들에게 접근했다는 말이다.
“어떤 고인분께서 원하시는 물건이 있군요. 그게 뭐죠? 그것 하나라면 내어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뭐, 좋은 판단이긴 한데, 우리도 몰라. 그게 뭔지. 우리도 너희들이 운송하는 패물에 우릴 고용한 이가 원하는 물건이 섞여 있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그걸 다 가져가는 게 목적이겠지?”
“그런 억지가….”
그녀가 주먹을 부르르 쥐며 분한 표정을 지었다.
두혜련을 비롯한 표행단 일행이 혈루쌍괴의 악랄함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임요성의 눈은 구석의 벽에 붙어있는 현상금 수배 전단에 머물러 있었다.
신기하게도 벽에 붙어있는 수배 전단의 두 번째 줄에 혈루쌍괴의 용모파기와 함께 악행이 나열되어 있었다.
무림인들을 상대로 한 부녀자나 유아 납치, 절도뿐만 아니라 살인과 강간 등 지금까지 피해를 입히거나 죽인 이들의 수가 수십을 넘어간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건 모두 무림인들이라 관에서 협조를 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천하에 몹쓸 놈들이로군.’
수배 전단을 보는 임요성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은자 백 냥이면 중하급 무사들이 나서기엔 매력적이었지만, 상급 고수들이 나서기엔 부족한 듯 보였다. 자신이 보더라도 그러했으니까.
대개의 고수들은 세가나 문파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으니 굳이 이런 돈을 받고자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혈루쌍괴를 잡으려면 적어도 절정의 중위는 넘어서야 했는데, 그 정도면 한 성을 무대로 활약할 수 있는 성급무인에 드는 고수들이다.
그들 정도면 굳이 이런 이들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만했다.
현상금 액수가 애매하다 보니 이들이 이렇게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다시 뒤쪽에서 혈괴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결정했나?”
“…그럼 물건을 모두 내어드리면 우린 살려주시는 건가요?”
물건은 차라리 내주어도 좋으나 사람은 절대 내어주지 말라는 아비의 격언이 떠올라서일까.
두혜련은 그래도 표국의 딸로서 꽤 훌륭한 자질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는 혈괴의 눈이 기이하게 반짝였다.
“아니? 그래도 너흰 다 죽일 거야. 괜히 후환을 남겨서 좋을 건 없잖아? 지금 너희를 다 죽여버리면 집에 소식도 늦게 들어갈 테고. 우린 물건을 처분하고도 충분히 몸을 숨길 시간이 되지.”
“그, 그런! 그럼 애초에 우릴 다 죽이려고 한 거잖아요!”
“어, 맞아. 풉. 푸하하하!”
마치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행동에 두혜련을 비롯한 표사들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홍국헌은 그냥 다 뒤집어엎고 한 많은 인생 여기서 그냥 하직해버릴까 하는 생각에 칼을 쥔 손이 움찔거렸다.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매한가지였다.
저 악마들이 자신들을 죽이도록 기다리니 차라리 자신들이 먼저 나서는 것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 확률을 높이는 길이었다.
계두천 역시 품에 안고 있던 검을 만지작거리며 둘의 기도를 읽고 있었다.
둘의 명성은 어느 정도 풍문에 들어 알고 있다. 절정의 고수조차도 잡아낼 정도로 둘의 합격술이 좋다는 걸.
자신은 절정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검기의 발현과 활용에 미숙했다.
홀로 저들을 상대하긴 힘들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 홍국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은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짐작했다.
“갈!”
계두천이 앉은 자리에서 먼저 선공을 날렸다.
외마디 호통과 함께 품에 안고 있던 검이 뽑히며 일직선으로 꽁지머리 혈괴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그 뒤를 받치며 홍국헌이 식탁 옆에 세워두었던 박도를 뽑아 들고 누괴를 덮치려 할 때였다.
팡! 쉬악!
“크악!”
“꺅!”
쇄도하던 계두천의 검이 누괴의 채찍에 붙잡히고, 혈괴의 검이 목부터 가슴까지 깊은 검흔을 새기며 지나고 나자 선혈을 내뿜으며 쓰러졌다.
털썩.
계두천이 그대로 고꾸라지며 미염랑이라 불리며 낭인으로 이름을 떨치다 이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낭인의 삶도 같이 마감했다.
홍국헌은 그 모습을 보며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공의 격차가 있기에 계두천보다는 좀 느리긴 했지만, 그가 얼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계두천이 죽어버려 채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임요성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성급했다.
물론 기습의 묘를 살리려고 한 것은 알겠지만, 자신들은 표사들이 스물 가까이 되었다.
금방 달려든 호위가 거의 혈루쌍괴와 엇비슷한 경지였기에 좀 더 차륜전으로 몰고 갔다면, 표사들이 좀 다쳤을지언정 누구 하나 목숨은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흐흐. 왜? 어서 달려와서 내 목을 쳐보라고. 응? 응?”
혈괴가 킬킬거리며 자신의 목을 수도로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놀려댔다.
두혜련은 계두천이 저들에 의해 죽는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저렇게 사람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 아….”
비록 그렇게 친분이 깊지는 않았으나 아버지가 거금을 들여 모시고 온 식객이었다.
표사들 외에 따로 무사대도 만들어 무사대주를 맡길 거라는 아버지의 포부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관심도 갔고, 가끔 자신의 호위도 해주었기에 고맙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피를 바닥에 쏟아내는 그의 모습에 두혜련의 얼굴히 하얗게 질려갔다.
이때 적막을 뚫고 객잔의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아빠! 할머니가 언제 들어오냐고 물어보래!”
열 살쯤 되었음 직한 한 소녀의 등장. 그녀의 시선 끝에는 고광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있었다.
“으으… 아, 안 돼….”
“호오~!”
혈괴의 번들거리는 눈이 소녀를 향했고, 다급히 달려간 고광춘이 소녀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혈괴가 이미 자기 쪽으로 소녀를 끌어당겼다.
“대, 대협…! 제 여, 여식만은….”
“잠깐 있어 보게.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능글능글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소녀를 쳐다보자 소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흐흐. 아가야, 이런 촌구석 객잔의 딸보다는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어떠냐? 그럼 여기 있는 것보단 몇 갑절 화려한 삶을 살게 될 게다.”
언뜻 들으면 강호의 고수의 제자가 되는 아주 그럴듯한 말로 들렸다.
그러나 실상은 악인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그 말 속에 담긴 진의는 자신의 노리개가 되라는 말이었다.
자신의 딸을 바라보며 혈괴가 얼굴 들이밀자 고광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릴 적 아이를 낳다가 어미가 죽어버린 이후, 그야말로 애지중지하며 키워온 딸이다.
아이가 잘못된다면 정말 목을 매달고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혈괴에 의해 양어깨가 붙잡힌 소녀 역시 두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더니 누런 액체가 다리 사이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두 눈에선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끅… 끄윽….”
혈괴의 기세에 목구멍으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거참. 이 아저씨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나만 따라가면 팔자 고치는 거야.”
청풍표국의 표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들 중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닌 계두천이 어떻게 죽는지 똑똑히 보았기에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들처럼.
사실 주인와 딸의 사정이 딱하긴 했지만, 지금 몇 번 본 인연으로 금방 자신들 중에 가장 고수였던 미염랑의 죽음을 본 그들로서는 죽음이 뻔한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 이… 파렴치한…! 애는 놔줘요!”
오히려 그 많은 남정네들 중에서 두혜련이 겁 없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 당찬 모습에 뒤돌아 앉아 있는 임요성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에이, 넣어둬. 어차피 죽을 텐데. 그리고 난 나이 많은 여자한테는 취미 없걸랑?”
“이익!”
혈괴의 능청스러운 이죽거림에 두혜련의 눈에 핏발이 맺혀갈 때, 나직한 말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그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