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undless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366
364. 도장 깨기 (5)
무림맹(武林盟).
그야말로 이곳은 정파 무림 그 자체라고 표현하는 게 가능했다.
사실상 무림의 정파(正派), 혹은 백도(白道)라고 부르는 측면은 무림맹에서 기원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모두들 본맹의 긴급회의에 참석해주어 감사를 표하오.”
흔히들 강호의 호사가들이 말하듯 무림맹은 모든 정파의 연합과도 같은 곳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다 보니 강호에 대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무림맹이 들썩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본맹의 맹주, 천강운이라고 하오.”
이번에 일어난 일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미 이곳에 있는 이들을 다들 나를 알고 있을 터요.”
드넓기 그지없는 무림맹의 회의실.
천강운은 회의실의 상석에 앉은 채 고개를 돌려보며 눈빛을 번뜩였다.
현재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이니 하는 곳 중 대부분이 이 긴급회의의 소집에 참여하여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
“아마도, 이곳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한 번씩 면식을 익힌 사이들이니 말이오.”
심지어 그마저 일반적인 무림맹의 회의와는 구성원이 달랐다.
어느새 회의실 곳곳에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하나 같이 노인들이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절세고수(絶世高手).
심지어 그것도 전대(前代)의,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의 인물들로 하나 같이 권력만이 아니라 괴물 같은 힘마저 지닌 진짜배기 실력자들이라는 것이다.
그에 천강운이 눈빛을 침잠하듯 했다.
‘설마 이 노괴들의 얼굴들을 이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참…….’
하나, 그것도 잠시.
“긴급회의를 소집하게 된 안건 자체는 하나이외다.”
어느새 천강운은 눈빛을 서늘하게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무림공적의 토벌이외다.”
천강운은 회의실 탁자에 올려진 차를 홀짝이고는 말을 이었다.
“화산파, 그리고 종남파 같은 섬서의 현문정종(玄門正宗)의 문파들을 시작으로 구파일방 중 여섯이나 흉수 하나에게 당했소.”
사실상 전대미문의 대사건과도 같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수백 년 가까이 살아온 노괴들뿐이므로, 무림의 살아 있는 역사의 증인들쯤 되는 위계다.
그러나 이 수백 년 묵은 괴물들마저 하나 같이 작금 같은 사태는 본 적도 없었다.
천강운은 회의실 내부를 둘러보며 이 사태의 심각성을 설파하듯이 저 수백 년 묵은 노괴들에게 부탁했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 또한 그 잔악하기 그지없는 흉수의 표적이 될 것인즉, 전대의 노사들답게 힘을 빌려주길 바라오.”
물론 형식뿐인 부탁이긴 했다.
어차피 그 구파일방 중 여섯을 없앤 흉수의 마수를 피해야 한다면 힘을 합쳐야 할 테니까.
천강운은 무림맹의 주인이고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무림 세력들은 모두 무림맹의 일원이니, 전대의 절세고수들이라고 해도 그 말을 쉬이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따졌을 때나 그렇다는 것일까.
“내가 어째서 그래야 하지?”
순식간에 어느 보라색 의복을 입은 노인이 거절의 의사를 표명했다.
오대세가(五大世家) 중 하나인 사천당가(四川唐家)의 태상가주, 당낙운이었다.
생물독이며 광물독이며 수많은 독을 먹어 수련한 끝에 기어코 독인(毒人)의 경지에 도달하여 절세고수로 인정받은 사내였다.
심지어 전대의 절세고수 중 삼백 년 전 위계인 천하오절(天下五絶)의 일인으로서 활동했던 노괴이므로 당낙운은 오만했다.
“어리석은 것들이 당했을 뿐이잖나. 그럼 내가 움직일 필요는 딱히 없지. 네까짓 애송이의 명령을 들어줄 필요는 더더욱 없고 말이야.”
당낙운은 보랏빛이 감도는 얼굴에 조소를 드러냈다.
“사파의 종사답게 여전히 지랄 맞은 성격이구나, 당낙운.”
하나, 그것도 잠시.
“네놈이 그래서 아직도 정파라 불리지 못하는 것이야.”
이내 어느 매화의 문양이 새겨진 도복을 입은 노인이 그리 말한 순간.
“어떤 건방진 놈이 그렇게 지껄이고 있……!”
당낙운이 그에 눈을 찌푸리며 욕을 지껄이려 했으나 상대의 얼굴을 보고는 흠칫했다.
“적매자(赤梅子)…….”
“그래, 나다.”
적매자가 씨익 미소 지었다.
삼백 년 전, 그 또한 당낙운과 같은 위계인 천하오절로서 활동하여, 당대의 화산제일검(華山第一劍)으로 불렸던 절세고수 중 하나.
그야말로 화산의 검,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제는 반쯤 은퇴하여 태상장로의 직위에 머무르고 있다고는 해도 그 권위만큼은 당대의 화산파 장문인보다 더한 것이다.
“그놈의 사파 기질을 버리지 못하니 네놈이 아직도 정파로 자리 잡지를 못하는 것이야.”
적매자의 말에 당낙운이 이를 갈며 살기를 드러냈다.
“너……!!”
그러나.
“당낙운. 조용히 하게나. 지금은 무림의 대사(大事)를 다루고 있잖나. 내 부탁하지.”
그마저도 간단하게 저지됐다.
“서로 같은 위계인 천하오절로서 부탁하는 걸세.”
다름이 아니라…….
“알아듣겠나?”
종남파의 태상장로 중 하나인 운수자(雲手子)가 그렇게 말했기에.
그 또한 삼백 년 전의 절세고수이고, 마찬가지로 천하오절 중 하나인 종남검선(終南劍仙)으로 불린 인물이므로, 그 권위는 적매자랑 동일했다.
하물며, 작금에 이르러서 그는 백여 년 전쯤에 생겨난 위계인 신주십사성(神州十四星)에도 꼽혔으므로, 적매자 같은 은거고수와는 달리 현역에 가까운 권력이 있었다.
심지어 그의 말에 담긴 뜻마저 살벌하기 그지없음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운수자의 말은 당낙운의 체면을 챙겨 주는 것은 이게 끝이라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 서로 같은 천하오절로서 체면을 챙겨 줄 때, 그냥 입이나 처닫으라는 거군……. 그러지 않으면 체면이 서지 않게 해 주겠다는 뜻이고 말이야.’
당낙운은 어쩔 수 없이 침묵했다.
설령, 서로 같은 천하오절이라고 한들 그 차이는 명백히 실재한다.
고작해야 당낙운은 한낱 용독술의 달인으로 취급받는 것에 비해, 저 둘은 천하오절 중 하나인 선원무적자(鮮元無敵子)를 상대하며 천하제일인의 자리를 다투지 않았는가.
‘사람인 척하는 자라 새끼들 같으니…….’
당낙운은 부글부글 끓는 노기를 삭히고는 여유를 가장하여 대답했다.
“……흐. 알겠네. 종남파의 그 운수진인이 그리 말하니 어쩔 수 없군. 내 사과하지.”
그제야 운수자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리 말해 주니 좋군.”
그리고 그걸로 장내의 다툼은 끝났다.
천하오절 중 둘씩이나 흉수의 토벌에 동의한 바이지 않은가.
회의장 내에 소집된 몇 되지 않는 다른 고수들마저도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천강운은 비로소 의견 화합이 될 것임을 감지하고는 이어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회의에 끝이 없을 것 같으니, 본론만을 말하겠소. 본 맹은 이미 천하오절 중 둘은 이미 이 일에 포섭해 둔 상태요.”
그에 적매자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호오. 천하오절 중 둘을 이미 포섭했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까지 합치면 다 포섭했다는 것이지 않나? 그렇다면…….”
“맞소. 남궁세가의 태상가주이신 창천검존(蒼天劍尊), 남궁수(南宮秀), 그리고 무당파의 태상장문이신 선원무적자(鮮元無敵子), 선원자(鮮元子)를 불렀소이다.”
“걸물들이로군.”
운수자가 추억이 돋는다는 듯 중얼거렸고, 적매자가 클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 인물들이로군. 삼백 년 전에는, 선원자 놈에게 죽는 줄 알았는데……. 참, 그 권사 놈이 동료라고 생각하니 든든하구나.”
“남궁수, 그 친구는 요즘 창천검형이라는 검법을 만들겠다며 폐관수련했을 터인데. 이제는 그 폐관수련마저도 끝났나 보군. 흥미롭게도.”
그리고 그에 운수자가 곱게 자라난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음을 건넸다.
“그래서, 그 사문을 멸문시켰다는 흉수 놈은 어디에 있는지 아나?”
“물론이오. 화산파에서 그 흉수가 스스로 어디에서 왔는지 밝혔다고 했었으니까. 이미,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알고 있소.”
“그래…….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원수 놈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고 했나? 그렇다면 알려 주게.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 멀리 있진 않소.”
그리고.
“산동백가(山東白家).”
다음 순간.
“그러니까…….”
천강운이 적의로 물든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얼마 전에 본 맹에서 멸문시키기로 결정했던 백씨세가에서, 흉수를 보낸 거요.”
***
「업적 ‘무림공적’을 달성했습니다.」
「전용 권한 #D-0007[보상 상승]이 조건을 만족하여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업적으로 얻는 보상 수준이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이건 또 뭐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나는 눈매를 좁혔다.
무림공적이라니.
아마도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또 적으로 간주당한 것 같은데…….
어차피 이쯤이야 화산파니 종남파니 하는 거대 세력들을 부수고 다닌 시점에서 이리될 줄 어느 정도 예상하고는 있었다.
‘뭐, 딱히 상관은 없겠지.’
그다지 나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되레 업적 달성으로 모든 능력치까지 10 상승했으니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심지어, 눈앞에 있는 보물 상자(?) 같은 거지를 보고 있자니 그 보상이 더 달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름이 아니라…….
「취구환」
「등급 : B+」
「개방에서 연단한 비전의 영약이다.」
「마력 운용을 토대로 복용할 시 마력 능력치가 최대 +15 상승한다.」
「※단, 취구환을 여러 번 섭취할 시에는 복용 효과가 크게 줄어들어 나중에는 마력 상승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이게 개방의 영약이라는 건가?”
“……예! 그, 그렇습디다, 대인!”
어느새 온몸에 멍이 가득한 광개(狂丐)가 손을 싹싹 비비며 히든 보상을 가져온 탓이다.
‘굳이 살려 둔 보람이 있네.’
그에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흉수 놈이니 어쩌느니 하길래 죽이려 했는데 살려 두기를 잘했어.’
본래는 신화 을 실험할 겸, 광개로 불리는 눈앞의 거지를 죽이려 했었다.
단지, 어쩌다 보니 거지들 중 하나가 광개를 개방의 후계자라고 했기에 마음을 바꿨을 뿐이다.
개방에 있을 숨겨진 보상들을 자동 파밍 시키기에는 광개가 적합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광개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 또한 딱히 죽일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어차피 신성이 없는 적은 죽여 봤자 고유 특성을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최소한 화산파의 장문인 같은 경지는 되어야 상대할 가치가 있었다.
실제로도 딱히 후회되는 선택은 아니었다.
개방에 있는 대부분의 보상은 광개의 손에 의해서 얻어 낼 수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개방에 하나뿐인 영약까지 얻었다.
‘이게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건가?’
화산파 같은 곳과는 달리 엄청난 이득은 아니어도 만족할 만했다.
‘재밌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다.
신화 이 뒤섞인 주먹질에 한 번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 탓일까?
어느새 광개는 기절하기 이전과는 달리 아주 친절하기 그지없는 언행을 보이고 있었다.
‘이게 바로 교육자의 보람이라는 건가?’
그에 보람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나저나 이게 가진 것의 전부라고?”
“……예.”
“흠.”
설마 아직도 무림인 특유의 정신병이 고쳐지지 않은 걸까?
그에 내가 슬픈 눈빛을 자아내며 광개를 바라본 순간.
어째서인지 광개의 얼굴빛이 곧바로 새하얘졌다.
“아, 아아아아아아! 진짜입니다! 진짜라고요! 더, 더, 더는 그, 때리지 마시지요, 대인!”
“때리다니? 이건 때리는 게 아니라 엄연히 교화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
“히이익!”
하나, 그것도 잠시.
“정보!”
“?”
“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에 내가 일단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니 광개가 필사적으로 대꾸했다.
“무림맹에서 천하오절을 섭외하여 대인을 노리고 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천하오절?”
“예! 왜, 아주 먼 옛날에 있었다는, 그, 선원무적자랑 같은 위계로 불렸던 절세고수들 말입니다! 본 맹에서 그들을 포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방이 심어 둔 세작이 올린 보고로는 천하오절 중 둘은 이미 포섭이 끝났고, 천하오절 중 나머지 셋은 무림맹에 간 걸로 예상되고 있…….”
“한마디로 무림의 최상급 실력자들이 다섯씩이나 오고 있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그래…….”
그에 나는 입맛을 다시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야 했다.
“고수들이 다섯이나 오는구나.”
다름이 아니라…….
“운이 좋네.”
“?”
“그냥 내가 직접 찾아갈 필요도 없이 무림의 고수들이 나를 찾고 있다는 거지?”
“…….”
“그렇다면 다행이네.”
사실상 비원의 시련을 끝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참, 기대되는 일이야.”
그것도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