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09
제 109화
41장. 최고의 파일럿 – 1화
하오스 아일랜드의 해안가.
타트라 넥스를 이용해 이곳으로 날아온 나와 사비오는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겨울의 칼바람이 불기는 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난로인 파이어볼 마법을 적절히 캐스팅하면서 온 덕분에, 느끼는 추위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내리자마자 사비오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내게 물었다.
“아니, 무슨 추진력이 이렇게 좋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출발하고.”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으니까. 농담이 아냐. 난 타트라 넥스가 정말로 마음에 든다니까?”
“근데, 자레드.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이 녀석 이름은 도대체 어떻게 안 거냐?”
예리한 질문이다.
나야 정보창을 이용해서 봤으니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사비오 입장에서는 뭔가 이상했겠지.
“처음 이 녀석을 가지고 갈 때, 이름표 같은 게 붙어 있던데? 지금은 떨어져 버렸지만.”
“제길, 그랬나. 타타르 아일랜드에서 만든 초월체라는 뜻으로 타트라 넥스라고 지었는데, 까먹을까 봐 붙여 놓긴 했었지.”
사비오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충 둘러댄 말인데 정말로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이쪽으로의 대화가 길어질까 싶어,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네메시스가 꽤 다크 엘프에게 골치인 모양이네.”
“아주 골치지. 네메시스가 움직인 적은 없지만, 휘하에 있는 몬스터들이 매년 분기별로 우리 섬으로 대규모 공격을 해.”
“일 년에 네 번이라……. 보통 집요한 게 아니군.”
“차라리 이놈들이 배를 타고 오는 거라면 해안가에 요새라도 구축하겠는데.”
“네메시스가 통째로 몬스터들을 텔레포트 시킨다는 게 문제겠군.”
“맞아! 바로 그거야. 역시 잘 알고 있네. 임의의 위치로 갑자기 이동시켜 버리니까 어디라고 특정해 대응할 수도 없어!”
사비오가 울분을 토했다.
에서도 네메시스가 그런 식으로 주변 섬을 괴롭히거나 정복했었기에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공략하면, 너희 다크 엘프와의 관계도 지금보다는 나아질까? 내 직속 상단주인 아르케네스라는 녀석이 있는데, 이바니바 님이 나서서 중재를 해도 영 무역이 안 된다고 힘들어하더라.”
나는 살짝 운을 뗐다.
다크 엘프와의 관계는 지금도,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사비오는 다크 엘프가 이룩한 마도 공학 문명의 정점이고, 다른 다크 엘프들도 크고 작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활에 마정석을 세공하여 추적형 화살을 쏠 수 있게 만든 ‘마궁’도 다크 엘프의 작품이고.
“아마 공략에 성공만 한다면 로드께서도 관심을 갖지 않으실까?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다크 엘프 모두가 은혜를 잊지는 않을 거다.”
사비오의 대답이면 충분했다.
다크 엘프는 은원(恩怨)이 확실한 종족이니까. 원한은 복수로 갚고, 은혜는 신뢰와 호의로 갚는다.
‘어디 보자…….’
나는 네메시스에 대한 기억을 빠르게 정리, 재조합하여 필요한 내용만 추려 냈다.
어차피 하오스 아일랜드에 있는 몬스터들은 내게 잔챙이 수준이라 상대가 안 된다.
타넥스를 타고 있으면 공중전이 될 텐데, 공중에 있는 나를 노릴 수 있는 놈은 없다.
죄다 지상에서 움직이는 뚜벅이 몬스터만 있기 때문이다. 과녁 삼기 좋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자레드,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명심해라. 우리 다크 엘프도 몇 번이나 원정대를 꾸려서 왔었지만, 네메시스를 공략하진 못했어.”
“그걸 아는 녀석이 나한테 여길 추천해?”
“그게……. 뭐, 내키지 않는다면 다른 시험 장소를 추천해 줄 수도 있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봐. 어떻게 공략할지 생각 중이니까.”
사비오가 걱정하는 듯 관심을 돌리려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일축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핵심을 빠르게 짚어 냈다.
‘네메시스는 누적 딜로 잡는 보스 몬스터는 아니었어.’
네메시스를 죽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속딜이 아닌 한방딜이다.
다시 말해서 인내와 끈기의 장기전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단기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찔끔찔끔 대미지가 들어가는 식으로 해서는 네메시스는 절대 안 죽는다.
모든 공격에 개별로 적용되는 대미지 감소가 있는데, 이것 때문에 일정 대미지 이하의 공격은 모두 0으로 취급을 받는다.
간지러운 축에도 못 끼는 공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 전체의 자체 회복력이 고루고루 너무 좋아, 화살이나 마법이 박히는 정도로는 생채기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약점, 일점 타격, 폭딜.’
키워드는 세 개다.
최대치의 대미지를 한 점, 약점에 집중해서 단숨에 퍼붓는다.
이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야만 네메시스가 죽는다.
다른 방법은 불가능하다.
백만 명이 화살을 쏜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두꺼운 외피를 하고 있는 등판에다가는 마법을 쏟아도 무용지물이고.
설령 그게 나라고 해도, 녀석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애초에 무시할 수 있는 기본 대미지 값이 높아서 어지간한 마법은 그냥 외피로 충격을 받아 내 버려서다.
노림수로 삼을 약점은 하나.
심장 언저리.
외피가 가장 얇고 약한 그쪽뿐이다.
그때.
내가 전략 설정에 골몰하고 있음이 보였는지, 사비오가 조심스럽게 제안을 건넸다.
“자레드, 타트라 넥스의 봉인을 먼저 풀어 줄까?”
봉인을 풀어 줄 자격이 있는지 ‘합당한 테스트’를 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먼저 풀어 주겠다니?
선후가 바뀐, 하지만 제법 나를 걱정해 주는 듯한 사비오의 마음이 느껴져 기분은 좋았다.
하지만 이런 편법으로 마음을 얻으면, 쉽게 얻은 만큼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거라면 거래는 뭐 하러 했냐? 정정당당히 하자고. 너도 약속 지킬 준비나 하고.”
“만약에 네가 죽으면……?”
사비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에서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그의 감정이 느껴진다.
뭐랄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됐다는 생각이 드니 더 많은 힘이 났다.
이럴 때는 머릿속에서 엑스트라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주인공이라는 기분 좋은 행복이 차오른다.
적어도 사비오에게, 나는 주인공 이상의 가치를 하는 사람일 테니까.
“안 죽으니까 걱정 마. 다만 하나만 조정해 줬으면 하는데.”
“뭔데?”
“마력탄의 응축력을 최대화시켜 줘. 한 점에 최대치로 모이도록.”
“마력탄? 마나탄?”
“아, 마나탄.”
마력과 마나는 같은 개념이다.
다만 나는 스탯창의 표기를 따라 마력탄이라 부르는 게 익숙한데, 사비오는 마나탄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이 세계는 마력을 ‘마나’라고 부르니까 당연한 지칭이긴 했다.
“개조는 어렵지 않지. 다만 그러면 다른 캐논의 쓰임새가 사라져 전투가 오히려 어려워질 텐데?”
사비오가 은근슬쩍 떠보듯 묻는다. 어떻게 활용하려고 하는지 궁금한 눈치다.
“백 번 묻기보다 이따가 한 번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빨리 잡고 가자. 이래 봬도 나도 영지로 가서 할 일이 많은 영주거든.”
“그래, 그래. 잠시만.”
사비오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나는 바쁜 녀석의 움직임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보인다.
뭔가 마음은 잔뜩 들떠 있는데, 티를 낼 수가 없어서 온 힘을 다해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
‘내 가치를 증명해 줄게.’
그래서 나는 재차 다짐했다.
녀석이 매력을 느끼고, 내게 모든 연구의 열정과 투지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자극해 보겠다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엑스트라의 위치에서 사비오를 따라가며 우러러보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비오의 삶에서 내가 그의 주인공으로서, 경외하는 눈빛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개조는 순식간에 끝났다.
나조차도 모르는 부품들을 만져 가며 조정을 하는 것을 보니, 사비오가 확실히 개발자는 개발자이구나 싶었다.
나는 출발에 앞서, 사비오에게 경고했다.
“전장에 가까이 올 생각은 하지 마라. 넓게 쓸 거니까, 어설프게 가까이 있다가는 네가 죽어.”
“어이, 걱정도 팔자네. 공중 기동은 나도 가능하거든?”
고오오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비오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신발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마정석이 잔뜩 박힌 특수한 신발이었다.
손에 끼고 있는 장갑 역시 마찬가지. 양손과 양발을 이용해 공중 기동을 할 수 있는 장치였다.
“좋아, 안심이네. 그럼 간다!”
“자레드! 정말 괜찮겠냐?”
“안 괜찮을 것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칠 테니까, 너도 도망칠 추진력은 가지고 있어라! 하하하하!”
나는 호쾌한 웃음과 함께, 하오스 아일랜드의 보스 몬스터인 네메시스를 찾아 떠났다.
속전속결!
녀석과의 장기전은 금기다.
최대한 짧고 굵게, 그렇게 끝을 낼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레 내가 끝장이 날 테니까.
* * *
“크와아아아!”
네메시스와 마주친 것은 하오스 아일랜드의 북쪽, 그 끝이었다.
휘이이이!
칼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나와 사비오가 만났던 메이트 항구도 대륙의 최북단으로 추위로는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한데 그것보다 훨씬 위에 있는 타타르 아일랜드를 지나, 더욱 북쪽으로 왔으니…….
여기는 정말 입김을 불면 그 입김조차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을 정도였다. 아니, 실제로 얼어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넥스가 기동하는 내내 열이 계속 발생하기에 기체가 얼어붙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네메시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붉은색 일색(一色)인 몬스터로 외형은 이족 보행을 하는 코뿔소처럼 생겼다.
덩치가 무척 크고 둔해 보이지만, 마력을 제법 다룰 줄 아는 녀석이기도 했다.
여기서 전투에 시간을 끌면, 당장에 네메시스가 섬 전역에 있는 몬스터들을 무차별적으로 소환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뒤가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죽는다는 뜻이다.
네메시스의 무서운 점은 자신의 영역권 안에 있는 몬스터에게 끊임없이 강화 버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거기까지 가면,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해진다.
네메시스가 공중전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테고.
‘폭딜 꼼수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
딱 한 가지 불안한 점.
그것은 사전 경험이었다.
에서도 엄청난 화력을 필요로 했기에 네메시스에게 써먹기 힘들었던 꼼수였다.
애초에 네메시스를 일격에 급사(急死)시킬 정도의 화력을 낼 수 있는 유저가 적어서, 꼼수나 버그라고 불리지도 않았다.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공략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5분이다.’
나는 스스로 타임 리미트를 걸었다.
네메시스가 무서운 점은 엄청난 맷집, 그리고 몬스터 소환 및 버프를 빼고도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학습 능력이다.
상대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네메시스는 그 공격의 구성과 패턴을 바로 학습한다.
그런 이유로 전생에 에서 네메시스를 상대로 다양한 패턴 플레이를 시도해 보다가, 레퍼토리를 전부 읽혀서 나중에 정말 참담하게 목숨을 잃은 적이 많았다.
네메시스에게 갖은 농락을 당하다가, 잡아먹혀서 죽은 공략 동영상은 아마 지금도 의 ‘나이스 앤 미스’ 게시판의 10위권 내에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나이스가 아닌 미스(Miss)로 말이다.
‘원 패턴으로 끝낸다!’
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네메시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쿠오오옷!”
녀석이 포효하며, 시야에 들어온 내게 거친 반응을 보였다.
무지막지한 보스 몬스터, 네메시스와의 단독 전투.
이것으로 사비오의 마음과 신뢰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열 번, 아니 백 번도 도전할 수 있다!
지금 나의 힘찬 날갯짓 한 번이 미래에는 아주 큰 결과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