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31
제 131화
49장. 데스 나이트 킹, 바스테레 – 2화
“폐하, 준비를 다해 두신 것이었으면 제게도 미리 말씀을 해 주셨어야지요!”
“경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듯하오.”
“당연하지요! 폐하의 옥체에 문제라도 생기면, 왕국의 미래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앞으로는 절대 라키스 경을 놀라게 하지 않을 터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오. 하하하.”
“신이 어찌 감히 폐하께 용서를 구하라 마라 하겠습니까. 다만 너무 놀란 나머지 숨이 멎을 뻔하여.”
던전 공략을 시작한 지 한나절이 지났지만, 라키스는 계속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 입구에서 있었던 자레드의 독초 섭취 해프닝 때문에 정말 십 년 감수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라키스에게 자레드는 주군 그 이상의 존재였다.
숫제 신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했다.
자레드는 자신의 인생의 많은 것을 바꿔 준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까지 선명하게 보여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레드와 함께 있으면, 그리고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으면 항상 한 단계씩 성장하는 느낌이었다.
분명 2년 전만 해도 제법 검을 잘 쓰는 수준에 불과했던 자신의 실력은…… 어느새 마력을 조금씩 다루며, 오러 블레이드를 아주 잠깐이나마 흉내 내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자레드가 죽은 언데드의 시체에서 마정석 하나를 여유롭게 챙겼다.
한나절의 공략 동안 전리품으로 얻은 마정석이 결코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공간에 넣은 마정석만 해도 천 골드어치는 족히 되는 듯했다.
자레드가 물었다.
“이 녀석들을 직접 상대해 보니 어떻소? 강화된 던전이라 기존의 2배에서 3배 이상은 강력해진 수준이오.”
“무리 없습니다. 폐하께서 신에게 정말 수많은 버프 마법을 시전해 주신 덕분에 어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체감은 확실히 되오? 경의 전투력을 끌어올려 주는 일련의 마법들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버프가 없으면 허전할 정도입니다. 폐하가 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전과 3배 가까운 차이가 납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듀라한이라든가 어보미네이션 같은 껄끄러운 몬스터들이 제법 많았거늘 경의 실력을 보니, 그간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 느껴지오.”
“먹고, 자고, 잠시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 죽기 직전까지 수련만 하였습니다. 폐하!”
힘주어 말하는 라키스의 목소리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자레드는 계속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정석들을 텔레키네시스 마법으로 회수해서는 아공간에 휙휙 넣었다.
확실히 마법이 있으니 편했다.
[만인 베기 : 05082 / 10000]‘이제 절반이네. 망자의 정원에 있는 모든 구역을 정리하면 카운트를 채울 수 있겠어. 다른 던전이면 1할도 못 채웠겠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의 수가 모자라지 않을까 싶었는데, 계산해 보니 만인 베기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독불침의 몸도 얻었고,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이제 악마 유희 반지의 6번 옵션인 ‘특수 해독법’의 쿨타임이 돌아오면, 라키스에게도 같은 처방(?)을 내릴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데스 나이트 킹 바스테레는 끊임없이 독을 이용한 디버프 공격을 전개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바스테레가 있는 보스 방, ‘악의 정원’ 전체가 온갖 독연(毒煙)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독에 내성이 없으면, 입장하자마자 몇 초 안에 죽는다. 공략 최소 조건도 갖추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망자의 정원이 인기가 없지. 무조건 치유사를 끼고 들어와야만 하니까. 분배 비율도 개판이고.’
치유사는 부르는 게 값이며, 팀에서 분배받는 전리품의 비율이 거의 깡패 수준이다. 괜히 헌터들이 여기를 안 오는 것이 아니다.
자레드는 이번 던전 공략에서 어보미네이션(누더기 골렘)이나 스켈레톤 킹 같은 특수 몬스터 위주로만 사냥했다.
그리고 스켈레톤 아처, 스켈레톤 워리어, 구울 킹 같은 소형 몬스터는 라키스에게 전담하게 했다.
정말 그가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면, 버프 갱신 외에는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라키스의 실력은 뛰어났다.
물론 얼마 전부터 다소 미미하나 오러 블레이드를 구사하기 시작한 엘라에 비하면 부족했다.
라키스의 검술은 화려하고 신속한 엘라에 비해 투박하고 무거운 구석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라키스는 엘라와 달리 병법과 전략 전술을 꾸준히 공부해 왔고, 더 나아가 군에서도 신망이 두텁지.’
라키스의 활용도는 크다.
지금도 충분히 A급 무장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한 단계만 더 성장하면 S급 무장 수준이다.
그러면 그가 군의 중심을 잡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를테면 국방장관이 그것이다.
“라키스 경, 그러고 보니 요즘 요리장 메리와는…….”
그와아아! 그와아아!
때마침 나온 ‘사랑’ 이야기에 메리 얘기를 꺼내려는데,
그새를 참지 못하고 다른 방에서 넘어온 한 무리의 언데드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친김에 보스 방 앞까지 갑시다. 경의 연애사를 들어 보려 했는데, 녀석들 때문에 안 되겠군.”
“이번에도 아까와 같습니까?”
“아니, 잔챙이는 내가 상대하지. 경은 어보미네이션을 상대하시오. 마도국에서 종종 어보미네이션과 유사한 마수를 전쟁에 쓸 때도 있으니까. 대비를 여기서 합시다.”
“예, 폐하. 맡겨 주십시오!”
“갑시다!”
자레드와 라키스가 다시 속력을 내며, 던전 공략을 가속화했다.
보스 몬스터 바스테레를 제외하면, 사실 언데드 군단은 자레드에게 ‘대미지 측정기’ 역할이 전부였다.
그저 노가다, 노가다, 노가다!
만인 베기를 달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언데드의 목숨을 빼앗는 반복 노동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물론 라키스에게는 어지간한 녀석들과의 싸움이 모두 목숨을 건 사생결단의 전투이겠지만 말이다.
* * *
다음 날.
‘야, 이거 노렸네. 노렸어.’
[만인 베기 : 09999 / 10000]망자의 정원에 있는 모든 언데드 몬스터의 씨가 말랐다.
그런데 딱 카운트 하나가 모자란 현황을 보고 나는 그만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남은 것은 보스 방인 ‘악의 정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바스테레뿐이었다.
녀석을 죽여야, 비로소 만인 베기를 달성할 수 있다.
어느덧 레벨이 160이 됐다.
어제 레벨 150이 된 시점에서 심안의 네 번째 능력이 개방됐는데, 전투에 꽤 쓸 만한 옵션이었다.
‘확실히 보기가 좋네.’
뒤에서 라키스의 모습을 보자, 한눈에 그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빛 구는 가득 차 있는 상태로 체력 100% 상태를 가리켰고.
푸른빛 구는 절반 정도로, 마력이 전체의 50% 수준임을 알렸다.
흰빛 구는 아예 회백색 칠이 되어, 텅텅 비어 있었다.
이는 그에게 신성력이라는 스탯 자체가 없음을 나타냈다.
‘확실히 이렇게 보면 전장에서 좀 더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적을 먼저 노릴 수 있어.’
말 그대로 ‘직관화’여서 좋았다.
지금까지는 적의 남은 체력과 마력을 확인하려면, 심안으로 한 번 더 스탯을 훑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수고를 덜게 됐으니, 좀 더 전략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와……. 제가 어제, 오늘 도대체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을 죽인 것인지 실감이 안 났는데. 이 검을 보니까 비로소 느껴집니다.”
그때, 라키스가 내게 켈디아 검을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던전에 처음 들어올 때에 비해서, 눈에 띌 정도로 무디어진 검의 상태가 한눈에 보였다.
라키스의 상태를 심안으로 살피자, 그사이에 20이나 훌쩍 오른 레벨이 보였다.
[옵션 1 : 반경 69m 내의 모든 아군의 경험치 획득 100% 증가]행운의 반지의 1번 옵션으로 있는 경험치 보조 효과 덕분에 확실히 성장 속도가 빨랐다.
[가호 3 : 가호의 대상에게 충성심, 호감도 최대치를 찍고 있는 사람은 기존에 비해 성장 속도가 2배 증진됩니다.]게다가 네프리아의 가호가 라키스의 성장을 급성장으로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
‘이러면 나보다 유망주들이 레벨에서는 크게 격차를 벌리며 성장하겠는 걸?’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유망주들이 계속 성장하면, 사제지간 시스템의 보상으로 내게도 마력이 꾸준히 적립된다.
그야말로 불로소득! 그러니 라키스의 성장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경의 실력이 실시간으로 성장을 거듭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니 참으로 기분이 좋구려.”
“여전히 부족합니다, 폐하.”
“자, 이제 대망의 보스 몬스터가 남았으니…… 그에 앞서 사전 작업을 하도록 합시다.”
나는 씨익 웃으며, 아공간에서 독초 카타라를 꺼냈다.
웃고 있는 내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라키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똥 씹은 얼굴로 변했다.
앞서 내가 카타라를 먹고 온갖 추태를 부리며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한 것을 눈으로 본 터라 더욱 그래 보였다.
“폐하, 부디 저를 어여삐 살피시어…….”
라키스가 잔뜩 힘 빠진 목소리로 하나둘, 입고 있는 무장을 덜어 내기 시작했다.
검을 내려놓고, 갑주를 벗었으며, 이윽고 속옷 상의와 속바지까지 벗더니?
“신을 버리지 마소서.”
이윽고 팬티까지 내렸다.
완전 나체!
졸지에 나는 정면에서 라키스의 은밀하고 민감한 부위를 꼼꼼히 보게 되고 말았다.
“경답군.”
“예?”
“보이는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는 라키스 경과 같다는 것이오.”
애매한 칭찬(?)으로 그의 긴장을 풀어 주고는, 독초를 건넸다.
독초는 던전 공략 내내 열심히 캤고, 아공간에 넉넉히 있었다.
왕국으로 돌아가면 헤이즈, 이자벨, 클로이를 비롯한 대다수 가신들에게 해독 꼼수를 쓸 생각이다.
독에 완전 면역만 되어도, 앞으로 다양한 적을 상대할 때 위험 요소가 크게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럼, 먹겠습니다.”
“말했다시피 카타라는 수십 가지의 독성이 포함된 독초요. 그러므로 충분히 중독된 다음에 해독해야 다양한 독에 대응할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울 수 있소.”
“예, 폐하. 준비됐습니다. 혹시라도 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메리에게 사랑한단 말을 전해 달라는 것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사랑꾼 나셨다니까.
팔짱을 끼고 뚫어져라 라키스를 압박하듯 쳐다보자, 멋쩍은 듯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라키스가 카타라를 우물거리며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초 후.
“크아아아악……!”
라키스의 신음이 시작됐다.
* * *
30분 후.
“……?”
늘 그렇듯, 바스테레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악의 정원.
그 입구에는 그동안 겁 없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가 독연에 죽은 헌터의 시체들로 가득했다.
‘즉사의 독무’라고 불리는 입구의 안개는 바스테레가 만들어 낸 비장의 무기로, 치사율 99.9%에 달했다.
0.1%의 생존율.
예전에 들어왔다가 아주 재수 좋게 살아남은 한 명의 치유사가 있어서 생긴, 아쉬운 오점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안개에 가려 누군지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죽을 목숨이기에 관심도 없었다.
죽을 자리인지 모르고 힘차게 들어온 멍청한 인간들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한데 바로 그때.
“와, 냄새가 거의 오래된 묵은 군화에서 나는 발 냄새 수준인데? 이러면 중독이 아니더라도, 비위가 상해서 죽을 것 같지 않소?”
“폐하께서 말씀하신 모든 독에 면역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군요! 역시 폐하십니다! 엄청난 독무를 들이마시고도 피부에 작은 반점 하나 생기지 않고 있군요!”
“……?”
바스테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 던전에서 자신이 눈을 뜬 이래 처음으로.
즉사의 독무를 들이마시고도 멀쩡히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두 불청객이 있었다.
자신을 온갖 독의 시작이자 끝이라 자화자찬해 왔던 바스테레의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