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30
제 130화
49장. 데스 나이트 킹, 바스테레 – 1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데스먼드 제국의 안까지 들어왔군요. 폐하, 신이 감히 폐하와 함께 던전에 갈 자격이 있습니까?”
“이제 왕국의 군대 전체를 통솔하려면, 그에 걸맞은 힘을 지녀야 하오. 냉정하게 말하자면, 경의 실력에는 아직 부족함이 있소.”
“면목이 없습니다. 신의 실력이 부족하여…….”
“아니, 실력의 고저를 논하고자 말한 것이 아니오. 그만큼 경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을 내가 알기에 말한 것일 뿐.”
대관식이 끝나고, 며칠 후.
나와 라키스는 크리비아 왕국이 아닌 데스먼드 제국에 와 있었다.
물론 신분의 노출을 막기 위해, 클로이가 특수 제작한 가면을 쓰고 왔다.
위장술의 달인답게 클로이가 만든 가면은 감쪽같았고, 나와 라키스는 원판과 전혀 다른 얼굴로 데스먼드 제국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아키가 일찌감치 구해다 준 위조 여권 덕분에 신분을 위장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대관식 이후, 내가 서둘러 데스먼드 제국에 온 이유는 두 가지.
첫째, 라키스가 소드 비기너급의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의도된 외부 자극을 주기 위함이었다.
둘째, 함께 공략할 던전에서 꼼수로 만인 베기를 달성하고, 만독불침지체를 만들기 위한 중독 꼼수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암흑 교단의 네임드라면 독살, 중독술, 독극물 주입에 능하니까.’
오늘의 발걸음은 철저하게 계산을 마친 계획이었다.
교황의 친필과 함께 성지의 가치와 정당성을 확실히 인정받고 왕의 자리에 오른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암흑 교단이 내 목숨을 노릴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작정하고 날 죽이려고 든다면,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은 역시 독(毒)이다.
매번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걱정하느니, 내가 독에 완전 면역된 몸을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그래서 온 것이다.
내가 라키스를 데리고 가려는 던전에 만독불침지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독초가 있기 때문이다.
[옵션 6 : 특수 해독법 – 치명적인 독초로 말미암아 생긴 중독 현상을 즉시 해제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12시간]악마 유희 반지에 있는 6번 옵션이면 어떤 독이든 바로 해독할 수 있기에 중독 꼼수를 사용하기에 적절했다.
12시간 간격만 잘 지킨다면 말이다. 내가 먼저 하고, 그다음에는 라키스도 똑같이 하면 되니까.
망자(亡者)의 정원(庭園).
라키스와 함께 공략할 던전의 이름으로, 데스 나이트 킹 바스테레가 있는 곳이다.
라키스에게는 오러 블레이드를 다룰 수 있는 검사가 될 깨달음의 장소가 될 곳이며,
내게는 만인 베기의 꼼수로 아티팩트 ‘악마 유희’의 등급을 8성으로 올릴 기회의 장소였다.
“그나저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기는 하군요. 제가 머릿속에서 그린 데스먼드 제국의 모습은 싸늘한 절망만이 가득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다들 그렇게 착각하고는 하지. 딱히 다를 건 없소. 단지 추구하는 이념과 받드는 신이 다를 뿐.”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폐하.”
“슬슬 헌터들이 보이는군. 호칭을 바꾸시오. 그들 앞에서 우리의 신분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
“예, 도련님.”
라키스가 적절하게 호칭을 바꿨다. 도련님, 처음 들어 보는 호칭이라 기분이 묘하다.
나는 눈을 뜬 순간부터 영주님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도련님이라 불린 기억은 환생하기 전의 내가 가진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 * *
던전 도시라 그런지 헌터의 수가 엄청 많았다.
대부분은 도시 중심에 있는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다.
검은 비조의 둥지.
변이된 고블린의 거점.
코볼트 랜드.
이렇게 세 군데에 헌터들이 몰려 있었는데, 공략이 쉬우면서 동시에 전리품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라키스를 데리고, 던전 도시의 외곽으로 이동했다.
어느 순간부터 헌터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더니, 종국에 이르러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망자의 정원 앞에 도착하자, 의자에 걸터앉아 단잠에 푹 빠져 있는 노병 하나가 보였다.
그 모습 하나만으로 망자의 정원에 대한 취급을 알 수 있었다.
헌터들도 영악하다.
그래서 어렵고 보상이 좋지 않은 던전은 애초에 공략을 시도하지 않는다. 모든 이의 목숨은 공평하게 하나니까 괜한 모험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나는 단잠에 빠진 노병을 깨우며,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내 손에는 두껍게 만든 5골드짜리 특수 금화가 쥐어져 있었다.
“음? 으음? 이, 이건?”
“던전 관리에 고생이 많으신 듯하여.”
“오오! 고맙소이다! 역시 젊은 헌터라서 배포가 크구먼!”
“괜찮다면 입장에 앞서 공간을 좀 넉넉하게 쓰고 싶은데…….”
말끝을 살짝 흐리자, 눈치 백단인 노병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 혹시 올라오는 길이 더럽지는 않았소?”
“쓰레기가 제법 있었습니다만.”
“그럼 치워야겠군! 아무도 입장하지 않았으니, 편히 들어가시오! 명부에 이름만 적으면 되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병이 비탈길을 따라, 저 멀리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노병을 잠시 쫓아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라키스가 물었다.
“무엇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던전을 좀 더 강화할 것이오.”
“예?”
“당황할 것 없소.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는 던전 입구 앞에 최상급 마정석 하나를 힘껏 박아 넣고는 바로 소환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환 대상은 헤레시스.
레드 퀸에게 가호를 내린 악신의 힘을 던전으로 불러내어, 모든 몬스터를 암흑 교단의 추종자로 만드는 것이다.
만인 베기를 달성하기 위해, 내가 의 경험에서 가져온 꼼수였다.
[칭호 : 만인 베기 – 도살자(A Slaughterer)] [암흑 교단을 추종하는 신도 조직원, 교단의 신앙인, 간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원을 참살하여 영혼의 파편을 수집합니다. 두 번째 목표는 만인(萬人)입니다.] [달성 시 효과 : 아티팩트 ‘악마 유희’의 등급이 8성으로 상승합니다.]망자의 정원에는 데스 나이트 킹 바스테레를 비롯해,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만 있다.
이 녀석들은 인간형 몬스터가 아니기에 만인 베기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신 헤레시스의 기운을 감염시켜 ‘강제 개종’을 하게 만들면?
몬스터 전체가 암흑 교단의 신도로 취급을 받으며, 일만 카운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헤레시스는 좋아라 하며 던전 전체에 자기 힘을 과시하고 흩뿌리겠지. 그럼 나야 고맙지! 신의 손을 빌려 코를 풀 수 있는데.’
나는 팔짱을 끼고, 헤레시스의 힘이 현신하기를 기다렸다.
우웅! 우우웅!
소환진이 완성되기 무섭게 지면 위로 피어오른 묵빛 기운이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쿠아아아아!
이내 망자의 정원 안으로 휘말려 들어가면서, 다섯 번에 가까운 검은 섬광을 뿜어냈다.
헤레시스에 의해 던전과 몬스터의 성질이 변한 것이다.
“들어갑시다. 예전에 마군의 피난처에서 싸운 그대로만 보여 주면 되오. 나머진 내게 맡기고.”
“예, 집중하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둘러 망자의 정원으로 진입했다.
헤레시스가 혹시라도 변심해서 밑장을 빼기 전에 재빨리 던전의 과실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 * *
자레드와 라키스가 안으로 들어서자, 방금 전까지 푸른빛을 발하던 차원문이 붉게 변했다.
이유인즉, 던전의 최대 정원 2명을 충족했기 때문에 바깥의 차원문이 닫혔다는 뜻이었다.
밖에서는 이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한다. 내부의 두 사람이 되돌아 나갈 수만 있을 뿐.
“입구부터 악마의 독초가 있군.”
“폐하, 그것이 독초입니까?”
“무엇으로 보이오?”
“분홍빛에 달달한 내음이 물씬 풍기는 것이…… 따스한 봄날에 빵이나 파스타와 더불어 먹어 볼 법한 풀처럼 보입니다만.”
“다들 ‘카타라’를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이 녀석은 독초요. 먹는 순간 5분 내로 급사하며, 세상 그 어디에도 해독제가 없는 죽음의 풀이지.”
“그렇다면 절대 건드리셔서는 안 될……. 아앗!”
라키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자레드는 입안에 카타라를 잔뜩 쑤셔 넣고는 우적우적 씹어 대고 있었다.
라키스는 경악했다.
본인의 입으로 5분 내로 죽는 독초라고 해 놓고 갑자기 먹다니?
해독제도 없는 독초를 너무 자신 있게 먹어 버린 자레드의 모습에 라키스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음, 섭취하는 즉시 미각이 사라지고 혀끝이 얼얼해지며…… 식도가 부어오르는 느낌이 드는군.”
“폐하, 그럴 게 아니라!”
이내 정신을 차린 라키스가 황급히 다가와 자레드의 입안으로 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엄청난 무례임을 알지만, 자레드를 살리기 위해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다.
“우욱! 우웩!”
눈을 감고 독초의 작용을 느끼던 도중에 때아닌 목젖 타격을 당한 자레드가 헛구역질을 했다.
자레드는 라키스를 밀쳐냈다.
“괜찮소! 괜찮으니 걱정 말고!”
“아니, 폐하! 어찌 독초를 드시고도 괜찮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런 황망한 일이…….”
라키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자레드의 의도를 모르는 라키스에게는 그저 자살 행위로 보였기 때문이다.
“건드리지 마시오! 아직 4분 30초의 여유가 있으니 괜찮소. 절대 가까이 오지 마시오.”
자레드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다시금 중독의 진행 과정을 체감했다.
이 과정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느껴 둬야, 나중에 라키스를 비롯한 가신들에게 안정적으로 같은 꼼수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한 중독과 아티팩트를 이용한 완전 해독.
독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하는 이런 시스템의 꼼수를 알지 못하는 라키스로서는 당연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폐하의 명이시니 어길 수도 없고…….”
라키스가 떨리는 두 손을 겨우 붙잡으며, 걱정 어린 눈빛으로 자레드를 지켜봤다.
이후 4분 동안.
라키스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자레드에게서 볼 수 있는 온갖 ‘추한 모습’을 모조리 지켜보았다.
던전의 차가운 바닥 위에.
자레드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먹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토해 냈다.
그다음, 30초는 군악대의 힘찬 나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터져 나오는 방귀 소리를 들었다.
악취가 장난이 아니었다.
비위가 좋기로 유명한 라키스도 냄새를 맡는 순간에 바로 헛구역질을 했을 정도니까.
추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분 동안은 고통스럽게 배를 움켜쥐고, 던전의 한옆에서 시끄럽게 볼일을 보기까지 했다.
그다음은 침을 질질 흘리며, 위장 속에서 밀려 올라온 악취의 트림을 꺽꺽대며 토해 냈다.
“아아악! 도저히 못 참겠군!”
그제야 자레드가 악마 유희 반지의 6번 옵션, ‘특수 해독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단 1초 만에!
거짓말처럼 모든 중독 증세와 고통이 사라졌다.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던 악취도 말끔히 사라졌다.
마치 키보드의 ‘Delete’ 키를 누르고, 깨끗하게 지워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칭호 ‘만독불침지체’를 얻었습니다!] [모든 독초의 중독 효과에 면역이 됩니다.] [칭호의 효과로 물리 방어력, 마법 방어력이 각각 100씩 증가합니다.]샤아아아.
칭호 획득과 함께 몸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순간 금빛 기운이 일렁일 정도로 극적이고도 화려한 변화였다.
‘훗, 이번 생에서 최소한 독으로 죽을 일은 없겠어.’
자레드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남들은 절대 할 수 없을 중독과 해독의 꼼수를 이용해, 또 한 번 손쉽게 꿀을 빠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