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0
제 160화
56장. 로스트 아일랜드 – 4화
[레클리스의 마안] [모든 화살과 궁마법의 경로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돕는 능력입니다.]‘전장에서 정말 유용하지.’
활을 즐겨 쓰는 몬스터는 흔치 않기에 던전에서의 효율은 낮다.
기껏해야 스켈레톤 아처가 활을 주로 쓰지만, 이런 녀석은 굳이 화살 경로를 예측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이 맞부딪히는 전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궁병은 크리비아 왕국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병과였다.
실드라는 좋은 방어 수단이 있기는 하나, 화살의 경로를 예상할 수 있다면 실드를 의미 없이 쓰는 일도 막을 수 있다.
‘혹은 주변인이 피격될 가능성을 미리 점칠 수도 있고.’
핵심은 그것이다.
화살의 경로가 마안을 통해서 보이니, 주변 동료들의 피격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안전지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미리 방어 마법을 펼쳐 지켜줄 수 있다.
“폐하! 시력이! 시력이 엄청 좋아진 느낌이에요! 와! 저 멀리 벽에 붙어 있는 작은 날벌레 한 마리까지 보이는 것 같은데요?”
그때, 헤이즈가 놀라 소리쳤다.
레클리스의 눈이라는 버프 덕분에 시력이 상승하면서, 좀 더 효과적으로 지형지물을 살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녀석을 잡으면 얻을 수 있는 영구적인 버프지. 가파지스를 잡았을 때도 이런 식으로 버프를 얻었지, 아마?”
“와……. 이건 너무 유용할 것 같은데요?”
다른 세 사람의 생각도 헤이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빠른 반응을 위한 동체 시력은 누구에게나 중요했고, 특히 레나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화염의 정수군.”
자레드가 레클리스의 시체가 있던 곳에서 화염의 정수를 주웠다.
그의 시체는 산화하면서 사라졌는데, 그 자리에 화염의 정수가 제법 남았다.
[화염의 정수] [단맛이 나는 화염의 정수입니다. 섭취 시, 화염 계열 마법의 속성 능력이 1% 상승합니다.]총 10개였다.
자레드는 망설임 없이 정수를 들이켜고는 꿀꺽 삼켜 버렸다.
그러자 몸 전체에서 붉은 기운이 일렁이더니, 이내 속성 화력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화염 계열 마법 : Ex] [화염 속성 추가 강화 : 20%]로스트 아일랜드에 와서 섭취한 정수는 총 20개. 덕분에 그만큼의 화력이 추가됐다.
Ex 단계에 접어든 자레드의 화염 마법은 기본 판정만 해도, 실제 마법보다 두 단계 높은 화력으로 취급될 수 있었다.
즉.
그가 전개하는 6클래스 화염 마법은 6클래스의 타이틀을 달고 있으나, 실제로는 8클래스급 마법의 화력이라 할 수 있었다.
‘이그니스가 좋아하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에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바람 마법을 자주 써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미아와 속성이 겹치는 부분도 있고.
‘다른 정령왕의 마음도 꼭 얻어야지. 강해지는 데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으니까.’
자레드는 아직 만나지 못한 정령왕들을 떠올렸다.
물의 정령, 대지의 정령.
그들의 능력도 속성의 힘을 부려야 하는 자레드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그때, 팀원들의 정비를 마무리한 헤이즈가 대표로 보고했다.
“전리품은 모두 챙겼어요. 마정석 외에 별도로 드롭 된 전리품은 없어요.”
“활은 내가 챙기지.”
자레드가 레클리스의 활을 챙겼다.
무기 분류가 ‘활’로 들어가기 때문에 당장에 사용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의미 있게 쓰려면 활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에게 주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의 곁에 그런 인재는 없었다.
‘원거리 물딜러가 없구나.’
항상 팀의 구성에서 뭔가 하나가 빠진 느낌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궁수(弓手)였다.
궁수 네임드라면 나스 대미궁에서 지금도 활약하고 있을 헌터 아슈르가 있다.
어디에 소속되거나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자유의 방랑자, 아슈르.
그라면 레클리스의 활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겠지만, 자레드와의 접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대미궁 공략을 가면, 그때 인연을 만들어 봐야지.’
간단히 생각을 정리했다.
돈 몇 푼이나 애원 섞인 부탁은 콧방귀를 뀌면서 무시하는 사람이기에 정석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는 자였다.
실제로 에서도 아슈르는 항상 이런 말을 했었다.
“내 마음을 뺏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간 것보다 더 깊은 미궁으로 안내할 수 있는 사람뿐.”
기억하기로 아슈르가 최대로 내려간 미궁은 지하 23층. 그렇다면 최소 24층은 가야 했다.
‘늦지 않게 꼭.’
자레드가 아슈르에 대한 생각을 되새기며,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인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정말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 * *
완급을 조절한 공략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몬스터들의 수준은 일전의 가파지스 공략 당시에 석실에서 마주쳤던 마귀들과 비슷했다.
당시만 해도 내가 대다수의 마귀를 컨트롤하면서, 팀원들이 남은 마귀를 사냥하는 형태였지만.
이제는 달랐다!
만약 다시 마군의 피난처를 간다면, 모두가 적마귀를 쉽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크게 향상되어 있었다.
그래서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진에는 무리가 없었다.
지친 팀원에게는 타넥스를 입혀서, 체력 관리를 한결 더 수월하게 했다.
파일럿이 가만히 있어도 타넥스가 몸을 보호해 주며, 계속 마력탄을 사격해 줬기 때문이다.
‘이제 A급 정도로 분류되는 던전까지는 이 정도 인원으로 무난하게 공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보스 몬스터는 예외지만.’
얼추 계산이 섰다.
에서는 공략 난이도와 플레이어에게 요구되는 스펙에 따라 F급에서부터 Ex급으로 던전을 분류했다.
오늘 공략하고 있는 ‘로스트 아일랜드’는 A급 던전에 속했다.
나스 대미궁이 대표적인 Ex 등급의 던전에 해당했고.
물론 층마다 난이도가 달라서, 지하 1층 같은 경우에는 D급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은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는다.
물론 첫 공략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아티팩트 특전을 얻기 위해 온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오기에는 팀원들의 수준이 훨씬 높은 듯했다.
‘이제 나스 대륙 북쪽에서 쓸 만한 던전은 사라졌네.’
악몽의 숲, 마군의 피난처, 마하트 3세의 무덤, 그리고 로스트 아일랜드까지.
북쪽에서 나와 팀원들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꿀던전은 더 이상 없었다.
시선을 돌려야 한다.
어디로?
난이도 높은 던전이 무궁무진한 나스 대륙의 동쪽으로 말이다.
* * *
공략 이틀째의 밤.
드르렁, 푸우. 도로롱, 푸우.
로스트 아일랜드의 최종 보스 몬스터인 케베눔이 있는 보스 방을 앞두고.
마지막 안전지대에 자리를 편 모두가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당연히 자지 않았고, 가져온 거울과 면도기를 이용해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정리했다.
산적처럼 자란 수염마저도 잘 어울린다는 헤이즈의 응원이 있기는 했지만, 녀석은 칭찬 봇이니까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게다가 한 나라의 국왕이기도 하기에…… 용모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한 것도 있었다.
“폐하.”
그때, 등 뒤에서 나직이 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레나였다.
얼굴만 봐서는 당장 쓰러져 잠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녀석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안 자고 뭐 하고 있어?”
“폐하의 곁에 있고 싶어서요. 이틀 내내 던전 공략만 열심히 하느라 제대로 말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듯해서…….”
레나가 부끄러운 듯, 어색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레나는 항상 나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아니라, 선망하는 대상의 곁에 있고 싶은 ‘팬’의 마음이랄까?
마치 레나에게 나는 연예인처럼 가까이 있으면 너무 신기하고, 멀리 있으면 보고 싶은 그런 존재인 듯했다.
엘라가 전한 말에 따르면, 내가 가끔 레나가 생각나서 보낸 음식이나 과일을 레나는 절대 먹지 않고 보관해 둔다고 한다.
방부제 처리까지 해서 아예 가보(家寶)처럼 보관을 했다나? 나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였다.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레나에 대한 중간 점검이 필요할 때도 됐다.
스토리에서는 마왕군에 소속되어, 통곡의 벽으로 악명을 높이게 되는 레나.
과연 지금의 그녀는 마왕 혹은 암흑 교단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정된 미래를 바꾸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공들인 사람이 레나이기도 했기에, 그녀의 생각이 무척 궁금했다.
“레나.”
“네?”
“레나는 지금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암흑 교단과 이를 비호하는 마도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같은 하늘 아래 양립할 수 없는 최악의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요. 자신들과 뜻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희생도 당연하게 여기죠.”
라디우스 교단의 열렬한 추종자인 스승 엘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까?
레나의 생각은 굳건해 보였다.
“우리 왕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 거짓 없이 말해 주었으면 해. 그 정도에 마음 상할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 마.”
“단언컨대 폐하의 왕국은 최고라고 생각해요. 반면에 백성들을 돌볼 줄 모르는 말루스 왕국이나 보누스 왕국은! 최악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없어지는 게 마땅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폐하의 통치가 절실한 나라가 아닐까 싶고.”
레나의 말은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항상 하던 생각을 곧바로 내게 얘기한 느낌이랄까?
뿌듯했다.
물론 레나의 생각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에서 마왕군의 선봉에 섰던 그녀가 이제는 완벽한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폐하.”
“응?”
“제가 아직 부족한 실력과 어린 나이로 믿음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잠깐, 그건 아냐.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
진솔한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레나의 가정이 잘못됐기에 나는 즉시 바로잡아 주었다.
한 번도 그녀를 어리고 모자란 실력의 소유자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아끼면 아꼈지.
“그렇다면 폐하, 저도 이제는 실전에서 폐하의 든든한 힘으로서 자리하고 싶습니다. 왕국을 위해 힘을 보태고 싶어요.”
“실전이라…….”
“온실 속의 화초보다는 거친 바람 속의 잡초가 되고 싶습니다.”
레나의 비유는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의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지금껏 약 2년 동안 열심히 훈련을 해 왔지만, 그녀가 실전에 투입된 적은 없었다.
반면에 헤이즈나 이자벨은 함께 전장을 제법 누비고 다녔다.
그런 동료들을 보면서, 레나가 이래저래 자극을 많이 받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폐하,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이 찢기고, 터지고, 다시 박이기를 수십 차례. 정말 후회 없이 노력했어요.”
“알고 있다. 엘라 단장을 통해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간 제 몸에 새겨진 고된 훈련의 흔적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때.
레나가 내 앞에서 입고 있던 상의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예상도 못 했던 갑작스러운 탈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