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7
제 167화
58장. 아그라트 – 3화
‘분해와 재조합을 반복하며 회피하는 패턴이라……. 에서도 익히 보았던 패턴인데, 이걸 아그라트가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군.’
아그라트의 능력은 과연 암흑 교단의 교주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꽤 화려했다.
애초에 아그라트가 들고 있는 아티팩트 소드가 눈에 익었다.
블러드 소드.
죽은 자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알려진 검으로, 마검 중에서도 아주 극악한 마검이다.
이유는 간단한데, 주인으로 하여금 검에 귀속된 능력을 사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내 눈으로 보고 있는 모습인 ‘선혈의 신형’이었다.
에서 이런 형태의 NPC가 등장해서, 현란하게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고 유린할 때.
얼마나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른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대응법을 찾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었다.
물론 플레이어들의 숭고한 희생이 데이터로 쌓여, 멋진 공략 지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파훼법은 여럿 있었다.
‘윌트가 있으면 만능인데.’
나는 8클래스 마법 중 하나인 윌트를 떠올렸다.
윌트는 수분 증발 마법이다.
선혈의 신형은 기본적으로 육체를 분해시켜 일시적으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윌트는 그런 형태에 완벽하게 카운터를 칠 수 있는 대응 마법이었다.
피를 말려 버리면, 당연히 상대는 치명상을 입거나 그 상태로 즉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6클래스밖에 되지 않으니 최선의 선택지는 일단 기각이다.
‘그렇다면 세컨드 플랜이지.’
차선을 선택하기로 했다.
선혈의 신형은 무적에 가까운 회피법이지만, 해체와 재조합 사이의 빈틈이 반드시 존재한다.
다만 빈틈을 노리는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다면, 다시는 아그라트가 빈틈을 주지 않을 터.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타이밍을 노리는 중이었다.
‘가장 자신 있는, 그리고 가장 시선을 확실하게 잡아끌 수 있는 마법으로 가자.’
나는 콘셉트를 화염으로 잡았다.
그리고 플레임 애로우를 시전할 준비를 하자.
“클클.”
파아아앗!
일찌감치 아그라트의 몸이 흩어졌다.
확실히 녀석에게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본 베테랑의 향기가 느껴졌다.
대응이 빨랐다.
수인을 맺는 시점부터 전개할 마법의 속성과 형태를 읽고, 맞춤형 회피법을 꺼냈던 것이다.
특히 가장 위력적인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시전하려 하면, 그때는 아예 바싹 달라붙어 공격했다.
근거리에서는 내게도 전류가 튈 우려가 있어 함부로 마법을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염. 화염. 화염!
나는 시스템을 통해 ‘Ex 판정’을 받은 품격에 맞게, 온갖 화염 마법 공격을 펼쳤다.
난타전이 계속됐다.
아그라트도 껄끄러운 마법은 피했고, 적당한 수준의 마법은 검으로 쳐내며 맞붙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처음에는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있었는데, 서로 공방전을 주고받으면서 그 경계마저 희미해졌다.
확실히 상대하기 껄끄러웠다.
실력 있는 검사가 용도가 매우 다양한 회피 기술을 가지고 집요하게 근접 공격을 하니 동선이 크게 제한됐다.
중상은 입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상처가 계속 몸에 누적됐다.
아그라트도 입고 있던 옷의 반절이 전부 타 버렸을 정도로 꽤 타격을 입었다.
특히 마법 피격이 많았던 양쪽 팔에서는 살이 타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올 정도였다.
누가 먼저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막이 흐르며 고요 속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나와 아그라트는 5m 정도 거리를 둔 채, 서로를 조용히 마주보기만 했다.
“카아악, 퉤!”
이윽고 아그라트가 걸쭉한 피를 가래침과 섞어 뱉어 내며 말했다.
“제법이야. 아주 제법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크게 놀랐어! 변종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너는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야, 그렇지?”
“덤벼라. 말 섞기도 귀찮다.”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한 삶인데, 여기에 마법까지! 부럽구먼, 부러워.”
“이제 숨 좀 돌렸어? 그럼 덤벼라. 쫄아서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이 자식이……!”
잔뜩 썩은 표정으로 연속 도발을 날리자, 다시 열이 바짝 오른 아그라트가 달려들었다.
나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그라트의 공격은 더 빨라졌고, 더 적극적이 되었다.
약간의 빈틈 정도는 내게 보인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확실하게 장단을 맞춰 주기로 했다.
기회는 딱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때까지 버티고 버티면서, 놈의 아킬레스건을 노릴 타이밍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전투라는 것은 99번을 일관되게 방어만 하다가 1번의 공격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이기에.
까앙! 까앙! 까앙!
이윽고 핏빛 기운을 잔뜩 머금은 아그라트의 화려한 검격이 맹렬한 기세로 바람의 장벽을 내리쳤다.
한차례 방어를 할 때마다 마력이 500씩 소모될 만큼, 위력적인 공격의 연속이었다.
‘이 전투는 엉덩이가 무거운 쪽이 이긴다. 버틴다, 끝까지.’
내 계획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묵묵히, 놈의 공격을 막고 또 막아 냈다.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이다.
* * *
30분 후.
‘다른 마법에는 자신이 없는 건가? 하긴…… 화염 마법으로도 위력적이니 그럴 수 있겠군.’
아그라트는 자레드의 방어 일변도 대응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일단 신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특이했다.
마법사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어떻게 방어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레드는 그저 막기만 했다.
문제는 검과 마법의 대결 구도에서 근거리는 확실히 검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유효타를 단 한 번도 먹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아그라트는 자레드가 의도적으로 장기전을 유도해서, 자신의 체력을 먼저 고갈시키려는 예리한 노림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자레드의 크나큰 오산이 될 터였다.
‘나와 이 녀석, 블러드 소드는 한 몸과 같지.’
아그라트의 체력은 블러드 소드에 내재된 ‘선혈의 기운’을 통해 끊임없이 보충되고 있었다.
그래서 체력의 소모는 생각보다 덜했다. 부상당한 부위의 회복이 더뎠을 뿐이다.
‘공격 의사가 없다면, 확실하게 더 압도해 줄 뿐이다!’
아그라트가 지지부진한 공방전의 형세를 바꾸고자,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 자레드의 싸움 패턴은 거의 다 눈에 익혔다.
생각보다 레퍼토리가 다양하지 않았고, 주로 활용하는 마법도 화염계뿐이라 대응이 편했다.
분석이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재료를 알맞게 요리하는 것일 뿐.
“하아아앗!”
일갈과 함께 아그라트가 자레드에게 쇄도했다.
‘역시.’
뻔한 대응법이지만, 그래도 가장 자신이 있는 마법이라 그런지 자레드가 화염 마법을 전개했다.
‘파이어 월.’
거대한 불의 장벽이었다.
예상보다 더 높이, 그리고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으로 봐서는 종종 자레드가 시전한 특수한 마법인 것 같았다.
일반적인 마법보다 위력이 좀 더 강력한 마법 말이다.
파앗!
불길의 높이와 위력이 어떻든 간에 자신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선혈의 신형은 그래서 무적이었다. 저런 불길 따위는 어렵지 않게 피해서 넘어갈 수 있으니까.
“하아아압!”
하지만 자레드는 나름대로 승부수를 던졌는지, 왼손을 통해 뻗어져 나오는 마력의 양을 더욱 높이고 있었다.
그러자 파이어 월이 지옥문으로 향하는 불길처럼 높이 솟구쳤다.
일반 몬스터나 사람이었다면 닿는 순간 녹아 죽었을 정도로 강렬한 열기.
그렇지만 아그라트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이윽고 불길 구간을 지난 아그라트는 다시 몸을 조합시키며, 공격 자세를 잡으려고 했다.
“어림없다, 이 새……!”
바로 그때.
꾸드드득.
“……아?”
아그라트는 자신의 복부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극한(劇寒)의 기운을 느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얼음의 창이 복부 한가운데를 관통한 상태였다.
선혈의 신형이 다시 합쳐지기 전, 얼음의 창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전혀 예상 못 한 아그라트는 얼음의 창 위에서 재조합을 해 버렸고, 결국 자해를 한 꼴이 돼 버렸다.
“이건 예상 못 했나 보지?”
그때, 자레드의 목소리를 들은 그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레드의 왼손은 여전히 파이어 월의 불길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것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른손에서도 한기가 피어오르며, 복부를 꿰뚫은 얼음의 창에 빙하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1인, 1회, 1마법.
그것은 진리였다.
지금까지 그 어떤 마법사도 어겨 본 적도, 뛰어넘을 수도 없었던 자연의 섭리(攝理)였다.
하지만 자레드는 양손에 각기 다른 마법을 구현해 내고 있었다.
시간차를 두고 빠르게 시전을 한 것도 아닌, 동시의 교차 시전이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꾸득. 꾸득. 꾸드득.
빠르게 몸이 얼어붙고 있었다.
선혈의 신형을 재차 전개해 보려 했지만, 이미 몸이 얼어붙고 있어 시도조차 불가능했다.
“어차피 백 번의 공격을 실패해도, 한 번의 공격을 성공하면 죽는 게 사람의 목숨이잖아?”
“크헉…….”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제대로 조합되지 못한 복부 한가운데는 이미 만신창이가 된 후였다.
뭉쳐질 자리에 이물질인 얼음이 있으니, 갈가리 찢기고 터져 나간 것이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껏 평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껴 본 적 없던 아그라트였다.
선혈의 신형은 그 정도로 무적에 가까운 기술이었고, 아그라트 자신의 밥줄이었다.
그래서 직전의 전투에서 부하들을 줄줄이 잃었어도, 당황은 했을지언정 두렵지는 않았다.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확신이 무너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거야 원. 지켜볼 만한 녀석이라고 하기에 열심히 붙어 있었건만 형편없는 놈이로군. 에잉.
퀴라티오가 볼멘소리를 했다.
제법 실력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레드에게 또 당해 버렸다. 일전의 제스처럼.
“6클래스 마법, 아이스 스피어. 모든 것을 날카롭게 꿰뚫고, 닿은 모든 것을 빠르게 얼려 버리지.”
샤아아아.
자레드가 마력을 힘껏 불어넣자, 한기가 전보다 더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꽁꽁 얼어붙어서는 산 채로 잡혀갈 판이었다.
“…….”
아그라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방금 전까지 득의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정신의 모든 공간을 두려움과 공포가 채웠다.
건드려서는 안 될 놈을 건드렸다!
그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일단은 내 연구실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로 돌아가면 지금까지의 상처는 시간이 걸려도 치료를 할 수 있다!’
최후의 수단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아그라트는 그 즉시 도주 계획을 세웠다. 여기서는 버티는 일분일초가 지옥이 될 뿐이었다.
“크아아악!”
쫘아악!
이윽고 비명을 토해 내며, 아그라트가 얼음의 창을 움켜쥔 채로 몸을 뒤로 쭉 빼냈다.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졌고, 동시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정신은 붙어 있었다.
“아아아악!”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아그라트가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차원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이 기회에 놈의 본거지까지 쓸어버리는 거다.’
내심 아그라트의 도주를 기다리고 있던 자레드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내친김에 녀석의 본거지를 싹 쓸어버릴 기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