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6
제 166화
58장. 아그라트 – 2화
“이걸 인연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악연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2년 전부터 나의 소소한 불장난을 막아서는 놈이 누군가 했더니, 크리비아 왕국의 국왕이셨어?”
“소소한 불장난치고는 너무 분수에 맞지 않는 장난을 치던데.”
“이거, 이거! 우연치고는 너무 대어를 낚은 느낌인데? 올 때 편지라도 좀 쓰고 와 주지 그랬어?”
“네놈이 벌인 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그라트.”
“내 이름도 알아주시옵고! 참으로 영광이네. 그럼 우리가 누군지도 당연히 알겠지?”
“암흑 교단인 카코 교단의 교주 아그라트, 그리고 단원들이겠지.”
“어……? 이것까지 알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아그라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진심이었다.
맞는 말이기는 했으나, 대외적으로 교단의 실세나 구성원이 누군지 밝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은 데스먼드 제국에서 적당한 규모의 상단을 운영하는 상단주로서 ‘신분 세탁’이 끝난 인물이었다.
대외적으로 활동을 할 때는 기존의 백발과 창백한 얼굴도 모두 가리고, 건강한 남자의 얼굴로 화장했으며 가발을 쓰고 활동했다.
처척. 척. 척.
자레드와 아그라트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차원문 너머에서 착착 그의 부하들이 넘어왔다.
그중에 하나가 적의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말했다.
“저놈이 제스 님과 우리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하였습니다. 교주님, 저놈의 목숨을 거둘 기회를 제게 주십시오!”
듣고 있자니, 말이 전부 엉터리라 자레드가 코웃음을 쳤다.
“날 먼저 죽이려고 한 것은 너희들이야. 앞뒤 다 자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그만 지껄이지?”
“아이고, 우리 국왕님! 제스도 죽이고, 단원도 죽이고 나니 기분이 좋아지셨어요? 세상 다 가진 최강자가 된 것 같고, 막 그래요?”
“…….”
한껏 약을 올리려는 아그라트의 모습에 자레드가 입을 닫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교주로서의 과묵하고 절제된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의 아그라트는 과묵함이 매력이었는데…….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콘셉트인 듯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누가 봐도 뻔한 사지로 직접 갈 배포가 없어서 부하들을 대신 보낸 네가 비겁한 놈이라는 건 잘 알겠더군.”
“푸하하하!”
자레드의 말에 아그라트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제스는 애초에 버림패였고, 동행으로 보냈던 카코스도 우리 교단에서 문제가 많았던 배신자들이었지. 제스에게 최정예라고 포장하긴 했지만, 사실 쩌리였다고.”
“모양 빠지는 자랑이군.”
“그거 이겼다고 득의양양해져서 제스의 시체는 신데르스 왕국으로 보내고, 단원들은 효수하고! 기분 좋으셨어요?”
“교주님, 국왕이면 뭐합니까? 저런 놈은 제가 단칼에 목을 따 버리겠습니다.”
그때, 한껏 기세가 오른 어쌔신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자레드가 어쌔신의 상태를 스캔해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근거가 확실한 ‘의미 있는’ 웃음이었지만, 당연히 어쌔신에게는 명백한 도발이 됐다.
“웃어?”
파팟!
어쌔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이 고속 이동하며, 순식간에 자레드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제법 움직임이 빨랐다.
그리고 손동작 역시 매우 빨라서, 독액을 잔뜩 묻힌 단검이 일거에 자레드의 복부를 찔렀다.
아니, 찔렀다고 생각했다.
“엇?”
후욱!
하지만 단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 버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매우 선명했던 자레드의 모습은 순도 100%의 허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런 생각은 공격을 전개한 어쌔신뿐만 아니라, 지켜보던 이들도 똑같이 했다.
분명 블링크 따위로 회피하거나, 미러 이미지로 환영을 분리시키는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쌔신은 일단 그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터업!
이미 그 시점에 자레드의 손길이 어쌔신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말도 안…….”
빠지지직!
“끄륵.”
확실한 살상(殺傷) 능력을 발현하기에는 일반 라이트닝 볼트 마법이면 충분했다.
이 어쌔신처럼 마법 방어력이 형편없이 낮은 녀석이라면, 초월 마법을 쓰는 것은 오히려 마력 낭비였다.
방금 전, 자레드가 사용한 마법은 퀸튜플 트랜센던스 미러 이미지였다.
총 1만의 마력이 소모됐다.
예전 같았으면 제법 부담이 됐을 마력 소모였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이 와중에도 마력은 계속 회복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케베눔 링에 10번 옵션으로 걸려 있는 ‘야행성 기질’이 발동되니, 회복은 더욱 빨랐다.
“미러 이미지를 활용한 것은 확실한데, 복제된 분신을 한곳에 뭉쳐 놓은 건가? 놀랍군!”
아그라트가 박수를 쳤다.
예상치 못한 수였다.
게다가 자레드가 펼친 마법은 분명 보통이 아니었다. 예상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감탄만 하지 말고 좀 덤비지. 한 사람 두고, 똥폼은 정말 열심히 잡는군. 왜, 상대를 보니까 기세등등하게 넘어온 게 후회돼?”
자레드가 아그라트를 포함한 모두를 한꺼번에 도발했다.
그러자 부하들이 한두 걸음씩 나서며, 짙은 살의를 드러냈다.
“어이, 국왕 씨. 그 패기, 참 마음에 들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보니, 우리 애들을 단계별로 준비를 해 왔거든.”
“응. 상대가 강하면 샌드백으로 내세울 부하를 잔뜩 데려왔다는 거지?”
“……야잇, 자꾸 말 돌리지 마! 어쨌든 애들을 좀 데려왔는데, 상대해 보겠어? 무인의 예를 지켜서, 일대일 승부를 하게 해 주지.”
방금 전에 어쌔신이 불의의 일격으로 죽기는 했지만, 데려온 구성원 중에 가장 약한 놈이었다.
지금부터 나설 부하는 4클래스 마법사 정도의 목은 심심풀이로 여럿 따 봤던 부하들이었다.
자레드를 상대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여겼다.
“덤벼라. 난 도망가지 않는다.”
자레드가 손가락을 앞뒤로 까딱이며, 전원을 도발했다.
그리고 타넥스는 만약을 대비해 뒤에 세워 뒀다.
한편 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부하들의 상태를 심안으로 스캔하며 자연스럽게 아그라트에게도 시선이 향했다.
한데 그때.
‘어? 왜 녀석의 정보가 보이는 거지? 녀석에게는 악신 퀴라티오의 가호가 내렸을 텐데?’
아그라트의 정보가 보였다.
일전에 카이클이나 나탈리처럼, 가호를 받는 모든 이는 심안의 분석에 절대 면역이었다.
그런데 아그라트에게는 그 면역이 적용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아그라트 역시 퀴라티오의 가호가 직접 내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리로 내린 것이었단 말이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돌려쓰기도 아니고 악신의 가호를 빌려주고, 또 빌려주는 구조라니?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뭘 뚱하게 쳐다보고 있어, 이 XX야!”
독기가 바짝 오른 단원 하나가 자레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조악하긴 하나, 제법 초기 단계의 검기를 다룰 줄 아는 실력파 검사였다.
* * *
찢기고, 터지고, 불타고, 짓눌리고, 부러지고, 으깨지고.
이런 험악한 단어들이 어울리는 살육의 향연이 벌어졌다.
‘XX…….’
속으로 몇 번이나 욕을 곱씹었는지 모를 정도로 아그라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제스와 카코스를 손쉽게 모두 죽인 것이 단순히 별궁의 경계와 연계된 칼 같은 대응 덕분이 아니었다는 건가?’
전투를 현장에서 직접 보지 못한 아그라트는 자레드의 지난 승리가 철저한 준비 덕분이라 생각했었다.
제아무리 자레드가 제법 실력을 갖춘 마법사이자 국왕이라 한들, 그들을 전부 홀로 상대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완벽하게 틀린 생각이었다.
자레드의 마법 수준과 수위는 아그라트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 단계, 아니 세 단계는 높았다.
일대일로 시작된 전투는 종국에 이르러서는 부하 다섯이 동시에 달려드는 일대다의 전투가 됐지만…….
모조리 죽었다.
단 한 명도 자레드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의 숨결이 제법 느껴졌던 악몽의 숲에는 이제 자신과 자레드, 둘밖에 없었다.
-보통내기 인간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거늘, 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네놈의 실수다. 클클클.
“…….”
지켜보던 퀴라티오의 속삭임에 아그라트의 양미간에 주름이 더 깊게 잡혔다.
어나더 클래스(Another Class).
자레드에게는 이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듯했다.
누가 자레드를 5클래스 – 그는 자레드가 6클래스가 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 마법사로 보겠는가?
오늘 데려온 전력은 결코 맛보기식으로 데려온 잉여 전력이 아니었다.
정예 중의 최정예였다!
최소 4클래스 마법사의 목숨 정도는 손쉽게 거둬들이고, 5클래스 마법사와는 호각지세를 능히 이룰 수 있는 실력자였던 것이다.
한데 계산이 전부 틀렸다.
부하들의 부상 따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모조리 죽어 버렸다.
아주 잠깐, 아그라트는 고민에 잠겼다.
자레드와 싸울지, 아니면 모양새가 빠지더라도 일단 도망칠지를 두고.
차원문이야 넘어가서 닫아 버리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거점으로 삼고 있는 데스먼드 제국은 암흑 교단을 오래전부터 비호해 준 세력이었다.
자레드가 아무리 겁이 없다고 한들, 제국 안까지 들어와서 행패를 부릴 리는 없다고 여겼다.
‘이런 변종이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걸까.’
아그라트는 그게 의문이었다.
제법 세상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아그라트였지만, 본격적으로 자레드의 이름을 들은 것은 약 1년 전부터였다.
그전까지는 보잘것없는 한미(寒微)한 영지의 영주로서, 전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그였다.
‘이 아그라트가 겁을 먹었다고? 완전 짜증 나는군!’
평온치 못한 감정 상태를 느끼니, 자존심에 깊은 스크래치가 생기는 듯했다.
부하들을 모조리 잃은 탓에 잠시나마 평정심이 흔들렸던 모양이었다.
자신은 여전히 카코 교단의 교주이자, 악신 퀴라티오가 후견해 주고 있는 실력자다.
자레드의 실력이 제법 뛰어나 보이기는 하나, 충분히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고 여겼다.
시이잉.
아그라트가 검을 빼 들었다.
블러드 소드(Blood Sword).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아티팩트이자 그가 가진 특수한 능력의 기원이기도 했다.
-저놈을 죽이면, 늘 그렇듯이 저놈이 가진 능력의 절반을 네게 나눠 주지…….
퀴라티오의 약속이 이어졌다.
동기부여는 충분해졌다.
남은 것은 전투뿐.
“죽여 버리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그라트의 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는 단순 블링크나 텔레포트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선혈의 신형!’
바로 전신을 생동하는 선혈(鮮血)로 쪼개어 분해했다가 재조합하는 특수 기술이었다.
‘지금껏 내가 펼친 선혈의 신형을 목격하고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그라트는 승리를 자신했다.
전승(全勝).
특수 능력을 개방했을 때, 자신의 손으로 움켜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 역시, 과거의 자신이 얻어 낸 결과물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레드와 첫 번째 합을 맞춰 보기 전까지는……!
꽤 그럴듯한 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