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68
제 168화
58장. 아그라트 – 4화
마도국 데스먼드 제국.
황도(皇都) 데스먼디아의 황성 안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쌓아 올린 탑이 하나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황제의 탑’이라고 불렀다.
황제, 그리고 출입이 허락된 5인이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황제의 부모나 자식, 황후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탑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문장은 일반 경비병이 아닌 오러 블레이드를 다룰 수 있는 검사였고.
이들에게는 접근이 허가되지 않은 모든 대상을 자의적 판단으로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한편 황제의 탑으로부터 2km 떨어진 지점에는 마탑이 있었다.
바로 데스먼드 제국의 흑마법사들이 모인 흑마법사단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황제의 탑과 마탑은 그렇게 황성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늘 그렇듯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황제의 탑의 꼭대기.
싸늘한 칼바람이 뼈가 시릴 정도로 매섭게 부는 탑 안에서 두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그라트는 역시 쓸 만한 놈이 아니었군.”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데스먼드 제국의 황제, 디그론 4세였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에 도착한 딸의 서신이 쥐어져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딸, 나탈리.
그녀가 보낸 서신이었다.
“예, 폐하.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자신만의 본거지에 침입자를 허용했다는 것은…….”
흑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9클래스의 흑마법사 이카젤라.
디그론 4세의 심복이자 마탑을 관장하는 탑주이며, 데스먼드 마법사단의 수장인 인물이었다.
바로 그때.
우웅! 우웅! 우웅!
이카젤라가 들고 있던 통신석이 연신 진동했다.
그것은 방금 막 들어온 내용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통신석 하단에는 연결된 대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대일 교신만이 가능한 통신석이기에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표기해 둔 것이다.
[아그라트]교신 대상은 아그라트였다.
이카젤라가 마력을 불어넣어 통신석의 수신을 활성화했다.
-자레드! 자레드가 저를 쫓고 있습니다! 이카젤라 님! 도움을 요청합니다!
“…….”
딸깍.
이카젤라가 수신을 중단했다.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 하니, 이미 자레드가 아그라트의 거점을 휘젓고 있는 모양이었다.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이카젤라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통신의 마지막에 자신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 기분이 나빴다.
어쨌든 아그라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듯했다.
“이카젤라.”
“예, 폐하. 하명하십시오.”
“모두 남김없이 폭파하고, 모든 것을 묻어라. 아그라트의 이용 가치는 끝났다.”
“교단은 어찌하실 것입니까?”
“어차피 새 얼굴이야 다시 세우면 그만인 것을.”
디그론 4세의 투박한 손이 내벽에 놓여 있는 칠판으로 향했다.
그 위에는 카코 교단의 계보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그라트의 이름은 계보도에서 그다지 높지 않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디그론 4세의 속내를 이해한 이카젤라가 고개를 숙였다.
“제거 계획을 시행하겠습니다.”
“현장으로 가서 아그라트가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고, 함께 죽게 될 자레드의 시체도 찾도록.”
“예, 폐하. 명 받들겠습니다.”
샤아아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카젤라의 손이 탑의 우측을 향해 뻗더니, 방금 전까지 투명했던 보석에 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로 색깔이 바뀌면서 검게 변하더니,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이카젤라가 덤덤한 목소리로 보고를 이어 갔다.
“모든 것이 남김없이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확인하고 오라.”
“예, 폐하.”
파아아앗-.
이내 이카젤라의 모습이 탑에서 사라지고, 황제 디그론 4세만이 홀로 남았다.
“자레드……. 이놈이 앞으로 우리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군. 마왕 현신의 그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건만.”
까드득.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꽉 다문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딸 나탈리가 보낸 서신을 다시 펼치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를 생각하면 늘 미소만 짓게 되는 자신은…… 분명 딸바보임이 틀림없었다.
* * *
그 시각.
“허억. 허억. 허억.”
나는 미칠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현생에서 눈을 뜬 이후, 처음으로 정말 죽을 뻔했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지, 아그라트가 갖고 있던 블러드 소드를 챙길 틈도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동시에 엄청난 대폭발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절대 아그라트의 계획이 아니었다.
어떤 함정이나 트랩을 발동시켜서 이 정도의 대폭발을 일으키려면, 시동 장치 정도는 자신이 직접 눌러야 한다.
하지만 아그라트는 통신석에 대고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한 뒤.
뒤따라온 나를 발견하고 창백한 표정을 한 채, 두 손을 모아 살려 달라고 싹싹 빌고 있었다.
그게 폭발 직전의 상황이었다.
“후아…….”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축 늘어진 몸으로 타넥스에 탑승한 채 현장을 이탈하는 중이었다.
대폭발이 일어나자마자, 간발의 차이로 모든 마력을 투입해서 바람의 장벽을 펼쳤다.
마력을 단 1이라도 아꼈다면?
지금 내가 날고 있는 곳은 데스먼드 제국의 상공이 아니라, 황천길의 황량한 어딘가였을 것이다.
‘환희의 찬미를 쓰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야.’
한 사람에게 단 1회밖에 주어지지 않는 소생의 기회를 날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경각심을 확실히 갖게 된 계기도 됐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늘 하고 있었지만, 몇 가지 안전장치가 있어 느슨하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카젤라라고 했지.’
나는 기억을 곱씹었다.
최후를 앞두고 통신석을 붙잡은 아그라트는 그 너머에 있는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이카젤라.
기억이 날 듯 말 듯하다.
의 고인물인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스토리에서 배제된 내용일 경우다.
이카젤라가 그런 경우인 듯싶었다. 기억에 없다.
아마도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에 죽었거나, 혹은 마왕군 소속이나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
하지만 확실한 추측 하나는 해 볼 수 있었다.
‘연락을 받은 이카젤라가 아그라트를 즉시 용도 폐기했다는 것. 이는 아그라트는 카코 교단의 얼굴마담에 불과하고, 교단의 진짜 실체는 배후에 있다는 얘기도 돼.’
일단 이카젤라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중요할 듯했다.
암흑 교단이나 마도국 사람들은 위장에 능하고 가명을 잘 쓴다.
그래서 ‘이카젤라’라는 이름을 들었다고 한들 그 이름을 오롯이 믿을 수는 없다.
슈아아아아!
바로 그때.
아그라트의 거점을 빠져나온 검은 빛줄기가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으나,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악신 퀴라티오일 것이다.
‘학살과 기생의 신.’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원래의 주인에게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
퀴라티오의 흔적을 쫓던 나는 멀리서 보이는 수많은 점의 향연에 즉시 이동을 멈췄다.
아직 새벽이라 어둡긴 하지만, 대폭발로 인해 발생한 불길 덕분에 시야는 밝았다.
여기서 유유자적 타넥스를 타고 이동하다가는 발견되기 쉬울 듯하여 가장 가까운 나무에 안착했다.
그리고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이용하여 나와 타넥스의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내가 공격 의사나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투명화는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분당 80의 마력을 꾸준히 소모한다는 것이 과거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이제는 마력이 2만을 넘어가는 판이라 딱히 신경 쓸 것도 없었다.
“…….”
나는 숨을 죽이고, ‘점’들이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모두 플라이 마법을 쓰고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누구 하나 당황한 기색 없이 등속(等速)을 유지하며 날아오는 것으로 봐서는 현장 확인차 온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때, 최전방에서 마법사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퀸튜플까지 업그레이드된 심안이 감지할 수 있는 최대 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상태였다.
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그의 정보를 스캔했다.
[이카젤라] [특수 성향 : 퀴라티오의 가호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특수 성향 열람이 불가능합니다.]‘이카젤라가 퀴라티오와 계약을 맺은 본체. 데스먼드 제국 소속이면 십중팔구 흑마법사일 테고, 메인 스토리에 없었다는 것은 그 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
아그라트가 최후의 순간에 부르짖던 이름은 가명이 아니라 실제 이름이었다.
성마 대전 발발 전에 어떤 이유로든 변화가 일어났고, 그래서 성마 대전 이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존재.
카이클, 나탈리에 이어 세 번째로 내게 물음표를 찍게 만드는 인물이 등장했다.
“자레드와 아그라트의 흔적을 찾아라!”
이윽고 이카젤라가 소리쳤다.
그러자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속으로 낙하하며, 빠르게 현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마법사들 하나하나가 최소 5클래스 이상은 되어 보이는 최정예들이었다.
그 순간, 나는 신성 국가에서의 삶에 젖어 잠시 잊고 있었던 단어 하나를 떠올렸다.
‘마탑.’
그것은 바로 마탑이었다.
흑마법사들의 구심점이자 마도국의 마법사들을 가리키는 상징적 건물.
휘하에 5, 6클래스의 마법사들을 둘 수 있는 마법사는 그리 흔치 않다.
그 말인즉슨.
‘이카젤라가 마탑을 관장하는 탑주인 거야. 그렇다면 그는 무조건 9클래스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폭발에 휩쓸리기 전에 사력을 다해 방어를 펼친 다음, 재빠르게 현장을 이탈했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이카젤라와 마법사들에게 붙잡혀 여기서 생을 마감할 뻔했다.
나는 시야에서 완전하게 이카젤라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 그와 일대일로 싸운다면 싸워 볼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함께 데려온 부하들이다.
세상은 정정당당하게 일대일 승부만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아그라트가 악몽의 숲에서 전투 막바지에 이르러, 부하들을 죄다 내게 투입했듯이 말이다.
‘크게 하나 배우고 가네. 암흑 교단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죽을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었다.
암흑 교단도 분명한 적이지만, 더 큰 적은 마도국이다.
그들은 성마 대전이 발발하는 순간, 모조리 마왕군의 편에 서게 된다.
‘성장, 성장, 성장……. 아직도 난 부족해.’
결론은 간단명료하다.
더 강해지는 길뿐이다.
마탑의 탑주와 휘하 마법사들을 마주하더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는 강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쿠우웅! 콰아앙!
그사이, 아그라트의 거점 여기저기서 추가로 폭발이 일어났다.
뭔가가 저절로 터진 것 같지는 않고, 현장의 증거를 완벽하게 인멸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일으키는 폭발 같았다.
‘이카젤라. 기억해 두겠어.’
나는 다시금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겼다.
이제 주시해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났다.
그것도 적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은…… 흑막(黑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