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1
제 171화
59장. 대균열 – 3화
일방적인 고블린 학살이 계속됐다.
‘무한 수련의 방’은 무제한의 크기로 만들어진 공간으로 고블린이 계속 증식해도 문제가 없었다.
멍청한 고블린들은 생성되자마자 동족을 제외한 모든 생체를 공격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수가 몇이든 간에 무조건 나와 헤이즈만을 노렸고, 거친 불길이 타오르고 있어도 묵묵히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최종 단계.
즉, 21번째 분열에 이르러서는 고블린의 수가 209만 7152마리에 육박할 정도로 많았다.
덕분에 에서 듣던 백만 대군의 두 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헤이즈의 보조와 꿋꿋하게 태워 올린 불길 덕분에 고블린은 문제없이 모두 제압됐다.
그리고 21번째 분열로 등장한 고블린 ‘이백만 대군’을 모두 처리하고 나자.
스르르륵. 스르륵.
모든 고블린의 시체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더 이상의 분열은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짤랑! 짤랑! 짜그랑!
이어서 반짝이는 금화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내렸다.
이것이 현대식 화폐라면 일련번호의 중복 문제로 사용할 수 없었겠지만, 이 세계는 아니다.
물론 시중에 금화가 대거 풀리게 된다면, 통화량의 증가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가 일부 야기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스 대륙의 경제가 크리비아 왕국 하나만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각국의 예산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금화 유통은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고 봤다.
“폐하, 하늘에서 금화로 만들어진 눈이 내리는 것 같아요…….”
“신기하지?”
“네. 이건 아마 평생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일 것 같아요! 특별한 경험이에요!”
헤이즈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금화들을 열심히 주웠다.
아담한 작은 손으로 금화를 주워서 담는 헤이즈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하지만 지금은 일일이 수작업을 할 때가 아니다.
“헤이즈, 잠깐 뒤로 물러서.”
“네?”
“금화를 아공간에 모두 쓸어 담을 거야.”
“아! 아공간이 있었죠?”
“응! 아공간의 입구를 낮게 조정해서, 쓰레받기로 쓰레기를 담듯이 금화를 쓸어 담을 거야.”
“네, 알겠어요! 흘러나오는 금화들만 제가 밀어 넣을게요!”
“응, 부탁해.”
바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아공간의 입구가 쩍 하고 입을 벌렸고, 보이는 모든 것을 쓸어 담을 준비를 마쳤다.
[탐욕의 장난꾸러기, 멜트] [분류 등급 : 6성] [옵션 1 : 가로, 세로, 높이 100m로 구성된 정육면체의 아공간을 소유합니다.] [옵션 2 : 아공간의 크기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1000000G를 멜트에게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투자할 경우, 아공간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 1km로 늘어납니다.] [옵션 3 : 물건 보관과 소환에는 3초의 시간이 소요됩니다.]얼마 전에 사비로 업그레이드를 한 덕분에, 내부는 넉넉했다.
30층가량의 넓은 빌딩 한 채가 아공간으로 존재하는 느낌이랄까?
약 200만 골드의 금화를 보관하고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크기였다.
“랄랄라! 금화는 반짝반짝, 폐하의 아공간은 활짝활짝.”
헤이즈가 제법 운을 맞춘 콧노래를 이어 가며, 흘러나온 금화를 열심히 넣었다.
뿌듯했다.
의 지식 하나로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엄청난 돈을 얻은 것이다.
전생에는 2조 원이 아니라 2억, 아니 2천만 원만 해도 엄청 큰돈을 가진 느낌이었다.
한데 눈앞에서 2조 원의 가치에 해당하는 금화가 아공간으로 와르르 밀려들어 가고 있다.
격세지감이란 게 이런 걸까.
이 모든 금화가 나와 내 왕국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이즐, 곧 간다. 기다려. 당신의 마음도 이제는 내 차지야!’
한 사람만 곁에 두어도 대장장이의 모든 것을 가진 것과 같다고 했던 의 명언이 떠올랐다.
아세로는 일찌감치 나의 신하가 됐고, 이제 모이즐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절망적이기 그지없었던 의 메인 스토리 느낌은 분명 많이 벗어났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세기말에 좌절, 절망의 느낌이 물씬 풍겼던 의 메인 스토리 시작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시점부터 견고하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고 있는, 완벽한 대비자였다.
그사이, 아공간의 자체 금화 수거(?)가 모두 끝났다.
“폐하! 마지막 금화예요!”
짤랑!
남아 있던 금화 하나까지 모조리 아공간에 던져 넣은 헤이즈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웃었다.
목표 달성.
이제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 * *
다시 돌아서 나오는 과정은 진입했을 때와 똑같았다.
나와 헤이즈를 ‘뱉어 낸’ 자리로 돌아가 살짝 몸을 상승시키면, 통로가 알아서 우리를 빨아들일 터.
“응?”
한데 뭔가 특이한 것이 보였다.
에서 대균열에 들어왔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이 하나 있었다.
내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자, 헤이즈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훑으며 말했다.
“폐하, 무슨 문제라도 발견하신 거예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른 공간이 하나 있어.”
나는 북동쪽으로 보이는 특이한 ‘방’을 가리켰다.
나머지 방들은 모두 경험해 보았고, 효용가치가 없음이 확실하게 밝혀진 방이었다.
무한 수련의 방은 내부 정리가 끝났기에, 차원문이 붉게 변해 있었다. 진입 불가의 표시다.
“제가 먼저 가 볼게요, 폐하. 위험한 공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서라. 정찰용으로 이 녀석이 있잖아. 괜히 목숨 걸 생각 말아.”
나는 앞서 나가려고 하는 헤이즈의 손을 꽉 잡고, 타넥스를 빠르게 전진시켰다.
아는 방이라면 미련 없이 포기하겠는데, 모르는 방이라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균열은 자주 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밖으로 나가면, 당분간은 모습을 감추고 사라질지도 몰랐다.
에서도 그랬으니까.
다녀간 플레이어가 있으면 에너지의 균형이 깨지는지, 균열의 입구가 사라졌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다시 생기곤 했었다.
나는 타넥스의 시야를 연동 상태로 놓고, 가져온 마정석으로 화면을 출력했다.
하지만 타넥스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프지지직. 지직. 지직.
교신이 끊겨 버렸다.
혹시나 싶어 타넥스를 불러내자, 그 명령은 문제없이 잘 수행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증명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다른 차원 혹은 공간이야.”
대균열에서 발견한 특이한 공간이기에 평소보다 관심이 더 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지 않는가?
타넥스가 안전하게 들어갔다 다시 나온 것을 보면, 일단 입구 자체는 문제가 없을 듯했다.
“헤이즈.”
“반드시! 무조건! 같이 가겠어요! 절대 여기 있으라고 하시기 없기예요!”
어디서 독심술을 배웠는지, 내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헤이즈가 바로 내 속내를 간파했다.
“그래, 같이 들어가자. 바로 전투 준비해. 여긴 나도 정보가 없는 곳이니까, 긴장하고.”
“네, 걱정 마세요!”
미지(未知)의 세계로의 이동.
그렇게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황량하고 척박한 땅.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붉은빛의 대지 위에는 온통 뼛조각만이 가득했다.
뼛조각은 대부분이 동물 또는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남긴 흔적이었다.
반면에 인간의 백골로 추정되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이 주변에는 사람이 드나든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단언컨대 나스 대륙에 이런 곳은 없어.”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스 대륙 여기저기에 밀림이나 사막 같은 특수한 지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여기는 아예 생태계 자체가 달랐다.
마치 SF영화 속의 단골 메뉴로 자주 봤던 화성(火星)의 표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때.
애애애앵!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척박한 환경에 웬 파리가 있나 싶었지만, 이런 환경에 적응한 곤충일 수도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만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귀찮게 굴기에 손으로 툭 쳐냈다.
“앗!”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찰나의 순간에 손등에 깊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당황하여 손등을 살피니, 마치 손톱에 수십 번은 할퀸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올라! 헤이즈의 전신을 확실하게 보호해! 완전 방어!”
-명령을 수행합니다.
먼저 헤이즈의 안전부터 챙겼다. 나는 실드나 바람의 장벽으로 막아 내면 되니까.
일단 파리의 위치를 추적했다.
그러자 저 멀리 떠나는 듯하다가, 다시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파리의 모습이 보였다.
[마계 파리]“헐? 여기가 마계라고?”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파리인 것은 처음부터 알았으니 그렇다고 치고, 앞에 붙은 수식어가 충격적이었다.
마계 파리!
분명한 것은 이런 이름은 내 기억 속에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에 거대화된 곤충 형태의 몬스터가 있기는 했어도, 작은 곤충이 고도의 공격 능력을 탑재한 것은 처음 봤다.
[특수 성향 : 인육 섭취 SSS]‘뭐야, 이 특수 성향은…….’
뜬금없이 SSS등급을 찍어 놓고 있는 마계 파리의 성향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다행히 스탯들은 낮았다.
나는 침착하게 마계 파리가 접근하기를 기다린 뒤.
퍼어엉!
아쿠아 스톰으로 녀석의 몸 전체를 적셔 주었다.
날개가 물에 흠뻑 젖자, 마계 파리가 속절없이 추락했다.
크기 자체는 새끼손가락 반 마디 정도로 작았기에, 나는 힘껏 밟는 것으로 공격을 대신했다.
뿌드득.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덕분에 마계 파리의 목숨은 거둘 수 있었다.
“와…….”
파리 하나에 순간 당황하게 될 줄이야.
한편으로는 작아 보이는 곤충이라고 해서 쉽게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원래 인간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
한편 입까지 확실하게 막힌 헤이즈는 두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타넥스 안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내가 아닌 어깨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올라, 헤이즈를 계속 보호해 줘. 가까이 오는 곤충이 있으면 화력 아끼지 말고 전부 쏟아부어. 접근조차 못 하게.”
-명령을 수행합니다.
나는 헤이즈의 시선을 따라, 빠르게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100m 정도 갔을까?
휘이이잉.
황량한 바람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바람 따라 연신 넘실거리는 식물이 하나 보였다.
“오호?”
한데 특이했다.
줄기만 봐서는 옥수수를 쏙 빼닮았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감자와 같은 것이 보였다.
사막, 아니 사막보다 더 황량한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알맹이를 맺은 것이다.
나는 바로 그것을 베어 물었다.
항시 만독불침지체의 상태이니, 중독에 대한 걱정은 없어서다.
쩝. 쩝쩝.
씹어 보자 감자와 고구마를 섞은 듯한 맛이 났다. 속도 꽉 차 있었고, 식감도 좋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줄기가 통통한 것이 뭔가 신기해서 멸살의 단검을 이용해, 줄기를 횡으로 그어 보자.
푸슈슈슈!
안에 가득 차 있던 물줄기들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척박하기 짝이 없는 주변 환경과는 다르게, 녀석이 갖고 있던 수분 저장량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두 단어를 떠올렸다.
나스 대전쟁. 대기근(大飢饉).
그것은 가뭄과 흉년, 끝없는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스 대륙 전체에 찾아오는 3년 후의 대재앙에 대한 또렷한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