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173
제 173화
60장. 소트라스(Sotras) – 2화
‘장액(腸液)을 채취해야 해.’
어보미네이션의 체내로 들어온 김에 나는 녀석의 장액까지 확실하게 채취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보미네이션의 장액이 워낙 독성이 높다 보니, 인간뿐만 아니라 마족에게도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장액에 노출될 경우, 야기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외피가 약해진다. 즉, 마방과 물방이 대거 감소한다.
둘째, 순간적인 실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셋째, 환각이 계속 유발된다.
이 역시 의 고인물 플레이어들이 알아낸 팁이었다.
정상적인 루트라면 당연히 어보미네이션의 내장에서 얻은 장액을 마족에게 투척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마 대전에 연계된 수많은 던전과 필드에서 마족들은 무적에 가까운 위용을 떨쳤다.
마족 공략법에 골몰하던 고인물들은 녹슨 물, 썩은 물, 똥물(?) 등등을 투척하는 방법으로 디버프 효과를 유발할 방법을 찾았다.
당연히 시행착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실패의 대가는 플레이어들의 목숨으로 치렀다.
그렇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던 중, 발견한 것이 어보미네이션의 장액을 뿌리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녀석 정도는 충분히 묻히고도 남을 양이다.’
나는 빠르게 몸의 위치를 바꾸며, 어보미네이션의 내장을 찾았다.
푸후욱- 푸후욱-.
내부에서 연녹색의 연기가 계속 솟아올랐고, 그때마다 속이 뒤집힐 정도의 악취가 났다.
독성도 제법 있는 듯했지만, 만독불침지체가 그것을 능히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점점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오랜 시간이 허락될 것 같지는 않았다.
푸욱!
나는 멸살의 단검을 품속에서 꺼내서는 눈앞에 보이는 어보미네이션의 내장을 그대로 찔렀다.
부우욱!
그리고 그 상태에서 사정없이 내장을 세로로 찢어 내 버리자.
“끄오오……!”
외부에서 고통에 가득 찬 어보미네이션의 비명이 들려왔다.
주르르륵.
‘장액이다.’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포션 병에 바로 장액을 담았다.
악취는 기본이고, 정체불명의 덩어리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이것들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보나 마나 녀석이 삼킨 동물의 사체일 테니까.
“크윽, 숨이 벌써부터…….”
공기가 점점 희박해진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 오는 것이 내부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제법 높은 듯했다.
나는 바로 어보미네이션의 체내의 다양한 위치에 여러 개의 불씨를 뿌렸다.
플레임 애로우면 충분했다.
화르륵!
사방으로 뻗어 나간 불씨가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았다.
활활 불길이 타올랐지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그러기에 녀석은 여전히 단단했다.
‘하지만 대폭발을 일으키면 다르지.’
불씨가 번지면서, 체내에 여기저기 다닥다닥 박혀 있는 수많은 시체로 불이 옮겨붙었다.
[연쇄 발화를 위해 한 명의 인원에 1천의 마력을 소모합니다.]나는 특수 마법란에 적혀 있는 연쇄 발화의 툴팁에 주목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 명의 ‘인원’은 꼭 한 명의 사람뿐만이 아니라, 시체의 일부분도 인정된다.
각기 주인이 다른 다섯 개의 부위가 있다면, 5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에서 연쇄 발화를 제법 다뤄 본 플레이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꿀팁이었다.
좀 더 불길이 번지기를 기다리자, 이윽고 불길이 제법 넓게 번졌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절대 약화의 반지의 6번 옵션, 확정적 해체를 디버프로 바로 걸었고.
‘연쇄 발화.’
이어서 연쇄 발화 마법을 전개했다. 그 순간, 2만에 가까운 마력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동시에 마법 하나를 더 펼쳤다.
‘트랜센던스 스톤 스킨.’
몸 전체의 석화.
일시적으로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게 되나,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을 극대화시키는 방어 마법이었다.
그간 공격 위주의 전투를 해 온 터라 쓸 일이 없었는데, 오늘만큼은 이 마법이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퍼퍼펑! 퍼펑! 퍼펑!
어보미네이션의 몸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 * *
폭발 장면은 비단 자레드와 헤이즈뿐만 아니라,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소트라스의 눈에도 들어왔다.
“이런 정신 나간…….”
정말 정신 나간 일이 벌어졌다.
자신이 정말 온 힘을 다해 두들겨 패서 죽이려 해도 한세월은 걸릴 것 같은 어보미네이션이었다.
그런 녀석이 마치 햇볕 아래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머리에서부터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코어가 박살나면서, 시체와 시체 사이를 엮는 연결고리가 남김없이 깨졌다는 뜻이었다.
약점을 완벽히 꿰뚫고 있는 공략이었다.
이것은 같은 방식으로 마계의 어보미네이션을 잡아 본 적이 없다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두 녀석을 생포하면…….”
소트라스의 시선이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두 남녀에게로 향했다.
저 정도의 힘을 가진 인간이라면, 충분히 연구 가치도 있어 보였다.
마계로 데려간다면, 존경해 마지않는 마왕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아주 높아 보였다.
“너희들은 오늘 제삿날이다.”
소트라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은 이 공간에서 절대 만날 수 없었을 마족과 인간이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 * *
“반갑다, 인간. 예전에 나스 대륙어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소통은 문제없겠군.”
‘역시 마족이었어.’
예상대로 이 공간의 주인은 마족이었다.
마족 소트라스.
심안을 통해 스캔을 완료한 녀석의 이름이었다.
따로 신의 가호가 내리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높은 서열의 마족은 절대 아닌 듯했다.
애초에 마족은 아직 등장할 타이밍이 아니기도 했다.
성마 대전이 벌어지려면 아직도 6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계와 마계를 잇는 거대한 차원문도 열려야 하고.
‘전체 스탯 평가는 갈라딘 공작의 수준에서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된 정도. 소드 마스터의 수준에는 살짝 못 미치는 구성의 스탯이야.’
일단 다소 왜소한 외형, 보잘것없는 무장의 상태로 봤을 때.
소트라스가 최하급 서열의 마족임은 확실해 보였다.
그 정도 서열의 마족이 소드 마스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 이후 서열이 올라갈수록 파워 밸런스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짧고 굵게 가자.’
장기전은 좋지 않아 보였다.
비장의 무기로 들고 있는 장액도 효과가 길어야 5분이다.
그 안에 어떻게든 승부를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마족 대다수는 마치 패시브 스킬처럼, 시간이 지날 때마다 육체 개변을 일으키며 강해지는 레퍼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헤이즈.”
“네.”
“나와 10m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계속 치유술로 체력을 보조해 줘. 하지만 안전의 우선순위는 너다. 네가 안전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내 체력을 보조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정확히 알아들었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즈가 거리를 두고 섰다.
그녀에게 눈앞의 상대가 마족이라는 사실은 얘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놈은 내가 상대할 것이고, 괜한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는 정보는 전달하고 싶지 않았다.
‘마족과의 전투라…….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벌어지게 된 일이지만 괜찮아. 할 수 있다. 자레드!’
힘차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사기를 북돋웠다.
마왕도 아니고, 최상위 마족도 아니고, 최하급 마족이지 않은가.
여기서 내가 패하게 된다면, 6년이 지난다고 해도 지금과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샤아아아.
헤이즈의 치유술이 기분 좋게 몸 전체를 감쌌다.
체력은 최대치지만, 치유술 특유의 각성 효과 덕분에 몸 전체의 반응 속도가 한결 높아졌다.
“고마워, 헤이즈.”
“맡겨 주세요, 폐하.”
“마족의 터전에 함부로 들어온 너희들을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
파앗!
소트라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별도로 마법을 쓴 것은 아닌데, 소트라스의 위치가 순식간에 5m를 좁혀 들어왔다.
‘마기를 이용했구나.’
마기를 이용한 기술은 마법이나 주술과 달라서 디스펠 마법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
나중에 9클래스가 돼도, 디스펠로 재미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그것이 마족 공략을 가장 까다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고.
“죽어라!”
날카로운 소트라스의 손톱이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아니, 갈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쇄애애액!
“크윽!”
분명 손톱이 내게 닿지도 않았는데, 내 복부에 세 개의 선이 그어지더니 바로 피가 튀었다.
순간 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다가, 이내 사라졌다. 만독불침지체의 효과 덕분인 듯했다.
“클클클, 재밌는데?”
놈이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의 상황을 빠르게 복기해 보니, 손톱 끝에서 마기가 빠르게 분출된 듯했다.
“…….”
후방의 헤이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치유량을 직전의 두 배로 늘렸다.
걱정하는 티를 내면 내가 신경을 더 쓴다는 것을 알고, 눈치 빠르게 침묵을 지킨 것이다.
그래도 든든했다.
그녀의 치유술 덕에 복부의 상처는 빠르게 회복됐고, 이내 없었던 일처럼 모두 메워졌다.
“인간, 대체 나만의 공간인 이곳에 어찌 들어온 것이냐?”
소트라스는 그것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궁금했다. 녀석이 어찌 이 공간을 만들었는지.
“뭘 어떻게 들어와? 열려 있기에 들어왔지. 그러는 너는?”
“애초에 이곳은 열어 둔 공간이 아니었다. 폐쇄된 공간이야. 그런 이곳에 네가 들어왔으니 묻는 것이다.”
단지 대균열 탓은 아닌 걸까?
소트라스가 여기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에는 플레이어들이 남긴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게임 속 기현상은 굳이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말고, 딱 한 가지만 떠올리라고.
이것도 의 거대한 세계관 속에 숨겨진 이스터에그 혹은 떡밥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네놈을 붙잡아 고문이라도 해 보면 알아서 불겠지? 크하하하!”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여겼는지, 소트라스가 미련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타넥스 착용. 출력 최대치.’
이제부터는 전면전이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조금도 없었기에, 즉시 타넥스를 착용했다.
내가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와 타넥스의 최대치를 합쳐, 극대화된 시너지효과를 유도할 생각이었다.
“죽어 버려!”
역시나 소트라스는 가장 자신 있는 마기 공격을 펼쳤다.
손톱을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봐서는 마기를 가장 능숙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부위인 듯했다.
사람도 다양한 무기를 취향대로 골라 쓰듯, 마족도 자신의 기운을 활용하는 매개체를 다양하게 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놈의 손톱은 반드시 박살 낸다.’
목표를 설정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내게 날아드는 마기의 수준이 심상치 않았다.
“흡!”
바로 바람의 장벽을 펼쳤다.
탐색 차원에서, 마력을 아끼기 위해 적당하게 1천 정도만 활용했다.
다음 순간.
까치이잉!
바로 장벽이 박살 났다.
장벽에 부딪혀 경로가 뒤틀어진 마기는 순식간에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크어억.”
제법 많은 핏물이 한 번에 주르륵하고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나는 다시금, 아주 확실하게 몸으로 느꼈다.
소트라스에게 어설프게 힘을 아끼며,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어.’
바로 이곳에서 현생을 허무하게 마감할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