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9
제 219화
75장. 신궁 아슈르 – 1화
연회를 열었다.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동료와 신하를 보낸 것이 자레드의 기준으로는 불과 몇 초 전의 얘기지만.
당사자들에게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것이기에 자레드는 그들의 노력을 치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회 자리에는 아르케네스도 참석했다.
수련의 방 공략은 비전투 요원이므로 빠졌지만, 성마 대전을 대비해야 하는 것은 그녀 역시 같았기에.
어쨌든 자레드는 여덟 명의 제자에게서 수련의 방에서 있었던 얘기를 빠짐없이 경청했다.
궁금했다.
에서 경험한 수련의 방은 선사시대(先史時代)를 연상시키는 고대 배경이었다.
이질적으로 베이스캠프에 현대적 먹을거리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태초의 던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한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이번 ‘수련의 방’에 대한 얘기는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지구인가?’
얘기를 듣자마자 자레드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늘 높이 솟은 마천루,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와 현대 문물까지.
그것은 자레드가 살았던 ‘전생’의 지구를 쏙 빼닮은 것이었다.
그림에 제법 솜씨가 있는 헤이즈가 그려 준 그림을 봐도 영락없는 지구였다.
특히 사과를 한입 베어 문 듯한 로고가 박힌 전자제품의 그림을 그렸을 때는 순간 경악했을 정도였다.
‘평행세계의 또 다른 지구일 수도 있고, 유사 문명일 수도 있겠지. 동일시할 것은 없어.’
자레드는 판단을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설령 그곳이 자기가 살던 지구와 같은 곳이라 하더라도,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수련의 방은 자신이 참여할 수도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고 했다.
그저 지구와 같은 현대 문명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몬스터 필드를 휘젓고 다닌 느낌이었다.
“다들 고생 많았소. 저마다 성장한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구려. 참, 그곳에서 얻은 한 살의 나이는 없는 것으로 칩시다. 어떻소?”
“적극 찬동합니다, 폐하!”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은 올해로 마흔셋의 연장자, 라키스였다.
“디미오스 마법사단의 이름을 걸고 비밀은 확실하게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연장자인 나오미도 찬성.
그러자 엘라도 옆에서 묵묵히 손을 들었다. 그녀도 올해로 서른다섯이었다.
어쨌든 전원이 수련의 방에서 있었던 일은 영원히 비밀 속에 묻기로 했다.
분명 나이를 먹었지만, 먹지 않았다. 그것이 최종 결론이었다.
* * *
연회의 분위기는 계속 무르익어 갔다.
나는 앞을 다투어 무용담을 말하는 동료와 신하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특히 미아와 레나가 어깨에 힘까지 잔뜩 줘 가며 말하는 무용담은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다.
심안으로 모두의 성취를 파악한 마당이라 그런지, 이제는 제법 계산이 섰다.
그래서 나는 더 늦기 전에 최소한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통보’는 해 두기로 했다.
“머지않은 시일 안에 나스 대미궁 공략에 나서도록 합시다. 여왕 폐하께서도 시간을 내주시면 참 감사할 듯합니다.”
“……나스 대미궁 말이옵니까, 폐하? 그곳은 내로라하는 헌터들도 공략하기 힘들어하는…….”
라키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나스 대미궁은 수많은 모험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전생의 ‘에베레스트 산’ 같은 곳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에 도전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렇소. 나스 대미궁만큼 우리의 성장을 빠르게 이뤄 낼 수 있는 곳은 없소.”
내 말에 유일하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클로이였다. 나스 대미궁 유경험자는 그녀밖에 없으니까.
“가능하겠습니까?”
나오미가 차분하게 물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쥔 것으로 봐서는 나름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
나스 대미궁은 성마 대전에 앞서서, 반드시 나와 동료들이 공략을 마쳐야 하는 곳이다.
무슨 뜻인가 하면, 나스 대미궁이 곧 전투력 측정기가 될 거라는 얘기다.
나스 대미궁 지하 100층을 공략할 실력이 되지 못한다면, 결코 마왕을 상대할 수 없다.
그것은 에서도 정해진 공식 같은 것이었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물론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에서 나스 대미궁 100층을 공략한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출시 이후로 마왕은커녕, 그가 거처하는 마궁(魔宮) 수문장도 공략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변수는 점점 늘어나겠지.’
전생의 기억과 경험에만 의지할 때는 이미 예전에 지났다.
자레드도 그것을 알기에 필요한 정보 수집 외에는 절대 전생의 기억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았다.
‘마왕을 상대하는 것은 전생의 신태풍이 아니라, 현생의 자레드가 해야 할 몫이야.’
그리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모두가 합심하여 공략한다면, 현재 우리의 수준으로 60층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오.”
“근거는요?”
미아가 명랑한 소리로 묻는다.
생각해 보니, 녀석의 질문은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말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나야 심안과 전생의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한다지만, 그것을 이들은 모를 테니까.
“나만 믿어. 그럼 된다.”
“네! 그럼 나스 대미궁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을게요!”
생기발랄한 미아는 더 이상 의구심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모두 고생 많았소. 남은 와인을 모두 비울 때까지 즐거움을 마음껏 누립시다. 그 뒤는 다시 현업으로 복귀하는 것이오.”
“예, 폐하!”
나는 자리를 옮겨 가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스레 와인을 따라 주었다.
짧은 시간에 동료들에게 벌어진 극적인 변화.
오늘 일이야말로 미래를 대비한 신의 한 수가 될 것 같았다.
* * *
얼마 후.
성대했던 연회가 끝나고, 모두 물러간 후 혼자만 남게 된 새벽.
자레드는 황궁의 내부 산책로를 따라서 홀로 걸으며,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
그것은 바로 신궁 아슈르의 영입에 대한 건이었다.
그간 자레드는 추가로 영입할 인재 목록을 계속 골몰해 왔다.
사실 많은 수의 인재가 이미 등용되어 제국 전역에 배치된 상태였다.
다만 네임드라 할 수 있는 인재는 아니었고, 그 보조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수준의 인재였다.
어쨌든 인재를 대거 배치한 덕분에 제국의 내치는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발데스의 선전, 율리안의 행정, 아빌라의 상업, 오브렌의 농업, 모이즐과 아세로의 전략 무기 및 아티팩트 생산까지.
빈틈은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다수의 왕국을 통합하며 세를 크게 불린 아르케네스의 상단은 이제 완벽한 대상단을 이루었다.
제국군 전체와 기사단, 그리고 마법사단의 육성도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었고.
‘문제는 네임드 구성원이지.’
자레드가 늘 아쉬워했던 것은 현재 자레드의 팀에서 부족한 원거리 물리 공격 딜러였다.
즉, 활을 쏘는 자가 없었다.
자레드는 늘 그 점이 아쉬웠다.
활과 궁마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수월했을 공략이 많았기 때문이다.
궁수의 강점은 적의 직접적인 타깃이 되지 않는 한, 원거리에서 언제든 마음껏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울러 궁마법은 마법과의 연계도 좋아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아슈르가 필요해. 녀석까지 확실하게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인재 영입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자레드의 최종 영입 목표는 바로 아슈르였다.
신궁이라 불리는 존재.
제아무리 마족의 심장이라 한들, 사과를 쪼개듯 일격에 적의 가슴을 꿰뚫어 버리는 활의 강자.
자레드는 아슈르를 꼭 영입하고 싶었다.
아슈르는 에서 주인공의 편에 서서 몇 번이고 던전 공략을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메인 스토리 진행 중 답답한 구간이 생길 때면 시원하게 뚫어 주기에 ‘뚜러뻥 아슈르’라는 별칭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장착하는 활에 따라 전투 능력이 천양지차라는 것.
그런 까닭에 장비를 무척이나 따지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아슈르와의 최고 궁합은 레클리스의 활로 알려져 있지.’
마침 레클리스의 활은 일전에 로스트 아일랜드 공략에서 얻은 바가 있었다.
그러니 준비물은 이미 갖춘 상태. 이제는 이 명궁(名弓)을 사용할 사람만 있으면 된다.
‘설마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생겨 죽은 것은 아니겠지?’
그레이 엘프의 땅에서 벌어진 ‘마족 아웃브레이크’로 인해 크나큰 변수를 체감한 상황.
그렇기에 자레드는 이제부터 슬슬 변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여 봤자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었기에 자레드는 곧바로 나스 대미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어차피 통신석이 있어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신하들이 연락을 할 테고.
복귀는 가즈넬라의 날개를 이용해서 헤이즈의 곁으로 즉시 이동하면 되니 말이다.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파아앗!
이윽고 자레드의 모습이 황궁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반나절 후.
자레드는 불과 얼마 전에 클로이와 함께 왔었던 나스 대미궁에 다시금 도착해 있었다.
* * *
그로부터 1시간 후.
“하악. 하악. 하악.”
20명에 달하는 흑영(黑影)에게 일방적으로 쫓기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아슈르 바티아스.
나스 대미궁에서는 궁술의 달인이라 불리는 헌터로 제법 유명세를 떨치는 인물이었다.
나름 이름도 알려졌고, 사람들과 딱히 척을 진 적도 없어 헌터들과의 관계는 좋았다.
무엇보다 아슈르의 특징은 나스 대미궁이 있는 이 섬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헌터들은 그를 현지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주변 모든 것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처음 이 섬을 찾아온 스물다섯의 인원이 아슈르를 추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슈르의 곁에 있던 사람 둘이 참살을 당했다. 단지 그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처음에 아슈르는 자신의 재물과 무기를 노리는 질 나쁜 녀석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싸워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잘 훈련된 정예 암살자들이었고, 무엇보다 아슈르의 제거가 목적인 자들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눈치챘느냐 하면.
그들은 아슈르의 궁격과 궁마법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막아 낼 수 있는 기술과 아티팩트로 무장했기 때문이었다.
검 따위를 이용한 근거리 공격 능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맞춤형으로 전략을 짜 온 이들이었다.
“제기랄…….”
아슈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이 누가 보낸 자들인지는 이제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바로 암흑 교단인 카코(Kako) 교단의 단원들이 틀림없었다.
다섯을 죽였지만 여전히 스물이 남아 있었고, 갈 길은 요원했다.
더 큰 문제는.
“망할.”
아슈르의 양손이 할 일 없이 심심하게 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었다.
하필 전투 중에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활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등에 대롱대롱 매달린 화살통만으로는…… 애석하게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